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없이 자동으로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그저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어떻게 배달할지, 누구한테 무슨 일을 맡길지, 받을 돈을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에 닿아 있었다. 내일이 저물 때도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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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뤼카는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하게, 꿈꾸는 사람은 꿈을 꾸게 하라"라고 했다. "호기심의 대상이 유용해 보이는지 쓸모없어 보이는지는 걱정하지 마라. 현명한 아낙사고라스가 말했듯이 '만물 안에 만물'이 있으니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철학은 수천 년 동안 수학적 탐구를 이끌어왔으며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라. 꿈꾸는 사람이 꿈꾸게 하라. 학생들이 수업 중에 낙서하게 하라. 실용적인 것과 비실용적인 것, 요점이 있는 것과 요점이 없는 것, 이상함과 이상적인 것 사이에서 허상의 경계를 지키려 하지 마라. 그 모두가 동일하게 거의 전인미답인 광활한 대륙에 속해있으니 말이다.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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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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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미스터리 소설의 1인자'라는 타이틀을 보면서, 이런 홍보문구가 오히려 기대감을 높이게 되어 실상 책을 읽으면 그다지 유머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신뢰할수가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뭐랄까...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피식 거리면서 실소하게 된다. 가볍게 읽는 미스터리의 의미가 아니라 그 유머코드가 온갖 오마주를 떠올리게 하면서 즐겁게 하고 있어서 크큭거리며 소설을 읽게 된다는 의미다.


유언장 공개를 위해 밀봉서류를 열다가 이십여년 전 행방불명 된 사이다이지가의 쓰루오카를 포함해 가족이 모두 가문소유의 섬에 있는 별장에 모인 후 그곳에서 유언장 개봉을 하라는 글을 읽고 쓰러져버린 심약한 변호사 아버지를 대신해 유언장 개봉을 맡게 된 야노 변호사와 유명한 사립탐정 어머니의 이름을 내걸고 탐정사무소를 연 고바야카와가 행방불명이던 쓰루오카를 찾아 섬으로 향한다. 등장인물들의 설정 자체도 어건 뭐지? 하게 되지만, 오래 전 토이스토리를 보다가 '아임 유어 파더'하는 장면에서 박장대소를 했던 것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오마주 패러디는 전체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큰 즐거움을 준다.


외딴섬에 있는 거대별장에 유언장의 내용을 듣기 위해 초대된(!) 이들이 모이고 그들은 기상악화로 인해 섬에 갇히게 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동안 백권이 넘는 '명탐정 코난'을 읽으며 왠지 어디선가 봤었던 서사 구조를 떠올리며 당연히 범인은 이들 중 하나,일테니 알리바이와 원한관계 등등 온갖 예측을 다 해본다. 그런데 웃긴건 그 비슷한 서사 구조에서 반복됨의 지루함이나 독창적이지 못한 심심함이 아니라 뭔가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그러면서 또 비슷한 - 말장난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책을 읽으며 이런 비슷한 느낌의 유머코드를 느꼈다. 이 코드가 맞는다면 나처럼 키득거리며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려나 싶다. - 신선함의 미스터리 이야기를 읽어서 느낌이 꽤 좋다.


책을 읽으며 굳이 별장의 구조도가 실려있는 것을 보고, 방에 들어가기 위해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고 내린다는 묘사에서 분명 구조안에 트릭이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트릭을 풀고 범인을 찾아내는 건 내 역할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그냥 이야기의 흐름 자체를 즐기며 소설을 읽었는데, 살인사건이 일어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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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아래 모든 것들이 형태를 드러냈다. 파괴된것은 더 파괴되었고 척박한 것은 더 척박해졌다. 큰비가 시골 사람들을 도처에매몰시켜 버렸다. 쓰러진 쓰레기더미는 물에 깨끗이 씻겼다. 무수한 물고기들이 양어장에서 도망쳐 나왔다가 전부 베틀후추밭에서 죽고 말았다. 추풍나무는 잎의 절반을 잃었고, 삼합원의 천장에서는 줄곧 물이 샜지. 우리 집은 완공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타운 하우스였는데도 벽에서 물이 새고 하얀 칠이 벗겨졌다. 나는햇볕 아래 서서 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빗소리는 이미 내 청각 속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귓속에서 그 빗소리를 파내고 싶었다.
그 우박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비가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비 때문에 아찬이 보고 말았다.
천씨네 작은아들과 왕씨네 작은아들을 보게 된 것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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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탁자 가득 제물을 차리면서 귀신들과 외로운 혼귀들을 먹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제물은 인간의 사욕일뿐이다. 사람들은 안전함이 부족할수록 죽음을 더 두려워하게 되고, 귀신들에게 바치는 제물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제사상 위의 제물도 갈수록 풍성해진다.
사실 제물이 풍성할수록 귀신들은 더 고독하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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