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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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0 구병모
책의 목차를 복사했다 생각하고
클립보드 붙여 넣기 하니
잠 못 들면서 저 애새끼를
이런 문구가 들어 있다. 맥락이 궁금하다 아하, 했다. 
야간 비행기에서 우는 애기와 부모가 듣게 될 저런 비난이 싫어 애기 다섯 살 될 때까지는 비행기를 안 타는게 목표다 라는 이야기를 하다 생략된 말이었다.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 거의 10년 째 읽어온 작가. 사실 올해가 제일 많이 보긴 했지만, 그 작가가 필명이라는 생각을 안 해 봤다. 읽으면서 읽고 나면 찝찝하고 어둡고 뭔가 아쉽고 그런데도 계속 신간 사들이기를 멈추지 못 하는 걸 보니 새삼 아 내가 이 작가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올해 제일 많이 본 작가가 장강명(올해 처음 알게 되서 몰아 봐서 그렇지)과 구병모(여지껏 안 봤던 것과 신작 두 권까지 결국 본인 이름 건 작품은 거의 다 봤다.)이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케이 픽션 단권으로 나온 걸 살까 말까 했는데 소설집에 포함되다니 안 사길 잘했군. 
PC, 뭔가 컴퓨터 같지만 정치적 올바름, 이란 말의 약어로 최근 피씨하지 못 하다 라는 용례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거기에 작가 P씨에 대한 지칭까지, 구병모식 언어 유희가 또 나왔다. 거의 십 년 전 트위터 처음 유행할 때 작가의 팔로워였던 기억이 난다. 나는 들어주는 이도 리트윗 하는 이도 없고 혼자 빈 복도에서 소리지르는 느낌이 어느 순간 싫어서 계정 없앴는데 그간 열심히 트위터 생태계에서 살아 남으며 그 생리를 겪고 겪으며 나름 소설에 녹여내려 애쓴 것 같다. 
사실 소설가의 소설을 가지고 그렇게 설왕설래 할 정도면 나름 유토피아가 아닐까. 오히려 소설이 이 소설에서 말하는 만큼 주목 받는 것 자체가 판타지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비평을 넘어선 비난과 올바름 운운 하는 것이 얼마나 창작자를 위축 시키고 결국 종생하게 만들지, 다양성을 잃고 작품성, 창의성, 팔다리 다 잘라낸 몸통 마냥 허무하게 되는건 아닌지, 아니 애초에 재미대가리 없는 건전가요만 남게 될지 에 대해 생각했던 점을 그려 주어서 그럭저럭 잘 봤다. 
구병모 특유의 만연체가 네티즌 트위터리안 와글와글 설왕설래 하는 걸 표현하는데 적합할 수도 있겠지만 약간 피로할랑 말랑 한데...결국 그런 지적에 대한 것조차 이사람은 소설로 써 버린다 ㅋㅋㅋ늘 보이지 않는 비판쟁이들에게 나도 그거 생각해 봤고 나도 알지만 어쩔수 없이...방어적인 부분은 걱정쟁이로서 공감은 간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어느 계간지에 실린 걸 누가 평했길래 아 아닌가 어디 문학상 후보였나 암튼 그래서 궁금했는데 소설집에 실려서 역시나 다행. 네 이웃의 식탁 완화 버전이랄까. 아이를 슬링에 안고 가는데 대뜸 마트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애 머리랑 몸을 제대로 받치라고 잔소리하고 약국 약사도 애기가 불편해 보인다고 뭐라 하고 엘레베이터에 탈 때 할머니 한 분이 요즘은 신기하게 애를 업네 해서 거기에 난감한 미소를 보내던 생각이 난다. 그나마 외출이 극도로 최소화된 나도 그 정도인데. 결국은 도움도 못되는 오지랍과 남편의 무심함과 이상한 곳의 유심함과 사적 영역이 인정되지 않고 관심과 보살핌인 양 포장된 침해 등등을 그럭저럭 잘 그렸다. (난 그럭저럭이랑 나름을 너무 많이 쓰는구나. 이런 것조차 작가는 소설로 써 버린다 ㅋㅋㅋ아 정말 진짜 뭐라고 쓰질 못 하겠네)
제목의 한 아이는 진짜 아기라기 보다는 주인물 임산부이고 온 마을이 뒤에는 뭐 다른 말이 붙어야 할 것 같다. 
임산부인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오지랍(혹은 지랄지랄)을.
결국 아이를 보는 일은 온전히 부모(특히 모)의 일이 될 수 없고 대체 될 수 없는 현실을 공동체가 짐을 나눠줄 듯 구는 기만. (그냥 차라리 돕는 척 하면서 뭐라 개소리 말고 냅버려나 둬라 뭐 이런)

