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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진주와 동쪽별의 책읽기 서문에 대한 답문

  
민규동(영화감독) 

 

 안녕, 나의 커피진주.

 답장이 늦었지? 미안해. 지적인 데라고는 요만큼도 없이 온통 몸을 써대는 촬영 행군이 두 달 넘게 이어졌었거든. 새벽부터, 다시 새벽까지.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연평도에 불이 나도, 구제역으로 300만의 서러운 눈물이 넘쳐도, 나는 카메라 앞에서 달려야 했어. 영화를 만드는 데는, 아마 글을 쓴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영혼이 불안에 잠식되는 걸 가위 눌린 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힘겨움이 있단다. 잠에 빠져들 땐 다가올 새벽이 두려워 꿈속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길 바라기도 해. 그래도 어김없이 일어나, 그렇듯 밧줄 없이 맞닥뜨린 번지점프대 위에서 떨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너의 편지가 날아왔어. 그건 어느 노래 가사처럼, 홀로 걷는 밤길이 까만 어둠으로 외로울 때 들려온 어떤 이의 부드러운 음성이었고,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슬프게 살아갈 때 어깨에 닿은 어떤 이의 따뜻한 손길이었어.

 백만 명이 운집한 이집트의 타흐리르에서 날라오는 매콤쌉싸름한 모래 내음이 찬바람에 실려오는 설날 새벽. 별도, 달도, 바람도, 모두가 한 해의 여행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와 새출발을 하는 오늘. 이렇게 너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다니, 왠지 흥분이 돼. 올해는 마고소양(麻姑搔痒)이라는 점궤를 선물받았는데, 아무리 떠올려봐도 내 가려운 데를 긁어줄 마고선녀로는 너밖에 떠올릴 수가 없거든. 어때, 설날 아침은? 보통날의 아침과 많이 다르니? 제사는 지내니? 오늘 넌 조부모님들 말고도 또 어떤 영혼에게 절을 하고, 불평을 하고, 기원을 하니? 궁금해. 난 절을 하면서, 얼마 전 돌아가신 박완서 작가가 떠올릴 거 같아. 그날은 나도 모르게, 그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라고 탄식을 내뱉었어. 동시대에 존재하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실감 못 하다가, 그들이 사라지는 그 반짝-마지막 명멸의 순간에서야 우주의 한 조각이 소멸되는 상실감에 시달리기 시작해. 정말 아름답게 존재했었구나…… 라는 뒤늦은 절감 말이야. 그들이 정말 소멸되기만 한다면, 그 상실감은 회복할 길 없는 절대적인 결핍감일 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가 내 곁에 머무르는 방식이 화학적 전이를 이뤘을 뿐이니까. 예전엔 물리적으로 꽂혀 있던 책들이었지만, 지금은 그 속으로 스며든 영혼 덕에 훨씬 두터워져 있으니까. 그렇게 서서히 나의 고전으로 변모하고 있으니까. 궁금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일기며, 편지며, 쉴 새 없이 써대고, 또 남의 일기와 편지에도 실시간 답을 다는 시대에도, 어째서 그 작가는 나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는 걸까. 글솜씨 때문일까? 많이 썼기 때문일까?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쾌락』에서 이렇게 썼어. “책은 독자에게 ‘당신을 찾듯이 나를 찾아주시오’라고 말을 걸어준다.” 아마도 잃어버린 나를 찾아 헤매다 무심코 그 책에 닿게 되는 순간, 내게 말을 걸어주기 때문 아닐까? 그렇게 고전이 걸어주는 무의식의 마술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책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그 순간, 그 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은밀한 대화가 되고, 몸짓이 되고, 나의 앞길을 비추는 빛이 되기 때문 아닐까?

