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분 인문학 - 가장 괜찮은 삶의 단위를 말하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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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지금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시대가 되었다. 타인과 함께하는 게 당연했던 식사도 영화 감상도 노래방도 이제는 전혀 눈치 안 보고 혼자 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것이 편할 것이고 옛 세대들은 적응 안 되거나 불편할 것이다. 나는 둘 다 해당되는데 옛부터 여러 명이서 어울리기보단 친한 사람 두세 명 정도가 더 편해서였다. 나는 딱히 취미가 없다. 좋아하는 독서도 하루 종일 붙잡고 지낼 정도는 아니며, 그렇다고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살지도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서 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잉여 시간이 많은 편임에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다. 유독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이러지 않나 싶다. 사회의 시스템을 따라가기도 벅찬데 남들에게 일일이 맞춰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몇 년간 지속하다 보면 배터리가 쉽게 방전된다. 그래서 늘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던 사람마저도 다 내려놓고 내 편한 길을 택하게 된다. 일단 내가 그렇다. 나는 소위 착한 아이 증후군에다 친절 남이었다. 이건 가식이 아니라 천성이 그러했다. 그래서 약아빠진 친구들에게 맨날 손해만 입었고, 겁이 많아 뭔가에 도전하는 것도 어려웠고, 심지어 낯선 곳에 여행 가는 것조차 왕 부담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회 나와서 눈칫밥 먹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결혼까지 했는데도 신입처럼 똑같이 대하고 마냥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 때문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점점 주변과의 교류를 끊고 거리를 두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찌나 편하던지,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혼자를 원하는 이들의 사정은 어느 정도 비슷비슷 하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개인의 만족도를 높이는 게 우선인 시대가 됐다.


직장에서 독서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더니 남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일부러 그러냐는 말까지 들었다. 내가 일부러 벽을 쌓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도 어울릴 때는 얼마든지 잘 어울릴 수 있다. 내 사회성이 떨어질까 봐 걱정해주는 건 감사하지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암튼 오지라퍼들의 말이 완전 틀린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나대로 일과 독서와 소통의 균형을 잘 잡고 사니까 괜찮다. 차라리 책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도 하던데, 그것도 저자의 말대로 혼자 하는 플레이가 아니면 해당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왜 책을 많이 읽는가? 독서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몸 밖으로 표현하는데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도, 노래하는 가수도, 연기하는 배우도, 곡 쓰는 작곡가나 춤추는 댄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보여주려면 꾸준하게 영감을 얻어야 한다. 그건 내면의 나와 마주하지 않으면 절대 얻을 수 없는데, 그러면 이 현대사회 속에서 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제일 간단하고 효과적인 게 독서다. 가벼운 이미지의 예능인들도 사실은 엄청나게 책을 읽는다. 독서가 습관화되면 그동안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생은 신분상승이 전부가 아니며, 물질이 주는 기쁨은 잠깐이며, 천하를 얻고도 허무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뭐든지 과잉 관계가 문제라고 작가는 말한다. 타인과의 결합에서 개인의 의미가 존중되지 못할수록 혼자를 선호하게 된다는 뜻이다. 팀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할 때도 있지만 특정 상황이 아닌데도 계속 희생이 요구되면 인간은 서서히 지쳐간다. 현대사회는 관계를 많이 맺을수록 고립감은 더욱 깊어진다. 한국인은 타인지향형이 많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남이 보는 기준에 나를 맞춘다는 것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개인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다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독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을 겪어본 사람들은 진짜 자신을 만났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기준을 두는 법도 알아서,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공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장점들이 많은데 혼족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간은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미국의 현대 사상가가 강조한 ‘개인일 때 유지될 수 있는 도덕성‘을 살펴보면, 개인보다 집단일 때 비도덕적인 판단과 행위가 높다고 한다. 집단은 쉽게 이기적인 충동이 생기며 억제할 수 있는 이성이 결여된다. 나는 이 말에 국내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떠오른다. 그곳의 유저들은 뭐든지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무조건 옳고 그름만 따지고, 한 명의 주장이 댓글로 달리면 너도나도 맞는다고 공감하며 추가 댓글이 달린다. 얼핏 보면 각자가 자신의 기준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타인 지향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폐쇄적인 공간에서는 절대 자신을 찾지도 나타내지도 못한다. 혼자일 때는 멀쩡하던 정상적인 사고가, 집단에 속했을 때에는 판단이나 분별력이 흐려지기 쉽다. 저자는 여행, 독서 등 혼자서 가능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면적 성찰의 계기를 잡으라고 말한다.


