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케이스릴러
장민혜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어릴 때 즐겨보던 TV 프로그램들은 오프닝 음악부터 끝내줬다. 아침마당,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PD수첩, KBS 스포츠뉴스, 전국노래자랑 등등. 지금 들어도 흥겨운 멜로디에 프로그램만큼이나 인기가 좋아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요즘 TV프로그램들은 기억에 남는 테마곡이 없다. 이런 얘길 왜 하냐면 문학의 세계도 똑같다고 느껴서다. 해외도 그렇지만 요즘 국내 문학은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옛 세대들의 딱딱함에 대해 불만을 표했던 나 같은 독자가 많아서 그런 걸까. 이제는 많은 작가들이 일본처럼 라이트한 글을 추구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렇게 가볍고 물렁한 글을 원하는 건 아니었는데. 강함과 부드러움을 둘 다 갖추는 건 역시 어려운 걸까.


‘빌어먹을 매미 소리‘. 이게 첫 문장이다. 시작부터 쎄다 싶었는데 그게 다였다. 나는 ‘마션‘도 처음만 좋았거든. 일단 스토리는 단순하다. 미혼모의 실종된 초등생 딸이 말라버린 시신으로 발견되고, 시신 귓구멍에 숨어있던 딱정벌레를 기반 삼아 지역 수사가 진행된다. 그리고 집안에 딱정벌레를 잔뜩 키우던 소년원 출신의 남학생이 경찰에 발각되어 기소된다. 이후 곤충 소년이 검거되었음에도 유사 사건이 일어나, 미혼모는 진범이 따로 있음을 느끼고 소년에게 도움을 구한다. 마침내 담당 형사는 소년의 주변을 맴돌던 진범을 밝혀내고 수사의 종결을 향해 달려간다.


작가가 사회 이슈에 대해 이것저것 다루고 싶은 게 많았나 보다. 미혼모의 고통이라던가, 뇌물 받는 판사를 아버지로 둔 경찰이라던가, 지겹도록 아동 실종 신고 접수 받는 경찰 등등 캐릭터 설정도 좋았고 신경을 많이 쓴 게 보인다. 허나 한두 가지만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좋았을 텐데 너무 여기저기 발을 담가서 넓고 얕은 지식의 작품이 돼버렸다. 그건 그렇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는데 먼저 십대가 저지르는 범죄는 더 이상 소년범죄가 아니란 검사에 말에 백번 동의한다. 요즘은 초등생들도 어찌나 영악한지 성인들의 범죄를 그대로 따라 한다. 게다가 어릴수록 잘못했다는 자각조차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심지어 교육 잘 받은 아이들도 질 나쁜 친구들 속에 어울리게 되면 금방 물들어버리니 부모의 손길도 한계가 있다. 이와 반대로 아이들이 가출하는 건 가족 탓이라는 이유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온 건데 그 아이를 다시 늑대 소굴로 집어넣어야 하는 게 완전히 모순이었다. 아이가 또다시 학대받을 걸 알면서도 돌려보내야만 하는 불편한 현실을 고발하는 건 좋았는데, 이왕 할 거면 확성기 들고 화끈하게 소리 질러 주시지. 혼자서 소심하게 중얼중얼하는 듯 함. ​


이 책이 글 보다 영상이 더 어울리는 이유는 저자가 영상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기 때문이다. 일단 작가가 분위기 잡으려는 시도는 많이 하는데 글이 가볍다 보니 스릴이 떨어진다. 그리고 챕터마다 분량이 짧아서 내용 연결이 잘 안되고 뚝뚝 끊어진다. 예전에 읽었던 ‘샌드맨‘도 그렇게 챕터가 짧아서 여러 내용들이 다 따로 논다고 지적했었는데 이 책도 그렇다. 영상은 장면전환이나 인물의 표정만으로도 내용 전달이 되기 때문에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학은 표정도 생각도 글로 써주지 않으면 전달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막 스킵 하면 안 된다. 내용은 저절로 이미지화 되도록 보충 설명이 필요하고, 감정씬은 충분히 곱씹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여유가 전혀 없었다. 이런 게 영상 작가 출신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영상 기법은 영상에나 어울리는 거다. 또한 외국 스릴러 작가들이 자주 쓰는 기법 중에 하나가 독백/회상씬은 폰트를 변경하거나 볼드체 또는 이탤릭체를 넣어서 현실 장면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국내에는 RHK 출판사의 해외문학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영상에서도 자막 폰트만 변경해줘도 캐릭터나 배경의 분위기가 확 바뀌는 효과 때문에 자주 쓰는 고급 기법 중 하나인데, 국내 장르문학에서는 그런 기법을 쓰는 작가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이 책도 회상씬이 많아서 폰트 변경으로 구분 좀 지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일 아쉬운 건 갑자기 급 마무리된 전개였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렸는데 진범과 형사의 대립 장면도 허무하고, 곤충 소년과 수많은 실종 아이들의 뒷이야기도 없었다. 이런 똥 싸다 만 작품은 오랜만이구먼. 다음엔 이러지 맙시다요, 작가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11-13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의 다이렉트 샷 한방은 언제나 강렬하고 유쾌합니다 ~’이런 똥 싸다 만 작품’이라....ㅎㅎ

물감 2018-11-13 21:54   좋아요 1 | URL
다이렉트 샷이라뇨ㅋㅋㅋㅋㅋ간만에 웃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1-13 22:08   좋아요 1 | URL
늘 웃음주시는 분은 물감님인디 ㅋㅋ

물감 2018-11-13 22:24   좋아요 0 | URL
흐흐 큰웃음을 위해 분발하겠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