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1 정용준정용준을 읽어 보고 싶어 읽고 있다. 첫 인상은 하나 하나 힘들게 썼겠구나. 밤에 쓰는구나. 약간 어설프면서도 더듬대는 것 같으면서도 그런데 그게 어떤 정서가 있구나. 고민이 많았겠구나. 아주 조금 몇 프로 부족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뭐 또 그냥 그런대로 읽는 맛은 있다. 나중에 나온 건 조금 더 매끈해졌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반복되는 기시감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싫으면서도 좋으면서도 불편하면서도 편하다. 다 읽고 난 소감은 세상에 개 같은 아버지 결국 죽어갈 아버지는 왜 이리 많고 그 아래 망가진 자식은 또 왜 이리 많고 이미 다 써 버린 소설은 왜 또 많고 그런데 또 그렇게 잘 쓰면 어떡하냐. 몇 가지는 김기덕 영화 같은 걸 보는 것 같았고 그런데 이쪽이 훨씬 더 착한 사람이 쓴 것 같았다. 시 하나는 발췌 귀찮아 하는 내가 베끼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용준 팬 될 것 같다. 하하하. 미드윈터어제 죽은 나는 어딘가에 도착해 눈을 떴다. 이곳이 천국인가 지옥인가. 삶에 대한 확신과 연구가 부족했던 나는 내 영혼이 어떻게 해석될지 알 수 없어 이곳을 판단할 수 없다. 나는 걷는다. 집 근처를 산책하는 사람처럼 걷는다. 낯선 역에 도착한 여행자처럼 걷는다. 오랜 투병으로 지친 병자처럼 걷는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도시에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이 떠오른다. 도시는 멸망의 기운을 내뿜으며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몰락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녹는 건물과 크고 작은 거리들. 나는 오늘 죽는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혹은 자신감 있게 도시를 걷는다. 도시는 비어 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도망갔거나 모두 죽었으리라.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 경계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는 마녀가 앙상한 팔을 휘저으며 새처럼 날아다니고 있다. 언덕에 십자가처럼 서서 도시를 바라보는 하얀 곰들. 어느새 나는 아주 작은 아이처럼 작게 녹아 울면서 걷고 있다. 빈 집의 깨끗한 창문 너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태양이 지지 않아 이토록 환한 낮에 내 얼굴을 양초처럼 모두 녹아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는 둥근 바위가 된다. 눈 없는 얼굴로 울면 온몸은 눈물로 채워지네. 빗물이 고인 오래된 수조처럼 오늘 죽은 자들은 영원하고 아름다워. 한낮. 한밤. 그리고 춥고 어두운 한겨울에.474번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미드윈터. 오늘 죽는 사람처럼개들이국의 소년안부내려새들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