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고 싱그러운, 여름 같은 소설 <경애의 마음>의 김금희 작가를 만났습니다. '마음'에 대해 함께 나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권벼리, 정리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경애'한다는 것



<경애의 마음> 출간 이후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묻고 싶어요.


<경애의 마음>이 나오고 나서 인터뷰도 좀 있고 행사들도 있고 그래서 사실 아직 뭔가를 계속 진행중인 느낌이고, 확 쉬어본 적이 별로 없어요. 아직은 긴장하고 있는 상태예요. 장편이라 확실히 단편집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계속 행사 등이 있어서 아직은 그냥 이 책 안에 있는 느낌이에요.


여행은 도쿄로 다녀왔어요. <너무 한낮의 연애>라는 제 책이 일본에서 봄에 나왔어요. 그게 서점에서 꽂혀있는 걸 보겠다는 생각으로 간 건데 막상 이상하게 도쿄에 가니까 굳이 찾아보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한 이틀은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길을 지나다 중고 악기상 있고, 대학교 있고, 그런 거리에서 대학교 건물에 있는 서점에 들어갔더니 외국문학 책장에 제 책이 있는 거예요. 희열을 느낀 나머지 책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려고 삼십분 넘는 거리를 걸어서 다른 서점에도 또 갔어요. 이 도시가 이제 내 책이 있는 도시가 됐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게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전작 <너무 한낮의 연애>도 제목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한낮에 만난 연애는 어쩐지 불가항력이라 도리가 없을 듯해요. 이 소설 속 인물들, 경애와 상수에게 벌어지는 어떤 일들도 불가항력적인 것들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경애가 어렸을 때 자기 닉네임을 ‘피조물’이라고 하잖아요. 피조물은 ‘있게 된’ 것이죠.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많은 상처들이 우리가 선택해서 생겨난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잖아요. 그 주어진 것을 넘어야 하는게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의 무게인 것 같아요. 경애와 상수에게 일어나는 일들, 경애가 어렸을 때 부딪치게 되는 상황들도 그렇고요. ‘피조물’이라는 닉네임에도 사실 그런 마음을 담은 거였는데 독자분들이 그렇게 읽어주시면 좋겠죠.


쓰면서 생각을 했어요. 이들의 인생에 주어지는 상처들이 있죠. 내가 원치 않는 상처가 내게 주어졌을 때 그걸 넘어서는 힘을 보여주잖아요. 그런 모습이 실제의 삶과 되게 닮아있는 것 같아요. 대단한 일을 하다 상처 입은 건 아니지만, 살아가는 일 자체로도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경애의 마음>이라는 제목이 작가에게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경애’라는 단어도 이 소설 이후 새로운 맥락으로 받아들여질 듯합니다.


‘경애’라는 제목은 갑자기 떠올랐어요. 이 작품을 시작한 게 2016년이었는데요, 장편을 써야 되고 연재를 해야 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경애’라는 이름이 왔어요. 여자주인공은 경애가 되는 거구나. 이 소설 속 두 주인공을 추슬러서 결국에 둘이 서로의 조력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는 게 이 소설의 목표라고 생각했어요. 그 마음의 결을 생각하다 갑자기 팍 떠올랐어요.


계간지에 연재할 때는 제목에 경애(敬愛)라는 한자가 있었어요. 단행본 작업을 하다 디자인상 한자가 들어가면 보기에 나빠서 빠지게 되었는데, 출간 후 인터뷰를 진행하며 만난 기자들이 한자가 없는 게 훨씬 낫다고 하시더라고요.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대요. 그래서 아 그랬구나. 빠지는 게 더 경애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되는 거였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좋아하는 것을 말하기


독서 후 "재밌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좋아한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사랑하게 되고 응원하게 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친구 같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내 주변에 있는 친구 같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 담겨있고, 엄청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 아니고, 일상적인 얘기들이 많잖아요. 물론 소설이고 이야기이지만,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진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 이 소설의 결말을 구상했을 때는 이 인물들이 이렇게 의지적이지 않았거든요.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인물들에게 의지가 생겨서 경애가 일어선다, 인물들이 도드라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장편은 2년을 넘게 쓰니까요, 그 가운데 작가도 변하고 이야기도 쌓이고 하며 작가가 의도한 대로가 아니더라도 인물이 의지를 가지고 변하더라고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결과적으로 쓰는 저에게도 좋고 책에게도 좋은 일이었던 것 같아요.




