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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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경멸해오긴 했지만 두개의 점 사이에 확실한 선이 이어지는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내가 그런 확실한 선을 경멸했던 것은 문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런 선이 모든 희망을 앗아가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인물이든 가공의 인물이든 모든 이는 삶에서 열린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다" [227, 아버지와 나눈 대화]

 

그레이스 페일리라는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어떤 글을 쓰는걸까, 싶어 작가의 이력을 보니 뭔가 실천문학일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녀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답답해진다. 도무지 왜 이런 전개를 해야하는지 이해할수가 없었고 왜 자꾸 무섭기만 한지... 그런데 그녀가 작품속에 슬쩍 담아놓은 글을 읽으니 왜 그랬는지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선을 경멸했던 것은 그런 선이 모든 희망을 앗아가기 때문이라니. 그리고 현실이든 가공이든 모든 이는 삶에서 열린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다니.

 

무심코 글을 읽다보면 그 맥락을 놓쳐버려 도무지 내가 무얼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단편을 읽어나가다가 놓칠뻔한 행간을 읽고 순간 순간 멈칫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작가의 일본판을 번역한 하루키가 '그레이스 페일리의 중독적인 '씹는 맛'이라고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씹으면 씹을수록 자꾸만 어둠의 세계를 보게 되는 것 같아 우울하다. - 물론 내가 그녀의 모든 작품을 다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싶은 글은 나중에 다시 곱씹는 맛을 느껴보련다.

 

어제 저녁 시사프로그램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과 연기력을 인정받는 유명배우에 대한 성폭행 사건을 다루었다.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어 아직 뭐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지만, 이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미투로 인해 알려진 여성에 대한 온갖 폭력들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여성뿐인가, 인종차별과 가난한 이들에게 닥쳐오는 현실의 삶의 모습은 희망을 먼저 떠올리기보다는 끔찍한 사실들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 역시 그레이스 페일리가 작품 속에 녹아내고 있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레이스 페일리의 작품이 사실묘사에 가까운 현실이라면 지금 우리의 현실은 열려있는 운명을 누리기 위해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며 더 미래의 세계에는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그런 세상을 이뤄나가기 위해 행동해야 할 때이다. 그레이스 페일리의 글들은 행동의 시작인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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