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 임솔아 / 문학동네 / 2015.07


시도 쓰고 소설도 쓰는 '젊은' 소설가의 시작. 가장 깊은 곳에서 끄집어낸 진실한 이야기를 날렵한 문장으로 전하는 소설가. 문학동네 대학문학상의 2015년 수상자인 임솔아 작가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 문학동네 출판사 제공

















∎ 짧은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임솔아라고 합니다. 피터팬의좋은방구하기에서 성실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중고나라에서 열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제 방 책상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고 있어요. 




∎ 2013년 시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셨을 때와 이번 대학소설상을 수상하셨을 때의 느낌이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시가 당선되었을 때는 ‘시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어요. 모르는 세상에 갓난아기로 태어난 느낌이었어요. 근데 설렌다기보다는 앞이 캄캄하고 두려웠어요. 대학소설상을 받았을 때는 반대로 ‘끝’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어요. 좀비처럼 자꾸 되살아나는 전생을 잘 묻어주고 토닥토닥 장례식을 치러주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벅찼어요. 어떤 시작은 끝처럼 막막할 수 있고 어떤 끝은 시작처럼 두근거릴 수 있다는 걸 믿게 되었어요.




∎ 『최선의 삶』을 완성해서 수상까지 한 이후에는 기나긴 ‘악몽’에서 벗어나셨나요?


제가 반복해서 꾸는 악몽이 몇 가지 있는데요. 그 악몽이 악몽 중에서 왕이라고 해야 할까, 제일 오래되고 제일 생생하고 제일 끔찍한 악몽이었거든요. 이제 그 악몽은 안 꿔요.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되었어요. 소설을 고칠 때까지만 해도 그 악몽을 꾸었는데 말이에요. 단행본 출간을 위해서 퇴고본을 보내고 나자 그 악몽이 사라졌어요. 진짜 이제 끝인가봐요. 




∎ 작품이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전에는 책에 대한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쓰는 게 중요하지 물질화되는 걸 목표로 잡으면 수단하고 목적이 헷갈리게 된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꿈’은 현실에 없는 거잖아요. 머릿속에만 있는 건데 그게 현실화되어 악몽이 물건이 돼서 나온 결과물을 보고 싶었어요. 가끔 상상을 해 보았어요. 언젠가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면, 내가 꾸는 악몽이 물건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전달된다면 느낌이 어떨까 하고요. 요즘은 그게 자꾸만 불편해요.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제 친구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도 염려스럽고, 엄마가 책을 읽고 자꾸 우시는 것도 그렇고요. 소설로조차 부모한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 소설 속에도 등장하고 실재하기도 한 읍내동과 전민동은 작가님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읍내동은 제가 자란 동네예요. 저는 그 사실을 누가 물어볼 때만 말했어요. ‘읍내동’이라는 동네 이름만 들어도 ‘너네 집 읍내냐’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대전 사람들조차 ‘읍내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전에 읍내가 어디 있냐면서 웃었어요. 대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낙후된 동네였고, 지금도 그런 동네예요. 전민동은 제가 중학교 삼학년 때에 전학을 간 학교가 있던 동네예요. 읍내동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동네라는 걸 처음으로 가르쳐준 동네였어요. 대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좋은 동네였고, 지금도 아마 그럴 거예요. 읍내동 친구들하고는 오백원에 한 접시 주는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는데, 전민동 친구들하고는 이천오백원에 한 접시 주는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읍내동에서도 전민동에서도 저는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렸는데요. 읍내동에서 만난 제 친구들은 아르바이트생이 되거나 휴대폰이나 중고차 판매원이 되거나 주부가 되었는데, 전민동에서 만난 제 친구들은 사장이 되거나 명문대생이 되거나 유학생이나 모델이 되어 있어요. 

어느 동네에서든 저는 이방인과 다름없었어요. 읍내동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사람으로, 전민동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애들이 가진 게 너무 많다고 느끼는 사람으로 살았어요. 저는 이 두 동네 모두에 염증이 있어요. 벗어나고 싶어해요. 그런데 전민동에는 애정이 전혀 없는데 읍내동에는 애정이 남아 있어요. 읍내동 친구들로부터 도망을 갔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요. 