지속되는 호의-으악 진짜 이거야 말로 디스토피아 아닌지. 타인이 지옥이 될 때. 그 타인이 어린아이이고 그 어린아이의 지옥을 그 부모가 방기할 떄. 나는 너무 많이 봐 왔다. 그런데다 내 아이까지 증발한다면. 아 결말 정말 고구마 먹은 듯 갑갑하면서 막막해서 너무 힘든 소설이었다. 상휘야 어디갔니. 

미러리즘-되게 거친 비유인데. 주사기를 꽂는 갑갑하고 맺힌 마음도 알겠지만 엉뚱한 데 꽂는 그 주사기는 어찌할지. 난 그 정도는 아냐 하는게 더 열받긴 한가? 그래도 지나친 건 있지 않나. 
아마도 현남 오빠에게 실을 소설로 이 소설과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을 고민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제목부터 설정까지 노골적이어서 접어두지 않았을지. 너무 명탐정 코난 같기도 하다. 의문의 집단이 약물로 테러를. 

웨이큰-전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도 살까 말까 했는데 역시나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아하하. 
일단 필리핀 출신 여성 화자로 전하는 시도가 독특하다. 가상 현실에 갇힌 사람을 구출하는 히어로라는 설정. 이것 역시 비유에 가까운, 아마도 많은 사람이 떠올릴 큰 사고에서 부재했던 컨트롤 타워, 책임 회피, 의인에 대한 보상 없음,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소모되는 인간 등등
가까운 미래에 대한 상상과 현실의 결합 이건 구병모나 장강명이 참 잘 하는 이야기 같다. 

사연 없는 사람-이 소설집에 글쓰는 사람 이야기가 네 개나 나오고 그 중 하나다. 자서전 대필부터 출판계에서 닳고 닳았지만 제대로 된 소설은 못 쓴 화자가 사고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 지갑에 자신의 명함이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서, 병원 등을 돌며 이야기 거리를 찾고 사연을 말 해 줄 사람이 없는 망자를 위해 이야기를 만드는 이야기. 소설가는 뭐하는 사람일까.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윤색되고 전해지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그나마도 이야기조차 갖지 못 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소설집 소설 중에 꽤나 마음에 들었다. 곰을 가지고 뒤집어도 보고 곰이 들어가는 말들도 열거하고 자 모음 해체도 하고 쓸 수 없다면 소유하고 그것도 안 되면 부숴버리자 하는. 곰 잡는 소설. 소설가의 고충에 대한 것. 반복되는 어휘 꺼리고 이 말 좋고 저 말 싫고 그런 것. 
오, 피, 디, 누군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오토포이에시스-단 하나의 문장. 이라는 소설은 없지만 이 표제는 이 소설과 관련 있다. 창작자가 사라진 어느 미래. 창작자를 대체하는 백지 라는 인공 지능. 한 스푼의 시간에서 부터 작가는 인공 지능에 대해 살피고 그 실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책 열권이 한 권으로 그 한 권이 한 쪽으로 다시 한 문장으로. 
왜 쓸까. 에 대한 생각. 
소설은 즐거움을 주어야 하나 에 대한 생각.
쓰는 일은 읽는 사람을 위한 것도 있지만 쓰는 사람을 위하는 부분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간결하게 쓰라고 가르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부분도 있고. 하긴 만연체 자체가 작가의 개성이 되기도 하니까. 
쓸 때는 버리는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생략과 압축은 중요한 기술이니. 얼마나 지워내고 얼마나 눌러야 할지 가늠하는게 아직은 어렵다. 
그래서 다 지워내고 한 문장만 남긴다면 무엇을?

잘 읽었습니다.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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