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나는 문통령의 강성 지지자이며 극렬분자다. 사실 이렇다 할 지지의 이유는 없다. 그냥 지지한다. 웃기지도 않는 말을 논리랍시고 들이대며 헛소리하는 야당 의원과 지지자는 조곤조곤 밟아주고 노골적인 편파보도도 보도라며 함부로 떠드는 언론에는 똑같이 말 같지 않은 말로 대응한다.
사실 지지자를 표명했으면서도 그동안 대통령의 책 한 권 읽어본 적이 없어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마침 연휴 때 알라딘에서 전자책 마일리지를 한 움큼 뿌려주길래 덥석 받아 질렀다. 내 대통령이 직접 쓴 일대기라니.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읽다 보니 대통령 당신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 사회의 흐름과 계속해서 절묘하게 닿아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무슨 대하드라마를 보는 것도 아니고, 어쩜 사회 변화의 자리마다 안 계신 곳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포레스트 문프?? 당신의 기록이 역사의 기록이고 언론의 보도자료라니, 신기하고 대단하다.
대통령의 삶에서 노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는 없으니, 넘기는 장마다 그분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반갑기도 하고 애달프기도 하고. 하지만 문 대통령 당신의 그리움만 할까. 한 글자, 또 한 글자 조용조용 눌러 써놓은 듯한 담백한 문체가 문 대통령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의 차이점이 보이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나 특유의 재치와 카리스마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분이셨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달변가도 아니고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며 재미있는 편은 더욱더 아니다.(... 유머에 관해서 반론할 자 나오시라) 그냥 그 자리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 할 뿐이다. 강한 빛은 아니지만 언제나 반질반질 윤이 난다. 하긴 외모가 되는데 더 이상 무슨 매력이 필요하겠냐마는.
그토록 하기 싫어 피해 다녔던 정치의 세계에 들어와 결국 대통령이 되어 집권 이후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그 시작이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니. 문 대통령의 운명뿐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운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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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나, 차 한 잔 놓고 얘기를 나누던 바로 그날, 우리는 눈부시게 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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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나중에 정치인이 되었을 때, 노무현은 서울의 민주화 운동권으로부터 운동의 주류가 아닌 변방 출신으로 대접받았다. 역시 서울 중심 사고에 더해, 민주화 운동 진영 내부에도 만연해 있는 학벌주의와 엘리트주의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적어도 5공 기간 동안 변호사 노무현만큼 자기를 버리고 치열하게 투쟁했던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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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많아 힘들었지만 내 삶에서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 최선은 아닐지라도 나의 개인적인 삶과 세상을 향한 나의 의무감이 나름대로 균현을 잘 맞추고 있다는 느낌으로 지낼 수 있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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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가 아무리 야구를 좋아한들 구치소에 수감된 처지에 야구소식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한 아내가 귀여웠다. 감방에서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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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세상인심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정말 고마운 분들은 부담 줄까 봐 또는 내가 바쁠 것을 배려해 연락을 삼갔다. 반면 뭘 어떻게 도왔는지 알 수 없는 분들이 공치사를 하며 만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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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오랜 유폐 생활로 지치고 마음이 불편했을 텐데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환단 끝날 무렵에 내가 대통령에 "마지막으로 대리인단에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시라"라고 했다. 대통령이 벌떡 일어나 "저 대통령 다시 하게 좀 해주십시오."라며 인사를 했다. 무거운 자리일 수도 있었는데, 일행 모두가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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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님을 보시라고 넣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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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인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