∎ 24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 입학하셨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배우시기 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방을 얻은 동네가 신설동이었어요. 매일 지하철을 타고 명동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막차를 타고 돌아왔는데요. 지하철역에는 밤마다 소리를 지르는 여자가 있었고, 방이 있던 골목은 으슥했고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그 길 중간에 동대문도서관이 있었어요. 그 동네에서 그 건물만 바퀴벌레가 없을 것처럼 멀끔해 보였어요. 다른 세계의 건물처럼 보였죠. 좋아 보인다, 저기 가보자, 그래서 친구랑 들어갔어요. 그런데 최근에 다시 가봤더니 제 기억과 다르게 굉장히 낡았더라고요. 어쨌든 그때는 황홀한 기분으로 도서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주민등록등본상 지역주민이 아니면 대출을 안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책을 훔쳐서 읽었어요. 

그러다 중고 노트북을 오만원 주고 사서 글을 썼고, 플로피디스크에 차곡차곡 모았어요. 짧은 건 시, 한 장 정도는 일기, 80매 이상은 소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저만 알베르 카뮈를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 제 친구들은 모두 몰랐으니까요. 




∎ 한국문학보다는 해외문학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해외문학 혹은 해외작가를 좋아하시나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지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사르트르의 『구토』예요. 열아홉 살에 처음 읽었어요. 거의 닳도록 읽었어요. 




∎ 시와 소설을 다 쓰시지만 ‘글을 쓴다’는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는 글을 쓰는 걸 웬만해선 숨겼어요. 친구들이 하도 놀려대서요. 숨긴다고 티가 안 나는 일이 아니어서, 꽤나 놀림감이 되었죠. 하루는 친구가 연애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연애편지를 잘 써주면, 글을 쓴다는 것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열심히 써줬어요. 근데 친구가 다른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더라고요. 제가 쓰지도 않은 감탄사까지 섞어서 “오, 넌 나의 달이여” 하면서요. 절 놀리려고 작정을 했던 거였어요. 글쓰기란 제게 그런 거였어요. 놀림감이 되는 거. 아무도 진심으로 읽어줄 리 없는 거. 하지만 글을 읽고 쓰고 있는 저만이 제 마음에 들어요.  




∎ 『최선의 삶』을 어떤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세요?


저 같은 친구가 읽어주기를 바라요. 저 같은 애들이 세상에 되게 많거든요. 또는 어린 나 같은 아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읽는다면 좋겠어요. 




∎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제가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제 글이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쓴 글이 고유명사가 되고 저는 대명사로만 살고 싶어요. 예전에 좋아했던 곰인형이 있었는데, ‘바람이’라고 불렀어요. ‘바람이’는 만화책에서 따온 이름이었어요. 그 만화 속에서 ‘바람이’는 진돗개였는데요. 어린이인 주인공이 위험에 빠지면 구해주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지만, 도움은커녕 말썽을 저지를 때도 있고, 어쨌든 주인공과 함께 있는 개였어요. 제 곰인형은 인형이라서 바람이처럼 용맹할 리는 없었지만, 내 옆에 가만히는 있었어요. 제가 매일 안고 잤어요. 어찌나 부비고 지냈는지 나중에는 털이 다 새까매지고 손도 귀도 다 뜯어졌죠. 저는 바람이한테 자주 말을 걸었어요. 대답을 들은 적은 없지만, 바람이랑 제일 친하다고 믿었어요. 누군가에게 제가 쓴 글이 바람이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당신이 기다리던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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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15년 5월 1일 출간 /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2015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정지돈 작가와 2014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황정은 작가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문학동네 출판사의 도움으로 전문을 옮겨 싣습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젊은' 이야기를 읽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계간 문학동네 82호 - 2015. 봄> 中)








모든 크레타人은 거짓말쟁이

―어느 날, 에피메니데스


황정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서울에서 지돈을 만났다. 