상수는 일반적인 남성 사회에서는 적응을 하기 어려운 유형의 사람입니다. 처음 상수라는 인물을 상상했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제 주변에 있는 남성들과 자기 속내 얘기를 나누다보면 의외로 상수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결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었어요. 화장실을 가린다든지 하는 점이요. 남자형제가 있는 가운데 성장했을 때 형에게 받은 고통, 아버지라는 존재에 가지는 부담감.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제 또래뿐 아니라 저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이런 얘기를 하실 때가 있는데, 이게 한국사회의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내밀한 상처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 면들을 그려 넣었어요. 상수가 도드라지게 특이한 건 맞죠. 그렇지만 상수라는 인물을 해명하면 상수 같은 어떤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내밀한 상처도 해명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상수의 언어와 경애의 언어가 다른 점도 인상적입니다. 상수는 문어투의 말투를 쓰고, 경애는 욕설도 서슴지 않는 말투를 씁니다. 상수는 실제 사람과의 대화보다는 페이스북 등의 문자로 하는 소통이 더 익숙한 사람일 테고, 경애는 그에 반해 실제 사람과 나누는 말이 익숙한 사람이라는 점도 다를 듯해요.

(주 : 상수는 이런 말투를 씁니다. “박경애 씨, 제가 어떤 사람이나면요. 운전하면서 클랙슨도 한번 안 누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그렇게 규칙을 잘 지켜요. 매뉴얼이 뚜렷하지요.”(54쪽))


둘 다 아웃사이더고 회사에서 내쳐져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과정이 다른 것 같아요. 상수는 개인적인 인물에 가깝죠. 경애는 개인적인 문제도 있지만, 파업문제라든지 주변과의 관계, 공적인 자리에서의 상처가 있는 친구죠. 이 둘이 성장해온 과정을 생각해봐도 상수는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사적인 맥락에서의 아버지 역할은 충실하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랐죠. 반면 경애는 아버지는 없지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한은 충실하게 역할을 해주셨고요. 이런 다른 성장과정을 거친 남녀가 가질 법한 고립감과 연대감의 차이가 이들이 쓰는 언어를 다르게 하는 것 같아요. 상수도 연대를 추구하는 사람이긴 해요. 하지만 경애는 실제 관계에서 풀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고, 상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자기 세상을 만들어서 관계 맺기를 시도해 본 거라고 생각해요.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생각했다.” (71쪽) E, 은총과 연관된 사고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읽으며 화가 났어요. 이 소설에는 이렇게 감정적으로 화가 나는 장면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경애의 투쟁, 경애를 파괴하는 것 같은 산주의 태도 등을 볼 때 그랬어요.


그 장면을 쓰던 순간은 저도 기억이 나요. 스타벅스에서 쓰기 시작했는데, 그 사고, 사건에 대한 서술이 분량이 꽤 되는데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나와서 한번에 썼어요. 그때는 경애가 그 사건을 바라보는 분노감이나 슬픔 같은 것들이 한번에 막 터져 나왔던 것 같아요. 실제 책에 들어간 부분도 처음 쓴 글에서 별로 손대지 않은 상태예요.


제가 인천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는데요, 그 사건(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사고)에 대해서는 이십대의 제가 느꼈던 그런 당혹감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말을 하기 어려운, 인간으로서 비참해진 느낌 같은 거였는데, 그 감정이 떠올랐던 것 같아요.




상수가 경애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경애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좋게 읽혔어요. 