 왜 고전일까 묻는다면, 난 이렇게 생각해. 시대가 강요하는 판에 박힌 평범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무언가에 매달려 탈출해야만 해. 그것이 무엇일까. 또, 그것에 매달렸다가 한번 빠져들면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런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에 어찌할지 주저하며 눈치 보기 십상인데, 그 해답을 찾으려면 우린 과거 위대한 인간들의 발자취를 살펴보아야 해. 과감히 그 길을 함께 걸어봐야 해. 결국 안개에 싸인 미약한 대답이 돌아올지라도, 뚫어지게 바라보고 필사적으로 스며들어야 돼. 그래야, 어느 순간 자기 인생과의 접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제서야 남다른 삶의 궤도로 다시 튀어 오를 수 있을 테니까. 그 ‘지적 잠입’과 ‘감성적 도약’의 매개는 각자에게 그 해답이 다를 거야. 어떤 예술가들에겐 고전 작품이 될 것이고, 순진하고 고독한 청년에겐 첫사랑이 될 수 있어. 지금 나에겐 이 새벽의 속삭임을 들어줄 너, 커피진주가 되겠지.

 누군가 왜 고전이냐고 자꾸 캐묻는다면, 이렇게 쉽게 투덜댈 수도 있어. 고전은 그만큼 생존력이 강하다는 증거잖아? 뭘 봐야 할지 모를 땐, 여태껏 이미 많은 검증을 거쳐서 살아남은 글들을 읽는 게 낫지! 야심 찬 시도를 했지만 결국 후회를 부를 멍청한 글들을 읽고는, 자신의 부족한 안목을 자책하며 오랜만에 호기 부려본 독서 의욕마저 몽땅 잃고 괜한 자괴감에 시달릴 필요 없잖아. 무엇보다, 과거만큼 미래를 선명히 보여 주는 부적은 없으니까, 앞날이 불안하게 느껴질수록 우린 뒤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첫 편지에서 ‘도저히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날’, ‘깨달음의 파도가 덮친 날이 내게도 있느냐’고 물었지? ‘새로 태어난 것 같다는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는지, 그런 식으로 내게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제2의 생일 아침, 그런 빛이 있느냐’고 물었지? 그럼, 있어! 그런 날이. 너를 처음 만난 날! 바로 그날이야.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 시절 얘긴 다음에 들려줄 기회가 있을 거야. 잠시 그날의 느낌을 떠올리면, 키예슬롭스키의 영화 삼색 연작 중 하나인 「레드」에 영감을 준 쉼보르스카의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이 시가 생각나. 한번 들어볼래?

      갑작스런 열정이 둘을 맺어주었다고
두 남녀는 확신한다.
그런 확신은 분명 아름답지만
불신은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예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에 스쳐 지날 수도 있었던
그때 그 거리나 계단, 복도는 어쩌란 말인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느냐고.
언젠가 회전문에서
마주쳤던 순간을?
인파 속에서 주고받던 “죄송합니다”란 인사를?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던 “잘못 거셨어요”란 목소리를?
-그러나 난 이미 그들의 대답을 알고 있다.
아니요, 기억나지 않아요.

이미 오래 전부터
‘우연’이 그들과 유희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운명이 될 만큼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운명은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다.
길에서 예고 없이 맞닥뜨리기도 하면서,
낄낄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누르며,
옆으로 슬며시 그들을 비껴갔다.

신호도 있었고, 표지판도 있었지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제대로 읽지 못했음에야.
어쩌면 삼 년 전,
아니면 지난 화요일,
누군가의 어깨에서 다른 누군가의 어깨로
나뭇잎 하나가 펄럭이며 날아와 앉았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을 다른 누군가가 주웠다.
어린 시절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바로 그 공인지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가 손대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만졌던
문고리와 손잡이가 있었다.
수화물 보관소엔 여행 가방들이 서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느 날 밤, 깨자마자 희미해져 버리는
똑같은 꿈을 꾸다가 눈을 뜬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장일 뿐.
사건이 기록된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 있다.      