  이야기를 마치고 보니 눈은 그쳤고 해는 졌고 길은 얼어붙었다. 나는 버스를 탔고 지돈은 아마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커피 한 잔과 물 한 잔을 연료 삼아 네 시간 정도를 이야기했다. 별로 묻지 않고 별로 대답하지 않는 자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히 묻고 대단히 대답하는 자리가 되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소설 이야기를 하는 자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는데 루카치, 보리스 사빈코프, 케루악, 윌리엄 버로스, 블랑쇼, 장 콕토, 사사키 아타루에 장 뤽 고다르, 리얼리즘과 쉬르레알리슴, 포스트모더니즘 등등의 이야기까지 해버렸다. 이게 뭐야……라고 나는 생각했고 민나 도로보데쓰……라고 지돈은 말했다. 오늘까지 반년하고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나는 일정한 간격으로 지돈을 만나왔다. 9부 팬츠에 ‘있는 듯 없는 듯’이 모토인 페이크류의 덧신을 신는 지돈…… 정지돈씨는 어떤가요? 누군가 내게 그렇게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지돈씨는요 발등 없는 양말을 신습니다. 최근에도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했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등 없는 양말을 신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발에 털도 많으면서……라는 대꾸를 듣게 된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근무하는 이모 언니의 대답이었는데 이 언니는 도대체 지돈의 발에 털이 많은지 적은지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따로 있겠지. 어쨌거나 여기저기에서 이상하게 발로 기억되는 남자…… 지돈이 대구에서 자랐으며 그 동네에서 꽤 유명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뭐로 유명했어? 라고 묻자 지돈은 커피 한 잔을 더 시키더니 누나 나 진짜 노는 애였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혼자…… 노는 애였어, 라고 지돈은 말했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고 소설에도 관심이 많은데 그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대구에서 꼬마 지돈은 외로워서 소설을 읽었다. 처음엔 추리소설을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어서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신나게 시도도 해보았다고 한다. 그게 무슨 내용이었느냐면 누나…… 교장선생이 교단에서 훈화를 하다가 마이크를 쥐고 갑자기 죽어버려서 초등학생 탐정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추리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트릭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어. 꼬마 지돈은 꼬마였으니까…… 아직 덜 꼬인 인간이었으니까…… 추리소설은 단념하고 판타지로 넘어가 판타지를 읽고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무척 재미있어서 이 정도는! 하고 내가 판타지소설을 썼거든. 그런데 같은 반 애들이 그걸 되게 재밌게 여겼어. 자기들 이름이 나오니까. 내 짝 요한이는 검투사, 나는 마법사…… 제일 간지나는 걸 내가 하고…… 무협소설도 좀 썼는데 애들한테 그게 인기가 있었어. 이름도 뭐 있어 보이게 육지일마 김요한, 천하일검 정지돈 뭐 이런 식이니까…… 제일 간지나는 걸 내가 하고…… 그런데 이런 걸 말하니까 내가 너무 얇은 애 같잖아…… 누나 그런데 실은 내 별명이 얇지돈이야…… 왜 얇지돈이냐면 음……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얼굴이네…… 됐어 나 예민하다…… 아무튼 그때가 중학교 일학년 때였는데 내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애들이 너도나도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 판타지소설 쓰기 붐이 일어난 거야, 우리 반에…… 그래도 나는 계속 혼자 노는 애였어…… 


  중학교 삼학년 때 IMF를 맞은 뒤로 지돈은 오랫동안 읽기도 쓰기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는 영화 연출을 전공했지만 편집 작업에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해 시나리오를 쓰다가 소설로 돌아왔고, 소설을 열심히 썼는데 등단이 되지 않아 출판사 창비에 입사했고, 그럭저럭 적응하며 지내다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려고 출판사에 사표를 제출했는데, 사표를 제출하러 출판사에 들른 날에 등단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지돈이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이자 등단 소식을 들은 날에 나는 그를 처음 보았다. 2013년 4월 어느 날, 나는 팟캐스트 <책다방>을 녹음하는 파주 녹음실에 머물고 있었는데 지돈이 이른 오후에 마지막 출근이라며 인사를 하러 왔다가 늦은 오후에 등단 연락을 받았다고 다시 인사를 하러 왔다. 지돈은 두 차례 모두, 김두식 선생에게는 인사를 하고 내게는 하지 않았다…… 나도 예민하다…… 기억해두겠다고 생각했고 기억해두었다. 오늘 같은 날이 드디어 도래했으니 오래 마음먹은 대로, 울려버리겠다…… 




