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연 진일보하는가?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 권력을 단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고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고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들은 혹은 그런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해야 했고,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하고, 패가망신해야 했습니다.

이에 600년간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며, 외면했습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이나 부지하면서 밥이나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백 년의 역사. … (중략) … 이제 우리는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부패하고 불의한 권력에 당당하게 맞설 때야만 비로소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면서 했던 연설의 일부로 정의가 살아 숨 쉬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일성에 다름 아니었다.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권력을 놓고 국민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다짐과도 같았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어떠한가? 정의가 살아 있고, 부조리가 없으며, 부정부패가 없는 평등한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역사는 진일보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14년 한국 사회를 관통한 단어는 '슬픔'과 '분노'였다. 이는 수많은 어린생명을 앗아갔던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무기력하고 무능한 정치권의 소통 부재와 과거 회귀, 재벌과 있는 자들의 모럴헤저드(갑질), 비상식과 모순, 부조리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국민은 분노했고, 슬퍼했으며, 절망에 빠졌다.

불의하고 부조리한 세상, 앞장서서 몸을 던지다

1800년대 후반 조선은 친러파·친일파·친청파 등으로 나뉘어 권력 다툼을 벌였다. 그 결과, 한 나라로서 가져야 할 당당함과 자주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권력자에 빌붙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부를 차지하려는 부패한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은 그렇게 망하고 말았다.

한 시대가 부패하면 부패할수록 개혁과 변혁에 대한 의지가 높아진다. 또 그런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변혁에의 꿈을 다질 수밖에 없다. 설령, 그 자신이 변혁의 주인공은 되지 못하더라도 자신보다도 뛰어난 누군가가 변혁의 실천자로 나서주기를 바란다.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 중에는 백 년, 아니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도 있었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

조선 건국을 주도했던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 개혁주의로 이상 정치를 추구했던 조선 선비의 사표 조광조, 대동사상을 꿈꾸었던 조선 최초의 공화주의자 정여립, <홍길동전>의 저자로 역모사건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한 조선의 아웃사이더 허균, 조선의 자주와 근대화를 꿈꿨던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 민족 종교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선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김개남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상식이 통하며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없는 세상을 꿈꿨다. 나아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자애로우며,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서 몸을 던졌다. 하지만 국왕을 위시한 유교 중심의 조선에서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고, 나아가 개혁을 말하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것과도 같았다.

아마 그들 역시 각자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살았더라면 높은 벼슬을 지내고 호화스럽게 잘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은 신념과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 결과, 대부분 불우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나아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긴 했지만 역적 혹은 패배자로 기록되고 말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위험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뚫어 놓은 길만 다니는 자들이다. 소리칠 것인가"라는 황동규 시인의 시 구절처럼 다른 사람들이 미리 잘 닦아 놓은 길, 그 길을 편하게 걸어가 평탄하게 살다가 '가족들 잘 건사하고 살다가 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아갈 뿐이다. 이에 극히 일부 사람들만이 아무도 가지 않은 가시밭길 험한 길을 택한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왕권 중심의 봉건주의 사회였다. 그런 연유로 그들처럼 앞선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시대와의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그들의 사상은 당대에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이에 그들은 역적 취급을 받거나 날도적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과연 그들의 실패를 온전히 실패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세상과 역사가들의 평가이다. 세속의 평가와 역사가의 평가는 다르다. 그들의 아름다운 정신은 지금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다. 이는 역사가들이 세종이 아닌 정조를 조선 최고의 왕으로 더 높이 받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승리자들만 가득 찬 세상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 그나마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패배자들이다."

볼프 슈나이더가 그의 저서 <위대한 패배자>에서 한 말이다. 그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하였다. 이는 현상의 실패가 패배가 아님을 통찰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시점과 방향의 오류가 있었을 뿐이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과연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알다시피, 역사는 늘 승자의 입장에서만 기록되고 보존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제아무리 진실 된 영웅이었다고 하더라도 싸움에서 패하는 순간, 그는 혹세무민하고 나라를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역적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슬픈 자각이 밀려들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의 현실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자각, 나아가 세월이 격동 치며 흘러갔지만, 이 땅의 민초들을 옥죄는 부조리하고 불의한 문제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서 오는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모순과 불평등이 판치는 부조리하고 불의한 시대에 태어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들. 아마 그들이 다시 살아온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까.

"그때와 비교했을 때 과연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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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좋은 변화를 가져다줄 지식의 바다! 

더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줄 꿈의 도서관!
루이앤휴잇 출판사입니다. 루이앤휴잇은 2008년 인문/역사, 문학 브랜드인 판테온하우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50여 종의 양서를 출간한 출판계의 다크호스입니다. 

지금까지 출간한 책으로는 2008년 유수의 언론과 교보문고 등에 의해 

올해의 책 10종 중 1권으로 선정된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를 비롯해 

문화관광부 우수교양 도서로 선정된 <가슴이 시키는 일>,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등의 

다수의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그밖에도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선정, 2015년 6월에 읽을만한 책으로 선정된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그리고 도서관 사서교사들이 강력 추천한 <슬로우 스타터>, <다치고, 상처받고, 그래도 나는 다시> 등이 있습니다.   

 

 

 

 

루이앤휴잇의 서포터즈가 되어주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재치를 가지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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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양질의 책을 통해 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어제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오랜 동안 기억에 남을 최고의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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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스타터 - 짜릿하고, 통쾌한 인생 역전의 묘미
김이율 지음 / 루이앤휴잇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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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 [오늘의 책]에 소개된 기사를 보고 망설이지 않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저처럼 느린 사람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니까요. 저 역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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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몇 번쯤 넘어지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이때 사람들의 선택은 둘로 나뉜다. 다시 일어서서 달리는 자와 그대로 멈춰버리는 자. 그 선택에 누구도 간여할 수 없다.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한 고통과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삶에 대한 의지를 더 강하게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고통과 고난 역시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절망과 희망의 끊임없는 반복이자 싸움이다. 무더운 여름을 잘 견뎌야만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을 수 있고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만 꽃이 만발한 봄을 껴안을 수 있듯이, 절망 끝에는 언제나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이라는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그리고 절망보다는 희망이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

 

 

[다치고, 상처받고, 그래도 나는 다시]라는 책이 있다. 책에는 총 1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의 처음 시작은 무수한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이를 극복해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무수한 고난과 시련, 역경을 극복하고 정상에 우뚝 설 수 있도록 했을까. 

 

책은 무수한 고통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뜨거운 열정, 도전, 그리고 투혼을 오롯이 담고 있다. 여기에 그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 및 솔루션을 통해 살면서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해나갈 수 있었던 방법을 제시한다. 이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특히 젊은 날의 상처와 번뇌를 가득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시인 도종환은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어난다.


그렇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삶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 외롭고 힘들 때, 다치고 상처받을 때 다음과 같이 주문을 외우며 마음 속의 각오와 열정을 다시 한 번 다져보는 건 어떨까.
“다치고, 상처받고, 그래도 나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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