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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수상 이후 5년,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한강 작가의 온라인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독자의 오랜 기다림에 응답하는 작가의 소회를 알라딘 독자에게 소개합니다. | 정리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소설을 쓰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두 페이지는 2014년 6월 말 즈음에 쓰게 되었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악몽을 계속 꾸었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직접적인 폭력에 대한 꿈을 많이 꾸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아, 이건 광주에 대한 꿈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좀더 상징적인 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이런 꿈을 꾸었어요. 눈 내리는 벌판을 제가 걷고 있었고, 저 벌판의 끝에서부터 제 뒤쪽에 있는 능선, 산봉우리 끝까지 검은 통나무 수천수만 그루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 뒤에 봉분들이 있었고요. 아 여기가 무덤이구나, 이렇게 큰 묘지가 여기에 있는 걸 모르고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운동화에 물이 밟혀서 돌아보았더니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어요. 밀물이구나, 왜 이런 곳에다가 무덤을 썼을까? 너무 이상했어요. 봉분 아래에 있는 뼈들이 다 쓸려가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쓸려가버린 뼈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더 위쪽에 밀물이 닿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도구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채로 나무들 사이를 달리다가 깨어났습니다. 잊어버리기 전에 그 꿈을 기록했어요. 이 꿈이 언젠가 소설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1996년 제주에서 삼 개월 정도 지낸 적이 있는데, 하루는 방을 내어주신 할머니가 짐을 들고 갈 데가 있다고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고장난 TV며 우체국에 부칠 짐을 들고서 골목을 걷고 있는데, 그때 할머니가 멈춰 서서 말씀하셨어요. 이 담이 4•3 때 사람들이 총 맞아서 죽었던 곳이라고. 눈부시게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그 일들이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실감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 순간의 기억과 꿈의 장면이 만나면서 이 소설을 쓰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책을 내고 보니 하나의 물성을 가진 책으로서 이 이야기가 제 손에 쥐어졌다는 게 굉장히 감사하고 뭉클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어떤 소설이라고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어떤 소설이냐고 누군가 물어볼 때마다 고민이 되었어요. 어떤 때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대답했고, 어떤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라고, 또 어떤 때는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라고 했어요. 모두 진심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자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말을 고르고 싶어요.


모든 소설은 쓸 때 그 소설이 요구하는 어떤 마음의 상태가 있는데, 이 소설이 언제나 저에게 요구한 것은 지극한 사랑의 상태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을 쓰면서 그 상태를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것이 두 개의 삶을 살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나의 삶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동시에 살게 하는 것이라고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나는 여기 있지만 동시에 그곳에 있게 되는 것이고, 그러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그 마음이 초자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마음이 그러한 간절한 상태라고 생각했고요.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불가능하지만 애써보았던 소설입니다.




80년 광주를 다룬 소설을 쓴, 『작별하지 않는다』 속 경하와 작가의 삶이 포개어집니다.