 그래. 내 생각엔 우리가 만난 사건은 이미 결정된 운명적인 관계였어. 놀라운 운명적 만남을 숭배하고 싶어 하는 속내와는 달리, 쉼보르스카가 생각한 것처럼, 우린 사실 어느 회전문이나 잘못 걸린 전화 속에서 미리 만났었던 거야. 내가 널 발견하고, 우리의 역사라는 책이 열렸을 땐, 그토록 오래 우릴 외면했던 우연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이미 운명의 중간 부분이 펼쳐졌던 거야.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파리에서 잠시 귀국해 혹시나 닿을까 하고 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기억 속에 까맣게 사라졌던 한 사람을 슬로모션으로 떠올리는 너의 동작을 전화기 너머로 읽었었어. 하긴, 휴대폰도 이메일도 없던 시대에 서로의 갈 길로 헤어졌었으니 그 재회도 의외이긴 했을 거야. 그때 넌, 며칠 전에 헤어진 사람처럼 널 대하는 나에게 놀라는 눈치였어. 난 20여 년 전 널 처음 봤을 때부터, 하나도 변한 게 없으니까…… 라고 속으로 속삭였어. 그리고 잠시 후 또 다른 재회를 기약하며 전화를 끊을 때 네가 남긴 마지막 끈, 그 아리아드네의 실은 바로 커피진주라는 암호였어. 그래, 참 잘 어울려, 라고 생각했었어. 길 한가운데에서 널 마주쳤을 때, 방금 쿠바에서 날아온 생기발랄한 커피빛 보석의 현현으로 느꼈었으니까. 그 신비로운 첫 만남 이후로 마음의 영토를 조금씩 빼앗겨 너를 섬기지 않고는 어떤 경작물도 얻어낼 수 없는 조건부 불모지로 변해온 세월이었고, 너에 한해서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구를 정언명령처럼 섬기고 살며 널 향한 실타래를 놓지 않았었어. 그렇게 다시 펼쳐진 우리의 책 위로 이런 날도 기록되어 있어. 언제가 내가 죽고 싶어 힘겨워할 때 너에게 전화를 했고, 넌 ‘걱정 마. 내가 너의 무덤 속 옆자리에 같이 누워줄게’라고 답해 준 날, 그날도 새로운 세계로 다시 태어난 날의 아침 빛을 보았어.

 자, 또 어떤 얘길 물었더라? 내가 카메라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물었지? 삶은 본원적으로 슬픈 거라고 생각해. 왜냐면, 삶은 유한하잖아. 결국 우린 모든 걸 잃게 되어 있어. 아, 그 생각에 또 슬퍼지네…… 난 슬픔 가득한 이 생애의 어떤 순간, 포착해 주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 버리는 모든 것들, 아무도 껴안아주지 않아 부서지고 흩어져 버린 잔해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어. 그 인생의 비밀을 알고 난 후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더 뚜렷해졌어. 누려야 할 만큼 누리지 못한 채, 그저 의무적으로 소모되며 잊히는 삶, 그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기쁨, 고통, 희망, 절망, 분노, 용서들을 부여잡고, 움켜쥐고 싶어. 그 처연한 구원의 동작을 함께 나누고 싶은 절박한 꿈이 있어. 그렇게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순간 너는 내가 꾸는 꿈인지도 모르겠다. 난 늘 널 납치해서 꿈의 10단계로 인셉션하고, 둘만의 림보에 정착한 후, 그 세계에서 영원히 늙지 않고 동지로 사는 꿈을 꿔. 동시에 난, 그 꿈이 염사되는 렌즈 한 켠의 미궁 속에서, 커피진주라는 내 아리아드네의 끈을 놓치지 않고, 긴 세월 꿈과 현실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 ‘사이’의 비밀을 찾고 있는지 몰라.