(주 : “상수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기분을 맞춰주고 싶었다.” (47쪽))


좋은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사람이 수그리게 되잖아요. 자기를 꺾고 맞춰주고 싶고 이런 마음이 들어서 자기 마음이 순해지는 순간이 누구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상수가 그런 마음을 가져보는 순간을 생각했어요. 경애와 회식을 하는 상황에도 상수는 자기가 이 팀을 이끌기 위해 경애에게 맞춰준다는 변명을 하지만 이미 그때부터 경애가 자기한텐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된 거죠. 어렸을 때도 상수가 형에 대해서 형이 안하무인인 인간이 된 건 형에게 중요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요.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형이 그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상수에겐 또 다른 밀침처럼 느껴져서 비참해졌다는 서술이 있고요. 자신에게 중요한 누군가가 생겨나는 순간, 상수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은 감정이 낯설어서 부인을 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독자의 눈에는 몸이 낮춰지고 순해지고 풀어지는 그런 느낌이 보이잖아요.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일하는 풍경의 구체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도미싱의 회사 생활에서부터 베트남 파견 근무까지. 노동으로 돈을 버는 생활의 풍경을 활달하게 그리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주 :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도 그런 ‘의미’랄까, ‘본질’이랄까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84쪽))


일하는 사람들을 작가가 그릴 때, 그들을 일종의 타성에 젖은 사람으로 그리는 걸 볼 때 약간 화가 나요. 제가 실제로 만난 사람들이 일을 할 때 풍기는 분위기라는 게 그렇게 수동적이거나 타성에 젖어있기만 하진 않았어요. 저도 그렇고 모두가 일을 하며 살잖아요. 일을 한다는 건 그 일에 자기 삶을 부어넣는 행위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야기의 전달을 위해 일의 측면을 삭제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해요. 실제로 제가 알고 있는 저희 부모님도 일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저렇게까지 성실할 이유가 있나?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웃음) 그 노동을 대하는 자세가 진솔했다는 기억이 있어요. 제가 직장생활을 하며 만난 선배들도 기억해보면 노동을 통해 뭔가 이루고 싶은 마음들이 있었다고 저는 기억을 해요. 그런 결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건 기만 같아서 느끼는 대로 쓴 것 같아요.




비슷한 맥락의 질문인데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는 않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이 부분이 좋게 읽혔습니다.


저도 약간, 하루를 보내면서도 순간순간 제 마음을 다시 단정하게 하고 노력해야 되는 사람이에요. 그게 잘 되지 않을 때는 실제로 일상부터 파괴되거든요. (소설 속 경애처럼) 안 먹고 안 씻고 하는 건 가장 필수적인 것부터 안 하게 되는 거잖아요. 사람이 자기 무게를 감당 못하는 순간이 올 수 있죠. 실제로 저도 그랬기 때문에 하루하루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나가는 게 굉장한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사람들이 ‘내가 되게 열심히 못하고 있네. 나는 왜 이거밖에 안 되지.’ 이렇게 자기 채찍질을 하는 게 안타깝기도 해요. 일을 하고 퇴근해서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그 질서가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상수가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스북 사건 이후 못 씻고 있을 때 경애가 해주는 말 등의 장면을 넣게 되었어요.




피씨통신 동호회, 미투데이 등의 매체에서 페이스북 페이지로 이어지는 동안, 모이는 장소는 달라져도 사람들이 나누고 싶은 마음들은 다 비슷한 결이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경애랑 은총이 ‘번개’를 해서 만나고, 상수와 ‘언죄다’ 회원이 만나고 그런 장면들이 있죠. 이 소설을 쓸 때 문득 이십대들이 ‘번개’를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물 두 살인 친구 동생에게 물어봤는데 모르더라고요. 그게 참 신기했어요. 말은 바뀌는데 온라인 모임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지는 건 그대로인 점이요. 


처음 만나선 낯선 사람이니까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온라인에서 알게된 사람들도 마음에 들어오면 만나고 싶죠. 궁금하고. 제 인스타그램 친구분 중 몇 년 전에 제 소설의 일부를 캘리그라피로 쓰셔서 올려주셨던 분이 계세요. 그 작품이 너무 예뻐서 제가 먼저 ‘좋아요’를 찍었고, 그 인연으로 친구가 되었어요. 그분이 얼마 전 도서전에서 사인회를 할 때 처음으로 오셔서 실제로 뵙게 됐어요. 제가 낸 책이 앤솔러지 등을 포함하면 꽤 많은데, 그 책을 다 가지고 오셨어요. 그 책들에 사인을 해드렸고, 너무 반가워하시고 좋아해주시더라고요. 뭘 주고 가셔서 집에 가서 풀어보니 <경애의 마음> 속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문장을 넣어서 그림을 그려주셨더라고요. 인스타로만 연결되어 있던 분을 실제로 잠깐이지만 만나 뵙게 되었고, 그분이 실제로 자기 손길이 닿은 선물을 주고 가시니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작가로서 응원 받은 게 아니라, 아는 사람으로 응원을 받은 것 같았어요.




