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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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국내에 글쓰기와 관련된 도서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가 있었다. 서평 쓰는 법, 문장력 키우기 같은 책이 참 많이도 나왔지만 나는 이 책이 처음이다.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뭘 믿고 그러냐! 라고 하시겠다면 내가 청개구리라서 그렇습니다!는 대답과 함께 부담백배 윙크를 양쪽 눈으로 마구 쏴드리겠어. 고기가 땡기는데 한식뷔페가 웬 말이뇨. 솔잎 맛 밖에 모르는 송충이도 나비가 되면 알아서 꿀 찾아가는 겁니다. 이 우주 만물에는 다 때와 시기가 정해져있다지. 결국 이 책을 집어 든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것이야. 허허허... 방금 건 너무 할배 말투인가? 근데 나도 이젠 눈 오면 무릎이 너무 아프다, 진짜로.


우리는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다양한 글을 쓰게 된다. 가장 흔한 일기 쓰기와 독후감, 백일장 글짓기, 발표 대본, 자기소개서와 같이 쓰기 싫어도 써야 하는 경우를 포함해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글을 쓰거나 가까이하며 산다. 그러나 저자는 학생들이 그저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글밖에 쓸 줄 모른다는 말과 함께, ‘모어가 야위어 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심사위원 또는 채점자들이 좋아할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솔직한 자신의 글을 써볼 기회도 없었고, 실제로 글쓰기에 관하여 가르치는 학교나 학과도 없기 때문에 뭐가 잘못인지조차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글쓰기는 타고 나야 한다고 다들 믿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수많은 SNS의 글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공감을 받는다는 건 글을 쓸 때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다는 것이고, 독자에 대한 경의를 갖추었다는 말이 된다. 저자도 이 책의 1강부터 독자에 대한 사랑과 경의가 담긴 글을 쓰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최근에 읽은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을 떠올린다. 독자에 대한 경의가 있다, 없다를 내가 판단할 수는 없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글을 썼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그런 글들은 금방 외면받는다. 마치, 너 아니어도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은 많아, 하는 기분도 들었는데, 저자는 이런 걸 가리켜 ‘독자를 깔보는 문서‘라고 정의했다. 간혹 TV에서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 참가자의 실력이 딱 봐도 별로인데 심사위원들이 손뼉 치며 엄마 미소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록 부족하더라도 진정 어린 모습이 살아남는 비결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독자에 대한 경의‘에 대해서 좀 더 기록하겠다. 만화책의 경우 중간 편부터 읽어도 대략 이해되도록 이전까지의 줄거리나 등장인물 소개란이 서두에 꼭 들어가 있다. 이런 게 없다면 1권부터 읽어야만 스토리와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불편함이 따른다. 소설의 경우 더 조심해야 한다. 설명을 생략하는 작가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 의도한 경우는 분간이 되는데, 의도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분명 A 장면으로 시작했는데 갑자기 B 장면으로 끝나는 황당한 경우들. 그런데 그런 작품들이 또 분위기는 진지하고 근엄해요, 아주 그냥. 매번 말하지만 독자들은 절대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까지 독자의 내공을 운운하시면 안 됩니다. 국내 문학을 한국인도 이해 못 시키면 외국인들은 더 이해 못할걸? 아마 이런 내용이겠지... 하고 추측해야 하는 글을 자주 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거 진짜 병이다. 뜻을 함축하는 시나, 소설의 열린 결말하고는 전혀 다르다. 국민작가 유시민은 쉬운 말을 두고 어렵게 쓰는 건 사기꾼들이나 그런 거라고 했다. 모든 글쟁이들은 이제껏 독자와 소통할 마음이 없는 글을 쓰지는 않았나 되돌아보자.


몇 장 안 읽었는데도 좋은 내용이 정말 많았다. 그중 베스트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란 표현이었다. 내가 진짜 이 말에 백만 번 공감한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고, 시를 읽지 않아 문학적 감성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라서 정치, 경제, 사회, 과학 같은 분야의 지식도 없다. 생각해 보니까 나 완전 맨땅에 헤딩하는 타입이었네? 암튼 없는 지식 안에서 쥐어짜내야만 하기 때문에 리뷰를 쓸 때마다 내 안의 벽을 넘어야만 했다. 지금도 그러하고. 워낙 문학적 감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요소들을 신경 써왔다. 가독성, 습관적 단어, 반복 표현, 단어 순화, 비유, 공감 문장 같은 이런 것들. 그런데 어쩌면 나도 저자가 말하는 ‘평가의 함정‘에 갇힌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게 좋다, 좋다 하며 읽고 있는데 점점 주제에서 벗어나는 강의 내용이 나온다. 제목 그대로 ‘살아남는‘ 글에 대해서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생존 언어들에 대한 연구 글이 더 많다. 그래서 실망했다. 똑같은 자모음으로 만든 애너그램,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계층적인 언어 같은 내용을 굳이 꼭 알아야 살아남는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나는 필자의 입장에서 갖춰야 할 자세나 개념 같은 것을 배우길 원했다. 그런데 내 기준에 글쓰기와 관련 없는 내용들이 수두룩했다. 물론 당연히 연관이야 있겠지. 근데 독자가 이해될 내용을 말해야 머리에 집어넣고 적용하든가 하지, 아오! 작가가 13강 서두에 이런 말을 했다. ‘창조적 글쓰기‘를 말하겠다 하고 딴 얘기만 했다고. 본인도 알고는 있군요? 진짜 양심도 없는 줄 알았잖아요. 그래서 14개의 강의 중에 3강 이후로는 눈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책 표지 뒷면에 있는 ‘왜 나의 글은 재미가 없을까?‘라는 문구를 보고 순간 피식했어요. 작가님 글도 재미는 없거든요...