 자, 이제 너에게 제안할 게 있어. 들어봐. 며칠 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보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어. 그 영화엔, 서로 이름도 모른 채 우연히 마주쳐 격한 정사를 나눈 두 남녀가 낯선 사랑을 향유하는 텅 빈 아파트가 나와. 누군가 그 공간이 무슨 의미냐고 묻더라. 난 억압으로부터의 일탈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단 역행을 꿈꾸는 회귀의 공간이라고 대답했어. 격식을 벗은 사랑과 소통의 격랑이 펼쳐지는 둘만의 공간. 그래, 그런 곳을 얼마나 오랫동안 꿈꾸어 왔단 말이니. 이제 그들처럼 우리도 이 시공간을 둘만의 아지트로 삼자. 그곳처럼 성별, 나이, 어떤 차이도 상관없고, 가족이나 학교, 교회에서 가르치는 어떤 질서도 비웃으며, 영화 도입에 나온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화처럼 서로의 겉모습과 형태의 의미가 사라진, 인간에게 부여된 원초적인 순수만으로 서로를 마주하자. 거리낄 것도, 부끄러움도 없이, 변덕스런 가학과 수치스런 피학마저도, 『인간의 대지』에서 베두인 족이 생텍쥐베리를 향해 돌리는 고갯짓의 의미가 되어버리는 이 공간. 여기서 우리는 언제나 풀샷으로만 만나왔던 과거를 뛰어넘어, 드디어 클로즈업 상태로 현재를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파편들이 아닐까. 항상 그런 식이었지 않았을까.”                           「홀로그램 장미의 파편들」, 윌리엄 깁슨.

     

 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년 전 언젠가 한가로운 봄 햇살 아래, 잔디밭에 누워 뒹굴며 한 약속을 지킬 때가 된 거 같아. 그날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 상대가 맘에 드는 사람이 찍으면 뛰어가서 데려오자고 낄낄대며 실없는 장난을 치고 있었어. 그러다 대뜸 ‘우리 고전을 읽고 얘기하는 거 어때?’ 라는 얘기가 튀어나왔어. ‘그래?’ ‘좋아! 그럼, 우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부터 읽자’라며 순식간에 의기투합했어. 뭔가 굉장한 보물지도를 발견해 낸 것처럼 흥분한 우리 둘은, 그 약속을 기념하는 의미로 음악감상실을 찾아 구석에 함께 기대 누웠어. 그때,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제곡인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만 절정 부분에서 뛰쳐나오고 말았어. 왜냐면, 갑자기 내가 부정맥과 현기증을 호소했거든. 너랑 함께 떠날 미지의 여행에 대한 상상이 그 아름다운 클라리넷 소리와 뒤섞이며 내 모든 혈관들을 터뜨릴 듯 부풀려 버렸던 거야. 정신이 혼미해져 강렬한 햇빛에 넋을 잃은 날 보고 깔깔댔던 네 얼굴이 기억나. 어찌된 일인지 우린 그 바람에 약속 날을 제대로 잡지 못했어. 그러고는 20년이 흘렀고, 오늘 이렇게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약속이 되살아난 거야. 그래, 우린 이미 20년 전에 서로 고매성의 협약을 맺었던 거야. 그래, 난, 한번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이 없어. 나는 너의 파편이었니까. 항상 그런 식이었으니까.

 자, 내가 처음으로 들려주고 싶은 책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이야. 그 단어만으로도 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짐작이 되지? 투르게네프가 42세 되던 해. 그러니까, 나와 같은 나이네? 하하하. 이 소설엔 청년 시절 얌전하고 유약한 몽상가면서 시를 좋아했던 자기 모습을 주인공 '블라디미르'로 분장해 쓴 나름 귀여운 작품이야. 뭔가 나랑 많이 겹치지 않니? 그 소설 속엔 너랑 겹치는 인물도 있단다. 후후후.

 얘기가 길어졌지만 첨이니까 용서해 줘. 마지막으로, 파리의 오래된 소극장에서 봤던 영화인데, 장 뤽 고다르의 SF 영화 「알파빌」의 매혹적인 여배우 안나 카리나의 대화를 들려줄게.

      Do you have light?
불 있어요?
Yes, I travelled 9000kms to give it to you.
그럼요. 이걸 주려고 9천 킬로를 날아온걸요.      

 그 무엇보다도 우아한 너의 질문에 그 대사를 이렇게 바꿔볼래. 이 순간, 우리의 대화는 고전이 될지도 몰라.