이유와 목적이 없이, 단순한 선의로, 사람을 돕는 게 결국 사람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경애에게 하는 주끼박의 충고가 그랬고요, (“내가 한 이삼일 내로라도 짐 싸서 한국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 안 그러면 못 버텨.” 218쪽)) 김유정이 경애에게 해주는 말이 그랬고요. 헬레나와 경애가 스스로 서로를 돕는 모습 역시 참 좋았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그런 식의 도움을 주고받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생기잖아요. 굳이 내가 해야 되는 일은 아니었는데 선의로 누군가를 돕게 되는 일이요. 노동이 쉽지 않죠. 일을 같이 해야 하는 사람들과도 경쟁도 있고 싸워야 하는 순간도 있고요. 그렇지만 마음이 가서 서로 도와서 이 일이라는 것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저는 팀에는 대부분 여자들만 있고, 상사만 남자인 부서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제가 막내였고,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분들이었죠. 실제로 여자 선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런 장면을 쓸 때 제가 직장생활에서 받았던 느낌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그려진 것 같아요.


‘주끼박’이라는 사람은 그 사람이 과거에 했던 행동들을 보면 사실 남성 사회에서 요구하는 폭력성을 익힌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 되기까지 남성 중심의 영업자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두 가지 면을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경애에게 조언을 해줄 때, 경애를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기존 반도미싱 베트남팀이 ‘아작’났으면 좋겠으면 마음도 있었겠죠. 그래서 그런 애매모호한 충고를 했을 거예요. 경애가 주끼박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궁금해서 이런 설정을 넣게 됐어요.




상수가 형이 한 잘못(동급생에게 가한 폭력)에 대해 사과하러 가는 장면에서 피해자 엄마의 신발을 볼 때 묘사가 담담하게 되어 있었는데도 사실 눈물이 났어요.


그 분들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섬에서 올라오신 상황이잖아요. 자기 인생을 완전히 바꾼 거죠. 그런 선택을 하면서까지 아이를 데리고 이 서울이라는 곳에 정착하려 했는데 굉장한 폭력을 마주한 거잖아요. 마음에 후회와 분노도 있을 것 같았고, 저라면 떠나왔던 고향을 생각하게 될 것 같았어요. 파도가 치는 섬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온기라든지요. 그 어머니에겐 극한의 분노가 느껴지는 상황이었겠죠. 이런 상황에서 그 엄마를 다독이고 싶었어요. 서울에는 바다가 없으니까, 대신 나뭇잎이 파도처럼 발을 쓸어주는 장면을 썼어요. 그런 마음을 느꼈으면 했고요.


(주 : 그러는 동안에도 낮의 그 백홍식당의 어느 장면들은 상수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올랐는데, 가장 뚜렷한 건 배웅하려는지 아니면 상수와 일행이 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그 엄마가 식당 앞 보도까지 나와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엄마가 신고 나온 붉은 가죽끈의 샌들 위로 떨어지던 나뭇잎의 어른거리던 그림자들. 그 검정의 그림자들은 발을 덮는 듯도 하고 어둡게 물들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동시에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마치 파도처럼 발을 여러번 쓸어주는 듯했다. (122쪽)




마지막에 상수에게 부장이 전화로 “간곡하게 말하는데 제발 좀 닥쳐”라는 말을 해요. 이 부분이 ‘빵 터질’ 정도로 굉장히 재밌었어요.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을까요?


