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잠수함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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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간만에 골 때리는 작품을 만났다. 오쿠다 히데오와 천명관의 스타일이 섞인 듯한 문체와 분위기의 병맛 소설이다. 나 이런 거 짱 좋아함. 대놓고 B급으로 나가는 요나스 요나손 스타일도 좋지만, 이렇게 은근 B급스러운 스타일도 완전 사랑한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세상을 바꾸는 건 또라이들이라고 한다. 이 작가도 (좋은 의미의)또라이가 확실하다. 이런 분이라면 한국 문학계를 움직이고 흔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의 많은 책들이 ‘나쁘지 않다‘였다면 이 책은 ‘좋았다‘라는 쪽에 가깝다. 재밌는 건 희망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인데 자꾸 희망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을 쓰신다면 앞으로 나올 모든 책들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 역시 첫 단추가 중요하다.



봉고차로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주인공은 만화방의 두 할배에게 찍혀서 부산까지 모셔드리기로 한다. 가출한 일진 여학생도 함께 말이다. 나사 빠진 세 사람을 상대하며 간신히 부산에 도착했는데, 할배들과 만나기로 한 사람은 연락이 안 된다. 맙소사. 그리고 주인공이 여학생과 노인을 납치했다는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있다. 맙소사. 그런데 세 사람은 본인들을 안 도와주면 납치된 거라고 경찰에 거짓 발언을 할 작정이다. 맙소사.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의 노예 역할을 하지만, 대화가 안 통하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건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한 명은 주기적으로 치매 증상이 오고, 한 명은 주기적으로 경련을 일으킨다. 어쩌다가 한 팀이 된 이들은 열심히 지방 순회를 하며 산전 수전을 다 겪게 된다. 상식 밖의 일들을 연속으로 맞닥뜨리는 주인공은 언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놔, 이거 진짜 너무 웃기네. 간만에 실컷 웃은 것 같다. 병맛 소설은 나름 많이 읽었지만 대부분 ‘피식‘ 정도였지 ‘낄낄‘까지는 아니었다. 근데 이 책은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본좌가 느끼는 바 B급 문학은 막장드라마와 엄연히 다르고 다르다. 일반적인 B급 문학은 코미디 장면이 나와도 진지함을 유지하는데 이 작가는 진지하지 않아서 더 웃기다. 본 작품은 안 맞는 사람들과 공동운명체로 결속돼가는 과정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보통 목적이 달라도 방향이 같아서 한 배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공동의 방향도 목표도 없이 하나가 된다. 물론 고생은 주인공이 다 하고 있다. 마치 ‘정글의 법칙‘에서 막내 혼자 집 짓고 사냥하고 뒷정리하는 느낌이랄까. 여하간 엄청 수고한다.



두 노인은 과거 월남전 병사 출신이었다. 베트남의 수이진이란 곳에서 만난 여인에게 둘 다 마음을 뺏겼었다.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가 이후 그 지역에 베트콩들이 잠적해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한국군이 수이진을 불살라버렸다. 베트남 여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두 사람은 노인이 될 때까지 지내다가 죽기 전에 수이진을 가보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두 고래 사이에서 등 터지는 새우 꼴인 주인공의 심정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독자들이 위로해주자.



작가는 단 하루의 시간만으로도 평생을 견뎌낼 수 있는 게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럼 우리도 노인들처럼 전장 한가운데 있는 낙원에서 보낸 단 하루의 추억으로 평생을 버틴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노인들이야말로 진정 낭만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다신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고통받는 것이라 할지라도.



분명 어떠한 목적을 이루거나 사건이 해결되는 스토리는 아니다. 그냥 왁자지껄한 해프닝 정도? 절반쯤 읽다가 느낀 건데 작가가 스토리를 미리 짜놓고 쓴 게 아니라, 일단 문제를 만들고 즉흥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의 느낌을 받았다. 녹화 방송보다는 생방송 느낌? 현장감 있는 건 좋지만 정신없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숨기질 못한다. 그래도 워낙 재밌어서 단점이 다 커버된다. 또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글이야말로 오래오래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고전문학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자, 어서 차기작을 만들어주세요, 작가님!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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