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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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배준

 책을 고를 때 어떨 때는 그 때의 절박한 소망을 반영하는 제목을 택하기도 하는 것 같다. 뭐 아무튼 괜시리 심란했겠지. 조금이나마 웃고 싶었겠지. 전자 도서관에서 시트콤을 빌렸을 때는.(정작 이 책 읽을 만큼 정신 들었을 때는 또 아무렇지 않았다.)
자음과 모음 경장편소설 공모전 당선작이다. 공모전 당선 장편들 중에는 은근 실망스럽거나 용두사미인 경우도 많이 봐서 내심 이번에도 그럴까 싶었는데. 
역시 첫 장부터 작위적인 느낌에 이번에도 참고 읽어야 하나 싶었다. 첫 장은 사실 약과 수준이었고 결말 부분이 정말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장점을 건질만한 것이 있어서 다행?인 부분도 있었다.

핵심 서사와 갈등은 전교 1등 이연아가 서울대에 가라고 강요하는 폭압적인 엄마와 세우는 대립각이다. 연아는 하루 저녁 가출해서 찜질방에서 하루 자는 동안 엉뚱한 자동차에 태워졌다 다시 돌려 놓아지고, 자동차에 치었다가 살아나고, 주인 잃은 개를 찾아주고, 집에 돌아갔지만 엄마는 전혀 달라지지 않고, 학교에서 설사에 시달리다 담배도 피워보고, 선생도 패 보고, 엄마의 불륜도 목격하고, 자살 시도도 해보고, 그러다 화해하고 끝난다. 얼핏 써 놓고 보니 온갖 걸 다 버무려놓고 개막장인데 실제 상황 자체가 개막장 개노답이다. 곁가지 이야기들은 연아와 스쳐지나가거나 의식하지 못한 채 영향을 주고 받는 작은 에피소드들인데 일부는 결말에서 문제 해소에 쓰이고 일부는 그저 스치는 이야기로 쓰인다. (아빠 차 몰고 나온 중등 동창, 원조교제녀와 예비 학생회장과 나쁜 아저씨, 개 주인 아저씨, 탁자 밑 두 커플, 말이 안 통하는 물리 선생 등등등)

첫 장에서 상담실에 사람들이 배경처럼 몰려들고, 바깥에서는 변태와 멧돼지 출몰 등 소동이 언뜻 언급되고, 생매장 당할 뻔한 나쁜 아저씨가 굴러떨어지고, 이것이 나중에 그럭저럭 써 먹어지는 것은 나름 소설적 구성을 하려는 시도로 보여 긍정적인 부분 같다. 대부분이 우연한 마주침이나 우발적인 사건 발생이지만 그것이 서로 이어지고 영향을 주도록 이으려는 시도 자체가 작가가 애쓴 부분이고. 좋게 보면 창문을 넘어 도망간 백세 노인마냥 유쾌하게 실소 할 수준으로 보아 넘길 속도감도 있었다. 

가장 공들여쓴 듯 하고 그래 뭐 완전 엉망은 아니네 할 부분은 연아가 차에 치여 날아가며 주마등을 보는 장면을 달에서 관조하듯 그린 장면인데, 여기는 오 잘 썼구만, 그래 그래 상 줄만하네 하고 끄덕였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고 그 이후에 아무렇지 않게 편의점 가서 피 닦고 집에 가니 엄마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 이후로 아무런 후유증에도 시달리지 않고 이대로 살지 않겠네 어쩌네 대오 각성한 것 마냥 해놓고 정작 주인공은 거의 달라진 게 없는 듯 해서 (기껏 다짐한게 자퇴할래! 엄마 뜻대로 살지 않을거야!라니!!!) 정말 실망스러웠다. 
엄마한테 김치 싸대기 맞는 장면이나 엄마가 불륜이면서도 하필이면 에스엠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기존 한국 아침드라마나 미드(위기의 주부들)같은데서 봤던 너무 강렬한 장면들이라 아, 이건 좀, 하면서 손발을 펼 수가 없었다. 특히 엄마 캐릭터가 거의 절대악 수준인데 또 마지막에는 그 엄마가 히어로 수준의 힘을 발휘하고 전혀 입체성이 없을 듯 해서 비현실적이던게 아예 180도 전환하니 그건 그거대로 비현실적이었다. 하필 엄마를 발암캐로 만든 거니…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그랬다. 제목을 시트콤으로 붙여 놓으면 그래 그냥 속도감 있게 가독성 읽게 잘 읽고 한 번 웃고 가면 되지, 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나름 애써서 시트콤 흉내내듯 그러면서도 은근 진지한 삶에 대한 시선을 그려내는 듯 표현하려 애 쓴 것 같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쉬웠다. 

잘 쓴 장편 만나기나 장편 잘 쓰기 모두 어려운 일 같다. 제목만 보고 혹해 봤자 문제 해결은 커녕 기분 전환마저 못할 때도 많은 것 같다. 그냥 작은 장점들에 만족하면 그냥저냥 일 것이고. 왜 명작이 아니야!!라고 외칠 거라면 그냥 고전을 읽으면 될 것이다. 신인작가니까 뭐 아예 가망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좋은 부분도 약간이나마 있었으니 앞으로 더 잘 쓰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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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10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하는 <하나뿐인 내편>에 나오는 왕가네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캐릭터로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할머니의 치매 발작이 현실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 할머니가 주인공(유이 분)과 그녀의 아버지(최수종 분)를 대놓고 좋아하고 감싸주는데, 저는 별로였어요. ^^;;

반유행열반인 2019-02-11 18:39   좋아요 0 | URL
그래도 진짜 시트콤이나 드라마는 원래부터 기대치가 낮아 그런지 막장의 용인도가 높은 편인데, 소설에는 더 엄격해 지는 것 같아요 ㅋㅋ(너무 꼰꼰해지는 듯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