실제로 닥치라고는 말을 못했지만 그러고 싶은 순간은 되게 많잖아요. 그게 그 상사가 한 말이라서 웃긴 것 같아요. 그 상사에게 상수는 처음부터 부담스러운 상황에 만난 사람이었죠. 그 부장님이 인간적인 면이 있는 분이에요. 상수가 사고를 칠 때마다 어쨌든 해결을 해주시잖아요. 회사측의 입장으로 하는 말이긴 했지만, 그 장면에서도 상수에게 과격하면서도 인간적인 충고를 하게 된 것 같아요. 말 앞머리의 ‘간곡하게’라는 예의바름과 ‘닥쳐’ 사이의 간극이 재미있게 보였으면 했어요.




한강에서 오리배를 탈 때 오리배에 ‘파라다이스’라고 써있어요. 그 장면의 아이러니가 인상깊었습니다.


사람들이 오리배를 왜 한강에 띄울까 띄우는 마음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상업적인 발상이고 사실 촌스러운 발상이죠. 80년대엔 새로운 시설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타는 사람도 얼마 없고요. 그래도 그 시설이 계속 유지된 채로 한강에 떠있다는 건, 사람들의 향수가 들어가 있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오리배가 어떤 시절을 환기할 수 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가 유년을 생각할 때, 화나는 부분, 아름답지 못한 순간들도 떠오르겠지만 오리배를 타던 순간 같은 즐거운 순간도 있었을 거잖아요.

 

물론 산주와 오리배를 본 상황 자체는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연인이었기 때문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둘에게 일어나는 기쁨이 있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유년의 어떤 시절을 환기했을 때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고, 씁쓸하기도 하지만 기억에 남는, 그런 순간들이 있듯이요.




‘은총’이 애틋합니다. 사고가 있지 않았다면 은총이 어떤 어른이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작가가 상상하는 은총은 어떤 사람일지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소설 뒷부분에 경애가 과거라 은총에 대한 기억이 미화된 게 아닐까, 자신의 슬픔이 포장된 건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긴 해요. 그렇지만 경애가 기억하는 은총의 모습이 실제의 그가 맞는 것 같아요. 회상 속에 등장하는 은총이 아이인데도 가지고 있는 의젓함, 건강함이 있어요. 그게 은총이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서 저절로 주어진 것들은 아니거든요. 은총의 가족을 만나는 장면에 나오듯 아버지가 현재 실직한 상태죠. 은총의 동네가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옆 동네인데,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기도 했던 곳이에요. 아이가 건강하지 못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은총은 그런 걸 보듬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기 때문에, 커서도 건강하고 환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읽고 쓰는 마음



인간 김금희로서의 첫 기억이 궁금합니다.


세살 때 기억이 있어요. 제가 문지방에 이렇게 앉아있고 엄마가 부엌에 앉아 있는 장면이었어요. 문지방은 갈색이고 나머지는 청색이었어요. 부엌과 방의 경계에 있는 나, 그게 최초의 기억이에요,




언제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지, 또는 언제 소설가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꿈이 종종 바뀌기는 했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소설가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된 건 중학교 때인 것 같아요. 문예반을 하면서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를 많이 읽었는데, 십대 때부터 좋아하던 작가분과 비슷한 시기에 책을 내게 되어서 신기했어요. 이십년 가량 시간이 지난 거거든요. 소설가라는 직업이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직업이구나, 이게 갑자기 의식이 됐어요.


(주 :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고양이>가 출간되었습니다.) 




“그런 건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 중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부스러기 같은 기억들인데 가장 오래 남는 기억도 그런 것이었다.”(231페이지) 은총과 경애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문장인데요, 작가가 기억하는 ‘부스러기 같은 기억’ 중 지금 소개할 수 있는 기억이 있을까요?


대학 때 연애했던 사람이 있는데요. 연애하기 직전, 약간 관심을 갖고 있을 때 저는 마을버스에 타고 있었고 그 사람은 길을 지나는 걸 봤었어요. 버스가 지나고 그 사람이 지나는데 점퍼에 손을 넣고 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이 지금도 되게 생각이 나요.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차림이 별로 멋있지도 않았어요. 애벌레옷 같았어요. (웃음) 볼록볼록하고 멋없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도 그 순간 되게 건강해보이고 멋있어보였어요. 자기 세계가 건강하면 저럴 수 있구나 싶은, 건강함이 도드라지던 순간이어서 그 장면은 지금까지도 되게 실감있게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주 : 김금희 작가의 이 ‘부스러기 같은 기억’은 <너무 한낮의 연애>라는 소설과 감정의 결이 닿아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경애의 마음>에서 독자에게 읽어주고 싶은 문장, 단락이 있다면.


