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 사진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사진 이야기
다니엘 지라르댕.크리스티앙 피르케르 지음, 정진국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4월
품절


논쟁에 싸여 있던 무수한 사진들을 열람했더니 머리가 핑핑 돈다.
논쟁의 종류는 여러가지였는데 법정 공방이 가장 많았다.
저작권 소송도 있었고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들도 있었다.
때로 도덕적 비난을 받더라도 찍는 것이 사진 작가의 도리일 때도 있지만,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일 것이다.

첫번째 사진은 비스마르크의 임종 사진이다. 그의 사망 소식을 알아차린 사진가 둘이 가택에 무단 침입해 시신을 살짝 옮겨 놓고 사진을 찍었다 한다.
늙고 초췌한 모습을 한 비스마르크에게선 철혈 재상의 면모는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근엄하던 인물에게서 꽤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주었다고 한다. 비스마르크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못 궁금하다.
두번째 사진은 베르겐벨젠 나치 포로 수용소의 무더기 시신과 911 테러 당시 찍힌 잘린 손의 사진이다. 세번째 사진은 어린이라고 하기엔 좀 더 성숙한 십대 소녀들의 누드 사진이고 네번째는 히틀러로 추정되는 시신의 사진이다.
모두 9장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인데 자극적으로 보일까 봐 작게 만드느라 그렇게 되었다.
잘린 팔목은 무수한 시체 더미보다 더 적나라하고 끔찍했다. 모두 무수한 사람들이 죽은 사건이고 그건 모두 인간이 저지른 만행이라고 생각하니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소녀들의 사진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한동안 저런 사진 찍는 것이 꽤 성행했다는 것이고, 뒤늦게 아동학대에 대한 개념으로 논란이 번져 법정 공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놀랍게도 사진을 찍은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저 사진을 찍을 때 성적 수치감을 느끼지 못했고 그런 의도로 찍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말도 맞을 것이다.
다만 두번째 여자 아이는 14세 때의 브룩쉴즈인데 가장 유명했던 그녀는 훗날 저 사진이 더 이상 유포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재판에서 지고 말았다. 성장했을 때의 얼굴보다 훨씬 매혹적으로 느껴져서 저 사진만 크게 넣고 싶은 유혹이 일었지만 참았다.
히틀러의 죽음에 대해서는 워낙 소문이 분분하여서 저 사진도 진짜일지 확신할 수가 없다. 남극에 기지를 만들어 놓고 소년대원들을 키운다는 전설(!)을 고등학교 시절에 들었더랬다. 가슴의 사진은 그가 죽기 이틀 전에 결혼했던 에바 브라운이다.

이 사진들은 조작되었거나 혹은 조작되었다고 의심을 받은 사진이다.
1920년에 열일곱 소녀는 열한 살 사촌에 의해 요정과 함께 사진에 찍혔다.
이 사진은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을 자극시켜 이 사진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려고 무척 애를 썼다고 한다. 심지어 이 문제를 다룬 책도 펴냈다고 한다.
이 사진을 찍었던 열한 살 소녀는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정말 요정이 찍힌 것이라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사진의 주인공인 17세 소녀는 83세가 되었을 때 직접 요정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책의 삽화를 베껴서 잘라 낸 판지에 붙이고 그 요정들을 모자 핀으로 나뭇잎에 걸었다는 것이다. 셜록 홈즈가... 안타깝다....

오른쪽은 유명한 달 착륙 사진이다. 성조기가 대기가 없는 무중력 공간에서 펄럭이고 있는 것을 들어 조작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나도 그 소문에 무척 솔깃하고 말았다. 69년에 달에 착륙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은 달 왕복 우주선을 운행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 선생님께 그런 얘기를 했더니 엄청 비웃음을 샀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음모론은 무척 설득력이 있다는 게 문제다.
아래 사진은 좀 충격적이었다.
시체더미 속에 갓 태어난 것 같은 아주 작은 아기가 있고 그 앞에서 한 남자가 오열하고 있다. 당연히 그가 저 아이의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사진은 1989년 12월에 찍힌 것으로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을 전 세계의 공적으로 들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독재자가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이 사진은 조작된 것이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열아홉 구의 시신을 공동묘지 밖으로 파냈단다. 그러니까 저 남자와 아기, 그 옆의 여자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단다. 여자는 몇 주 전에 간경화로 사망했고, 아기는 식중독으로 돌연사했다고...
여론은 충분히 환시키겼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

