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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냄새

 

  박완서, 리영희,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동쪽별. 영화 촬영 막바지겠구나. 그렇다면 이제 다음 주면 너의 글을 읽겠구나! 얼씨구절씨구. 그런데 지금은 웃고 있지만 실은 난 이번주 좀 심각했었어. 지난 토요일에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셨지. 나에겐 이런 기억이 있어. 그때가 언제였을까? 내가 아침 9시 프로그램을 할 때였는데 하루는 박완서 선생의 아차산 밑 댁으로 생방송 연결을 하러 가게 되었어. 중계차를 타고 가면서 좀 졸았었던 게 기억나. 새벽에 일어났기 때문이겠지. 퍼뜩 정신을 차렸더니 아차산이야. 난 그때 아차산을 처음 봤었어. 선생님의 소설 제목처럼 나목이 서 있었어. 나목이 서 있는 그 길가는 무척 정갈하고 고요했었어. 누군가 새벽에 일어나서 빗질을 한 게 틀림없었어.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나목 뒤로 날아오르는데 그때 새의 얼굴이 보였어. 웃는 낯빛이었어. 우리 눈으론 볼 수 없는 벌레 한 마리를 본 것 같았어. 선생님 집에 도착해서 엔지니어는 방송 중계 라인을 깔고 난 선생님과 새 이야기 를 나눴어. 선생님은 산 밑에 사는 즐거움을 이야기하셨었지. 그때가 대략 아침 여덟 시경이야. 갑자기 선생님이 내게 이렇게 말하셨어.

 “술은 좀 하시나?”

 물론 난 뜨끔했지. 혹시 지난밤에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말일까? 난 나도 모르게 동화 속 입 큰 개구리처럼 입을 최대한 쪼그맣게 축소시키고 있더라고. 그런데 뜻밖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술을 좀 하면 지금 한잔할까?”

 물론, 내가 좀 방탕한 피디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까진 방송 직전에 출연자와 술을 마시는 경지에까진 오르지 못했었어. 그래서 나는 “아니요. 방송 전이라서요.”라고 대답했다, 라기보다는 “네, 어떤 술로 할까요?”라고 말해 버렸지. 오토매틱하게 움직이는 내 입을 틀어막고 싶었어. 그때 선생님의 큰따님이 옆에 계셨는데 흘깃 봤더니 날 아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시는 것 같지는 않았어. 선생님은 손수 일어나서 잔 두 개랑 소주를 가져오셨어.(어쩌면 소주가 아닐지도 몰라. 하여간 투명하고 독했어.) 선생님은 먼저 한잔 들이켜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

 “난 아침 공복에 술을 한잔할 때 술이 내 혈관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좋아. 술이 이렇게 내 몸을 흐를 때 모세혈관의 지도가, 손가락 끝에 있는 혈관까지 구석구석 마치 생물 시간에 본 것처럼 쫙 그려지거든.”

 그러면서 선생님이 가슴이랑 팔을 이렇게 펼쳐보이던 동작을 난 잊을 수가 없어. 천진난만했고 장난스러웠고 살아 있음이 생생했어. 어쨌든 그때도 선생님은 할머니였으니까 난 그 표정과 몸짓이 젊은 것에 놀랐어. 내 손등의 정맥도 같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어. 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아! 저것이 바로 나무구나!’라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얼굴은 아까 나무 뒤로 올라간 새의 얼굴과도 같구나! 란 생각도 했고. 아침 술 한잔에도 온몸 구석구석 생생함을 포착해 내던 선생님에게 죽음은 어쩌면 또 다른 초월일지 모르겠어. 난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 무심코 열 손가락 끝을 내려다봤어. 그 손가락 끝에 그날 아침의 독주처럼 뭔가 뜨겁고 애타는 것이 혈관들을 타고 내려가는 것만같이 느껴졌어. 그런데 선생님이 돌아가시던 날은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49일 되는 날이었어. 난 그날 오후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리영희 산문집 『희망』을 읽었어. 『희망』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박완서, 리영희,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한 몸 안의 핏줄들처럼 서로 연결돼.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 진리의 추구, 그리고 그것을 나누기 위한 끝없는 자기 실험.

