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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냄새

 

  동쪽별과 커피진주의 책읽기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동쪽별! 추워! 그래도 난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해. 취재를 가야 하기 때문이지. 차갑지만 쨍하니 청명한 하늘이기만 바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갈 때 갑자기 별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분을 맛보고 싶어. 갑자기 황혼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시구처럼 말이야.
 
  지난번 『거울 나라의 앨리스』 시로 시작했으니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마저 할게.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가 털실을 마구 흩뜨려놓고 있는 검은 고양이 키티를 “너에게 예절 교육을 시켰어야 해!”라고 꾸짖는 데서 시작해. 물론 꾸짖는 척하기는 하지만  앨리스는 키티에게 다정한 맘이야. 그래서 키티에게 계속계속 말을 걸어. 창유리에 눈이 부딪히는 소리 들리니, 키티야? 소리가 너무 예쁘고 부드럽지 않니! 누군가가 바깥에서 창문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키티야, 너 체스 둘 줄 아니? 키티야, 우리 흉내 내기 놀이 하자. 네가 붉은 여왕을 하렴! 네가 팔짱을 끼면 붉은 여왕과 똑같이 보인다는 사실을 아니? 한번 해봐, 키티야!
  그렇지만 앨리스가 아무리 권유해도 키티는 전혀 말을 듣지 않아. 그래서 이번에 앨리스는 거울 앞에 키티를 안고 서서는 “당장 말을 듣지 않으면, 거울 집으로 넣어버릴 거야.”라고 협박해. 물론 이번에도 키티에겐 전혀 통하지 않지. 그래서 이번에 앨리스는 슬쩍 딴청을 부려. “내가 거울 집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꼭 우리 집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물건들만 반대로 되어 있지. 벽난로 바로 뒤만 빼고. 아, 정말 벽난로 뒤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이렇게 어느 눈 내리는 날 따뜻한 방 안에서 거울 앞에 선 소녀가 ‘아, 정말 벽난로 뒤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기발랄한 숨을 내뿜으면서 시작돼. 왜냐하면 잠시 후 앨리스는 거울 집으로 가볍게 폴짝 뛰어들어 갈 수 있게 되거든.
  그런데 너도 혹시 거울 보면서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니? 혹은 카메라 렌즈를 보면서 뛰어들고 싶다고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니? 사진이 정지된 포즈를 찍는 거라면 영화는 지나가는 것을 찍는 것이란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러니 비밀을 들려줘. 지나가는 걸 찍는 사람은 결국은 지나가는 것을 사랑하게 되니? 그런 식으로 점점 사라지는 것도 사랑하게 되니? 그렇게 해서 언젠가 존재했음과, 그 존재했던 것들이 결국은 사라져버림과 나름대로 화해하게 되니? 아니면 지금 여기에 존재함 자체의 소중함에 감사하게 되니? 나는 거울에 몸을 던져 모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못 해봤지만 거울에 대한 아름다운 이미지 하나를 갖고 있긴 해.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이미지인데 그 소설에서 사랑에 빠진 남자는 레스토랑에 갔다가 우연히 너무나 사랑하는 그 여인을 만나.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같이 있었어. 그는 벽의 거울을 통해 그녀의 모든 동작과 웃음과 옷차림과 목덜미와 아름다움을 끝없이 보지. 마치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걸고 웃고 포도주를 권하는 것처럼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봐.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을 때 레스토랑의 주인에게 부탁해. 그 거울을 팔라고. 그렇게 해서 그는 그 거울을 자기 집에 걸어놓게 되지. 그때 거울은 뭐였을까? 그 심정을 나는 이렇게 헤아려봤어. 니체의 말을 패러디하자면 ‘세상의 모든 거울들은 하나의 미궁을 이루고 있다. 미궁의 인간은 결코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아리아드네만을 찾는다’. 사실은 나도 거울을 볼 때 가끔은 그런 심정이야. 표면의 매끄러움 말고 뽀얗게 김 서린 두께를 볼 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나와 한 줄기 끈으로 연결된 그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도 같아.
  하지만 모든 거울 이야기의 핵심적인 매력은 거울 같은 작은 물건을 통해 엄청나게 커다란 세상의 암호를 해독한다는 것일 거야. 이제 우리 앨리스가 뭘 찾아내는지 따라가 보자.  

