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라는 큰 이야기 줄기를 기준으로 사법체계에 대한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일본의 것을 거의 따르고 있는 점에서 이 책의 내용은 충분히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대법원의 사법거래 의혹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다만, 이 책에서는 경찰과 검찰의 조직논리와 오만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고, 법원은 사법체계의 마지막 보루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거래 의혹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에 대해 생각이 들게 한다. 경찰과 검찰을 독선과 오만을 견제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법원에서 발생한 사법거래 의혹은 그야말로 법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시스템의 마지막 댐이 무너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한 평론가의 말이 이 책의 정체성을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사법의 정의와 원죄라는 주제 자체는 신선하지 않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히, 전방위로 철퇴를 내리는 작품은 드물다˝



백 명, 아백명이 모인 현장에서도 그래. 그런데도 당신들은 정말로 단 한 번도 틀리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가? 건축과 범죄 수사를 똑같이 취급하지 마십시오. 즉시 그렇게 되받아치려 했지만 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p.82

검은 힘을 뜻하고 천칭은 선악을 판단하는 정의를 뜻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는 뜻일까. 그러나 테미스 상에는 검을 치켜든 것과 천칭을 치켜든 것 두 종류가 존재한다? 최고 재판소의 테미스 상이 오른손에 쥔 검을 높이 치켜든 것은 정의보다 힘을 과시하는 자세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 아닐까. p.107

이것은 미래의 내 모습이다.
범인을 증오하면서 사냥에 심혈을 기울이다 못해 양심이 뒤틀려 버린 남자. 형사로서는 우수해도 인간으로서는 열악해져버힌 남자. 나도 언젠가 이렇게 될 것이다. 여우사냥에 잔뜩 독이 올라 지금 내가 쫓는 사냥감을 모조리 여우로 믿어 의심치 않는 분 먼 사냥꾼, 겸손보다는 목표 달성을 우선시하고, 금지된 방법을 금지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광신도. p.208

이 청년의 웃는 얼굴을 빼앗아 간 사람이 다름 아닌 나다. 사죄는 불가능하다. 용서를 구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무고한 한 인간을 깎아 내린 다음 용서를 바라는 것은 가해자 측의 오만일 뿐이다. 지금은 그저 비명횡사한 영혼의 안식을 기원할 뿐이다.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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