      Do you have a book?
책 있니?
Yes, I travelled 9000days to give it to you.
그럼, 이걸 주려고 20년을 날아온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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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유하기     커피진주와 동쪽별의 책읽기 서문에 대한 답문    민규동(영화감독)     안녕, 나의 커피진주.  답장이 늦었지? 미안해. 지적인 데라고는 요만큼도 없이 온통 몸을 써대는 촬영 행군이 두 달 넘게 이어졌었거든. 새벽부터, 다시 새벽까지.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연평도에 불이 나도, 구제역으로 300만의 서러운 눈물이 넘쳐도, 나는 카메라 앞에서 달려야 했어. 영화를 만드는 데는, 아마 글을 쓴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영혼이 불안에 잠식되는 걸 가위 눌린 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힘겨움이 있단다. 잠에 빠져들 땐 다가올 새벽이 두려워 꿈속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길 바라기도 해. 그래도 어김없이 일어나, 그렇듯 밧줄 없이 맞닥뜨린 번지점프대 위에서 떨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너의 편지가 날아왔어. 그건 어느 노래 가사처럼, 홀로 걷는 밤길이 까만 어둠으로 외로울 때 들려온 어떤 이의 부드러운 음성이었고,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슬프게 살아갈 때 어깨에 닿은 어떤 이의 따뜻한 손길이었어.  백만 명이 운집한 이집트의 타흐리르에서 날라오는 매콤쌉싸름한 모래 내음이 찬바람에 실려오는 설날 새벽. 별도, 달도, 바람도, 모두가 한 해의 여행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와 새출발을 하는 오늘. 이렇게 너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다니, 왠지 흥분이 돼. 올해는 마고소양(麻姑搔痒)이라는 점궤를 선물받았는데, 아무리 떠올려봐도 내 가려운 데를 긁어줄 마고선녀로는 너밖에 떠올릴 수가 없거든. 어때, 설날 아침은? 보통날의 아침과 많이 다르니? 제사는 지내니? 오늘 넌 조부모님들 말고도 또 어떤 영혼에게 절을 하고, 불평을 하고, 기원을 하니? 궁금해. 난 절을 하면서, 얼마 전 돌아가신 박완서 작가가 떠올릴 거 같아. 그날은 나도 모르게, 그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라고 탄식을 내뱉었어. 동시대에 존재하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실감 못 하다가, 그들이 사라지는 그 반짝-마지막 명멸의 순간에서야 우주의 한 조각이 소멸되는 상실감에 시달리기 시작해. 정말 아름답게 존재했었구나…… 라는 뒤늦은 절감 말이야. 그들이 정말 소멸되기만 한다면, 그 상실감은 회복할 길 없는 절대적인 결핍감일 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가 내 곁에 머무르는 방식이 화학적 전이를 이뤘을 뿐이니까. 예전엔 물리적으로 꽂혀 있던 책들이었지만, 지금은 그 속으로 스며든 영혼 덕에 훨씬 두터워져 있으니까. 그렇게 서서히 나의 고전으로 변모하고 있으니까. 궁금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일기며, 편지며, 쉴 새 없이 써대고, 또 남의 일기와 편지에도 실시간 답을 다는 시대에도, 어째서 그 작가는 나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는 걸까. 글솜씨 때문일까? 많이 썼기 때문일까?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쾌락』에서 이렇게 썼어. “책은 독자에게 ‘당신을 찾듯이 나를 찾아주시오’라고 말을 걸어준다.” 아마도 잃어버린 나를 찾아 헤매다 무심코 그 책에 닿게 되는 순간, 내게 말을 걸어주기 때문 아닐까? 그렇게 고전이 걸어주는 무의식의 마술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책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그 순간, 그 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은밀한 대화가 되고, 몸짓이 되고, 나의 앞길을 비추는 빛이 되기 때문 아닐까?  