『월든』은 많은 부분 시적으로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낭만적이거나 목가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 소로가 자연을 유달리 찬양하는 이유는 공기가 맑아서이거나 보기에 아름다워서가 아니야. 그가 족제비, 도요새, 부엉이, 올빼미, 개미, 기러기, 청새치, 개구리, 다람쥐, 토끼, 월든 호수, 나무, 모래, 얼음을 관찰하는 이유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이든 탐험하고 배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자연의 지칠 줄 모르는 활력과 광활하고 거대한 모습을 보고, 또 난파선의 잔해가 널려 있는 해안을 보고 원기를 회복해야 한다 . 살아 있는 나무와 죽어서 썩어가는 나무의 거친 야생을 느끼고 비구름이 울리는 천둥소리를 듣고 삼 주 동안 퍼부어 홍수를 일으키는 비를 겪고 원기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고 우리가 근접하지 못할 곳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목격해야 한다. …… 기러기는 우리보다 훨씬 세상 경험이 많다. 기러기는 캐나다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오하이오에서 점심을 들고 남부 지역의 어느 강어귀에서 깃털을 접고 밤을 보낸다. 들소조차도 계절의 변화와 추이에 발맞추어 콜로라도 강의 풀을 뜯다가 옐로스톤 강에서 그를 기다리는 더 푸르고 달콤한 초원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무 울타리를 헐고 농장 주위에 돌벽을 쌓으며 우리 삶의 주위에 경계가 만들어지고 운명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소로는 “나는 이제 월든 호수를 떠난다!”라고 말한 뒤 우리에게 우리도 탐험가가 될 것을, 자기 내면의 탐험가가 될 것을, 자기 자신의 가장 높은 고지대를 탐험하는 탐험가가 될 것을, 새로운 상품이 아니라 새로운 사상이 흘러갈 수로를 여는 콜럼버스가 될 것을 끝없이 촉구해.

      너의 시선을 내면으로 향하라.
그러면 너의 마음속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천 개의 지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그 지역들을 여행하고 자신의 세계에 통달한
전문가가 되어라.
     

 이 시는 윌리엄 해빙턴이란 사람의 시에서 소로가 인용한 거야. 난 이 시를 보자 저 위대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한 말이 생각났어.

      당신들은 자신의 내면에 그것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로 새로운 땅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새로운 땅이란 우선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 탄생하고
그런 다음에야 바다에서 솟아오릅니다.

……밤과 낮의 꿈을 그대로 간직하고
꿈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투쟁하는 자로 하여금
존재하게 해주십시오, 나의 여왕이시여.
이것이 젊음이 의미하는 바요, 신념의 의미입니다.
오직 이것만이 세계가 성장하는 길입니다.

                          『카잔차키스의 편지』 중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여기서 우리를 가끔 현혹시키는 자기 계발이란 말의 의미가 완전히 뒤집히겠지. 그러니 그는 자기 계발을 하겠다고 온갖 것에 솔깃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어. 우리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가끔 자괴감에 젖어 용기를 내지 못하기도 하지. 그는 이렇게 말해. “자기가 피그미족이라고 해서 가장 몸집이 큰 피그미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목을 매달아야 하는가? 우리 모두 각자 자기 일에나 관여하고 자기가 가진 재능이나 발휘하려고 애쓰도록 하자.”

 난 철이 자석에 끌려 자기도 모르는 춤을 추듯 나도 그와 함께 질문 대답의 춤을 춰.  

 그에게 인간의 결함, 그것은 무엇일까?
 - 결함은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그에게 진실, 그것은 무엇일까?
 -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 땜장이 톰 하이드는 교수대에 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요청에 “바느질을 할 때는 첫 땀을 뜨기 전에 잊지 말고 실의 매듭을 지으라고 재단사들에게 전해 주세요.”라고 죽어. 그것이 진실이다 .

 그에게 자기도취와 오만,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 대신 사람을 고용해 감자밭을 일구게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미리 계획한 대로 기독교적인 온순함과 자선을 실천하러 간다.”

 그는 상황을 가정하지 말고 상황에 직면하라고 말해. 그는 삶을 탓하지 말라고 해. 삶을 탓하기만 할 때 삶보다 형편없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일 거야. 그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야말로 편의적인 발상이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해. 난 이것이 용기일 거라고 생각해.

      올해는 수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져 메마르고 갈라진 고지대를 물에 잠기게 하고 사향뒤쥐를 모두 익사시키는 다사다난한 해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늘 뭍이었 던 것은 아니다.      

『월든』 중에서 내가 언제나 잊지 않고 손가락 끝에 붙이고 다니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게. 난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손가락 끝에 반딧불이 하나 앉은 기분이 들어. 소로 시절에 떠돌던 이야기야. 어느 농부의 집 부엌에 사과나무 탁자가 60년 동안 놓여 있었어. 오래전에 탁자가 탁자가 아니고 나무였을 때 어떤 벌레가 싱싱한 잎사귀를 골라 알을 낳았어. 그런데 나무가 탁자가 되는 바람에 그 알은 부화하지 못하고 메마른 나이테 속에 묻혀 버렸어. 그런데 어느 날 그 탁자에 누군가 (아마도 그 농부의 아내겠지.) 따뜻한 단지를 올려놓았어. 그 바람에 알이 부화되었어. 농부의 가족들은 탁자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 뭔가가 나무를 갉아대는 소리였어. 소로는 이렇게 말해.

      그리고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애벌레는 날개 달린 아름다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리라. 메마른 인간 사회에서도 가장 볼품없고 아무도 원치 않는 가구에서 뜻하지 않게 날개 달린 아름다운 생명이 탄생해 마침내 황홀한 여름을 누리게 될지 누가 아는가!      

