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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일드한, 너무나 와일드한

  
민규동(영화 감독) 

 

  안녕, 커피진주.
  그대의 글에 취해서인지 오늘 난 장 콕토의 이 짧은 시를 떠올렸어.  

      내 귀는 소라 껍데기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듣는다.      

  왠지 아편에 취해 쓴 시 같지 않니? 나도 그처럼, 아편과 또 아편 같은 어떤 것과도 뗄 수 없는 인생을 살았던 장 콕토의 숨결에 한참 귀 기울여봤어.   

     

이 세상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없으며,
심지어 사랑이란 이름으로  
급행열차 앞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끌어안기도 한다.
하지만, 아편을 피우는 것은 움직이는 열차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자신을 관련시키는 것이다.

     

 
나는, 장 콕토의 이 아편 예찬에 유혹당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소개된 아편굴처럼 몽롱한, 한 세기 전의 어느 다락방으로 숨어들어 가봐. 거기엔 숨을 거두기 직전의 한 남자가 뭐라고 속삭이고 있어. "저 벽지와 나는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고 있어. 우리 둘 중 하나는 끝장나야 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낡은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흐린 눈빛으로 더러운 천정에 반사되는 자신의 상처받은 욕망을 되돌아봤을 오스카 와일드의 굴곡진 인생 궤적이 떠올랐어. 꿈꾸는 자가 누구보다 먼저 훔쳐본 새벽 풍경처럼 말이야.

      그렇다, 나는 꿈꾸는 자이다. 왜냐하면, 꿈꾸는 자는 오직 달빛으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며, 그가 벌을 받는 것은 세상 사람들보다 먼저 새벽을 보기 때문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다고 주장한 오스카는 어떤 의미로든 ‘행복보단 즐거움’이라는 신조를 내세우고 미와 쾌락에 중독된 삶을 살았어. 그래서인지,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보통 작가와는 다른 거 같아. 그 작가는 많은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대신 수 없는 아포리즘을 남겼거든. 말하자면, 작품보다 이상한 차림새나 빼어난 격언들을 쏟아내는 뛰어난 언변으로 더 유명했었어. “나는 내 천재성은 삶 속에 넣었고, 내 재능만 작품 속에 집어 넣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이렇게 썼듯, 자신의 천재성에 대해서도 늘 확신했었어. 강연 차 뉴욕에 도착했을 때 세관에서 이렇게 소리쳤대. "난 내 천부적인 재능밖에는 신고할 것이 없소." 이런 식으로 늘 자신이 미와 자아실현 사이의 딜레마를 탐구하기 위한 순례자인 것처럼 요란한 댄디즘을 앞세웠어. 요즘으로 치자면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무장한 지적인 독설에 해당하는 건데, 그의 말장난에 대한 독특한 욕구는 “세상에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더 나쁜 건 단 하나, 구설수에 오르내리지 않는 일”이라고 스스로 표현했듯, 세인들의 삐딱한 댓글들을 한 편으로는 즐기면서 살았던 거야. 세상의 눈치를 보기는커녕, 관능적으로 자극하는데 열정을 바쳤던 오스카는 끝내 수습하기 어려운 큰 사고를 치고 말아.

  “결혼은 너무 무거운 짐이어서 때론 세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였을까. 오스카는 결혼 후에도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그리고는 모든 걸 잃어. 그가 말했듯, 삶에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비극과 원하는 것을 얻는 비극, 두 종류의 비극밖에 없는지도 몰라. 그는 결국 원하는 걸 얻고 비극으로 막을 내려. "모든 비극은 죽음과 함께 끝나고 모든 희극은 결혼과 함께 끝난다"는 바이런의 저주에 걸려든 것처럼 말이야.