왜 고전일까 묻는다면, 난 이렇게 생각해. 시대가 강요하는 판에 박힌 평범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무언가에 매달려 탈출해야만 해. 그것이 무엇일까. 또, 그것에 매달렸다가 한번 빠져들면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런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에 어찌할지 주저하며 눈치 보기 십상인데, 그 해답을 찾으려면 우린 과거 위대한 인간들의 발자취를 살펴보아야 해. 과감히 그 길을 함께 걸어봐야 해. 결국 안개에 싸인 미약한 대답이 돌아올지라도, 뚫어지게 바라보고 필사적으로 스며들어야 돼. 그래야, 어느 순간 자기 인생과의 접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제서야 남다른 삶의 궤도로 다시 튀어 오를 수 있을 테니까. 그 ‘지적 잠입’과 ‘감성적 도약’의 매개는 각자에게 그 해답이 다를 거야. 어떤 예술가들에겐 고전 작품이 될 것이고, 순진하고 고독한 청년에겐 첫사랑이 될 수 있어. 지금 나에겐 이 새벽의 속삭임을 들어줄 너, 커피진주가 되겠지.  누군가 왜 고전이냐고 자꾸 캐묻는다면, 이렇게 쉽게 투덜댈 수도 있어. 고전은 그만큼 생존력이 강하다는 증거잖아? 뭘 봐야 할지 모를 땐, 여태껏 이미 많은 검증을 거쳐서 살아남은 글들을 읽는 게 낫지! 야심 찬 시도를 했지만 결국 후회를 부를 멍청한 글들을 읽고는, 자신의 부족한 안목을 자책하며 오랜만에 호기 부려본 독서 의욕마저 몽땅 잃고 괜한 자괴감에 시달릴 필요 없잖아. 무엇보다, 과거만큼 미래를 선명히 보여 주는 부적은 없으니까, 앞날이 불안하게 느껴질수록 우린 뒤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첫 편지에서 ‘도저히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날’, ‘깨달음의 파도가 덮친 날이 내게도 있느냐’고 물었지? ‘새로 태어난 것 같다는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는지, 그런 식으로 내게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제2의 생일 아침, 그런 빛이 있느냐’고 물었지? 그럼, 있어! 그런 날이. 너를 처음 만난 날! 바로 그날이야.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 시절 얘긴 다음에 들려줄 기회가 있을 거야. 잠시 그날의 느낌을 떠올리면, 키예슬롭스키의 영화 삼색 연작 중 하나인 「레드」에 영감을 준 쉼보르스카의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이 시가 생각나. 한번 들어볼래?       갑작스런 열정이 둘을 맺어주었다고 두 남녀는 확신한다. 그런 확신은 분명 아름답지만 불신은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예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에 스쳐 지날 수도 있었던 그때 그 거리나 계단, 복도는 어쩌란 말인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느냐고. 언젠가 회전문에서 마주쳤던 순간을? 인파 속에서 주고받던 “죄송합니다”란 인사를?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던 “잘못 거셨어요”란 목소리를? -그러나 난 이미 그들의 대답을 알고 있다. 아니요, 기억나지 않아요. 이미 오래 전부터 ‘우연’이 그들과 유희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운명이 될 만큼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운명은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다. 길에서 예고 없이 맞닥뜨리기도 하면서, 낄낄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누르며, 옆으로 슬며시 그들을 비껴갔다. 신호도 있었고, 표지판도 있었지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제대로 읽지 못했음에야. 어쩌면 삼 년 전, 아니면 지난 화요일, 누군가의 어깨에서 다른 누군가의 어깨로 나뭇잎 하나가 펄럭이며 날아와 앉았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을 다른 누군가가 주웠다. 