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1

 

삶이란 표지판 없는, 낯선 길을 걷는 것과도 같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벽에 가로 막히기도 하고, 장애물이 나타나 걸려 넘어지기도 하며,

생각지도 못한 일로 상처받기도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 일어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지,

삶에 쫓긴 나머지 제 페이스를 잃고 흔들이며 방황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방향(목표)만 분명하다면, 힘들 때 잠시 멈춰 쉬었다 가도 좋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2

 

좀 늦어도 괜찮아, 방향만 확실하다면

 

소설가 박완서는 40세에 등단했다.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 빅토르 위고는 60세 때

'레미제라블'을 발표했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62세 때 발표했고, 히치콕은 필생의 역작 '사이코'를 61세에 완성했다.
우리가 그들을 거장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 작품 때문이지 몇 살에 뭘 했느냐가 아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빠르지도 빛나지도 않았다.

다만, 하나의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을 뿐이다.

이번 주 책인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루이앤휴잇)'에서 저자인 수영과 전성민은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방향만 확실하다면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저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버리고 떠나기'까지

모두 20개의 메시지를 전한다.

메시지를 보면 삶이란 표지판 없는 낯선 길을 걷는 것과도 같음을 알 수 있다.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는 그 길에서 누구나 수없이 넘어지고 깨진다.

하지만 방향이 정해져 있다면 가는 길이 아무리 복잡하고 흔들려도 상관없다.

책을 추천한 독서 동아리 '혜이리'는 "삶이 불안해지고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

따뜻한 위로와 명쾌한 지침이 된다"고 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3

우리는 천천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 빨리 어딘가에 도착하기만을 바란다

 

 

 

사람들은 흔히 삶에서 누가 먼저 앞서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작은 그저 시작일 뿐이다.
삶은 몇 살까지 반드시 뭘 해야 하고, 어디에 도착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맞춰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런데도 우리는 천천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 빨리 어딘가에 도착하기만을 바란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즉, 자신이 목표로 하는 삶을 향해 올바로 나아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방향(목표)이 확실한 사람은 아무리 거친 길이라도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방향(목표)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4

 

당신은 지금 왜 달리는지,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 알고 있는가?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현재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스트레스와 불안은 모든 것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우리는 무수한 선택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곤 한다. 대체 뭘 얼마나 이루겠다고.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지금 당장, 그것도 가능한 빨리 해치우려고 하는 우리의 욕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혜민 스님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말이 맞습니다. 방향을 잘 잡으려면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답보다 내면에서 나온 답을 스스로 찾으세요. 간

절하면 내가 뭘 원하는지 보여요.”
- 혜민 스님

 

사람의 인생을 ‘아흔’으로 생각하고, 이를 축구경기에 비교하면,

아직 전반전도 채 끝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 전반전의 잔여시간과 후반 45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니 몇 골을 먹었다고 해도 중간에 작전만 제대로 세운다면 만회할 시간과 기회는 충분하다.

잘만 하면 통쾌한 역전승의 묘미를 맛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삶의 방향이 분명하면 온 삶이 분명해지지만 삶의 방향이 분명하지 않으면 모든 삶이 불안해지고

문제투성이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방향이 정해졌다면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속도라는 허망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천천히, 멈추지 말고 끝까지 가라.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수영, 전성민

 

 

 

'누가 먼저 출발하느냐'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에 집착하는 요즘,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에선 방향만 확실하다면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소설가 박완서가 40세에 등단했고 프랑스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는 빅토르 위고는 60세에 역작 '레미제라블'을 탄생시켰다고 소개한다. 히치콕의 역작 '사이코'도 61세에 완성됐고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내놓은 건 62세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처럼 우리가 기억하는 건 그들의 작품이지 그들이 언제 시작했는지가 아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빠르지 않았지만 한 방향을 잡고 꾸준히 걸어갔다.
 
사람의 인생을 '아흔'으로 생각하고, 이를 축구 경기에 비교하자면 아직 전반전도 채 끝나지 않은 이들이 많은데 벌써 좌절하기는 이르단다. 전반전 잔여시간과 후반 45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설사 몇 골 먹었다고 해도 작전만 잘 세우면 충분히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삶이 불안해지고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명쾌한 지침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방향만 확실하다면,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스트레스와 불안은 모든 것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우리는 무수한 선택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곤 한다. 대체 뭘 얼마나 이루겠다고.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지금 당장, 그것도 가능한 빨리 해치우려고 하는 우리의 욕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혜민 스님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말이 맞습니다.

방향을 잘 잡으려면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답보다 내면에서 나온 답을 스스로 찾으세요.