경하의 모습이 다 제 얘기는 아니지만, 『소년이 온다』를 쓸 때에도, 쓰고 나서도 악몽을 계속 꾼 것은 사실이에요. 어떤 소설이든 쓰는 과정이 쓰는 사람을 변형시키거든요. 저도 변형되었고, 그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의 삶은 그전의 삶과는 다른 것이 되었고. 그 악몽이나 제가 가지게 된 고민과 질문들은 제가 평생 지니고 가야 하는 것이 되었죠.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는 이상하게도 저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악몽과 죽음이 제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는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을 쓰는 것은 물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해주는 경험이 되기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지극한 사랑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쓰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아, 내가 간절했지’ ‘이 소설이 나를 구해줬지’ 하는 마음이 더 듭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소년이 온다』 이후로 하게 되었고, 이 소설을 쓰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가께서 소개하신 '지극한 사랑'은 무엇이고, 지금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이 소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8년이었어요. 소설의 배경이 된 시간도 그때인데요,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코로나 팬데믹 시국이 시작되었고, 후반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써가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립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홀로 있어야 하고, 함께 있어도 마스크를 쓰고 악수를 하지 못하고 포옹을 하지 못하는 시절을 통과하고 있죠.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더욱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이 고독과 고립으로 인해 오히려 간절하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나 합니다. 우리의 방에, 우리 자신의 삶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으로 뻗어나가서 서로에게 닿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을 모두가 간절히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이즈음 하고 있어요. 그런 마음이 이 소설을 쓰는 데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오래 기다려주신 소설입니다. 소설을 출간하며 느끼는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사이사이 「작별」 같은 글도 썼지만, 일 년 넘게 소설을 쓰지 못한 공백기도 있었어요. 그러다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되었죠. 이 소설은 여러 가지로 자료가 많이 필요했어요. 팬데믹 초기엔 이동도 어렵고 도서관도 문을 닫아서 출간된 단행본을 구해서 읽으며 소설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느꼈던 것이 있는데요, 소설 뒤에 제가 참고한 작품을 많이 적었지만 대부분 2000년대, 2010년대에 출간된 책들이에요. 4•3이라는 70년 전 일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해온 것이죠. 저도 그런 자료들을 읽은 것이고요. 이렇게 이 사건에 대한 마음이 이어져오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제가 참고한 영상, 영화, 책, 증언을 해주셨던 분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제주 방언부터 세세한 것까지 도움을 많이 청했는데, 자기 일처럼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그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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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쓸 수 없을 거야' 저주의 목소리를 듣는 소설가, 그가 대불호텔에 들어섭니다. 단편소설 「음복飮福」으로 2020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강화길 작가가 여름에 잘 어울리는 소설로 돌아왔습니다. '음복'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한국형 여성 스릴러 소설'입니다. 강화길 작가에게 질문했습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Q.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첫 문장부터 이미 이 이야기가 편하지 않다고 느꼈어요. 이 소설의 첫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그러나”는 프롤로그 앞, “이것은 소설이다. 소설에 불과하다”라는 문장을 잇는 접속사입니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분명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소설에 불과하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공포와 분노, 악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감정이 생생하게 드러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접속사는 그 경계를 잇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Q. 인천에 실존한 호텔 ‘대불호텔’의 서사성이 이 소설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참 소설적인 장소다’ 떠올리게 되는 공간이 있다면, 당분간 여행이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사실 제가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추천드릴 만한 곳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식물원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이 소설의 초고를 마무리하고 식물원에 간 적이 있는데,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가득한 공간을 천천히 걸으며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에 대해 언젠가 소설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Q. 전작『화이트 호스』에서도 ‘글을 쓰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테마 중 하나로 등장합니다.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는’ 소설가가 그럼에도 왜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지, 「니꼴라 유치원」과 「다른 사람」을 쓴 작가이기도 한, 소설가 강화길 작가께 여쭙고 싶습니다.


A. 답을 알고 있다면, 아마 계속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늦게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쓰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의 화자처럼 좌충우돌하고 항상 고민하고, 망설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쓰는 일에 매진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실체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으니까요. 어떤 답을 알고 있다면,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Q. 소설가 '나'가 듣는 악의에 찬 목소리.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거야”(1부 54쪽), 혹은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잘난 척하지 마라”(1부 25쪽) 같은 목소리는 꼭 ‘글을 쓰는 여자’만 듣는 목소리는 아닐 듯합니다. 이 ‘목소리’들을 발견한 순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A. 저는 문장들을 발견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언제나 쓰고, 고치고를 반복합니다. 그 문장들은 화자에게 가장 공포를 줄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상상하다가 쓰게 되었습니다. 공포를 부여할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녀만 듣는 목소리가 아닐 거라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남네요. 정말로 무서운 말인 것 같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런 말에 휩싸이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Q. 라푼젤, 신데렐라, 백설공주를 거쳐 셜리 잭슨, 에밀리 브론테 같은 이름들로 이야기가 나아갑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이야기 속 여성, 혹은 이야기를 창조한 여성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대불호텔의 유령』과 함께 읽으면 좋을 작가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록산 게이의 『헝거』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소설과 어울리는 작품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헝거』를 읽으며 깊이 공감했고, 여성으로서 느끼는 공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픽션이 아니라는 점이 어쩌면 추천의 가장 큰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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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소설가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만 독자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의 등장 이후 SF를 새로이 접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2021년의 아이콘, 김초엽 작가가 새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로 다시 독자를 만납니다. 작품에 대한 간단한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독보적인 첫 작품집 <우.빛.속> 이후 소설로는 오랜만에 독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설로 다시 인사드리는 기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오랜만의 소설책이니 긴장도 되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응원하고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커요. <지구 끝의 온실>은 선공개를 했던 터라 그때부터 정식 출간을 기다려주신 분들도 계시거든요. 생각보다 다듬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좀 늦게 나오게 되었어요. 저는 이 소설을 쓰며 힘든 동시에 또 즐겁고 행복했는데, 그런 여러 감정들이 독자님들께도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오랫동안 보여드리고 싶은데 이번 책은 이미 나와버렸고, 어떻게 읽으실지는 독자님들의 몫이니... 저는 이제 내려놓고, 또 다음 작품을 열심히 구상해야 할 것 같아요.