어린 시절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바로 그 공인지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가 손대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만졌던 문고리와 손잡이가 있었다. 수화물 보관소엔 여행 가방들이 서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느 날 밤, 깨자마자 희미해져 버리는 똑같은 꿈을 꾸다가 눈을 뜬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장일 뿐. 사건이 기록된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 있다.        그래. 내 생각엔 우리가 만난 사건은 이미 결정된 운명적인 관계였어. 놀라운 운명적 만남을 숭배하고 싶어 하는 속내와는 달리, 쉼보르스카가 생각한 것처럼, 우린 사실 어느 회전문이나 잘못 걸린 전화 속에서 미리 만났었던 거야. 내가 널 발견하고, 우리의 역사라는 책이 열렸을 땐, 그토록 오래 우릴 외면했던 우연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이미 운명의 중간 부분이 펼쳐졌던 거야.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파리에서 잠시 귀국해 혹시나 닿을까 하고 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기억 속에 까맣게 사라졌던 한 사람을 슬로모션으로 떠올리는 너의 동작을 전화기 너머로 읽었었어. 하긴, 휴대폰도 이메일도 없던 시대에 서로의 갈 길로 헤어졌었으니 그 재회도 의외이긴 했을 거야. 그때 넌, 며칠 전에 헤어진 사람처럼 널 대하는 나에게 놀라는 눈치였어. 난 20여 년 전 널 처음 봤을 때부터, 하나도 변한 게 없으니까…… 라고 속으로 속삭였어. 그리고 잠시 후 또 다른 재회를 기약하며 전화를 끊을 때 네가 남긴 마지막 끈, 그 아리아드네의 실은 바로 커피진주라는 암호였어. 그래, 참 잘 어울려, 라고 생각했었어. 길 한가운데에서 널 마주쳤을 때, 방금 쿠바에서 날아온 생기발랄한 커피빛 보석의 현현으로 느꼈었으니까. 그 신비로운 첫 만남 이후로 마음의 영토를 조금씩 빼앗겨 너를 섬기지 않고는 어떤 경작물도 얻어낼 수 없는 조건부 불모지로 변해온 세월이었고, 너에 한해서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구를 정언명령처럼 섬기고 살며 널 향한 실타래를 놓지 않았었어. 그렇게 다시 펼쳐진 우리의 책 위로 이런 날도 기록되어 있어. 언제가 내가 죽고 싶어 힘겨워할 때 너에게 전화를 했고, 넌 ‘걱정 마. 내가 너의 무덤 속 옆자리에 같이 누워줄게’라고 답해 준 날, 그날도 새로운 세계로 다시 태어난 날의 아침 빛을 보았어.  자, 또 어떤 얘길 물었더라? 내가 카메라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물었지? 삶은 본원적으로 슬픈 거라고 생각해. 왜냐면, 삶은 유한하잖아. 결국 우린 모든 걸 잃게 되어 있어. 아, 그 생각에 또 슬퍼지네…… 난 슬픔 가득한 이 생애의 어떤 순간, 포착해 주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 버리는 모든 것들, 아무도 껴안아주지 않아 부서지고 흩어져 버린 잔해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어. 그 인생의 비밀을 알고 난 후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더 뚜렷해졌어. 누려야 할 만큼 누리지 못한 채, 그저 의무적으로 소모되며 잊히는 삶, 그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기쁨, 고통, 희망, 절망, 분노, 용서들을 부여잡고, 움켜쥐고 싶어. 그 처연한 구원의 동작을 함께 나누고 싶은 절박한 꿈이 있어. 그렇게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순간 너는 내가 꾸는 꿈인지도 모르겠다. 난 늘 널 납치해서 꿈의 10단계로 인셉션하고, 둘만의 림보에 정착한 후, 그 세계에서 영원히 늙지 않고 동지로 사는 꿈을 꿔. 동시에 난, 그 꿈이 염사되는 렌즈 한 켠의 미궁 속에서, 커피진주라는 내 아리아드네의 끈을 놓치지 않고, 긴 세월 꿈과 현실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 ‘사이’의 비밀을 찾고 있는지 몰라.  자, 이제 너에게 제안할 게 있어. 들어봐. 며칠 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보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어. 