간절하면 내가 뭘 원하는지 보여요.”   
- 혜민 스님

 

 

 

삶이란 표지판 없는, 낯선 길을 걷는 것과도 같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벽에 가로 막히기도 하고, 장애물이 나타나 걸려 넘어지기도 하며, 생각지도 못한 일로 상처받기도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 일어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지, 삶에 쫓긴 나머지 제 페이스를 잃고 흔들이며 방황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방향(목표)만 분명하다면, 힘들 때 잠시 멈춰 쉬었다 가도 좋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삶의 방향이 분명하면 온 삶이 분명해지지만 삶의 방향이 분명하지 않으면 모든 삶이 불안해지고 문제투성이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방향이 정해졌다면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속도라는 허망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천천히, 멈추지 말고 끝까지 가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의와 부정, 모순, 부조리에 맞선 조선의 개혁가들

정의는 살아 있는가? 2014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단어는 ‘슬픔’과 ‘분노’였다. 정의가 살아 있고, 부조리가 없는 평등한 사회였다면 절대로 없었을 단어다. 그 정점은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수장됐던 세월호 참사있었고, 전 국민은 비탄과 절망을 경험해야 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모순과 불평등이 판치는 부조리하고 불의한 시대에 맞서 실패할 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삶을 추적한 책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한다>가 출간됐다.

 

한 시대가 부패하고 불의할수록 개혁과 변혁에 대한 의지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조선 5백 년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 중에는 백 년, 아니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도 있었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

 

이 책은 불의하고 부조리한 시대,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선 건국을 주도했던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 개혁주의로 이상 정치를 추구했던 조선 선비의 사표 조광조, 대동사상을 꿈꾸었던 조선 최초의 공화주의자 정여립, 역모사건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한 조선의 아웃사이더 허균, 조선의 자주와 근대화를 꿈꿨던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 선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김개남 등의 삶을 다룬다.

 

이들은 말한다.

“이 어지러운 세상,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으랴.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 모순, 불평등을 변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라.”

“온 세상이 썩은 지 오래다. 부패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저자 신정일은 상식이 통하고,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없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조선시대에 있었지만 국왕을 위시한 유교 국가 조선에서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고, 개혁을 말하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것과도 같았고, 그 결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긴 하지만 패배자 혹은 낙오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 우리 사회의 병폐와 구폐를 파헤치고, 해답을 구하다


이 책을 읽으면 분노와 함께 슬픈 자각이 함께 전해질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의 현실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자각, 나아가 세월이 격동 치며 흘러갔지만, 이 땅의 민초들을 옥죄는 부조리하고 불의한 문제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깨달음이다.

 

다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의 일부다.

 

“조선 건국 이래 6백 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 권력을 단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고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고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들은 혹은 그런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해야 했고,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하고, 패가망신해야 했습니다. 이에 6백 년간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며, 외면했습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이나 부지하면서 밥이나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백 년의 역사. … (중략) … 이제 우리는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부패하고 불의한 권력에 당당하게 맞설 때야만 비로소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의와 상식이 살아 숨 쉬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로자 했다. 그만큼 조선 이후 한국 사회는 부정부패와 불의, 부조리, 모순된 이념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어떠한가? 정의가 살아 있고, 부조리가 없으며, 부정부패가 없는 평등한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이렇듯 우리에게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한다> 동영상 보기(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tvcast.naver.com/v/2796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삶에는 목적의식과 방향이 중요해, 남 흉내 내지 말고 자신만의 꿈이 있어야

 

 

지난 23일 부산 부전도서관 인근 커피숍에 독서 동아리 '혜이리' 회원들이 모였다. '혜이리'는 지혜(慧)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里)이란 뜻이다.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2012년 11월 결성된 이 독서 동아리는 격주로 일요일에 토론회를 연다. 이날은 수영·전성민의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를 읽고 생각을 나눴다. 

강선영 회장이 "책을 읽은 전반적인 느낌을 이야기하자"며 토론의 서막을 열었다.

"여러 인물의 에피소드를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 목적 없이 분주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됐어요."(박준우) 

"삶의 방향성을 잡으라는 이야기가 원론적이어서 참신성은 떨어졌어요. 삶의 방향을 시기별로 나눠 구체적으로 알려 줬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이지영) 

"인생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됐어요."(조영훈) 

저자들은 삶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방법으로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뜻하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 작성을 제안한다.  

젊은 세대의 버킷리스트는 다채로웠다. 

"한국사 공부, 기타 배우기."(한진숙), "패러글라이딩, 주 5일 운동. 혼자서 일본 여행, 인간관계 정립"(이지영), "건강과 가족 챙기기"(신영심), "새해 악기 배우기, 직장 있는 지역에 정붙이기"(이창민) 등 답변이 나왔다. 

한진숙 씨는 "버킷리스트는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고,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하나의 에너지가 된다"고 말했다. 

책에는 수많은 명언이 등장한다. 참석자들은 어떤 구절에서 시선을 멈췄을까?

"성공과 실패의 일차적인 원인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가슴은 간절한 욕망과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하다."(박준우) 

"지금이 최악이라고 말할 기력이 남아 있다면 아직은 최악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말이죠."(이주용)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라."(한진숙), "삶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라."(신영심), "언제까지 생각만 할 것인가?"(이창민)도 언급됐다. 

강 회장이 책 제목을 언급하며 참석자들에게 "삶은 속도가 아닌 방향인가?"라고 물었다.