  그렇게 거울 속으로 뛰어든 앨리스는 거울 속 세상이 반듯반듯 체스 판 같다는 걸 알게 돼. 그러고는 탄성을 질러.
  “만약 이게 세상이라면 온 세상은 누군가가 두고 있는 체스 게임인 거네요. 아, 얼마나 재미있을까! 졸이 되어도 상관없어요. 경기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요! 물론 할 수 있다면야 여왕이 되면 좋겠지만요.”
  이 용감한 소녀의 상상력은 거의 아인슈타인과 비슷하지? 그렇게 마구마구 뛰면서 그녀는 그 유명한 트위들덤과 트위들디(체스의 네 번째 칸에 있음)과 험프티 덤프티(여섯 번째 칸에 있음)를 만나. 그 사이사이에 닭만 한 모기(하지만 자기 한숨에 날아가 버린 듯한 덩치만 큰 모기야.), 사자와 유니콘, 하얀 기사도 만나. 그리고 마지막 칸에서는 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을 만나게 돼. 물론 우리 꼬마 숙녀의 첫 출발은 졸이었어. 

  너도 세상살이를 한판 게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아마 이 생각을 오늘날에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이 세상이 게임이라고 해도 지는 사람은 지게 되어 있고 이기는 사람은 이기게 되어 있는 게임에 불과하다는 회의적인 입장을 누가 탓할 수 있겠어? 그런데 세상살이를 한판 게임으로 보는 생각에는 무시 못 할 건강함도 있어.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받아들이고 뛰어들고 본다는. 바로 이런 관점으로부터 앨리스의 어린이다운 활기와 명랑함이 솟구쳐 나오고.
  그런데 세상살이만 한판 게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또 아냐. 자기 자신이란 정체성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어. 예를 들어볼게.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에서 황야의 이리인 하리 씨는 어느 날 가장무도회에 가.(그 가장무도회장의 비밀스런 방에도 거대한 벽거울이 나오지.) 그 가장 무도회장에는 수많은 문이 있는데 어떤 문에는 ‘개성 형성 입문, 성공 보장’이라고 써 있어. 그 방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고 노인 앞에는 장기 판이 놓여 있어. 그런데 장기알들은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수많은 자아야. 그날 밤의 장기알들은 하리의 자아들이였어. 노인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하리들을 집어 들어. 노인, 청년, 아이. 명랑한 것, 슬픈 것, 강한 것 ,부드러운 것, 모조리 다. 그리고 그것들을 장기 판 위에 배열해. 그것들을 서로 엮어서 무리를 만들고 각각 유희와 전쟁, 우정과 대결을 이루게 해. 매 게임마다 새로운 작은 세계가 생겨나. 이 작은 세계들이 놀고 다투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아기를 낳고. 모든 판이 완전히 새로웠어. 노인은 이렇게 말하지.
  “이것이 삶의 기술이오. 당신 자신이 인생이라는 판을 마음대로 짜고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소. 헝클어뜨릴 수도 풍요롭게 할 수도 있소. 그건 당신 손에 달렸소. 오늘 끔찍한 도깨비로 커져버려 놀이를 망쳐놓은 말은 내일은 대단치 않은 졸로 강등시킬 수도 있고 잠시 곤경과 불행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불쌍하고 사랑스러운 말은 다음 판에서는 공주로 만들 수도 있소.”
  이런 유희 속에서 선택이 너무 많아 혹시 혼란스럽니? 하지만 난 이런 장기알 유희가 너무나 맘에 들어. 내 안의 아무것도 억압받지 않아서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떤 나를 기대하는가? 란 질문을 끝없이 던지게 하니까.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는 아무래도 좀 더 해야만 할 것 같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험프티 덤프티 씨 이야기를 해야만 하거든. 험프티 덤프티의 몸매가 벨트와 넥타이를 구별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돼. 그리고 키티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니 않니? 얼떨결에 앨리스랑 같이 거울에 들어갔을까? 다음 주에 봐! 그리고 혹시라도 그새 렌즈 속에 뛰어갔다 오면 알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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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나라의 앨리스 - 펭귄 클래식 72>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이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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