장 폴 사르트르의 사진이다. 두 사진의 차이점이 보이는가?
힌트는 손에 있다.
그러니까 왼쪽 사진은 담배를 쥐고 있고, 오른쪽 사진에는 담배가 지워져 있다.
왼쪽 사진은 1946년에 찍힌 것인데, 그 사진이 2005년 국립 프랑스 도서관 카탈로그에 실리면서 흡연을 부추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사진에 손을 댄 것이다.
의도는 알겠지만, 그래도 이건 지나친 오버로 보인다.

1950년에 파리 시청 앞의 찐한 키스신으로 유명한 이 사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간 이 사진의 주인공이라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라베르뉴 부부는 약혼 시절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찍힌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프랑수아즈 보르네가 당시 자신의 남자 친구 자크 카르토와 찍은 사진이다. 게다가 이 사진은 사진을 찍은 로베르 두아노의 요청을 받고 포즈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양쪽으로 법정 싸움을 진행시킨 두아노는 이 사진이 연출했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재판에서 이길 수 있었다. 역시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진의 주인공 프랑수아즈 보르네는 '그 순간은 가짜였지만, 키스는 정말 뜨거웠다'라고 회상했다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정말 멋있는 키스였다.

아래 사진은 1960년에 찍힌 체 게바라의 사진이다.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하던 사진가는 이 사진이 혁명적 대의에 사용되는 것에 행복해 했지만 실상 체의 사진은 상업적 목적으로 더 많이 이용되었다. 더 이상 그러한 관행을 묵과할 수 없었던 사진가 알베르토 코르다는 소송을 걸었고, 배상금으로 7만 달러를 받는다. 그는 이 돈을 모두 쿠바 어린이 복지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민간 단체에 기증했다.
멋지다! 그렇지만 지금도 영웅적 게릴라의 사진은 지극히 상업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 역시 아이러니 그 자체!

1955년 파리에서 찍힌 이 사진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야회복이 주인공이다.
거대한 두 마리 코끼리 사이에 있는 우아한 실루엣의 모델은 강렬한 대비를 보여주면서 눈을 잔뜩 사로잡는다.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도 이미지를 더 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순간 디오르를 향해 찬사를 보내야 할지, 사진가를 향해 보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래 사진은 베네통의 광고에 쓰여진 것으로 신부님과 수녀님의 키스 장면이다.
독신을 지키는 두 종교인에 대입시킨 세속적 사랑은 여러 곳에서 비난을 받으며 금지 처분을 받게 했다.
이슈의 측면에서 볼 때 사진가는 거의 천재다.
어떻게 보면 몹시 도발적인데, 또 어떻게 보면 지극히 순수하게도 보인다.
어떤 수녀님은 이 사진에 무척 감동을 받아서 사진가에게 사진을 보내줄 수 있겠냐고 편지를 썼다고 인터넷에서 읽었다.
수녀님을 움직일 정도라면 이 작가 정말 천재가 맞겠지...

왼쪽은 마르크 가랑제가 1960년에 찍은 세리드 바르카운의 초상이다.
뭔가 항변하는 느낌의 눈빛은 지극히 우울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진은 알제리 인들에게 통행증을 발급하기 위해서 강제로 사진을 찍게 한 것인데, 그 바람에 히잡도 걷어내고 이방인 앞에 서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저 표정은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속으로 삭이는 것도 힘겨웠던 감정이었을 터...
오른쪽 사진은 2004년에 동일인물을 다시 촬영한 것이다. 손자들에 둘러싸여서 전통의 복장을 고수한 그녀의 표정은 앞서의 사진보다 차분해 보인다. 그녀 대신 손주들이 더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가는 어떤 설명으로 그녀의 허락을 얻어냈을까...