『월든』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가 또 많지만 이 말만은 하고 싶어. 소로는 인간조차도 자연이 임무를 행할 때 따르는 보편적인 기본 원칙이 발현된 것으로 생각해. 난 지난 토요일에 살아 있기 때문에 도톰하고 혈색 도는 내 손가락들을 보면서 소로가 말한 것처럼 손은 정맥을 갖춘, 펼쳐진 종려나무 잎사귀, 귀는 머리 옆에 달린 이끼, 턱은 얼굴 위로 흘러내린 물방울이 모여 만들어진 것, 뺨은 눈썹에서 시작해 광대뼈라는 장애물을 만나고 얼굴의 계곡으로 흘러내린 비탈길이란 걸 느꼈어. 난 더 뻗어나갈 나무들, 더 멀리 흐를 강물들을 생각해. 자연이 그 임무를 행하는 이 하루에, 나 살아 있는 동안에, 나의 임무, 나의 의무는 무엇인가? 내가 추구할 진리는 무엇인 가? 이 동쪽별 빛나는 지구에서 눈 뜨고 동트는 걸 지켜보는 아침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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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 홍지수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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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자괴감에 젖어 용기를 내지 못하기도 하지. 그는 이렇게 말해. “자기가 피그미족이라고 해서 가장 몸집이 큰 피그미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목을 매달아야 하는가? 우리 모두 각자 자기 일에나 관여하고 자기가 가진 재능이나 발휘하려고 애쓰도록 하자.”  난 철이 자석에 끌려 자기도 모르는 춤을 추듯 나도 그와 함께 질문 대답의 춤을 춰.    그에게 인간의 결함, 그것은 무엇일까?  - 결함은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그에게 진실, 그것은 무엇일까?  -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 땜장이 톰 하이드는 교수대에 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요청에 “바느질을 할 때는 첫 땀을 뜨기 전에 잊지 말고 실의 매듭을 지으라고 재단사들에게 전해 주세요.”라고 죽어. 그것이 진실이다 .  그에게 자기도취와 오만,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 대신 사람을 고용해 감자밭을 일구게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미리 계획한 대로 기독교적인 온순함과 자선을 실천하러 간다.”  그는 상황을 가정하지 말고 상황에 직면하라고 말해. 그는 삶을 탓하지 말라고 해. 삶을 탓하기만 할 때 삶보다 형편없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일 거야. 그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야말로 편의적인 발상이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해. 난 이것이 용기일 거라고 생각해.       올해는 수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져 메마르고 갈라진 고지대를 물에 잠기게 하고 사향뒤쥐를 모두 익사시키는 다사다난한 해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늘 뭍이었 던 것은 아니다.       『월든』 중에서 내가 언제나 잊지 않고 손가락 끝에 붙이고 다니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게. 난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손가락 끝에 반딧불이 하나 앉은 기분이 들어. 소로 시절에 떠돌던 이야기야. 어느 농부의 집 부엌에 사과나무 탁자가 60년 동안 놓여 있었어. 오래전에 탁자가 탁자가 아니고 나무였을 때 어떤 벌레가 싱싱한 잎사귀를 골라 알을 낳았어. 그런데 나무가 탁자가 되는 바람에 그 알은 부화하지 못하고 메마른 나이테 속에 묻혀 버렸어. 그런데 어느 날 그 탁자에 누군가 (아마도 그 농부의 아내겠지.) 따뜻한 단지를 올려놓았어. 그 바람에 알이 부화되었어. 농부의 가족들은 탁자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 뭔가가 나무를 갉아대는 소리였어. 소로는 이렇게 말해.       그리고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애벌레는 날개 달린 아름다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리라. 메마른 인간 사회에서도 가장 볼품없고 아무도 원치 않는 가구에서 뜻하지 않게 날개 달린 아름다운 생명이 탄생해 마침내 황홀한 여름을 누리게 될지 누가 아는가!       『월든』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가 또 많지만 이 말만은 하고 싶어. 소로는 인간조차도 자연이 임무를 행할 때 따르는 보편적인 기본 원칙이 발현된 것으로 생각해. 난 지난 토요일에 살아 있기 때문에 도톰하고 혈색 도는 내 손가락들을 보면서 소로가 말한 것처럼 손은 정맥을 갖춘, 펼쳐진 종려나무 잎사귀, 귀는 머리 옆에 달린 이끼, 턱은 얼굴 위로 흘러내린 물방울이 모여 만들어진 것, 뺨은 눈썹에서 시작해 광대뼈라는 장애물을 만나고 얼굴의 계곡으로 흘러내린 비탈길이란 걸 느꼈어. 난 더 뻗어나갈 나무들, 더 멀리 흐를 강물들을 생각해. 자연이 그 임무를 행하는 이 하루에, 나 살아 있는 동안에, 나의 임무, 나의 의무는 무엇인가? 내가 추구할 진리는 무엇인 가? 이 동쪽별 빛나는 지구에서 눈 뜨고 동트는 걸 지켜보는 아침마다!  ------------------------------------------------------------------------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 홍지수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7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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