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듀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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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듀나 김보영 배명훈 장강명 

SF는 거의 읽은게 없다. 잘 모르는 여러 작가가 모여 옴니버스?식으로 낸 소설집들은 소설의 결과 편차가 커서 택해서 읽는 게 약간 도박 같다. 그래도 한 두 작가 정도는 건질 때가 있었으니 또 읽었겠지. 일단 장강명은 아는 작가니 그거 믿고 펼쳤다.

제대로 SF 읽어 본 적 없지만 이 책 읽으며 느낀 SF소설의 특성은- 한계의 소설, 규칙(과학 이론, 법칙)의 소설, 가능성(규칙 안에서 한계를 넘는)의 소설, 우화적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마션이랑 아르테미스도 읽었었다. 하하. 아예 안 읽었던 건 아니네.

생각하고 보니 아, 아주 어릴 때, 거의 일고여덟아홉살 쯤에, 아버지가 어디선가 얻어다 준, 그 때 이미 누렇게 삭아 톡 쳐도 먼지나고 부서지고 낱장이 뜯겨져 나가던 SF전집이 있었다. 다는 아니지만 그 중 몇 개를 분명 읽었었다. 기억 나는 게 눈보라(백설)의 공포, 로봇 머신 X는 확실히 읽었었다! 검색해보니 집에 있던 그 먼지 조각 같던 전집은 아이디어회관의 SF세계명작(혹은 그 해적판) 이었던 것 같다. 
다 잊어버렸던 그 바탕이 이 책을 펼치게 했던가. 결과는. 

장강명-당신은 뜨거운 별에. 금성
금성으로 (뇌만) 간 냉철한 여성 과학자, 그녀를 구하기 위한 딸의 현대무용과 동성 혼인식, 이를 자본주의 첨단에서 중계하고 광고 수익을 얻으려는 매스미디어, 예측 가능하면서도 쉽게 읽히고 이미 익숙한 장강명 문법이라 그냥 저냥 잘 봤다. 
최근 읽은 윤이형 ‘굿바이’, 김성중 ‘화성의 아이’ 이런 것도 생각났다. 여성, 모녀관계, 의식만 옮겨가는 것, 거기에 추가된 아이디어라면 뇌자극으로 조종되어 자기의지라는 것이 무력화 되는 것에 대한 저항?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 열린 결말은 흐지부지인 느낌이라 개운하진 않지만 뭐 그 뒤에 구구절절 탈출 성공 실패 여부를 나열하는 건 완성도에 도움이 안 되니 장강명식 영리한 선택이다. 

배명훈-외합절 휴가. 화성
음. 이 소설 읽는게 제일 힘들었고 그래서 대여기간 다 잡아먹어서 남은 두 편을 밀린 숙제 보듯 몰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이 원망스럽다. 할 일 다 제끼고 남은 소설 충분히 음미 못 하고. 이 글을 견뎌야 했거든.)
화성의 빠른 달, 지구와의 식민지-제국(?) 지배력 알력 싸움, 여전히 견교한 관료제. 
말로는 공간이 존재 형태를 지배한다고 말하고, 그래서 지구와 가장 가까운-먼 둘 중 어느 시기에 선거를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하면서도 서술은 전혀, 오히려 인간은 어디가나 비슷하고 조건에 지배받고 관료제 하에 정치 권력 싸움 하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설정을 뿜뿜 풍기고 있었다. 그러다 바보같이 다 자폭...끝...허무하고 종말론적이었다. 
스토리나 설정이나 구성의 불만은 작가의 세계관이 그렇다, 하면 그렇다치더라도, 제일 안 읽힌 가장 큰 이유는 문장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나 물론’뭐 이런 식으로 접속사를 중복시키거나 남발하고, 문장 안에 부사 같은 군더더기가 너무 과도하고, 대화체가 서로 주고 받는데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장면 전환도 너무 뚝 떨어져 이동해 버리고, 정치나 세계 묘사의 어휘가 좀 문학적이지 않고 신문 시사면 정치면 한자어들 막 남발하는 것 같고(그러면 뭔가 있어보이는 듯...그러나 가독성 엄청 떨어지고…)... 원래 못 쓰는 사람이거나 퇴고가 아주 많이 부족했다는 느낌이었다. 