"방향만 확실하면 속도가 붙어요. 무작정 속도만 내면 가고 싶은 곳에 못 갑니다. 목적의식과 방향이 중요해요."(조영훈) 

"방향이 꿈이라면 속도는 노력이죠."(이주용) 

"원하는 것을 찾아 실행하고 꿈을 향해 가면 속도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신영심)

강 회장이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꿈을 이뤘다. 남들의 꿈을 흉내 내고 따라 하기보다 우리만의 꿈을 꿔야 한다"며 토론을 마무리 지었다.

 

책을 추천한 독서 동아리 '혜이리'는 "삶이 불안해지고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 따뜻한 위로와 명쾌한 지침이 된다"고 했다. 

김상훈 기자 nea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는 과연 진일보하는가?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 권력을 단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고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고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들은 혹은 그런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해야 했고,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하고, 패가망신해야 했습니다.


이에 600년간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며, 외면했습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이나 부지하면서 밥이나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백 년의 역사. … (중략) … 이제 우리는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부패하고 불의한 권력에 당당하게 맞설 때야만 비로소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면서 했던 연설의 일부로 정의가 살아 숨 쉬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일성에 다름 아니었다.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권력을 놓고 국민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다짐과도 같았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어떠한가? 정의가 살아 있고, 부조리가 없으며, 부정부패가 없는 평등한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역사는 진일보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14년 한국 사회를 관통한 단어는 '슬픔'과 '분노'였다. 이는 수많은 어린생명을 앗아갔던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무기력하고 무능한 정치권의 소통 부재와 과거 회귀, 재벌과 있는 자들의 모럴헤저드(갑질), 비상식과 모순, 부조리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국민은 분노했고, 슬퍼했으며, 절망에 빠졌다.



불의하고 부조리한 세상, 앞장서서 몸을 던진 사람들


1800년대 후반 조선은 친러파·친일파·친청파 등으로 나뉘어 권력 다툼을 벌였다. 그 결과, 한 나라로서 가져야 할 당당함과 자주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권력자에 빌붙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부를 차지하려는 부패한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은 그렇게 망하고 말았다.


한 시대가 부패하면 부패할수록 개혁과 변혁에 대한 의지가 높아진다. 또 그런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변혁에의 꿈을 다질 수밖에 없다. 설령, 그 자신이 변혁의 주인공은 되지 못하더라도 자신보다도 뛰어난 누군가가 변혁의 실천자로 나서주기를 바란다.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 중에는 백 년, 아니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도 있었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


조선 건국을 주도했던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 개혁주의로 이상 정치를 추구했던 조선 선비의 사표 조광조, 대동사상을 꿈꾸었던 조선 최초의 공화주의자 정여립, <홍길동전>의 저자로 역모사건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한 조선의 아웃사이더 허균, 조선의 자주와 근대화를 꿈꿨던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 민족 종교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선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김개남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상식이 통하며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없는 세상을 꿈꿨다. 나아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자애로우며,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서 몸을 던졌다. 하지만 국왕을 위시한 유교 중심의 조선에서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고, 나아가 개혁을 말하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것과도 같았다.


아마 그들 역시 각자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살았더라면 높은 벼슬을 지내고 호화스럽게 잘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은 신념과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 결과, 대부분 불우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나아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긴 했지만 역적 혹은 패배자로 기록되고 말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위험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뚫어 놓은 길만 다니는 자들이다. 소리칠 것인가"라는 황동규 시인의 시 구절처럼 다른 사람들이 미리 잘 닦아 놓은 길, 그 길을 편하게 걸어가 평탄하게 살다가 '가족들 잘 건사하고 살다가 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아갈 뿐이다. 이에 극히 일부 사람들만이 아무도 가지 않은 가시밭길 험한 길을 택한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왕권 중심의 봉건주의 사회였다. 그런 연유로 그들처럼 앞선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시대와의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그들의 사상은 당대에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이에 그들은 역적 취급을 받거나 날도적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과연 그들의 실패를 온전히 실패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세상과 역사가들의 평가이다. 세속의 평가와 역사가의 평가는 다르다. 그들의 아름다운 정신은 지금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다. 이는 역사가들이 세종이 아닌 정조를 조선 최고의 왕으로 더 높이 받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승리자들만 가득 찬 세상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 그나마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패배자들이다."


볼프 슈나이더가 그의 저서 <위대한 패배자>에서 한 말이다. 그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하였다. 이는 현상의 실패가 패배가 아님을 통찰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시점과 방향의 오류가 있었을 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알다시피, 역사는 늘 승자의 입장에서만 기록되고 보존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제아무리 진실 된 영웅이었다고 하더라도 싸움에서 패하는 순간, 그는 혹세무민하고 나라를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역적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슬픈 자각이 밀려들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의 현실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자각, 나아가 세월이 격동 치며 흘러갔지만, 이 땅의 민초들을 옥죄는 부조리하고 불의한 문제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서 오는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모순과 불평등이 판치는 부조리하고 불의한 시대에 태어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들. 아마 그들이 다시 살아온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까.


 

 

"그때와 비교했을 때 과연 지금은 무엇일 달라졌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