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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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에코의 책은 쉽지 않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래서 자꾸 망설여지지만 또 에코의 책은 묘하게도 자꾸만 끌리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래서 '적을 만들다'라는 뭔가 한번 더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 책을 이번만큼은 진중하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더구나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이라니.

 

에코의 책을 읽을때마다 - 물론 많이 읽어본 것도 아니지만 그가 쓴 소설이나 산문을 읽다보면 어떤 부분은 너무 흥미로우면서 재미있고 또 어떤 부분은 도무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때가 있다. 그 차이가 뭘까..싶었는데 아무래도 내게 있어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아는 만큼 그의 글에 대한 흥미를 느끼며 즐길 수 있다는 뭐 그정도?

2천년대 이후에 쓰여졌다는 이 글들은 아주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매체에 실린 것이며 강연을 하고 조금 더 다듬고 추가해서 정리한 글도 있다. 그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쓴 글도 있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에 실려있는 열 네편의 이야기가 모두 다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몇몇의 이야기는 쏙 빠져들만큼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보물찾기'였는데 아마도 몇년 전에 이미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기 때문일수도 있고, 나 개인적으로는 성지순례를 다니면서 봤던 성인들의 유물, 유품들이 떠오르면서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라서일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예전에 이스라엘에 갔었던 분에게 십자가를 선물 받았는데, 그 십자가 나무의 아랫부분에는 유리성구함처럼 만들어져 있는에 그 속에 골고타 언덕을 오를 때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진 십자가의 조각이랬나 뭐랬나 그랬는데, 그때 선물을 한 사람이나 받는 나 역시 이 세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조각을 다 모으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들 수 없는 거대 십자가가 나올꺼야라는 농담을 한 기억이 난다. 에코의 글은 바로 그러한 점을 이야기하면서도 한 수도사와의 대화를 언급하며 그 보물들에 대한 다른 관점으로의 접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성유물을 견학할 때 과학적인 태도로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합리적인 사고로 본다면 신앙심을 잃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2세기 독일의 한 성당에 열두 살 나이의 세례자 요한의 두개골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했다. 언젠가 나는 아토스 산에 있는 한 수도원에서 도서관 사서 수도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그가 파리에서 롤랑 바르트의 학생이었으며 1968년의 저항 운동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가 교양과 의식을 갖춘 사람이라 여기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그가 매일 아침 새벽에, 그리고 한없이 이어지는 장엄한 종교 의식 동안에 마음을 다해 입을 맞추는 그 성유물들이 진짜라고 믿는지. 그는 이해한다는 눈빛을 담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문제는 성유물의 진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있으며, 그는 성물에 입을 맞추면서 신비스러운 향기를 느낀다고 했다. 요컨대 성유물이 신앙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그 유물을 만든다는 것이다.(107)

이처럼 에코의 글을 읽다보면 뭔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풀어놓으며 맹목적인 믿음이나 어리석은 생각에 대한 풍자를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 한번 더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적을 만들다,라는 것 역시 시작은 무척 가볍다. 누군가 이탈리아에 적이 있냐고 묻지만 그는 단연코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곧 진정으로 이탈리아에는 적이 없는가 라는 고민을 하게 되고 외부의 적은 없지만 진짜 적이 누구인지 결코 의견합일을 볼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부의 적들에 대한 이야기는 왠지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풍자처럼 느껴지고 웃음이 터져 나오게 된다.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외부의 적도 있는 것 같지만 우리 역시 진짜 적이 누구인지 의견합일을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너무도 많아서 어느 하나를 톡 끄집어 낼 수 없다던가.

 

이제 에코의 글은 무조건 어렵다 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다양한 주제와 풍자, 철학들을 모두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은 충분히 즐기며 읽을 수 있을테니 괜한 조급함으로 그의 모든 글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왠지 이제는 에코의 글은 재미있다,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먼저 떠오를 것만 같다.

"사물이 존재하거나 흘러가는 방식은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증명은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벽을 통과하려다가 내 코가 깨진다는 것도 있다. 죽음과 그 벽은 우리가 의심할 수 없는 절대의 유일한 형태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때, [노우!]라고 말하는 그 벽의 현존은 아마도 절대의 수호자들에게는 아주 소박한 진리의 기준일 것이다. 하지만 존 키츠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것이 그대가 이 세상에서 알 수 있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다."(70) 라는 글을 읽는 느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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