나름 반성한 부분은 있다. 나도 독후감 쓸 때 퇴고 안 하고 군더더기 막 붙여서 대충 올리지! 그건 내 글을 읽기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 없음이야!! 퇴고가 생명이다!!!(그러면서도 아마 일기 쓰듯 이번에도 퇴고 안 하고 올릴지도 모른다...나란 새끼 반성만 하고 달라지지 않는 몹쓸 새끼…)

김보영-얼마나 닮았는가. 토성의 위성 타이탄. (원래는 목성의 위성 유로파로 가던 중…)
앞 소설에서 입은 내상을 그나마 중화시킬 만한 문체와 문장과 구성이라 다행이었다. 인간과 유사해진AI, 외형과 감정을 갖게된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 혐오, 인간처럼 대하게 되는 마음 등은 프로메테우스나 에일리언 커버넌트에 나온 애쉬, 비숍과 오버랩되면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온갖 폭력적 남성성(쓰레기성)의 압축체 같은 강우민의 존재가 너무 두드러지게 그려지고 절대악 수준의 평면적 인물에 권선징악 수준의 인물 제거...까지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게다가 설마 설마 했는데 갑자기 젠더 감수성을 푹 떠 먹이는...부분에서는...아 나 사실 Sci-Fi아니고 Sexism-Feminism이야 하고 커밍아웃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좀 무리수 아니냐...하는 나는 여전히 (머리로만 알고 공감은 못 하는, 무서운 언니들이 무서운 말로 비하하는)젠더 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너무 괜찮은 남자들도 많이 만난 극히 예외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일말의 가능성을 가지고 계속해서 구호품을 보내려는 의지는 나름의 휴머니즘 같긴 했다. 

듀나-두 번째 유모. 해왕성의 위성 트립톤. (거기에 화성과 지구의 사정.)
듀나라는 이름만 들어보고 그녀? 그? 그 존재?의 글은 처음 읽어 봤다. 이 소설집 기획을 한 사람이라 했다. 뭔가 내가 보고 읽은 것의 몇 백 배 되는 영화와 책을 섭렵했을 것 같은 느낌이 글 곳곳에서 비겨져 나왔다. (얘야...대부분의 작가가 그럴걸…) 나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 글에서 온갖 곳의 다양한 신화, 사우론, 사도, 성경책 따위의 영향을 조금씩 느꼈을 뿐이다. 
각 행성을 엄마라 부르는 인격신(이라기엔 어색하지만 이미 호칭이 그러하니)의 어떤 계획이나 의지 같은 것으로 표현하고 거기에 속해 살아가는 아이들(인류 또는 초인류)의 모습을 그린 것, 아버지라는 절대 악(분노, 파괴, 전쟁, 살육, 자기 중심성), 아이들을 위해(혹은 세계의 유지를 위해) 자기 희생 하는 두 유모 가을과 서린(에일리언 3인가에서 용광로에 자기를 던지는 시고니 위버 같은 자기 파괴적 여전사?), 거기에 뭐 대지의 여신이니 자식 잡아 먹는 아버지 신이니 하는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인물 고유명사나 비행체, 우주 내 인공 구조물? 같은 것의 명칭에 콩나물, 다리, 거미, 가을, 풀잎, 연두, 보라, 샘물, 수리매, 온갖 한글말들을 쓴 게 인상깊었다. 그런데도 하나도 안 오글거려, 신기해,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내공이 느껴졌다. 

그치만 너무 거대한 범위로 확장된 세계관, 건축물 이상을 벗어나 우주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듯한(뭐 겨우 태양계 내인데 그래도 내 한계를 아슬아슬 벗어날 듯한…) 거시적 구상은 나한테는 버겁다. 그럭저럭 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머리가 좋구나, 영리하구나, 하지만 그 이상 오, 더 찾아 읽고 싶어, 까지 가기엔 조금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기회되면 뭐 또 읽겠지만 오오!! 또 읽을래!! 책을 더 내놔!! 여기까지는 못 가겠다. 너무 똑똑하면 배 아프거든…)

좀 쉬었다가 올해 안에 집에 재고로 보유된 어슐러 르귄 책들이나 한 번 봐야겠다. SF매니아는 못 될 것 같은데(타고난 문돌이거등요...머리 아프면 싫거등요...자기들끼리 아는 말로 과학적인 척 하면 화나거등요…) 그래도 가끔 보면 사고 전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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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11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공돌인데도 SF가 별로예요. 사이언스도 좋아하고 픽션도 좋아하는데 뭉쳐놓으면 아웃 오브 취향.....
된장도 좋아하고 초콜릿도 좋아하지만 된콜릿은 안 좋아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심정으로다가.....

반유행열반인 2019-02-11 12:46   좋아요 1 | URL
저희집 공돌이는 만화책이랑 그래픽 노블(...스즈미야하루히?그런 넌 왜 3D인 나를...)만 보는 걸 보면 전공은 독서 취향에 큰 상관 없나 봐요. 공돌이인 syo님이 맑스랑 철학을 파고 문돌이인 제가 자꾸 과학책을 사(모으고 안 읽)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