'더스트 시대'는 소설에서 자주 접하는 디스토피아적인 풍경입니다. 그렇지만 이 '멸망' 이후의 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초엽의 소설을 읽고 있구나'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저 우주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면서 우주선을 타는 할머니 과학자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지구 끝의 온실>을 처음 구상하고 초안을 써 내려가던 시기는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이 매우 극심하던 때였어요.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백신이나 치료제는 가망도 없고,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퍼져 있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외출도 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면서, '이렇게 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절망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타인과 세계의 회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생각했어요.




과학자인 아영이 괴담과 음모론의 세계에 빠져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과학도인 김초엽 작가도 혹 좋아하는 괴담 혹은 음모론이 있을까요? 


저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괴담은 전혀 믿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괴담이 생성되어 퍼져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무섭고 섬뜩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진술은 그 본인에게는 진짜 경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무엇이 그 사람에게 귀신을 보게 했을까?' '유독 귀신 목격담이 많은 장소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할까?' 같은 생각을 해보고요. 또 우리가 경험하는 외부적인 자극이 뇌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섬뜩한 경험으로 재해석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어요.




1장 '모스바나'라는 식물의 특성과 함께, "생물 다양성이 우릴 구원할 거야." (30쪽)라는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초엽 작가가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식물이 궁금합니다.


얼마 전부터 선인장의 매력에 빠져있어요. 식물원에 가서 선인장 정원을 한참 구경하는데, 저 선인장들은 참 이상하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다 저런 생물이 생겨난 걸까 생각하게 되는 식물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댄 토레 <선인장>이라는 책을 읽고 선인장을 소재로 한 짧은 소설도 썼어요. 아쉽게도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서식지와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 등장시킬 수 없었지만요. 제가 좋아하는 선인장은 변경주선인장(사와로선인장)인데, 사막을 지키는 거인처럼 생겼어요. 가시 달린 거대한 공처럼 생긴 금호선인장도 매력적이에요.




여전히 '온실'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늦여름입니다. 이 계절, 소설가 김초엽이 <지구 끝의 온실>을 읽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생각할 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저는 요즘 N.K.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시리즈를 읽고 있습니다. 워낙 세계관이 탄탄한 작품이라 첫 번째 이야기인 <다섯 번째 계절>을 읽을 때 약간 진입 장벽이 있는데, 고요 대륙의 암울하지만 결코 '고요'하지 않은 세계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다음 이야기가 계속 궁금해져요. 절망적인 세계 속에서도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 마음에 공감하며(혹은 나는 도저히 저렇게는 못 하겠다 생각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어요.