  울려버리겠다……고 마음먹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엔 딱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내가 소설을 마감한 뒤라서 육신이며 모든 것이 희박한 상태였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지돈의 소설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여행자들의 지침서」로 지돈의 소설을 접하고 다음 작품이 너무도 궁금해 빨리 다음 원고를 완성하라고 독촉하고 있는 입장이니 이 작가를 울려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여행자들의 지침서」에서 뭔지 모르게 케루악을 향한 애정을 감지한 나는 비트 세대의 문학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비트는 별로, 라고 지돈은 말했다. 그들의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의 애티튜드는 좋아한다고 지돈은 덧붙였다. 비트 세대의 어떤 애티튜드? 라고 묻자 지돈은,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의 싸움을 제대로 한번, 해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라는 이야기를 했다. 누나 나는 자기 장르에 대한 자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좋아…… 자기 미디어에 관한 의식 말이야. 애티튜드 애티튜드…… 


  언젠가 지돈은 어딘가의 인터뷰에서 조금 긴 소설을 쓰고 있다며 그 소설은…… 문학에 대한 문학인 동시에 정치적이고 사회 비판적이며 사랑과 섹스, 동성애와 죽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역사, 도시와 범죄, 망명과 머무름, 혁명과 밤에 대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오렌지에 대한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을 한 적이 있었고 나는 그게 지돈이 요즘 쓰고 있다는 장편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실은 「건축이냐 혁명이냐」였다고 지돈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지돈의 다른 작품들처럼 「건축이냐 혁명이냐」의 인물들은 한국적 맥락을 넘어 세계적 맥락으로 우연이자 필연인 것처럼 존재하고 있는데 지돈은 태어나 한 번도 한국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다. 가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이라는 전제를 붙이며 지돈은 말했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어. 파리…… 뉴욕…… 나는 그런 장소엔 가보지 않았지만 소설을 쓰는 데 그런 장소를 직접 가보는 게 반드시 효과적이진 않은 것 같아. 소설은 르포르타주가 아니니까…… 어떤 장소나 인물을 직접 보는 것보다는 그것을 적은 문장을 보는 게 훨씬 더 상상하게 만들어. 예컨대…… 내가 어느 날 삼청동 카페에서 어떤 남자를 봤거든. 이 남자가 계속 화장실에 머물면서 누가 문을 두드리면 일단 나왔다가 그 사람이 나오면 다시 들어가고 또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나와서 기다리다가 화장실이 비자마자 다시 들어가고…… 그걸 반복하고 있는 거야. 화장실 앞에서 화장실이 비기를 기다리면서도 거울 앞에서 뭘 계속 하고 있어. 저 사람이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고 봤더니 되게 힙하게 입은 사람이었거든? 모자를 조금씩 돌려가면서 자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는 거야. 진짜 일 밀리미터씩…… 모자를 왼쪽 오른쪽으로 돌렸다 말았다…… 재킷 깃을 이렇게 만지작만지작…… 그걸 한 시간 반 동안 하고 있더라고…… 화장실 앞에서…… 진짜 특이한 광경이었는데 이런 광경을 직접 보는 건 별로 나를 상상하게 만들지 않아. 현실 이미지 자체가 너무 압도적이니까…… 그 광경을 묘사한 간접 텍스트가 훨씬 더 나를 상상하게 만들어. 내 경우 영화도 아니고 문장, 나를 가장 상상하게 만드는 게 문장이야…… 그러므로 내내 도래하지 않을 적절한 각도로 깃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라는 그 광경 자체보다는, 내내 도래하지 않을 적절한 각도로 깃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 라는 문장이 나를 더 상상하게 만드는 거야…… 텍스트는 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텍스트도 현실이라고 나는 생각해. 장 뤽 고다르가…… 내가 이 아저씨 되게 좋아하는데…… 고다르가 영화는 현실을 잘 담아내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한 이야기가 있어. 영화는 촬영된 현실이다…… 아마 그렇게 말했을걸? 누나가 지면으로 이 이야기를 재인용하려면 고생 좀 하겠다…… 자료도 찾고 좀 힘들겠어? 라고 지돈은 말했다……라고 적어버리겠다……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글쓰는 것이 좋으냐고 물었다. 지돈은 망설이는 척을 하면서 좋다고 대답했다. 글쓰는 거,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자 이번에 지돈은 진짜로 대답을 망설였다. 어떤 말로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글쓰는 거,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히고 마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아마도 질문이 이미 답이라서. 그런데 지돈이 글쓰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다. 다른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고, 소설 쓰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돈의 소설을 좋아하니까. 더 읽고 싶으니까.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어디까지가 실재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지를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허구와 실재가 따로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본다면 지돈의 허구 만들기는 무척 흥미로운 작업일 테고 그것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 말하기 시작할 테니 나는 지돈의 소설 포인트를 리듬에 두고 싶다. 「여행자들의 지침서」를 읽을 때 나는 처음에 담담했다가 이윽고 음독(音讀)하기 시작했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을 덮은 다음엔 이 작가의 다음이 몹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소리를 내서 읽은 문장들에 어떤 리듬이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난 뒤에도 그 리듬이 남아 짤깍 짤깍, 이 작가의 다음 그다음을 계속 읽고 싶게 만들고 그 리듬을 조금 더 타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었으니까. 맛있었다. 얼핏 평범한 문장이었지만 그 언어를 수집하고 배열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에서 지돈은 그 공을 더욱 닦아 “언뜻 봐서는 연관을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와 수집물로 가득하며 그러한 이미지는 통상 말하는 예술적인 무언가가 아닌 단순한 기록 사진과 사소한 물품이 뒤섞인 것들로 이를 통해 기획자들은 이미지의 도서관, 그러나 원하는 정보를 정확히 찾을 수 없고 고정된 정보가 존재하지 않으며 기묘한 확장성과 통일성이 있는 이미지의 궁전을 만들어냈”다. 짤깍 짤깍. 물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라서 짤깍 짤깍, 리듬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유덕문은 부군당은 왕이 아니라 신을 모시는 곳이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와 같은 놀라운 문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서울에서 지돈을 만났다. 