  양성애자인 오스카는 미소년들이 있는 술집을 자주 찾았어. 결혼 후 찾아온 뜨거운 사랑의 주인공도 남자였어. 이탈리아에서 만난 옥스퍼드 대학생 꽃미남 귀족 알프레드 더글라스와 사랑에 빠져. 4년간, 이 어린 연인과 세상을 돌아다니며 향락을 누려. 데이트 비용을 위해 급하게 희곡을 써서 팔기도 할 정도로 푹 빠져 살아. 이 사실을 알게 된 알프레드의 아빠, 퀸즈베리 후작이 오스카를 협박하기 시작해. 친구들의 만류에도, 자기 아버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는 연인 알프레드의 말을 실행에 옮겨. 하지만, 재판은 지고, 오히려 그에게 동성애 죄목으로 부메랑 고소를 당해. 작품도 못 쓰게 되고, 재판 비용을 떠안아 파산했고, 가족은 도망가버려. 동성애 금지법 판결 제1호 인물로 영국서 쫓겨난 오스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의 어느 호텔 다락방에서 쓸쓸히 죽고 말아.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최대의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나만의 개성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일을 어느 날부터 그만두는 것이다.      

  맞아, 그는 실수 아닌 실수를 했어. 재판에서까지 자신의 입담을 발휘하며 당당하게 자신을 변호했던 거야. 그 오만함의 대가는 참혹했지. 하지만, 난 오스카의 몰락이 ‘퇴폐’나 ‘방종’의 대가가 아니라 ‘편견’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어. 오스카에게 조롱받던 당시 빅토리아 왕조의 귀족들의 자존심에 대한 상처, 게다가 식민지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에게 느꼈던 앙심 그리고 교양과 품위를 유지하고픈 많은 지성인에게 오스카는 공공의 적이었을 테니까, 이것은 편견의 보복이 분명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당시 퀸즈베리 재판정에서 오스카의 문란함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쓰였다고 할 정도니까, 사실 그의 인생은 ‘때를 잘못 만나 잘못 일그러진 잘못된 경우’라고 생각해.

  그래도 오스카는 끝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어. 그를 배신한 알프레드에게 보낸 레딩 감옥의 옥중기에서 자신의 업적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어.

      신들은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을 주었다. 나는 천재성, 명성, 높은 사회적 지위, 명석함, 지적인 대담성의 소유자였다. 나는 철학을 예술로, 예술을 철학으로 만들었다. 나는 인간의 마음과 사물의 색채를 변화시켰다. 나의 언행은 언제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  연극, 소설, 운문시와 산문시, 오묘하거나 환상적인 대화 등, 내가 손대기만 하면 무엇이든 미의 새로운 양식으로 아름답게 변했다. 사실 나는 진실한 것 못지않게 그릇된 것도 진실 자체의 올바른 영역으로 끌어들여서, 그릇된 것과 진실한 것이 단순히 지적 존재의 형태임을 보여주었다. 나는 예술을 최고의 현실로, 삶을 단순한 소설 양식으로 다루었다. 나는 이 시대 사람들이 신화,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그들의 상상력을 일깨웠다. 나는 모든 체계를 하나의 구절로, 모든 존재를 하나의 경구로 요약했다.      

  하지만, 이 업적의 대가로 그는 3평 안 되는 흰색 감방에서 2년간 중노동을 해야 했어. 한마디로 신들이 그에게 준 거의 모든 것을 다시 다 빼앗긴 거지. 그는 2년 내내 자기를 방탕의 길로 유인하고 마음을 어지럽혀 집필을 방해한 연하의 연인에 대한 비난으로 밤을 지새웠어. “인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한다.”라면서, 그 누구보다 진지함의 중요성을 의심했지만, 죽어가는 사형수들을 바라보며 그 숙명의 순간을 체험해서인지, 오스카도 「레딩 감옥의 노래」에서만큼은 꽤 진지했어.

      그 남자는 사랑 때문에 사람을 죽였고,
그래서 그는 이제 죽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
이는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다.      