<지구 끝의 온실>을 쓰면서 식물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는데, 잡초의 치열한 생존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전략가 잡초>, <식물학 수업>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이소영 작가님이 <식물과 나>라는 신간을 내셨는데요. 아름다운 표지와 그림을 자꾸 들여다보며 한 꼭지씩 차분히 읽기 좋은 식물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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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을 통해 마음의 여린 결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가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밝은 밤>이 여름 밤 독자를 찾습니다. 출간에 맞추어 최은영 작가가 독자에게 편지를 전합니다. 질문과 답변을 공유합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좋아하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받은 편지 같은 소설입니다.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작년 한 해는 소설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라고 적어두신 작가노트를 보고 놀라고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누구나 인생의 좋은 때와 어려운 때를 겪듯이 저 또한 지난 시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좋은 날도 있었고 어려운 날도 있었는데 지난 몇 년 동안은 어려운 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작가노트를 쓸 때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습니다. 거의 일 년 동안 글을 못 썼지만 그 이후로 『밝은 밤』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 마음도 돌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힘들고 벗어나고만 싶었지만 그 시간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연은 이혼 후, 자신을 아는 이가 거의 없는 희령에서 천문대 연구원으로 새 삶을 시작하려 하는 인물입니다. 최은영 작가의 두 권의 소설집에서 우리가 만났던 그 대견하고 잘 참던 소녀, 청년들이 어른이 되어 나타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연이는 많이 참고 자기 욕망을 억누르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마음으로 울고 있을 때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느라 겉으로는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지요. 자기 마음을 애써 피하며 살아오느라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울면서도 자기가 어떤 감정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인내의 한계에 다다라 더는 자기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을 그려보았습니다.




지금 지연은 '마음의 보호대 같은 것이 부러진'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연이 겪는 심장이 뛰는 증상이라든지 아픈 마음,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이 이 시대의 우리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증상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지연의 마음에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기 마음을 보호하는 일에도 힘이 필요한데, 마음을 보호하는 힘조차도 낼 수가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날이 있지요. 그런 날이 하루일 수도 있고, 이틀일 수도 있고, 몇 주, 몇 달, 몇 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이런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감추려고 하면 충분히 감출 수 있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매일 웃으면서 보는 사람이 사실은 지연이처럼 혼자 집으로 돌아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지연이 할머니의 밥 위에 발라낸 박대의 살을 올려놓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지연과 할머니, 삼천과 새비, 지연과 지우가 서로를 먹이고 아끼며 나누는 그 마음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밥은 먹었어?’ 그런 안부 인사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하거나 부실하게 먹는 걸 알면 마음이 좋지 않죠. 같이 밥을 나눠 먹으면서 드는 정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음식을 마련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의 간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조리해야 더 건강에 이로울지 등등을 생각하며 하게 되는데 그런 마음이 음식에 담겨서 실제로 먹는 사람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새비 아저씨를 '밝은 분'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최은영 작가가 생각하는 '밝은 분'은 어떤 사람일지가 궁금합니다. 


‘밝은 사람’은 자기 내부를 태워서 빛을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어두움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존재고, 어두움에 빠져서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히기도 하죠.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만나본 ‘환한 사람들’은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이었어요. 인간이라면 가지기 쉬운 자기중심성,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싶은 마음,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고 싶은 마음, 타인을 상처 입혀도 좋으니 자기 욕구만 추구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마음을 분명히 바라보고 하나하나 태워가는 사람, 그 빛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새비 아저씨도 제게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별을 관찰하는 지연과 할머니의 마음처럼, 때론 원리 혹은 섭리 같은 것이 우리를 위로하는 것 같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이가 읽기 좋은 책을 권해주실 수 있을까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상실 수업』,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가 떠오르네요. 엄유정 작가의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도 저에게는 많은 위로를 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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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5일, <복자에게>를 출간한 김금희 작가가 편집자K님 (https://www.youtube.com/user/HARIN1983 )과 함께 알라디너 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9TtVKtRYWT3_iD2LIsR7g)를 찾아주셨습니다. 즐겁게 진행된 라이브 이야기와, 라이브 후 담당 MD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함께 공개합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너무 한낮의 수다


- <복자에게>는 어떤 작품인가요?

그리운 이를 실제로 만나는 경험은 어떤 감정들일까 생각했고, 제주의 씩씩하고 유머감각 있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과 일하는 여성들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 마음을 담아 쓰게 된 작품입니다.


-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합니다

요즘은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를 즐겁게 읽었습니다.


- 제주도에 관한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면

해녀분들은 고생하시지만 카리스마가 있고 멋있으세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제 자전거를 멈춰세우고 기름칠을 해주신 적이 있었어요. 별다른 인사도 말씀도 없이요. 실제로 보건소에도 여자 의사분이 계셨고, 그런 모습을 소설에 녹일 수 있었습니다. 제주에서 본 모든 게 기적 같아요.


