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별과 커피진주의 책읽기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안녕! 나의 친구 동쪽별! 우리가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너는 기억하니? 그래도 ‘동쪽별’! 이렇게 너를 부르고 나니 가슴 한끝이 아릴 정도로 애틋해. 마치 내가 동쪽별이 떠 있는 새벽하늘에 어슴푸레 떠 있는 초승달 같아. 잘 지내고 있지?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라. 너와 함께, 너와 같이 책을 읽어 나갈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이 글을 쓰기 전에 너와 책에 대해 나눈 대화가 뭐가 있었는지 생각해 봤어. 대학 때 가장 좋았던 것은 변증법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 나는 그전엔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효도 대 불효, 성공 대 실패, 행복 대 불행, 주체성과 보편성, 친구 대 적, 선과 악. 그런데 이런 이분법의 세계에는 진정한 관찰과 이해, 복잡한 심연에의 탐구, 인간적인 선택과 화해의 가능성, 겉보기와 무관한 진리의 선택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궁색한 자기변명과 합리화, 감상주의와 회한, 세계에 대한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감정, 신선하지 않은 계산들만이 남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변증법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충격은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 철학에서 ‘어떻게 신은 인간이 되는가?’란 질문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정도였어. 나는 그전엔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관계에 대해 완전히 몰이해했고 마찬가지로 세계와 인간,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신’이란 걸 작동시킬 줄 몰랐어. 그런데 그 시절의 너는 내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마치 다 알아버린 것처럼 흥분해서 떠들면 소크라테스처럼 굴곤 했지. 괴로운 듯 슬픈 듯 찡그리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런데 혜윤아’로 시작하는 말을 하던 네 얼굴이 지금도 떠올라. 그 시절의 우리에게 뭐가 있었을까? ‘사이’가 있었어. 나는 ‘차이’라기 보다는 ‘사이’라고 말하고 싶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뭔가 말하고 나누고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부지런한 화학 작용을 했던 그 공간이 바로 사이였던 거야. 그 사이에서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동쪽별이 지지 않고 매일 새벽 떠 있는 것도 보고, 이상야릇한 꿈도 꾸고 인생의 비밀과 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지.
책에 대해 두 가지 기억나는 게 더 있는데 언젠가 너는 불쑥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말했어. 나는 그때까지 평생 단 한 명의 영화감독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 내 친구가 드디어 패가망신하는 길로 완전히 맘을 굳혔구나!’ 하는 슬픈 마음과 ‘그래도 나는 끝까지 지지해야지!’ 하는 굳센 각오를 하며 그 이유를 물었지. 그때 너는 군부대의 영화 감상실에서 히치콕 영화를 처음 본 이야기와 그때의 충격을 내게 들려주었어. 나중에 서점에서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두툼한 히치콕 책을 발견하곤 그 책을 사서 품에 안고 거의 뛰듯이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나.(내친김에 트뤼포 전기도 한 권 더 샀고.) ‘내가 이 책을 다 읽으면 너의 세계를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 희망이 히치콕을 읽는 동안 한 번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 마치 머리 꼭대기에 노란 램프가 하나 더 달려 있는 것 같았지. 그리고 마지막은 지난핸가 하루키의 『일큐팔사』가 처음 나왔을 때, 그때 너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는 ‘큐’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었지. 모든 것을 다시 의심해 보아야 하는 ‘큐’의 세계에 너는 왜 그렇게 끌렸던 것일까? 너는 그때 달의 뒷모습, 달의 이면에 대해서도 이야길 했지. 나는 그게 너의 정신이라고 생각해. 너에게도 실패와 어려움이 있지만 내가 아는 너는 단 한 번도 회한에 이끌려본 적이 없어. 그 대신 너는 매번 불확실성 속으로 몸을 던지면서 그때마다 네 내면의 진정한 욕구를 들여다보려고 했어. 상처받으면서도 사랑하고 상처받으면서도 환멸에 젖지 않고 상처받으면서도 무릎을 펴 일어서고 상처받으면서도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구하려고 애쓰는 네게 불확실성은 이미 삶의 조건이었어.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나면 한없이 이야기해주고 싶어. 어떤 이야기일까?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해 준 루이스 캐럴의 시가 있어서 읽어줄게 들어봐.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이 시로 시작해. 좀 길지만 조금 참고 계속 눈을 감고 상상하면서 들어봐!

구름 한 점 없는 순수한 이마
경이 앞에 꿈꾸는 눈을 한 아이야!