  동물이면서 천재였던, 특별한 인간 유형의 오스카. 작가로서 유명해지지 못한다면, 스캔들 메이커로서 악명이라도 떨치겠다던 어린 시절의 다짐이 이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는 그도 예상 못 했을 거야. 그토록 친했던 앙드레 지드를 포함 파리의 수많은 문인까지 그의 동성애 행각에 대한 혐오감을 토해냈으니까, 마지막 순간은 정말 외로웠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보들레르, 랭보 같은 사람들이 가진 ‘그 무언가 패륜적이고, 히스테릭하고, 끔찍하게 저속한, 미치광이 같은 성향’을 대변하면서, 성적, 예술적 자유를 위해 산화한 순교자로 추앙받게 됐어. 쾌락주의의 화신, 말의 감각을 깨우친 탐미주의자라는 새로운 존재형의 살아 있는 본보기가 됐어. 어떻게 보면 이런 특별한 삶의 궤적이 그의 작품들을 부차적인 것들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몰라. 눈물 흘리는 청동상 행복한 왕자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지만, 그 동화를 쓴 작가가 오스카 와일드라고는 잘 연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삶에 대해 알지 못할 때 글을 썼다. 그러나 이제는 삶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글도 쓸 수가 없다. 삶이란 쓰여질 수 없는 것이다. 삶이란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아나키즘에서 사회주의자를 오간 오스카의 용기와 만용에 찬 역설을 볼 때, 여러모로 그의 삶의 키워드는 미를 향한 ‘Wild Passion’이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오스카는 노동의 존엄성을 통해 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반체제적 저항을 강조했으니까, 완전 순수하기만 한 탐미주의자는 아냐.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를 들여다보면, 그를 단선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 입체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어.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뭘까. 보통 동화의 행복과는 조금은 달라 보여.

     

어떠한 최소의 행복이든 최대의 행복이든, 행복으로 하여금 행복해지게끔 하는 요인은 언제나 하나이다. 즉, 잊어버릴 수 있는 것, 더욱 학술적인 표현을 빌자면, 일정한 기간 중 ‘비역사적’으로 느끼는 능력이다.
                                                                                       - 니체

     

  건전하고 무난하며 화해와 해피엔딩의 강박이라는 디즈니의 주문에 걸려 대부분의 동화가 거짓된 화해를 꿈꾸는 데 이바지해 왔다면, 사유 재산 제도의 비극, 자선과 희생의 허무함을 역설한 오스카의 동화는 어른 세계의 참담한 실상을 솔직히 투사하는 기묘한 태도를 취해. 게다가 이야기의 끝에서 왕자는 재활용될 뿐, 과연 그의 선행과 자비로 말미암아 세상의 진보가 이뤄질까, 하는 회의에 찬 질문을 남겨. 그는 동화라고 해서 절대로 무서운 현실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 <별에서 온 아이>까지 그의 여러 동화의 끝자락을 만져보면, 매번 놀라게 돼. 이토록 와일드한 엔딩이 있을까 싶어서 말이야. 그 전복적인 동화의 숨결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 그러니까, 실천하는 ‘심장’과 소통하는 ‘날개’의 희생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날 선 진실을 강렬히 일깨워줘. 불행과 행복 사이의 단절을 이어주는 제비의 소박한 날갯짓이 그 보름달 위로 날아오르는 부엉이를 꿈꾸는 삶을 가능케 하는 거라고 알려줘. 그래서일까, 보르헤스가 이렇게 감탄했는지도 몰라. “오스카 와일드를 읽고 있으면 그가 1900년에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하니까.”

  커피진주. 그대가 『런던을 속삭여 줄게』에서 소개했던 트라팔가르 광장 옆 세인트 마틴 교회 주변에서 이상한 동상 하나를 본 적 있는지 궁금해. 마치 행복한 왕자를 녹여 새로 부활시킨 거 같은 기이한 형상의 주저앉은 동상 말이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스카가 관 속에서 일어나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인데, 그의 한쪽 눈에는 별이 박혀 있단다. 그 관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어.

      우리 모두가 시궁창에 있지만, 누군가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지.      

  그가 바라본 별은 어떤 별이었을까. 셰익스피어, 오스틴, 브론테 자매, 디킨스, 캐럴, 로렌스 등 수많은 영국의 문인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혀 있지만, 그는 예외였어. 게다가 그가 외롭게 죽은 후, 한 세기가 지나서야 겨우 런던의 도로변에 기념비가 세워졌어. 영국이 뒤늦게 관용을 베풀어 그를 받아준 거지. 그래, 아무래도 오스카는 너무나 와일드하게 시대를 앞질러 살았어. “세상은 놀랍도록 즐거운 곳. 그곳에 그냥 머무는 것은 지루할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비극이다.”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마지막 희극 『진지함의 중요성』에 나온 이 대사처럼 말이야.