- 복자라는 인물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나를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 한 사람이 공동체의 어떤 부분을 대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복자라는 인물을 통해 투영이 되었습니다.


- 여성 판사라는 직업과 설정이 신선합니다.

직업이 가진 갈등의 포인트가 소설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판사인 이영초롱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인물이 자기 힘으로 내게 다가와서 움직이는 느낌이 종종 있는데, 이 소설이 좀 그랬습니다. 후반부에는 이영초롱이 스스로 움직여 판사직을 내려놓고 프랑스로 떠나는 것 같았어요.


- 판사 자아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 자아가 너무 커져서 힘든적이 있으세요?

다음 세상엔 농사를 짓고 싶어요. 적성검사에서도 농사가 체질이라고 나오기도 했고, 식물을 사랑하기도 하고요.


- 인물들의 이름을 짓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영초롱은 이지적인 이름, 그러면서 밝은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으면 했어요. 오세는 오름에서 착안했습니다. 소설을 출간한 이후 오세를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아서 오세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 서로의 편지가 닿지 않고 불발되기도 하는데, 왜 이 이야기에서 말을 전하는 소재가 편지여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메일을 수신확인도 되고, 좀 잔인한 것 같아요. (웃음) 편지가 드라마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쓰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주고받은 편지를 모두 모아두고 있기도 해서, 편지를 기다리던 순간들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들도 있고요.


- 이번 소설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번 소설은 독자 생각을 특히 많이 하며 쓴 소설이예요. 그냥 견디면 회복의 기운이 약간 돌기 시작하고, 별게 다 위안으로 느껴져요.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 각 인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느낌이 궁금합니다.

이영초롱과 복자에게 특히 몰입하며 쓴 이야기였어서 두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복자를 생각하면 큰 나무 같은 게 생각나요. 영초롱을 생각하면 복잡한 내면을 생각하게 되고요. 두 인물에게 대단해, 잘했어, 고마워, 말해주고 싶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쓴 단편을 모은 게 책 한 권이 되어가서, 내년 상반기 단편집을 낼 예정입니다.


-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드립니다.

댓글을 보고 싶었는데, 긴장해서 잘 못 봤어요. 라이브에 참여해주셔서 너무 반갑습니다. 행사가 있기를 이렇게 바랐던 적이 있나 싶어요.  마스크 벗는 날이 오면 열심히 열심히 인사 드리겠습니다.









김금희의 가장 청량한 위로

장소를 옮겨 김금희 작가에게 MD가 질문했습니다. 라이브 얘기부터 먼저 여쭈었습니다.





우리라고 묶일 수 있는 기억이 있었던 한 시절로


 

오디오북으로도 연재하며 처음부터 독자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소설로 알고 있습니다. 알라디너 TV 라이브 후 뵙게 되었는데요, 독자와 이런 방식으로 만나는 경험이 어떤지 듣고 싶습니다.

 

오디오북 연재 때는 제 댓글을 달지 못했어요. 소통을 하고 싶었는데 스토리가 흘러가는 와중에 흐름을 깰까봐 거의 입을 계속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연재가 끝났어요.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지면엔 한계가 있어서, 오프라인에서 독자에게 <복자에게>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었죠. 허심탄회하게 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해서 저는 되게 좋았어요.

 

채팅창에 모여계신, 김금희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이 모여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보기 좋았어요.

 