  나는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다른 곳에 가볼 작정이었는데 지돈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보니 눈은 그쳤고 해는 졌고 길은 얼어붙었다. 나는 버스를 탔고 지돈은 아마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지돈을 만나고 돌아온 결과가 지금 내 책상에 있다. 








  어느 시점에 나는 지돈의 소설을 펼치고 지돈에게 밑줄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상상으로 적은 문장에 밑줄을 그려보라는 이야기였는데 거짓말에…… 밑줄을 그려보라고? 라고 지돈은 반문했다. 다소 어색하고 무례하고 이상한 부탁이라서 뺨을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지돈은 연필을 쥐고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아무데나 막 긋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지돈이 연필을 내려놓더니 소설을 내 쪽으로 밀어주면서 알다시피…… 이게 거짓말이라는 거짓말일 수도 있어……라고 내게 말했다. 그래……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정지돈이라고 적힌 곳 아래 밑줄을 긋고 크레타人이라고 적어두었다. 









_『문학동네』2015년 봄호, 제6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자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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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5-1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정지돈 작가에게 관심이 갑니다. 이번 수상작품집 꼭 읽어야겠어요!!

원곡변 2016-01-08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상작을 다시 읽게 만드는 좋은 글이에요
 

국경시장 / 김성중 지음

2015년 2월 25일 발행


김성중의 두번째 소설집 작가의 말에는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내륙 국가인 볼리비아는 패전 후 영토를 뺏기고, 자신들의 지도에서 바다가 사라진 이후에도 해군을 해체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언젠가 바다로 향할 꿈을 꾸며 해군 훈련을 계속한다. 해발 삼천팔백십 미터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배멀미를 참고, 그 언젠가 막연한 희망을 위해 훈련하는 볼리비아의 해군의 모습. 어떤 작가에게 있어 소설쓰기는 이와 비슷한 것이리라.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명백한 비전 없이도, 멀미를 참으며 박력 넘치는 소설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노를 젓는. 