시간이 흘러 나와 그대가
따로 떨어진 두 인생을 산다 해도
그대는 사랑스러운 미소로
사랑의 성물로 건네는 이 이야기를 반갑게 맞을 테지
그대의 햇살처럼 빛나는 얼굴을 보지 못했네
그대의 은빛 웃음소리도 듣지 못했네
앞으로 펼져질 그대의 젊은 삶속에서
나에 대한 생각은 찾아볼 수 없겠지……
그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제 충분하다네
이야기는 어느 여름날
햇빛이 반짝이던 날 시작되었지
우리가 노를 젓는 박자에 맞춰 수수한 종소리가
시간을 알려주었지……
종소리 메아리가 아직도 기억에 살아 숨 쉰다네
세월이 샘내듯 잊으라 말하겠지만
어서 와 귀를 기울여 주오
쓰라린 세파로 물든 무서운 목소리가
반갑지 않은 잠자리로 불러들이기 전에!
어느 우울한 소녀여!
우리는 나이 많은 아이들일 뿐이라네
잠자리에 들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초조해하는
밖은 서리와 눈앞을 가로막는 눈이 몰아치고
침울한 광기의 폭풍이 불지만
안은 난로 불빛이 발갛게 빛나는
기쁨으로 가득 찬 유년의 보금자리라네
마법 같은 말들이 그대를 단단히 사로잡으니
그대 날뛰는 바람 소리 듣지 못하리
비록 한숨의 그림자가
이야기 속에 내내 떨릴지라도
행복한 여름날도 갔고
여름날의 영광도 사라졌기에
한숨의 그림자가 고통의 숨결로
우리 이야기의 즐거움을 해하진 않으리라
내 마음을 알겠니? 마음에 어두움과 슬픔과 상실이 있지만, 삶은 불확실하게 이어져 있지만 그래도 또 요정의 장난질과 온갖 모험 이야기에 귀를 열어놓는 난로 앞의 아이처럼 우리 인생의 많은 것들에 대해 궁금해하며 계속계속 이야기하자. 그리고 서로에게 이야기하듯 모두에게 이야기하자.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우정을 담아서.
이제 고전 읽기에 관한 태도 두 가지만 말하고 이만 줄일게. 너 혹시 『무지한 스승』이란 책 혹시 아니? (모를 거라고 생각해.) 거기에 이런 말이 나와.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참 고마운 말이지? 그런데 그다음엔 이런 문장이 나와 ‘구하라. 그런데 못 찾을 수도 있다.’ ‘구하라, 그러면 반드시 찾는다! 확실하다. 손가락 걸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하면 누구라도 당장 분연히 떨쳐 일어날 텐데, 구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찾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남는단 말이지? 인생 전체를 걸고 너무나 궁금해. 그다음 문장은 이렇게 요약해 볼 수가 있어.
‘구하라 그러나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결될 수는 있다.’
나는 이것이 책을 읽는 이유라고도 생각해. 더도 덜도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보편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 서로 포개지고 겹쳐지면서, 설명할 수 없지만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이 서로의 삶의 형태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을 느끼는 것. 밤하늘의 영원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 마치 동쪽별을 보며 소박한 마음으로 길을 걷듯이 진정성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
그리고 나는 사르트르가 말한 고매성의 협약을 기억해. 고매성의 협약은 상대방에게 최고의 신뢰를 보내고 최고의 기대를 하는 거야.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요구해. 독자와 작가들 사이의 협약이 바로 고매성의 협약이야. 독자는 그 작품 속에서 최고의 어떤 것을 찾아내려 하고 작가도 독자에게 최고로 잘 읽을 것을 기대하고 요구해. 그런 식으로 서로의 최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거야. 그런데 요구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기는지 아니? 자기애를 버리게 되고 그리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 깊고도 깊은 어떤 갈망이 솟구쳐 올라와. 더 알고 싶다는 갈망, 알아낸 대로 행하고 살고 싶다는 욕망. 그건 다름 아닌 ‘자유’의 냄새를 풍겨. 깊고 푸른색이야. 내가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할지라도 대양이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 냄새를 전해 주는 것 같아. 희망에 색깔이 있다면 출렁이는 푸른색일거란 생각이 들어. 동쪽별! 우리도 고전과 고매성의 협약을 맺자.
다음 주에 만나! 네가 촬영이 끝나는 12월까지는 계속 나만 편지를 보내야 하지만 참을 수 있어. 참을 수 없는 건 존재의 없음뿐이야!
(동쪽별과 커피진주는 각각의 이메일 주소임. 동쪽별은 민규동 감독의 이름 한자에서 따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