라이브 때는 긴장되어 댓글을 잘 읽지 못했는데, 꼭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작가가 연차가 되면 될수록 항상 새로운 책이나 작가가 늘 나오잖아요. 오랜 시간을 같이 따라서 읽어주시는 독자가 있지 않으면 이 직업은. 하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걸 절실하게 깨달아요. 이번에 소설에 대한 다른 댓글을 몇 개 봤는데 이전에 본 제 작품이 좋았기 때문에 새로운 걸 볼 때 전보다 나쁘면 어쩌지, 염려를 해주시는 거예요. <복자에게>를 읽었는데 좋아서 다행이었다, 안심했다. 이런 표현을 보고 독자가 작품을 읽어야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작업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자가 막 확대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읽어주신 분들이 또 읽어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라이브 채팅창 분위기는 같은 작가를 좋아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독자들도 자기 시간을 쓰고, 자기 기를 넣어 책을 읽는 거니까, 자기 감상에 대해 부정당하게 되면 서운한 그런 동료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독자들도 책에 관심을 두게 되면 말하고 싶잖아요. 코로나19가 오기 전엔 독서모임도 활성화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독서모임도 할 수가 없으니, 이런 라이브 자리가 있으면 게릴라처럼 모여서 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아요.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읽는 동안 이우리라는 단어가, ‘우리가 왔다라는 느낌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괄호처럼 특정한 세대를 묶는 소설이었으면 했어요. 각자의 삶은 하나로 묶고 싶어도 묶어지지가 않잖아요. 그럴 땐 도리어 하나하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전체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우리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오성이나 강선이나 주인공이나 삶의 태도가 각자 너무 다르잖아요. ‘우리라고 묶일 수 있는 기억이 있었던 한 시절로 그 모두를 묶어내는 게 이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단편과 장편, 에세이를 모두 만날 수 있는 한 해라 독자로선 감사한 한 해였는데, 올해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올해 되게 힘든 것 같아요. (웃음) 팬데믹도 너무 힘들었고요, 예정된 작업들은 다 해야 했고, 실제로 다 했어요. 비일상적인데 일상을 유지해야 된다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시장 상황이 엄청 좋은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에 책을 내는 게 어렵기도 했고요. 어쨌든 단련이 될 걸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도 마감을 하고 책을 낸 경험이 있으면 더 좋은 상황이 되면 더 열심히 해낼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보냈어요.

 



 “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털어내야 한다”

 

<복자에게>에서 처음 판사라는 직업을 설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낯선 직업인데, 강연에서 본 모습이 저한텐 되게 임팩트가 있게 다가왔어요. 법조계 영화에서는 대체로 멋있는 검사가 나와서 악의 무리를 소탕하거나 하잖아요. 그렇지만 사실 재판을 하러 가보면 삼십대 정도의, 그냥 직업인인 모습의 여성 판사가 행정의 일환으로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봐요. 그런 사람들이 발견이 안 되고, 가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꽤 젊은 분들이 지금도 하고 있는 직업이니 말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초롱의 동생의 말. “웃으면 정말 멍청한 사자 같은 게 될까봐” (15)를 들으며 영초롱은 마음이 차가워지면서, 묵직한 추가 달린 듯 몸이 어딘가로 기우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듯 어떤 대화를 하고 난 이후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될 때가 있죠. 이 부분에 대한 묘사가 무척 좋았습니다.

 

소설은 인물이 각자의 인생에서 전환을 맞는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그 전환이 되는 부분을 전달을 해야 되는데, 급격하게 인물이 깨닫는 건 어색하니까, 그런 장면을 포착하는 게 작가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자도 자기 일상에서 경험한 감각이어야 공감할 수 있고요.


저도 그런 장면을 쓸 때, 앞에서는 영초롱이 동생을 좀 무시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귀찮아하기도 하는데, 동생의 그 말을 들은 순간 그 어린아이도 이 IMF 같은 급격한 변화를 같이 짊어지고 있구나, 이 수난의 시대를 얘와 내가 함께 통과하고 있구나, 동지구나, 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았어요.

 

 

 

제주도라는 공간은 4.3과 같은 아픔을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일을 하고 나아가는 섬이라는 점에서 복자와 영초롱의 현재와 매칭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제주도라는 섬이 나아가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해녀분들도, 힘들고 피곤한 노동인 게 물론 맞지만 그 나이대에 비해 굉장히 많이 버세요 (웃음) 수입이 꽤 되시고, 자기 삶을 책임지는 분들이 많아요. 작가로선 그런 건강함 같은 것을 그리고 싶어서 고민을 하게 됐어요.