김성중의 소설 속, 유려한 상상의 세계는 독특한 미적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장은 매끄럽고, 그가 상상해낸 세계는 각기 다른 독특한 맛을 낸다. 표제작 <국경시장>은 기억을 팔아 물건을 사는, 이국의 낯선 시장을 독자의 눈 앞에 차려놓는다. 기억을 모두 팔아 더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하는 여행자의 그 세계. 그가 하는 이야기는 진실일까? 국경시장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환상과 현실 속에서 이야기가 교차한다. 거대한 소설을 원하는 작가와, 기억을 팔아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소설의 욕망이 교차한다.


"강 상류에서 잡히는 물고기 비늘입니다. 열다섯 살 미만의 소년에게만 잡히는 진귀한 물고기들이지요. 산 채로 튀겨내면 비늘 하나하나가 곤두서서 떼어내기 좋은 상태로 변합니다. 듣자니 비늘만 쓰고 몸통은 버린다고 하더군요." (...) "이 물고기들은 세상의 어떤 화폐로도 환전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그 사람의 기억과 맞바꿀 수 있을 뿐이죠....."

(국경시장 中)




심술궂은 삶에 이제는 지쳐버렸다. 더이상 사람들의 결점을 찾아 음미하는 일이 즐겁지가 않다. 어릴 때는 똑똑하다고 따돌림을 받았고, 커서는 음침한 성격이라며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모두가 피서지로 떠난 여름에도 혼자 도서관에 앉아 모래 대신 잉크를 묻히던 청춘의 시간들. 

(쿠문 中)



<쿠문>의 세계도, 환상이 가루처럼 뿌려진 욕망의 세계이다. 쿠문을 얻는 자는 천재적 재능을 얻는 대신 짧고 고통스러운 삶을 얻는다. 천재인 동생을 질투하며 유년기를 뒤틀린 채 보낸 '나'는 선택지 앞에 놓인다. 쿠문을 얻는다면 놀라운 집중력으로 작곡, 그림, 저작, 무용 등 온갖 창조적인 작업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발진이 연달아 터지는 순간에도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환상에 매달린다. 그리고 5년 안에 고통스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선택지의 욕망 앞에서 소설 속 '나'도, 소설가도 머뭇댄다. 티티카카의 호수에서 배멀미를 참고 노를 젓는 해군처럼. 정확한 박자를 찾기 위해 손바닥이 터지도록 드럼을 두드리는 사악한 음악 훈련처럼.


꾸준히 젊은작가상에 이름을 올렸던 작가의 이름이 어느덧 일정한 신뢰감을 만들어 낸다. '젊은'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에서는 맵시있게 배치된 문장들만큼이나, 소설을 향한 야심이 눈에 띈다. 자기 자신마저 잃게될지라도 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 국경도 규칙도 없는 소설의 세계에서 거대한 바다를 향해 배멀미를 참고 발을 내딛는 욕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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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다 / 황지우 지음 / 2015년 1월 16일 발행




1987년 처음 출간된 황지우의 시집. 절판된 후 오랜 시간 독자를 만나지 못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R시리즈로 새롭게 태어났다. "詩들을 정리할 때마다 두렵다. 마음이 체한다. 이제 어디로 빠져나갈까? 없는 길을 찾아 나가기가 이렇게 버거울까?"라고 말하던 1896년의 시인. 그는 미워하고 사랑하고, 다시 사랑하고 미워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나는' 이렇다는 말, '너는' 이렇다는 말.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된다. 이 구절처럼.



 18.


수많은 '너'안에서 나는 '나'를 증언하게 된다.





1987년, 세련됨의 시대는 이제 원숙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규칙과 합리의 세계에서, 황지우는 시대를 날카롭게 인식한다. 그가 인식한 풍경들은 낯설지 않다, 새롭게 시들을 만나며, 오히려 너무도 같은 과거에 흠칫 놀라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순간들. 내일 아침 내가 꺠어날 수 있을까?



148.


아침에 내가 깨어날 시간을 下達받은 自鳴鐘시계를 머리맡에 놓고 눕는다. 잠이 안 온다. 하루살이는 一生을 다하여 하루를 산다. 내일 아침 내가 깨어날 수 있을까? 心室의 두근거리는 時限爆彈.