  어느 별에서 온 아이인지, 희극인지 비극인지,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인생을 살았던 오스카가 묻힌 파리 묘지의 비석 뒤편엔 이런 시 한 구절이 새겨져 있어.

      쓸쓸한 눈물이 그를 위해 연민이라는 깨어진 낡은 유골단지에 채워질 것이다. 그를 위해 슬퍼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게 버림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슬픔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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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에서 온 아이> 

   오스카 와일드 / 김전유경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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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벽지와 나는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고 있어. 우리 둘 중 하나는 끝장나야 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낡은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흐린 눈빛으로 더러운 천정에 반사되는 자신의 상처받은 욕망을 되돌아봤을 오스카 와일드의 굴곡진 인생 궤적이 떠올랐어. 꿈꾸는 자가 누구보다 먼저 훔쳐본 새벽 풍경처럼 말이야.       그렇다, 나는 꿈꾸는 자이다. 왜냐하면, 꿈꾸는 자는 오직 달빛으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며, 그가 벌을 받는 것은 세상 사람들보다 먼저 새벽을 보기 때문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다고 주장한 오스카는 어떤 의미로든 ‘행복보단 즐거움’이라는 신조를 내세우고 미와 쾌락에 중독된 삶을 살았어. 그래서인지,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보통 작가와는 다른 거 같아. 그 작가는 많은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대신 수 없는 아포리즘을 남겼거든. 말하자면, 작품보다 이상한 차림새나 빼어난 격언들을 쏟아내는 뛰어난 언변으로 더 유명했었어. “나는 내 천재성은 삶 속에 넣었고, 내 재능만 작품 속에 집어 넣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이렇게 썼듯, 자신의 천재성에 대해서도 늘 확신했었어. 강연 차 뉴욕에 도착했을 때 세관에서 이렇게 소리쳤대. "난 내 천부적인 재능밖에는 신고할 것이 없소." 이런 식으로 늘 자신이 미와 자아실현 사이의 딜레마를 탐구하기 위한 순례자인 것처럼 요란한 댄디즘을 앞세웠어. 요즘으로 치자면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무장한 지적인 독설에 해당하는 건데, 그의 말장난에 대한 독특한 욕구는 “세상에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더 나쁜 건 단 하나, 구설수에 오르내리지 않는 일”이라고 스스로 표현했듯, 세인들의 삐딱한 댓글들을 한 편으로는 즐기면서 살았던 거야. 세상의 눈치를 보기는커녕, 관능적으로 자극하는데 열정을 바쳤던 오스카는 끝내 수습하기 어려운 큰 사고를 치고 말아.   “결혼은 너무 무거운 짐이어서 때론 세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였을까. 오스카는 결혼 후에도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그리고는 모든 걸 잃어. 그가 말했듯, 삶에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비극과 원하는 것을 얻는 비극, 두 종류의 비극밖에 없는지도 몰라. 그는 결국 원하는 걸 얻고 비극으로 막을 내려. "모든 비극은 죽음과 함께 끝나고 모든 희극은 결혼과 함께 끝난다"는 바이런의 저주에 걸려든 것처럼 말이야.   양성애자인 오스카는 미소년들이 있는 술집을 자주 찾았어. 결혼 후 찾아온 뜨거운 사랑의 주인공도 남자였어. 이탈리아에서 만난 옥스퍼드 대학생 꽃미남 귀족 알프레드 더글라스와 사랑에 빠져. 4년간, 이 어린 연인과 세상을 돌아다니며 향락을 누려. 데이트 비용을 위해 급하게 희곡을 써서 팔기도 할 정도로 푹 빠져 살아. 이 사실을 알게 된 알프레드의 아빠, 퀸즈베리 후작이 오스카를 협박하기 시작해. 친구들의 만류에도, 자기 아버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는 연인 알프레드의 말을 실행에 옮겨. 하지만, 재판은 지고, 오히려 그에게 동성애 죄목으로 부메랑 고소를 당해. 작품도 못 쓰게 되고, 재판 비용을 떠안아 파산했고, 가족은 도망가버려. 동성애 금지법 판결 제1호 인물로 영국서 쫓겨난 오스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의 어느 호텔 다락방에서 쓸쓸히 죽고 말아.