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가, 요즘에는 이것저것 할게 많아져서 독서활동을 잘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독서에 점점 흥미가 줄어든다. 자주 가던 네이버 블로그나 알라딘 서재 활동도 뜸해졌는데, 최근 알라딘을 보면 기존 파워블로거들 말고는 활동하는 분들이 확 줄긴 했더라. 다들 나처럼 마음이 뒤숭숭하신가. 이렇게 독서에 흥미가 떨어질 때면 재미있는 작품으로 슬럼프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간만에 제프리 디버의 최상급 스릴러를 집어 들긴 했는데, 재미와 가독성이 죽여줌에도 불구하고 700쪽이나 되는 분량은 역시 버겁구나. 동네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완독하고 보니 어느새 지리산을 다녀와있었다. 사실 이분의 책은 늘 힘들어요 헉 헉.


디버 행님의 세컨드 시리즈인 이 작품의 주인공은 동작학 전문 경찰로써 일명 걸어 다니는 거짓말 탐지기이다. 상대의 신체 몸짓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다소 생소한 직업인데, 그녀는 8년 전 한 일가족을 살해한 죄수의 심문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죄수의 공범자가 그의 탈옥을 돕고 이후 CBI 요원 캐트린 댄스는 사건의 지휘를 맡게 된다. 탈옥수는 타고난 지능과 감각으로 경찰의 급습마다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캐트린 댄스는 그의 과거 여자들을 모아 탈옥수를 프로파일링 해보지만 그녀들의 주장이 전부 제각각이라 좀처럼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때 일가족 사건 당시 인형에 파묻혀 자느라 죽음을 면했던 한 소녀가 등장해 지난 8년간 숨겨왔던 사실을 고백한다.


보통 시리즈 1편은 이것저것 소개하고 설명하느라 어수선한 감이 있다. 작가의 다른 시리즈인 ‘링컨 라임‘ 1편도 그랬었는데, 이 책은 시리즈 시작치고 아주 깔끔하다. 확실히 여유를 찾은 게 보였다. 자신의 부족함과 단점을 알고 계속 개선해나가는 노력형 작가이다. 새로운 주인공과 시리즈에 맞게 ‘동작학‘에 대하여 여러 정보가 나온다. 이런 감정에는 이런 움직임을 갖거나, 저런 행동에는 압박감을 느끼는 중이라던가 등등. 사건도 그렇지만 주인공 타이틀이 참 흥미로웠다. 어떤 평에서는 링컨 라임 시리즈가 사건과 수사 중심이라면,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인물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타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연구해야 하는 주인공 직업상 인물 위주가 되는 건 당연한 듯. 이 작품을 기준으로 제프리 디버의 장점들과 작품을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디버의 장점 첫 번째,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장르소설 작가들이 악역을 설정할 때 동서양의 성향이 완전히 다른데, 일본을 예로 들면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고, 보안 프로그램도 쉽게 해킹하며, 날아드는 공격도 휙휙 피하는 등 그야말로 완벽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과정 없이 결과만을 보여줌으로 캐릭터를 단순화 시켜버리니 악역의 무게감은 점점 줄어든다. 반대로 서양권은 ​과정 중심이다. 동양권이 악인 된 이후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서양권은 악인이 되기까지의 내용을 더 깊게 다룬다. 그러다 보니 악역의 모든 행동은 전부 이유 있는 행동이 된다. 특히 디버 작품은 범인 시점의 장면이 많아서 어쩌다 악인이 되었고,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에 대한 범죄 동기가 분명해서 좋다. 이 책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상 웬만한 프로파일러보다도 섬세하고, 남편의 죽음과 두 아이로 인해 감정이 예민하다는 이런 설정들도 과거의 내용을 깊게 다루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과정 중심 성향인 서양권 중에서도 제프리 디버는 탑 클래스에 속한다.


디버의 장점 두 번째, 시점 변화가 아주 뚜렷한데 이것은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고급 기술에 속한다. A에서 B의 시점으로 넘어갔으면 넘어갔다는 내용이 들어가줘야 하는데 그런 부연 설명이나 장면전환이 없는 글을 쓰는 작가가 너무 많다. 시점이 바뀐 건지 모호해서 계속 되감기 하게 만드는 작가들은 독자가 무슨 전지적 작가 시점인 줄 아시나 봐. 근데 디버는 A에서 Z까지 시점 변화와 장면전환에 확실한 경계선을 긋는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마이클 로보텀‘이나 덱스터 시리즈의 ‘제프 린제이‘를 예로 들면, 작품의 진행 내용과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쉴 새 없이 교차되어 작품이 건조하거나 루즈해지지 않게 한다. 이처럼 독백이 많은 일인칭 작품일지라도 시점 변화는 확실하게 주는 것이 좋다. 심리 장르문학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단서나 복선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아 저절로 긴장감이 유지된다. 이런 기법을 디버도 쓰고 있는데 기교 면에서는 로보텀이 좀 더 높아 보이고, 여유 면에서는 디버가 한 수 위다.


디버의 장점 세 번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창조한다. 특히 악역이 그렇다. 이 책에서도 교도소 탈옥수라는 타이틀 뒤에는 ‘컬트 리더‘라는 옵션이 붙었다. 컬트란 특정 인물에게 열광하는 집단을 말한다. 탈옥수는 거리의 소녀들을 모아 집단을 형성했고, 이들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질러서 본인은 현장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그에게 맨슨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어서 따로 검색해보니 과거 미국에 찰스 맨슨이 가출 소녀들을 가족으로 만들고 범죄를 대신 저지르게 했던 실제 인물을 캐릭터에 반영했다. 이런 식으로 디버는 모든 악역을 굉장히 화려하게 설정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첫 번째 장점과도 겹칠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일본 만화 ‘원피스‘의 오다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잠깐 스쳐가는 인물조차도 복잡한 사연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하여 한 명 한 명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때문인데 디버 스타일도 오다 작가와 비슷하다. 그래서 매력 넘치는 악역을 볼 때마다 캐릭터 설정에 쏟아붓는 작가의 정성이 보인다.


디버의 장점 네 번째,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을 반전으로 다룬다. 보통은 인물이나 상황 연출로 반전을 드러내는 반면, 디버는 멘트나 대화 장면에서 반전을 써먹는 경우가 더 많다. 대화나 독백은 수시로 나오니까 마지막까지도 반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디버 작품은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 반전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탈옥수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장면이다. 그것은 남을 통제하는 컬트 리더의 성향을 역이용하여 본인이 남에게 통제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진짜 공범자의 등장으로 연속 멘붕이 오고, 초반부터 뿌려졌던 떡밥이 퍼뜩 떠오르면서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심리를 이용한 해결법이 시리즈 성격과 딱 맞지 않는가. 작가의 큰 그림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여러 권 읽어본 바 제프리 디버는 가수보다는 보컬 트레이너에 가깝다. 워낙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스타일이라 타고난 자연미보다는 다듬어진 세련미로 승부하는 편이다. 노래도 기술보다는 음색이 우선이다. 그의 플롯은 항상 완벽에 가깝지만 철저히 계산된 글만 써서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 따라서 디버 작품은 어쩌다 읽어줘야 감동이 오래가고 감탄도 연발하게 된다. 여튼 너무 잘 읽었고, 이번 리뷰는 너무 오랜만이라 평소보다 몇 배는 애를 먹었다. 이래서 글쓰기는 꾸준해야 한다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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