교회에서 경애가 호프집 사장님 같은 사람을 쫓아가서 “죄를 지었죠?” 묻고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답을 받는 장면이 있어요. 나가는 문이 어디냐는 그 사람의 질문을 받고 대답으로 어떤 방향을 지시하는 순간, 경애의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이 소설에서 경애가 그려지는 거의 마지막 장면이거든요. 완전한 성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저로서는 경애가 자기 내부에서의 한계를 넘었다고 할까, 그런 장면이라 같이 읽어보고 싶은 기분이에요.


주 : 

“죄를 지었죠?”

그래도 경애는 물었다.

“죄를 지었습니다.”

그가 선선히 답했다. 그러자 경애는 더는 물을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기타를 다시 어깨에 메며 경애에게 물었다.

“자매님 여기 출구가 어딥니까? 계단으로 올라가면 들어온 문이 나옵니까?”

경애는 치미는 뭔가를 참기 위해 주먹을 쥐고 있다가 풀며 이내 문이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남자가 그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346쪽)




소설 이외의 책 중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을까요.


저는 사실 소설을 주로 읽어요. 또 최근에는 작업하느라 무거운 책은 못 읽기도 했고요. 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은 <히끄네 집>이에요. ‘히끄’ 계정을 팔로잉하면 매일 아침 고양이 ‘히끄’ 사진을 받을 수 있거든요. 달마다 배경사진을 올려주셔서 지금 제 전화기 배경화면도 ‘히끄’사진으로 되어 있어요.


예전에 읽은 책 중엔 배수아 선생님이 쓰신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이라는 알타이 여행기가 있는데요, 너무 좋았어요. 그 여행의 이국적인 풍경과 선생님이 가진 고유의 리듬이 맞아서 너무 깊으면서도 신비로운 여행기가 되었더라고요.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알타이 남자는 암소로 자기 재력을 뽐내고, 이런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배수아 월드에 대해 찬양하게 됐어요.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사연을 보낼 ‘언니’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 인데요, (주 : 이하 내용엔 <디스코 멜랑코리아>라는 작품 내용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디스코 멜랑코리아>라는 작품의 감동에 대해서 오늘도 생각했어요.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랑에 상심한 사람들이겠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상처라는 게 언니한테 사연으로 보낼 때는 솔직해지고 세세해지잖아요. 이 작품을 읽을 때 그렇게 사랑 얘기를 듣는 것 같았어요.


두 남자가 만났는데 거기에서 만난 상대가 ‘나는 몸을 중요하게 생각해’라고 말을 해요. 소설에서 나타난 걸로는 내가 그 사람이 원하는 체형은 아닌 것 같아요. 연애 상황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라는 게 공통된 부분이 있죠. 제가 가슴 아팠던 건, 자기 고향에 이 처음 만나는 사람을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보낸 뒤 자기 집에 있는 티셔츠를 가져다가 입혀줘요. 연락처 교환도 안 했고 하루로 끝나는 연애인데요. 


제가 <경애의 마음>에서 미싱 회사에 관심을 가진 것도 실은 그 생산물이 옷이라는 점 때문이었어요. 옷이라는 게 자기 일부인 셈이잖아요.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떠나면 이 사랑도 정리가 되죠. 자기 일부와 다름없는 ‘옷’을 주었고, 이별하게 되는 순간 떠나는 이를 보며 “너에게 이 계절을 주고 싶다, 날씨를 주고 싶어, 그건 내가 아는 최고의 선물이고”(120쪽)라고 감정을 토로해요. 이 순간의 감정이 슬픔과 환희가 다 얼룩진 상태라고 생각했고요, 사랑이 가진 밀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빵빵하게 차오르는 순간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언니는 죄가 없다’에 사연을 보내고 싶은 언니들이 있다면 신간이지만 소설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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