마치 매춘 같은 노동 행위.


164.


하루 종일, 견습공 김석만은 그것을

샌드 페이퍼로 문질렀다. 끝도 없는, 사막 같은 일.

청소도 하고 경리도 보는, 月給 13만 원짜리 미스 리가

미결재 서류를 잔뜩 갖다 놓는다.

나의 노동은 매춘 행위인가.

사방 데서 악쓰는 소리, 들린다.

내 몫, 내 몫,

내놔라.

내가 터억하니 앉아 있는 이 데스크는

말하자면, 나의 위장 취업이다.


도시에 별안간 구멍이 뚫린다. 버스에서 내리다 별안간 지하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물리적인 몰락의 공포, 혹은 수사에 가까운 몰락의 공포가 늘 도사리고 있지만, 도시인의 삶에는 그 어떤 안전 대책도 없다. 개연성 있는 공포 앞에 서서도 그저 내가 아니길 바라는 신경질적인 무감각뿐.


67.

“南山 제1호 터널, 붕괴 직전“이라고 해도

차량들은 여전히, 태연히,

어쩌면 붕괴될지도 모를 개연성이 있는, 남산을 통과할 수 있게 하 하는 제1호 터널, 그 칙칙하고 컴컴하고 매캐하고 긴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다 뒈져도 나만은 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을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건지. (...)


서울 사람들을 세련되게 하는 것은 신경질과 무감각이다.




불안과 공포, 새로운 세게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위장할 뿐이다. 다친 곳은 아물어 간다. 그리고 곧 다시 상처가 날 것이다.



9.

나는 내 생(生)을 척하고 있소.

다친 데가 아물어 가오.





황지우의 시는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한다. 이 현실 속에서 '나'는 무엇을 부정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을 찾으려 했던 것일까. 소나기 속으로 뛰어가는 나, 글자가 안 보이는 나, 두 눈을 꽉 닫아버리는 나. 이런 '나'가 접했을 1987년의 속도감을 상상하면 꼭 그처럼 막막해진다.


61.


태어나자마자, 나는

부끄러웠다.

깨복쟁이 때 동네 아줌마들이 내 고추를 따먹으면

두 눈을 꽉 닫아버렸다.

국어 시간이 젤 싫었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국어가 안 보였다.

여러 사람은 나의 공포였다.

처음으로 수음을 실시한 사춘기 때부터

이 부끄러움은 약탈, 동성연애감정, 광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변성기 안 온 앞 좌석 놈을 꼬여 입을 맞추고

다음 날 그놈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다.

미루나무 숲 소나기 속으로 뛰어갔고

내가 싫었다.






이 시대에 '감전'된 나는 너를 향해 나간다. 긍정하고 부정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며 항해를 계속하는 '나'. 황지우의 시를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은 이러한 '나'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질서가 더 안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그러한 '나'들의 '너'를 향한 타전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늘 현재를 말한다.




33


나는 다만 이 시대에 感電된 것이다.

새까맣게 타버린 오장육부.

이건 한 시대에 헌납한 아주 작은 정세에 불과하다.

나는 나를 부르는 곳으로 나갔었다.

너는 거기에 없었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황지우, 나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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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당나귀 곁에서  / 김사인 지음 / 2015년 1월 15일 발행


김사인 시인은 등단 후 세 권의 시집을 냈다. 1987년 <밤에 쓰는 편지>, 2006년 <가만히 좋아하는>, 2015년 <어린 당나귀 곁에서>. 조심스러운 시력만큼, 그의 시 역시 무척이나 섬세하다.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낱말이 시인을 만나 시가 된다. '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 그런 문장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만들어내는 울림. 그가 그리워하는 이들, 그가 시에 담은 이들의 모습도 꼭 그렇다.




