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욤 뮈소의 책을 신간으로 처음 읽게 되었다. 내게 귀욤 뮈소는 ‘더글라스 케네디‘같은 작가였다. 남들은 다 칭찬하는데 어쩐지 끌리지 않는 그런 부류. 게다가 프랑스 소설은 읽기 힘들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런 편견을 싹 날려버리는 놀라운 능력자 아닌가. 문체와 가독성도 훌륭하고 완급조절과 분위기 조성 등등 하나같이 수준급이었다. 이렇게나 괜찮은 작가를 내가 피해왔던 것은 오글거리는 책 제목도 그렇지만 책 표지 디자인 때문이 아닐까 한다. 솔직히 이제껏 나온 작품 디자인들은 하나같이 촌스러웠다. 이 발언에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엔 손이 갈 만한 디자인은 절대 아니었다. 반대로 이 작품은 지금까지와 달리 표지만으로도 끌려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지만, 포장지를 무시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아무튼 밝은 세상 출판사가 이제서야 마케팅에 신경 좀 쓰는건가 싶다.


50주년 기념행사를 참석하러 모교에 간 주인공은 기자가 된 친구에게 빅뉴스를 듣는다. 기숙사 지하에서 사물함을 폐기처분하던 중 거액의 돈이 담긴 가방이 발견되었단다. 그 가방에 묻은 지문은 학창 시절, 만인의 아이돌이자 주인공이 짝사랑하던 여학생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철학 과목 선생과 함께 갑자기 사라져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었다. 그 사건의 진실은 주인공과 절친만이 알고 있다. 철학 선생이 여학생을 강간해 임신하게 만들었고, 주인공은 선생을 찾아가 몸싸움을 벌였다. 싸움에서 밀리고 있을 때 절친이 협력하여 선생을 죽였다. 교장은 학교 체육관 벽에 사체를 넣고 콘크리트로 매장해서 사태를 수습했다. 그 후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누군가가 주인공에게 복수하겠다는 익명의 편지를 남겼다. 편지의 주인을 알아내기 위해 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과 현실이 온통 거짓투성이였음을 깨닫는 주인공. 진실을 알면 알수록 오히려 위험한 입장이 되는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범인의 실체를 알아가는 플롯도 재미있지만, 반대로 이 책처럼 범인의 시점에서 진실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는 플롯도 너무 재미있다. 심리 스릴러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잘 먹힌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사흘 그리고 한 인생‘도 주인공이 평생을 떨면서 지내는 게 얼마나 스릴 있던가. 근데 이런 걸 재밌다고 하면 왠지 변태 같기도 하고 참 거시기 허여. 일단 주인공이 범죄자이기 때문에 몸을 사려도 부족할 테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의 실종 사건이었기에 과거의 진실을 계속해서 파헤친다. 참으로 용기가 대단하다. 과거든 추억이든 미화된다고 했던가. 이제껏 알고 있던 기억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어두운 면이 있었다. 과거로 돌아갈수록 착하고 친절했던 사람들은 더럽고 추악스러웠으며, 현실은 소설처럼 말랑말랑하거나 로맨틱하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과 같았다. 인생 리셋 버튼이 절실하다.


실종된 짝사랑은 죽었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주인공에겐 충격이겠으나 누가 죽인 건지, 또 죽인 동기가 무엇인지 알고 나서는 깊은 혼돈에 빠진다. 그리고 철학 선생이 죽었는데 두 남녀가 떠나는 모습이 포착되어서 논란은 계속되었었다. 그러나 이것도 진실은 따로 있었고 그것이 실로 역겹기까지 했으나, 주인공 자신 또한 범죄를 은폐한 입장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 아 이것도 스포인가. 보통 반전이 한두 개인 작품들은 그것만 피해서 리뷰를 쓰면 되는데, 이 책은 반전이 연속해서 나온다. 그래서 할 말은 많지만 전부 스포가 될까 봐 리뷰 쓰기가 어렵다. 내공을 좀 더 쌓아야겠다.


이 책은 할런 코벤이 자주 써먹는 플롯과 많이 닮아있다. 뒤틀린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서 마주하는 콜드 케이스 방식. 할런 코벤의 반전은 샷건으로 주변을 초토화 시키는 느낌이라면, 귀욤 뮈소의 반전은 따발총으로 한 곳에 집중 사격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큼지막한 한방보다는 자잘한 반전의 연속이 더 읽기가 좋다. 전에도 한 말이지만 끝에 나오는 반전 장면 몇 페이지를 읽기 위해 책을 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플롯의 작품일수록 재독할 마음은 안 들게 된다. 너무 인상이 깊다 보니 어디쯤에서 반전이 나올지 다 예상되니깐. 아무튼 재미나게 잘 읽었다. 첫 단추를 잘 끼운듯하여, 작가의 다른 책들도 역주행해봐야겠다. 재밌는 작품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02-24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처럼 범인의 시점에서 진실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는 플롯도 너무 재미있다.˝ - 이것,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연상시키네요. 죄와 벌도 마음 졸이며 읽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나중엔 범인으로 밝혀질 걸 알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은 밝혀지지 않길 바라게 되지요.
기욤 뮈소는 워낙 유명한 작가라 저의 집에도 책이 있어요. 종이여자, 그후에.
님의 리뷰를 보니 관심 갖고 집에 있는 책부터 읽어봐야겠군요.

저도 큰 반전 한 방보다 자잘한 반전의 연속이 좋아요. 큰 반전 한 방을 보기 위해 독자로 하여금 인내심을 갖게 하는 건 좀... 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물감 2019-02-24 14:02   좋아요 1 | URL
페크님의 방문은 오랜만이군요ㅋㅋ댓글 감사합니다. 죄와벌은 아직 못읽어봤는데 이책과 비슷한 구석이 있나보네요! 읽어봐야겠어요ㅋㅋ
그리고 저처럼 큰한방을 싫어하는 페크님께 이 책을 추천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