기 부르댕이 찍은 1972년 프렌치 보그 사진이다.
까다로운 각도의 거울 배치가 모델의 관능미를 한껏 끌어냈다.
이 사진이 논쟁이 된 것은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때문이었다.
2003년에 발표한 '할리우드'라는 노래에서 비슷한 설정을 갖다 쓴 것이다.
뮤비를 보니 아이디어를 차용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첫번째 사진은 콜롬비아에서 화산이 폭발해서 오마이라 산체스라는 어린 아이가 부상을 입고 갇힌 사진이다. 3일 동안이나 구조 대원들이 소녀를 구출하려고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고 한다. 소녀를 구할 기중기와 배수 펌프가 제때 도착하지 못했고 소녀는 쇠막대에 허리를 다쳐 다리를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진가 프랑크 푸르니에는 고민했다. 사그러드는 생명을 생중계하는 것이 그녀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 될까봐... 푸르니에는 희생자의 위엄을 증언하는 쪽을 선택했다. 소녀는 결국 심장 발작으로 숨을 거두었다.

두번째 사진은 워낙 유명한데, 굶주려 죽어가는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를 함께 찍어서 퓰리처상까지 받았던 화제작이다.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는 유명세만큼이나 비난을 받았고,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두 달 뒤에 자살을 했다. 퓰리처전에서 들은 설명으로는 당시 보도 지침으로 인해 아이 곁으로 근접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고 했다. 할 수 있는 조치는 취했지만, 그것이 아이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고, 섬세하고 예민했던 사진가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보도 사진가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예다.
그는 죽었지만, 분명히 이 사진이 수단의 기근과 내전의 참상에 대해서 확실한 고발이 되었다. 그는 충분히 소명을 다했다고 본다.

2000년, 이브 생 로랑 향수 광고를 위해 포즈를 취한 소피 달이다.
똑같은 사진인데 90도 회전했더니 느낌이 확 달라진다.
짙푸른 광택있는 천 위에 새하얀 피부의 나신이 대조적이어서 더 눈부시고, 붉은 머리카락과 귀금속 등이 또 그녀를 관능적으로 보이게 한다.
어떤 향수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흥미를 돋운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세상에 키가 182다.
그것보다 더 나를 놀래킨 것은 로알드 달의 손녀다. 어머나!!!

마지막 사진은 정말 감탄사를 연발케 한 안젤리나 졸리의 사진이다.
2004년에 찍었다.
'여자와 말'이라는 주제의 특집호라고 하는데, 이 이미지가 동물과의 성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고 우려한 스위스 배급사는 이 특집호를 판매하지 않기로 하고 정기 독자에게도 발송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의혹을 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서 찍었다고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너무 아름다워서 표현의 자유라는 전가의 보도를 내밀고 싶다.
졸리는 언제나 아름답고 그래서 늘 옳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어휴, 편애라는 걸 알지만 도리가 없다.

무수한 논쟁거리가 담겨 있는데, 글 읽는 재미는 아주 크지는 않았고 사진 보는 재미가 훨씬 컸다. 번역은 좀 정교하지 않은 편이다.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고 가끔은 부적절한 어휘 선택에 아쉬움을 느꼈다.
도서관에 신청해서 첫번째로 빌려온 책인데 내 뒤로 대기자가 이미 두 명이다.
인기가 많아서 신청한 사람으로서 기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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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5-2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지막 사진은 정말!!

마노아 2011-05-27 14:26   좋아요 0 | URL
마지막은 다락방님이 저장해야 할 사진이에요.
이 사진은 사이즈 줄이면서 무지 아까웠어요. 더 고해상도로 갖고 싶어요.(>_ㅡ)

다락방 2011-05-27 23:23   좋아요 0 | URL
정말 엄청나게 야해요, 마노아님. 야하다는 표현 말고 다른 거 없을까? 야하다는 거 보다 좀 더 근엄한 표현 없나요? 암튼 엄청나요.

마노아 2011-05-28 00:12   좋아요 0 | URL
굉장히 자극적이고 야한데, 그런데 또 우리의 졸리 여사는 절대로 값싸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대단한 포스예요. 그리고 졸리가 저렇게 가슴이 큰 줄 몰랐어요. 도대체 부족한 게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