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와 글쓰기의 경계에서

 

: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를 읽고

 

                                                                                        글/노정태(칼럼니스트)

 

 

 

 

고종석은 절필했던 작가다. 2012923<한겨레>에 기고한 "절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오늘로, 직업적 글쓰기를 접는다. 언젠가 되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접는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절필 후 고종석은 많은 책을 냈다. 바로 이 책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를 제외하더라도 11권이다. 그 중 아홉 권은 기존에 썼던 글을 모아서 재편집하거나 예전에 나왔던 책을 복간한 것이고, 두 권은 글쓰기에 대해 강연을 한 내용을 녹취하여 정리한 책이다.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역시 강연 내용을 녹취하여 정리한 책에 속한다.

 

물론 고종석은 직접 원고를 '쓰지' 않았으니 절필이 유지되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독자의 눈으로 볼 때 이 책은 어엿한 신간이다. 저자 스스로 "강연은 내 책 감염된 언어의 영어번역판"(7)을 교재로 삼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는 동시에 "되도록 어렵고 관념적인 말을 피하고 날것의 구어체를 천연덕스럽게 쓰려 애썼"(5). 그 결과, 가령 나처럼 언어학자로서 고종석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익숙한 사람에게도, 이 책은 신선하게 읽힌다. 그가 기존에 냈던 언어학에 관한 책의 내용들에, 최근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한 생각까지 덧붙여, 4장의 강연록으로 다듬었으니 말이다.

 

한 사람의 필자로서 고종석은 단정하게,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저돌적으로 논점을 향해 뛰어드는 인파이터 강준만, 비판 대상의 주위를 맴돌며 잽을 날려 타격을 입히는 진중권 등과 달리, 고종석은 설령 그가 정치적 주제를 다룰 때에도 미적 자의식과 품위 있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을 보여주어 왔다.

 

그것은 고종석을 '고종석'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지만,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시피, 그에게 무거운 족쇄로 작동했던 것 같다.

 

말하는 고종석은 여전히 논리정연하고, 단정한 문장을 구사하며, 함부로 타인에게 위압적인 태도를 드러내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종석의 구어체는 문어체와 사뭇 다른 템포와 리듬을 보여준다. 가장 특징적인 대목을 하나 꼽아보자.

 

이 세 사람은 미국의 인류학자들이에요. 언어학자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인류학자에 가까운 언어학자들입니다. 인류학을 연구하다 필드 스터디를 하게 되면 그 지역 언어를 연구해야 할 거 아니에요? 이 사람들도, 이게 연령 순서예요. 적힌 순서가. 그리고 사피어와 워프 이 두 사람은 사제지간입니다. 그런데 이 프란츠 보아스가 처음에 이누이트. 이누이트라는 말 아세요? 더 쉽게 말하면 에스키모. 에스키모 사람들은 눈을 가리키는 말이 네 개가 있다고 했어요.”  (26)

 

   

물론 강연장에서 고종석은 이렇게  다소 두서없이 횡설수설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 내용이 녹음되었을 것이고 녹취록을 바탕으로 이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중얼거리는 말투가 책에 인쇄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오탈자 같은 '실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필 작가에게 맡기고 자서전을 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원고 내용을 한 번은 검토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 들어가면 빼버리기 때문이다. 작가가 원치 않았던 내용이라면 책에 들어있을 수가 없다.

 

인용된 대목을 다시 한 번, 이제는 소리를 내서 천천히 읽어보자. 눈으로만 보면 구어체, 즉 입말인 것 같지만, 막상 입으로 읽어보면 그 속에 계산된 호흡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문장을 채 끝맺지도 않은 채 삼천포로 빠지는 척 하면서 결국 본래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비단 인용된 대목 뿐만이 아니다. 이 책 전체가 그렇다. "날것의 구어체를 천연덕스럽게 쓰려 애썼"다는 말은, 결국 이 책은, 구어체를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일종의 문체 실험의 산물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고종석은 글쓰기를 그만둔 게 아니다. 절필했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궁여지책으로, 생계무책하여, 구어체 글쓰기라는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게 된 것이다. 강연의 녹취록을 받아들고 편집을 한 이상, 이 책은 그가 ''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김대중과 이명박의 이름이 등장하긴 하지만, 정치적이지 않고 시사 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지도 않는다. 즉 고종석이 기자로서 쓴 책이 아니다. 책의 내용은 언어학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지만, 언어학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학자라기보다는 취미로 공부를 하는 자, 즉 딜레당트의 그것에 가깝다. 이 책은 언어학을 공부했던 누군가의 느슨한 강연록인 셈이다.

   

바로 그 점이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내가 논객시대에서 지적했고 고종석도 인정하고 있다시피 그는 "작가이자 언어학자이자 신문기자"인 세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언어학자보다는 오히려 작가로서의 고종석이 도드라져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절필 선언을 통해 본의 아니게 단정한 문어체의 세계에서 벗어나, 입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 그런 작가의 모습 말이다.

 

최근 고종석은 <경향신문>'고종석의 편지'라는 제목의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같은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절필을 끝냈음을 선언하기까지 한 상태다. "현실 정치인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며, 새삼스레 언어학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성과를 낼 가능성도 무망하니,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작가의 길 뿐이다.  

 

절필 초기 고종석은 트위터를 '글이 아니라 입말'이라고 규정했고, 그 속에 흠뻑 빠져 "적을 많이 만들었". 나를 포함해 그를 아끼던 많은 독자들은 그 시절을 없던 셈 치고 싶은 욕망을 종종 느끼지만, 엎질러진 물을 되담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나는, 한때 내가 열심히 읽고 그의 문어체를 익히기 위해 노력했던 고종석이, 한국어 구어체의 구사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그것은 그의 독자들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유익한 도전이 될 것이다.

 

                                                                                ***

 

이 글을 쓴 노정태는 자유기고가이자 번역가이다.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의 온라인 에디터를 거쳐, TV 드라마 및 대중문화 전문지 드라마틱에서 수습기자 및 기자로 근무했고, 시사정치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한 바 있다. 『논객시대』를 저술했으며,  『무엇이 정의인가』 『싸우는 인문학』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옮긴 책으로는 『아웃라이어』 『마이크로스타일』 『진보의 몰락』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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