3

슬픔 너머로 다시 쓸쓸한

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

한없이 처량한 그림자 덮어쓰고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듯 다닌

소설 공부 다니는 구로동 아무개네 젖먹이를 맡아 봐주던

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

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

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던

그 말 너무 선선하고 환해서

자는 게 뭔지 알기나 하는지 되레 못 미덥던

눈길 피하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기나 잘하던

살림 솜씨도 음식솜씨도 별로 없던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김태정, 부분)


천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달팽이처럼, 시는 말을 거르고 또 거른다. 드문드문 이어지지만 멈추지 않는다. 고요한 시의 길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져도' 계속될 서정이 이어진다. 애처롭고 마음이 쓰이는 풍경들이다. 동료 시인 김태정은 1963년 태어나 2001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넋을 거둔 미황사를 떠올리며 시인은 태정에 대한 기억을 추억한다.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고 다니던, 조금만 먹고 거북이처럼 조금만 숨 쉬었을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던 사려 깊은 시선.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씽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바짝 붙어서다, 부분)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의 모습처럼, 그렇게 달팽이처럼 멈추지 않고, 최선을 다해 밀차를 밀며 살았을 할머니의 삶을 상상하면, 어린 염소처럼 할머니의 발꿈치를 따를 밀차의 바퀴에 이입하게 된다. 밀차라도 그곳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생각, 할머니의 졸아든 몸을 발견한 시인이 있어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부터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 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화양연화, 부분)


시인은 떠난 이를, 떠날 이를 반복해 곱씹는다. 그가 자신의 '눈멀고 귀먹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압도적 비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속절없음을 속절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그렇게 떠난 이들을 시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집을 통해 애도한다. 품격있는 애도의 풍경은 결정적인 애도의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의 어머니에 관한 시.



2

어디 가 계신가요 어머니.

이렇게 오래 전화도 안 받으시고

오늘 저녁에는 돌아오세요.

콩국수를 만들어주세요.

수박도 좀 잘라주시고

제 몫으로 아껴둔 머루술도 한잔 걸러주세요.

술 잘 하는 아들 대견해하며,당신도 곁에 앉아 찻숟갈로 맛보세요 나는 이렇게만 해도 취한다 하시며.

어머니, 머리도 좀 만져봐주세요 손도 좀 잡아주세요 그래, 너희는 살기 안 힘드니 물어봐도 주세요.

너 피곤한데 내가 자꾸 붙잡고 얘기가 길다, 멋쩍게 웃으시며, 그래도 담배 하나 더 태우고 건너가세요 어머니.


3

혹시 머나먼 고비사막으로 가셨나요 어머니는.

낙타들과 놀고 계시나요.

꾀죄죄한 양들을 돌보시나요.

빨갛게 그을은 그곳 아낙들의 착한 수다 들어주고 계시나요.


그럼 저는 어디로 흘러가야 할까요.


꼭 당신을 다시 만나자는 건 아니지만

달아나는 돌들과 자꾸만 뒤로 숨는 풀들과

봉분 위로 부는 바람 하나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고비사막 어머니, 부분)




콩국수, 수박, 머루술 같은 일상의 소박한 음식의 이미지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특별한 날만 만날 수 있는 독하고 화려한 맛이 아니었다. 오래 기억에 남을 맛처럼, 그렇게 어머니의 기억은 일상이 되어 머무를 것이다. 몹시도 작았을 어머니의 몹시도 작은 찻숟갈을, 작은 웃음소리를 시인은 조용히 불러본다. 사막을 건너는 어머니의 '고개 하나 넘으며 뼈 한자루 내주고 물 하나 건너면서 살 한줌 덜어주며' 고비사막을 건너 이 세상을 떠났을 어머니에게 건네는 나직한 인사 '어디 가 계신가요 어머니'에 이르면 슬픔을 참기가 어렵다. 이토록 서정적인 시인이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깊고 수수하고 능청스럽다. 어떤 시는 매섭고, 어떤 시는 절로 웃음이 난다. 고맙고 서러운 생에 대해 드믄드문 말하는 시들이 담아낸 섬세한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당나귀의 걸음처럼 터벅터벅 이어지는 글을 읽다보면 꼭 시처럼 고요한 시인의 음성이 떠오른다. 모국어를, 한국어를 육십여 년 가까이 쓰고서도 이정도 밖에 쓰지 못해 부끄럽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 그런 그가 몹시도 고민하며, 더듬더듬, 먼길을 한없이 느리게 그리며 놓았을 시의 길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김사인, 어린당나귀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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