남녀 할 것 없이 개인화를 주장하지만, 혼족은 자유를 억압받는 여성들이 더 원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할 것이 남성보다 더 많다는 것에 동의한다. 여성들이 비혼을 선호하게 된 것도 넓게 보면 다 남성들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여자들이 설 곳을 주지 않았고, 여성인권을 무력으로 짓밟고 차별하기 때문에, 이제는 남성들이 저질러온 대가를 고스란히 치러야 한다. 난 여자 없이 잘만 사는데?라고 하는 남성들은 세상이 어떻게 되건 말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인간이다. 혼족 문화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자는 게 아니다. 이기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잘못 읽은 거다. 차라리 게이가 되겠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단순 사회생활뿐만이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알아가는 단계에서는 모든 게 조심스럽지만, 편해졌다고 느끼면 잘 보이려고 하기는커녕 상처될 말도 필터 없이 나가곤 한다. 그래서 저자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객관화된 사고방식이 가능하고, 독립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성숙해진다고 말한다. 이 내용을 허지웅의 ‘나의 친애하는 적‘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저자도 같은 말을 하는군. 먼저는 개인의 독립성과 존중성을 갖추어야 건강한 집단적 사고와 경향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혼족 문화는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 사회를 바꾸는 데에 있어서 필수가 되고 있다. 나의 부모님만 해도 시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젊은 세대들을 존중하려고 하신다. 미약하나마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대한민국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예전에 방송에서 정형돈이 한 말이 있다. ‘우리나라가 5천만 국민이라면, 5천만 가지의 성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잠시나마 전 국민의 가슴을 울리고 적잖은 위로를 주었었다. 그 말이 실현되려면 개인의 행복부터 보장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나의 행복에 타인의 간섭이 너무 많다. 오죽했으면 ‘소확행‘이란 말로,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시대가 돼버렸는가. 그것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라는 말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사회가 언젠가는 더 나은 행복의 질을 가져오리라 믿는다. 그때가 되면 매년 감소하는 결혼율, 출산율, 취업률도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중국인 전체가 동시에 점프하면 지진이 난다고 한다. 그것처럼 모두가 개인의 삶을 존중하자는 생각에 동의하고 동참할 때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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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9-03-11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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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3-11 16:48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잘지내시죠?ㅎㅎ
공감된다니 좋으면서도 씁쓸하군요^^;

바카나 2019-03-16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고 갑니다 ^^

물감 2019-03-16 13: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navel_nerine 2019-03-18 0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페미는 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공감합니다

물감 2019-03-18 09:22   좋아요 0 | URL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내용에 공감되는 부분과, 개인적인 생각을 기록한것 뿐입니다. 여하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9-03-19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혼족 문화가 번성할 것 같습니다. 졸혼도 그 경우죠. 저는 그동안 여성들이 너무 참아 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이혼율이 증가한 것도 여성들이 너무 참고만 살다가 이젠 참지 않기로 했다, 로 해석합니다. 확실히 남성에 비해 여성이 불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맞습니다.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여성보다 남성을 더 많이 뽑는 경향이 있어요. 취업이라는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여성은 불리한 조건에 있습니다.

물감 2019-03-19 19:15   좋아요 1 | URL
저는 선동질하는 댓글부대들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요. 간혹 사회에서 문제되는 행동하는 여성 한 명만 나오면, 이때다 싶어서 남녀를 가르고 선동질하는 사람들이 꼭 있더라구요. 그들이 있는한 남자들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요.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