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최대의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나만의 개성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일을 어느 날부터 그만두는 것이다.         맞아, 그는 실수 아닌 실수를 했어. 재판에서까지 자신의 입담을 발휘하며 당당하게 자신을 변호했던 거야. 그 오만함의 대가는 참혹했지. 하지만, 난 오스카의 몰락이 ‘퇴폐’나 ‘방종’의 대가가 아니라 ‘편견’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어. 오스카에게 조롱받던 당시 빅토리아 왕조의 귀족들의 자존심에 대한 상처, 게다가 식민지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에게 느꼈던 앙심 그리고 교양과 품위를 유지하고픈 많은 지성인에게 오스카는 공공의 적이었을 테니까, 이것은 편견의 보복이 분명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당시 퀸즈베리 재판정에서 오스카의 문란함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쓰였다고 할 정도니까, 사실 그의 인생은 ‘때를 잘못 만나 잘못 일그러진 잘못된 경우’라고 생각해.   그래도 오스카는 끝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어. 그를 배신한 알프레드에게 보낸 레딩 감옥의 옥중기에서 자신의 업적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어.       신들은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을 주었다. 나는 천재성, 명성, 높은 사회적 지위, 명석함, 지적인 대담성의 소유자였다. 나는 철학을 예술로, 예술을 철학으로 만들었다. 나는 인간의 마음과 사물의 색채를 변화시켰다. 나의 언행은 언제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  연극, 소설, 운문시와 산문시, 오묘하거나 환상적인 대화 등, 내가 손대기만 하면 무엇이든 미의 새로운 양식으로 아름답게 변했다. 사실 나는 진실한 것 못지않게 그릇된 것도 진실 자체의 올바른 영역으로 끌어들여서, 그릇된 것과 진실한 것이 단순히 지적 존재의 형태임을 보여주었다. 나는 예술을 최고의 현실로, 삶을 단순한 소설 양식으로 다루었다. 나는 이 시대 사람들이 신화,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그들의 상상력을 일깨웠다. 나는 모든 체계를 하나의 구절로, 모든 존재를 하나의 경구로 요약했다.         하지만, 이 업적의 대가로 그는 3평 안 되는 흰색 감방에서 2년간 중노동을 해야 했어. 한마디로 신들이 그에게 준 거의 모든 것을 다시 다 빼앗긴 거지. 그는 2년 내내 자기를 방탕의 길로 유인하고 마음을 어지럽혀 집필을 방해한 연하의 연인에 대한 비난으로 밤을 지새웠어. “인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한다.”라면서, 그 누구보다 진지함의 중요성을 의심했지만, 죽어가는 사형수들을 바라보며 그 숙명의 순간을 체험해서인지, 오스카도 「레딩 감옥의 노래」에서만큼은 꽤 진지했어.       그 남자는 사랑 때문에 사람을 죽였고, 그래서 그는 이제 죽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 이는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다.         동물이면서 천재였던, 특별한 인간 유형의 오스카. 작가로서 유명해지지 못한다면, 스캔들 메이커로서 악명이라도 떨치겠다던 어린 시절의 다짐이 이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는 그도 예상 못 했을 거야. 그토록 친했던 앙드레 지드를 포함 파리의 수많은 문인까지 그의 동성애 행각에 대한 혐오감을 토해냈으니까, 마지막 순간은 정말 외로웠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보들레르, 랭보 같은 사람들이 가진 ‘그 무언가 패륜적이고, 히스테릭하고, 끔찍하게 저속한, 미치광이 같은 성향’을 대변하면서, 성적, 예술적 자유를 위해 산화한 순교자로 추앙받게 됐어. 쾌락주의의 화신, 말의 감각을 깨우친 탐미주의자라는 새로운 존재형의 살아 있는 본보기가 됐어. 어떻게 보면 이런 특별한 삶의 궤적이 그의 작품들을 부차적인 것들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몰라. 눈물 흘리는 청동상 행복한 왕자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지만, 그 동화를 쓴 작가가 오스카 와일드라고는 잘 연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삶에 대해 알지 못할 때 글을 썼다. 그러나 이제는 삶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글도 쓸 수가 없다. 삶이란 쓰여질 수 없는 것이다. 