4.3의 흔적은 각자의 사연들도 얘기가 되지만, 공동체의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제주도에 머물 때 병원에 갔는데, 4.3 관련된 분들은 병원비를 깎아주고 그런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봐요. 아주 사소하지만, 그걸 통과해온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있더라고요. 택시를 타도 제가 서울에서 온 걸 알면 운전사분들이 4.3에 대해 말씀을 하세요. 그럴 때면 과거가 현재화되어 있구나,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 사건은 현기영 선생님이라든지 선배 작가들이 많이 다루신 사건이고, 제가 직접 다루진 못했지만, 어쨌든 지금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정도로는 현재화해 다루고 싶었어요.

 

 

 

판사인 이영초롱이 겪는 구멍이 난 마음, “자부와 자긍, 자명함이나 자기 확신, 자신감 같은 것이 빠져나가 화가 난 상태 (35)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면 한번쯤 느껴본 마음일 듯합니다.

 

불안감이나 부담감 같은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이잖아요. 그분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느낌이니까, 거기서 오는 괴로움과 자괴감 같은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법은 명료한 것인데, 그걸 내리는 사람 자체는 인간이었구나, 그때 깨달았던 것 같아요.

 

 

 

“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털어내야 한다” (39)의 조언을 보며 소설가가 소설 바깥으로 빠져나오게 되는 순간, 빠져나오는 방법이 궁금해졌습니다.

 

이 직업이 내 인생을 장악해 들어가는 느낌이 좋지만은 않아요. 저는 예상을 못했는데, 제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더 노출되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되도록 이 일하고 상관없는 친구들, 가족들을 만나려고 해요. 만나면 그 세계가 가지고 있는 건강함이 있어요. 그래서 아, 역시 내가 할 일은 내 인생을 사는 거구나, 다른 삶을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오죠. 그런 식으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인간의 힘, 나는 그 말이 오늘밤 참 좋다”


복자와 사이가 틀어지고말하기 싫은 날들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79)라고 말하던 영초롱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나아지고, 회복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 그렇네요. 남의 인생을 구하기도 하고, 길을 잡아주기도 하는 말을 영초롱이 시작하게 되는 거네요.

 

“다시 건강해진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 (138)라고 복자가 이야기하는데도, 실은 복자가 다시 건강해지고, 엄마가 되는 일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기도 했고요.

 

그 사건에서 복자가 보여준 용감함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건 인생에서 되게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이브에서 독자분들도 영화로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복자가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요? 생각하게 되는 게 그 이후가 궁금해지는 이야기라 그런 것 같아요.

 

영화가 지금 저보다 많은 얘기를 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어쨌든 저는 재현을 하면서 그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나 감정들에 공을 들이지만, 영화라는 장르는 그것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게 될 테니까, 여러 중요한 사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진행을 시킬 수도 있겠죠. 만약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더 길게 이야기를 끌어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웃음)

 

 

 

“인간의 힘, 나는 그 말이 오늘밤 참 좋다” (140)라는 문장처럼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영초롱은 제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자신의 일을 해내고, 익명의 사람들도 복자를 도왔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해서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를 돕는 장면들을 보며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그 장면에서 미혜씨가 무슨 사대강 카피 같다고 하잖아요. (웃음) 우리가 힘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실 냉소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데, 팬데믹 상황이 되니 그런 말들이 너무 귀한 거예요. 진짜 어려운 상황이니까 서로가 어떻든 지금은 이걸 좀 헤쳐나가야 되고, 그런 상황이니까 오세가 하는 그런 말들이 되게 절실하게 느껴졌어요.


저희 동네에 오늘도 지나다 보니 안경원 하나가 가게를 비운 거예요. 요즘은 문닫는 가게가 너무 많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 너무 크게, 마음이 확 주저앉아요. 제가 가는 김밥집부터 시작해서 문을 닫는 가게가 늘고, 대신 복권집 같은 게 늘더라고요. 사람들이 지금 원하는 게 어떤 기적 같은 게 아닌가 생각해서, 그런 게 마음이 안 좋아요.

 

 

 

 

우리의 운동은 숨두부 같아야 하고…. 이런 애기를 하면 남자 선배들은 우리를 나약하다고 몰아붙이겠지. … 언제나 남자 선배들의 다 낡은 코르덴 재킷 따위나 빌려 입은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162) 이 부분을 읽으며 여성의 우정과 노동, 운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시절 학생운동이라는 게, 일단 남학생에게 교육의 기회가 많았고 남학생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운동도 당연히 위주로 돌아갔죠. 선배들 얘기를 들으면 남자 운동권 선배들이 무서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제 세대에는 그렇게까지 느껴지진 않았는데, 고모 세대에는 그런 게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 시절의 운동이 사실상,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는 그걸 완전히 포함하진 않았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을 썼어요.