그 영화엔, 서로 이름도 모른 채 우연히 마주쳐 격한 정사를 나눈 두 남녀가 낯선 사랑을 향유하는 텅 빈 아파트가 나와. 누군가 그 공간이 무슨 의미냐고 묻더라. 난 억압으로부터의 일탈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단 역행을 꿈꾸는 회귀의 공간이라고 대답했어. 격식을 벗은 사랑과 소통의 격랑이 펼쳐지는 둘만의 공간. 그래, 그런 곳을 얼마나 오랫동안 꿈꾸어 왔단 말이니. 이제 그들처럼 우리도 이 시공간을 둘만의 아지트로 삼자. 그곳처럼 성별, 나이, 어떤 차이도 상관없고, 가족이나 학교, 교회에서 가르치는 어떤 질서도 비웃으며, 영화 도입에 나온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화처럼 서로의 겉모습과 형태의 의미가 사라진, 인간에게 부여된 원초적인 순수만으로 서로를 마주하자. 거리낄 것도, 부끄러움도 없이, 변덕스런 가학과 수치스런 피학마저도, 『인간의 대지』에서 베두인 족이 생텍쥐베리를 향해 돌리는 고갯짓의 의미가 되어버리는 이 공간. 여기서 우리는 언제나 풀샷으로만 만나왔던 과거를 뛰어넘어, 드디어 클로즈업 상태로 현재를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파편들이 아닐까. 항상 그런 식이었지 않았을까.”                           「홀로그램 장미의 파편들」, 윌리엄 깁슨.        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년 전 언젠가 한가로운 봄 햇살 아래, 잔디밭에 누워 뒹굴며 한 약속을 지킬 때가 된 거 같아. 그날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 상대가 맘에 드는 사람이 찍으면 뛰어가서 데려오자고 낄낄대며 실없는 장난을 치고 있었어. 그러다 대뜸 ‘우리 고전을 읽고 얘기하는 거 어때?’ 라는 얘기가 튀어나왔어. ‘그래?’ ‘좋아! 그럼, 우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부터 읽자’라며 순식간에 의기투합했어. 뭔가 굉장한 보물지도를 발견해 낸 것처럼 흥분한 우리 둘은, 그 약속을 기념하는 의미로 음악감상실을 찾아 구석에 함께 기대 누웠어. 그때,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제곡인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만 절정 부분에서 뛰쳐나오고 말았어. 왜냐면, 갑자기 내가 부정맥과 현기증을 호소했거든. 너랑 함께 떠날 미지의 여행에 대한 상상이 그 아름다운 클라리넷 소리와 뒤섞이며 내 모든 혈관들을 터뜨릴 듯 부풀려 버렸던 거야. 정신이 혼미해져 강렬한 햇빛에 넋을 잃은 날 보고 깔깔댔던 네 얼굴이 기억나. 어찌된 일인지 우린 그 바람에 약속 날을 제대로 잡지 못했어. 그러고는 20년이 흘렀고, 오늘 이렇게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약속이 되살아난 거야. 그래, 우린 이미 20년 전에 서로 고매성의 협약을 맺었던 거야. 그래, 난, 한번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이 없어. 나는 너의 파편이었니까. 항상 그런 식이었으니까.  자, 내가 처음으로 들려주고 싶은 책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이야. 그 단어만으로도 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짐작이 되지? 투르게네프가 42세 되던 해. 그러니까, 나와 같은 나이네? 하하하. 이 소설엔 청년 시절 얌전하고 유약한 몽상가면서 시를 좋아했던 자기 모습을 주인공 '블라디미르'로 분장해 쓴 나름 귀여운 작품이야. 뭔가 나랑 많이 겹치지 않니? 그 소설 속엔 너랑 겹치는 인물도 있단다. 후후후.  얘기가 길어졌지만 첨이니까 용서해 줘. 마지막으로, 파리의 오래된 소극장에서 봤던 영화인데, 장 뤽 고다르의 SF 영화 「알파빌」의 매혹적인 여배우 안나 카리나의 대화를 들려줄게.       Do you have light? 불 있어요? Yes, I travelled 9000kms to give it to you. 그럼요. 이걸 주려고 9천 킬로를 날아온걸요.        그 무엇보다도 우아한 너의 질문에 그 대사를 이렇게 바꿔볼래. 이 순간, 우리의 대화는 고전이 될지도 몰라.       Do you have a book? 책 있니? Yes, I travelled 9000days to give it to you. 그럼, 이걸 주려고 20년을 날아온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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