삶이란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아나키즘에서 사회주의자를 오간 오스카의 용기와 만용에 찬 역설을 볼 때, 여러모로 그의 삶의 키워드는 미를 향한 ‘Wild Passion’이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오스카는 노동의 존엄성을 통해 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반체제적 저항을 강조했으니까, 완전 순수하기만 한 탐미주의자는 아냐.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를 들여다보면, 그를 단선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 입체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어.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뭘까. 보통 동화의 행복과는 조금은 달라 보여.       어떠한 최소의 행복이든 최대의 행복이든, 행복으로 하여금 행복해지게끔 하는 요인은 언제나 하나이다. 즉, 잊어버릴 수 있는 것, 더욱 학술적인 표현을 빌자면, 일정한 기간 중 ‘비역사적’으로 느끼는 능력이다.                                                                                        - 니체         건전하고 무난하며 화해와 해피엔딩의 강박이라는 디즈니의 주문에 걸려 대부분의 동화가 거짓된 화해를 꿈꾸는 데 이바지해 왔다면, 사유 재산 제도의 비극, 자선과 희생의 허무함을 역설한 오스카의 동화는 어른 세계의 참담한 실상을 솔직히 투사하는 기묘한 태도를 취해. 게다가 이야기의 끝에서 왕자는 재활용될 뿐, 과연 그의 선행과 자비로 말미암아 세상의 진보가 이뤄질까, 하는 회의에 찬 질문을 남겨. 그는 동화라고 해서 절대로 무서운 현실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 <별에서 온 아이>까지 그의 여러 동화의 끝자락을 만져보면, 매번 놀라게 돼. 이토록 와일드한 엔딩이 있을까 싶어서 말이야. 그 전복적인 동화의 숨결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 그러니까, 실천하는 ‘심장’과 소통하는 ‘날개’의 희생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날 선 진실을 강렬히 일깨워줘. 불행과 행복 사이의 단절을 이어주는 제비의 소박한 날갯짓이 그 보름달 위로 날아오르는 부엉이를 꿈꾸는 삶을 가능케 하는 거라고 알려줘. 그래서일까, 보르헤스가 이렇게 감탄했는지도 몰라. “오스카 와일드를 읽고 있으면 그가 1900년에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하니까.”   커피진주. 그대가 『런던을 속삭여 줄게』에서 소개했던 트라팔가르 광장 옆 세인트 마틴 교회 주변에서 이상한 동상 하나를 본 적 있는지 궁금해. 마치 행복한 왕자를 녹여 새로 부활시킨 거 같은 기이한 형상의 주저앉은 동상 말이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스카가 관 속에서 일어나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인데, 그의 한쪽 눈에는 별이 박혀 있단다. 그 관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어.       우리 모두가 시궁창에 있지만, 누군가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지.         그가 바라본 별은 어떤 별이었을까. 셰익스피어, 오스틴, 브론테 자매, 디킨스, 캐럴, 로렌스 등 수많은 영국의 문인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혀 있지만, 그는 예외였어. 게다가 그가 외롭게 죽은 후, 한 세기가 지나서야 겨우 런던의 도로변에 기념비가 세워졌어. 영국이 뒤늦게 관용을 베풀어 그를 받아준 거지. 그래, 아무래도 오스카는 너무나 와일드하게 시대를 앞질러 살았어. “세상은 놀랍도록 즐거운 곳. 그곳에 그냥 머무는 것은 지루할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비극이다.”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마지막 희극 『진지함의 중요성』에 나온 이 대사처럼 말이야.   어느 별에서 온 아이인지, 희극인지 비극인지,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인생을 살았던 오스카가 묻힌 파리 묘지의 비석 뒤편엔 이런 시 한 구절이 새겨져 있어.       쓸쓸한 눈물이 그를 위해 연민이라는 깨어진 낡은 유골단지에 채워질 것이다. 그를 위해 슬퍼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게 버림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슬픔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             <별에서 온 아이>     오스카 와일드 / 김전유경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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