살다 보면 가끔 주위에서 만나는 한 문장이 머리와 가슴에 박힌다. 그것은 유명인의 어록일 수도 있고, 어느 래퍼의 일부 가사나 시위운동가들의 슬로건일 수도 있고, 카카오톡의 프로필 상태 메시지 글이나 화장실 문에 붙어있는 글귀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야말로 진실한 혼이 담긴 창조적 글이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입이나 글에서 ‘물감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지‘ 같은 말을 듣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냥 작은 소망이다. 내 글이 생각나는 대로, 입에서 뱉어지는 대로 쓴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나름 고민도 하고 필터링도 합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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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8-12-16 0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글쓰기 관련 책은 손이 잘 안갑니다. 글은 그저 무식하게 많이 써보는 게 장땡이라는 생각에..^^; 쓰다 보면 자신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껏 읽었던 글쓰기 책은 ‘글쓰기‘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작가가 좋아서 찾아 읽게 되더군요.
쉬운 말로 쓴 글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최고봉이라 생각합니다. 간혹 ‘이 인간은 자기 과시하려고 글을 썼나 보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을 접할 때가 있거든요. 정말 재수없는 유형입니다. 쉬운 글은 수준이 낮은 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니까요.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고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등에 대한 기본 상식이 바닥인 저로서는 ‘없는 지식 안에서 쥐어짜내는‘ 심정을 너무나 잘 알겠거든요. 물감님의 말씀대로 글을 쓸 때마다 ‘내 안의 벽‘을 넘습니다. 보잘 것 없어보이는 글들을 업로드할 때마다 매번 심호흡을 하거든요.
물감님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죠. ‘물없이 사막을 횡단하러 가는 기분‘이라는ㅋㅋ(잠시, 알라딘의 지니가 되어보았습니다. 그냥 작은 소망을 이루어지셨나요?^^;;) 드럽게 재미없는 별점 1점짜리에서도 느껴지는 기분이지만, 글을 쓸 때에도 종종 그런 기분을 느낀답니다, 저는ㅎㅎ

물감 2018-12-16 08:58   좋아요 1 | URL
이런 긴 댓글은 처음 받아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쉬운 글‘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작가분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란 말을 했었는데 저 또한 그 말을 기준으로 글을 씁니다. 이곳 알라딘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글이 매일매일 올라오는데요. 솔직히 눈에 촥촥 감기는 글은 많지 않아요... 어려운 글도 많고, 읽은 사람만 이해되는 내용의 리뷰도 넘쳐나요. 저는 그게 너무 아쉬워요. 본인의 글이 진정 독자와 소통이 된다고 생각하는건가, 싶은 심정일 때가 정말 많습니다. 맘에 안들면 안읽으면 되지, 할 수도 있겠죠. 정말 맘에 안드는 글은 그런 안타까움조차 안들더군요. 내가 지성인 또는 지식인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합니다.
오랜만에 책얘기가 아닌 글쓰기 얘기가 나와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ㅎㅎ제 작은 소망을 이뤄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다모 2018-12-26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의 글을 예전부터 읽었는데 점점 도입 부분의 힘이 강해지네요. 처음 부분 읽는데 엄~청 성장한 게 느껴져서 감탄하고 갑니다ㅋㅋ
특히 솔잎 맛밖에 모르는 송충이도 나비가 되면 알아서 꿀 찾아간다는 표현에서 그뤠잇!👏👏
근데 여담 입니다만, 보통 비 오면 무릎 쑤시는 거 아닌가요? 눈 와도 쑤셔요? 궁금합니다 할아버님😉

물감 2019-01-05 22:27   좋아요 0 | URL
필력이 성장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좋네요ㅎㅎ
아 그리고 비오는 날만 좀 아팠는데, 이제는 눈내려도 저릿저릿 합니다ㅜㅜ 관리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