 

 


언젠가는 도착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복자에게라는 소설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어떤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수신에 관한 소설이 아닐까 해요.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누군가들의 마음이나 그런 것들, 받아 안고 싶지만, 받아 안을 수 없었던 편지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서 보면 그걸 내가 사실은 받아 안은 거였네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요. 우리가 삶을 살면서 지금 이 순간이 엔딩이 아니라고 믿는 거, 언젠가는 도착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거. 그런 마음에 대해서 다룬 이야기 같아요.

 

결말에서 제가 확실하게 재회 장면을 그리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열려서 결말을 짓는 거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메시지가 가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다행히 독자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제가 이 소설을 통해 얘기하고자 했던 바가 너무 훌륭하게 잘 전달이 된 것 같고, 제가 몰랐던 부분을 오히려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그래서 너무 다행이었어요.

 

 

 

‘이 소설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던, 가장 재미있는 제주어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많은 단어들을 봤는데요, 말 하나하나가 왜 그런지 처음엔 모르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이런 뜻이구나 이해가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떡꼿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선인장이라는 뜻인데요, 어느 날 보니 선인장이 정말 떡하니 꼿꼿하게 서있는 거예요. 아 이거였구나, 이건 당연히 떡꼿이겠구나 생각이 됐어요. 말을 먼저 보고, 사물을 보며 하나씩 말을 맞춰가는 느낌들이 있었어요. 그 말이 되게 재밌었어요.

 

가파도에도 풀처럼 선인장이 있는 거예요. 강아지풀이 있는 것처럼 선인장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어요. 우리는 화원에 가서 일부러 사와서 기르는 건데, 거기선 작품인 거죠. 그런 풍광의 차이 같은 것들도 말에 남아 있는 것 같았어요.

 

책으로 배우는 제주어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제가 사전에서 가져온 말은 어느 정도의 빈도로 쓰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원고에도 제가 쓴 단어가 엄청난 고어라 이런 말 안 쓴다고 감수를 받고 뺀 게 있어요. 감수자가 너무 필요했는데, 출판사에서 조력을 해주셔서 너무 다행이었어요. 감수 없이는 너무 불안에서 책을 못 냈을 것 같아요.

 

 

 

작업 마무리 후 독서할 여유가 있으셨는지, 요즘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라이브 때는 <말하기를 말하기>를 말씀해주셨어요.

 

,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김연수 선생님 책(<일곱 해의 마지막>) 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지금은 추천사를 쓰려고 원고를 읽고 있는데요, 버지니아 울프가 정원을 가꾸면서 살았거든요. 그 정원을 현재 버지니아 울프의 친척이 아직도 관리를 하고 있대요. 그 사람이 울프의 정원에 대해 쓴 책이 있어요. 울프가 정원에서 보낸 시간이 치유를 위한 시간이었대요. 버지니아 울프가 이 집을 경매로 샀다고 하는데요, 낙찰받으려고 엄청 긴장해있는 모습 같은 게 상상하면 생활인으로서의 버지니아 울프가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도판도 너무 예쁘고요. 제목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듯해서 제목은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봄날의책에서 11월에 출간될 듯해요.

 


 













 

독자분들을 실제로 못 뵌지 오래되었습니다. 알라딘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일단은 거의 다 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의 이 고난도 거의 다 왔다사실 이런 힘든 상황이 일상화되면 우리가 가지게 되는 지혜, 노하우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지혜를 익혀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고, 사람들을 잘 만날 수가 없고, 혼자 있어야 되는 시간이 많아지면 생각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게 대체로 건강하진 못한 방향으로 생각이 옮아가더라고요. 책을 읽으면 또 다른 길을 보여주잖아요. 그럴 땐 소설도 좋고요, 책으로 그 다른 길들을 모색하면서 팬데믹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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