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조조 모예스 지음, 송은주 옮김 / 살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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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1차 세계대전, 파리의 남자들은 대부분 전쟁에 나가고, 여자들은 독일군 지배하에 살아간다. 가난한 화가의 아내인 소피가 운영하는 멋진 호텔은 독일의 점령 후로 허름한 건물이 되어버렸다. 식량도 없는데 독일군 사령관은 부하들과 호텔에서 먹을 식사를 매번 준비시켰다. 사심 갖고 들이대는 사령관에게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소피는, 독일군에게 빌붙고 프랑스를 배신했다는 이웃들의 오해를 산다. 억울함도 잠시, 남편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령관을 찾아가 남편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주면서 남편을 살려달라 사정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이 그림은 세월이 흘러 2006년 런던에 사는 리브의 손에 들어왔다. 남편을 잃고 돈도 없는 리브에게 나타난 한 남자는 그녀의 집에 걸린 소피의 초상화를 보고 기겁을 한다. 이 남자는 도난당한 미술품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소피의 가족이 초상화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리브는 정당하게 구매했으니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결국 두 사람은 법정까지 가서 소유권을 두고 싸운다. 그러나 세상은 초상화를 반환하지 않는 리브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리브는 외로운 싸움 속에서 그림을 지켜낼 수 있을까.


조조 모예스는 로맨스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책도 ‘미 비포 유‘와 비슷한 줄 알았는데 그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분위기다. 1부 소피의 내용만 보면 별 5개까지도 줄 수 있었는데, 2부 리브의 내용을 보면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문체도 분위기도 싹 바뀐다. 2부부터는 리브가 남편 잃고 돈도 잃고 미납금 밀려서 힘들어하는 내용뿐, 스토리는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아서 분위기는 또 되게 산만하다. 그러다가 그림을 보고 태도가 돌변한 남자의 시점부터 작품의 페이스를 되찾는다. 발동이 걸리는데 꽤 오래 걸렸음. 리브는 생각한다. 다들 그림의 물질적 가치만 생각한다고. 그러나 자신은 그림 속 소피의 삶을 끝까지 지켜주는 거라고. 그림을 내어주면 소피는 조국을 배신한 여자로 평생 남는 거라고. 그러나 자신의 고집 때문에 죽은 남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어 스스로도 괴로워한다. 남편과 소피를 지켜주고 싶은데 갈수록 자신의 행동이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든다. 독자 대신 룸메가 이제 그만 버티라고 말렸지만 절대 듣지를 않더군. 어휴, 답답해서 혼났네.


현대에 와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책들을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한 경우가 많다. 그것처럼 나는 이 작품을 재해석해 보았다. 먼저 리브가 법정 싸움으로 빈털터리가 되면서까지 그림을 지키는 게 과연 옳은 행동이었을까? 소피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 때문에 세상에게 미움받는 것을 남편이 원할까? 이런 리브의 편을 들어줄 독자가 몇이나 될까? 솔직히 현실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곁에서 도움 주던 친구마저도 결국 떠나게 만드는 리브는 너무나도 감정적이었다. 원래 사람이 멘붕 오면 이성적인 판단이 안될 수도 있는데, 리브처럼 집도 돈도 인맥도 다 잃을 정도로 분별을 못하는 건 좀 아이러니했다. 그런데 소피도 리브랑 똑같이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다. 독일군에게 끌려가면서도, 조국에서 멀어지면서도, 탈출할 기회가 왔어도 사령관이 자기를 남편에게 데려다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목숨이 여러 번 위태로웠다. 내 눈에는 그것이 위대한 순애보인지 미련한 건지 잘 모르겠더라.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다 잘 되었지만. 


다 읽고 나니 리브의 이야기는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나 싶다. 차라리 소피의 이야기만 다뤘으면 좋았을 텐데. 2부에서 가끔씩 과거의 내용이 나오는데 그게 훨씬 재미있었다. 나는 그림의 소유권으로 싸우는 스토리가 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정통 법정 소설이 아니다 보니 법정물 특유의 쫄깃쫄깃 함이 없어서 스릴도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밋밋했다. 로맨스 작가답게 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로맨스를 싹 틔워내지만 글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세 마리를 놓친 기분이 든다. 로맨스가 아니라 거의 코미디가 돼버렸드만? 글맛도 많이 잃어버린 거 같고. 여하튼 독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냥 쏘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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