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山無人
水流花開
빈산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 피네
- 최북, <공산무인도> 화제(畵題)
최북의 <空山無人圖>(종이에 수묵담채, 31×36.1cm, 개인소장)의 화제이다.
동파 소식 시구(詩句)이기도 하다.
'공산' '무인'보다 '수류' '화개'가 더 와닿는다.
지금까지도, 지금도, 어쩌면 앞으로도 '水流'와 '花開'라는 말을 만나면
설레었고, 설레고, 설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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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탐독 - 우리 문장가들의 고전문집을 읽다
조운찬 지음 / 역사공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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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탐독 - 우리 문장가들의 고전문집을 읽다>(조운찬, 역사공간, 2018)를 읽었다. 

문집은 시와 문장을 모은 문학작품집이다. 

옛날 동아시아에서는 서적을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의 사부(四部)로 분류했다. 경은 유교경전, 사는 역사서, 자는 유학 이외의 철학서나 과학서적 등을 말한다. 집은 문집의 줄임말로, 시, 산문, 편지, 소설 등과 같은 창작물을 총칭한다. 문집은 사부의 하나이지만, 위상은 그 이상이었다.(5-6p)

우리가 대충 아는 것처럼 옛 문헌에서 경전, 과학, 철학서 등의 비중은 적다. 역사서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결국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책의 대부분은 문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지학자들은 우리 문헌의 70% 이상이 문집이라고 말할 정도이다.”(6p)


중고교 시절 역사 혹은 고전문학을 통하여 수많은 문집을 대하기는 했다. 물론 저자와 제목만을 외우는 수준이었지만,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이제현의 <익재집>, 박지원의 <연암집>, 김시습의 <매월당집>, 김정희의 <완당전집>, 정도전의 <삼봉집>, 황현의 <매천집> 등은 낯익은 이름이어서 반갑기까지 하다. 물론 그 면면의 속사정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서예와 한문 가까이 있었지만 이러한 문집들을 제대로 읽어볼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익히 알고 있던 인물들의 생애가 문집의 글과 포개어질 때 글은 작가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글이 생겨나는 것은 한 개인의 경험과 재능에 기대지만 한 개인은 시대와 사회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글이 비극적이라면 그 비극은 한 개인의 비극이기도 하다. 또한 그 개인이 살았던 현실의 비극이기도 하다. 옛 문인이 남긴 글 가운데 찬사를 받는 것들은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지닌 것도 있지만, 시문(詩文)에 담긴 역사적 가치도 있다. 여러 이유 중에서 내가 중시하는 것은 글에 담긴 정신성이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보고, 그것을 드러내는 데 작가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담아낸 글을 좋아한다. 그 세계관과 인생관은 깊은 통찰에서 나온 높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 그러한 글은 분명 오래도록 세인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인상 깊은 부분들이 많았다. 

홍대용 <담헌집>, 박제가 <정유각집>, 최립 <간이집>, 김상헌 <청음집>, 최명길 <지천집> 등을 다룬 부분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권근의 <양촌집>은 한참 머물며 나를 돌아보기도 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생애가 자신의 마음이나 가까운 주변의 변화나 영향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시대와 국가의 변화로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기도 한다. 권력의 교체, 폐망과 개국 사이에 끼인 개인의 삶은 그러한 큰 변화 속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로 존망을 맞는다. 절의를 지키다 목숨을 내놓기도 하고, 개혁과 혁신에 스스로 앞장서기도 한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를 일도양단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경(經)은 근본이나 권(權)은 경을 활용하는 가변이다. 경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다를 뿐이지 권의 활용만 놓고 옳고 그름을 판결할 수는 없다. 


권근은 변절과 어용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조선 개국 초기 조선 ‘최초의 문형’으로 관각체 문장을 틀을 마련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가 다져놓은 관각체는 조선 내내 그의 영향권 안에 놓여 있었다. 다만 그러한 그도 지울 수 없는 것이 변절의 문양이다. 그의 초기 이념은 성리학적 신념 속에서 비롯되었지만 앞을 내다보지 못한 한계를 지녔다. 변절의 과정은 이러한 현상 속에서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조선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권근이 문학과 학문을 발전시켰다는 공로를 들어 그를 공자의 문묘에 배향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끝내 문묘에 들지 못했다.”(259p) 권근이 조선 초기의 문장가이자 경세사상가로 조선의 기틀 마련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역사적 평가는 ‘변절’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문집탐독>에는 문집에서 골라낸 좋은 문장과 시를 수록해두어 책의 가치를 더해주었다.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인용된 문장과 시 중에 어떤 글은 원문을 병기하였고, 어떤 글은 원문 없이 해석문만 수록하였다. 인용된 글은 모두 원문도 같이 수록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집탐독>은 우리 옛 문집의 가치와 의미를 헤아려 흥미와 재미가 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각 문집의 대략적 설명과 문집에 수록된 글을 통하여 저자의 상황과 연결시킨 설명에 국한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각 문집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문집의 원전이나 번역본으로의 안내 혹은 유혹, 이 책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뒷표지에 이런 안내 글이 있다. 

과거는 결국 오늘로 향하는 길이다. 옛 문장가들은 글을 통해 이 세계와 학문을 연구하고 새로운 생각들을 탄생시켰다. 또한 글로써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는가 하면, 격변기의 혼란 속에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지켜왔다. 문집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고, 생각하고, 실천해왔는지를 엿보면서 현재 우리의 삶 또한 새롭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문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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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주 시인의 시집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 겨』(문학동네, 2018)에서 시 <채근담을 읽었다>를 읽었다. 좋다. 

처음에는 책 『채근담』을 읽고 쓴 시인 줄 알았다. '채근담'은 은유였다. 시인이 읽은 '채근담'은 꼼꼼하게 읽은 부분과 그냥 지나친 부분, 힐끗 보고 지나간 부분, 그리고 읽고 싶은 부분과 읽은 느낌,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펼쳐서 읽는다. 


시인이 '토옥동 계곡'에서 읽은 것은 자연이다. 자연의 흔적이다. 자연의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살아있는 자연이다. 어떤 것은 읽고, 어떤 것은 지나친다. 어떤 것은 너무 무겁기도 했고, 어떤 것은 가벼워서 편하기도 했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자연도 각기 다르다. 그 속에 사람도 들어있다. 이때 시인은 자연을 읽는 이이기도 하고, 자연의 일부인 자신을 살피는 이이기도 하다. 


잘 보이지 않거나 춥고 괴로운 것은 지나치고 싶다. 누구나 그렇다. 자신에게 닥쳤을 지도 모를 힘든 상황도 '애써 피하고' 싶다. "낙엽만 보고 걸었다 (...) 낙엽은 가벼워서 편했다"고 하고, 그 가볍고 편안한 낙엽이 "내 삶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시인은 '가벼움'을 지향한다. 그래 보인다. 그렇다고 삶이 가벼웠다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무거움이 훨씬 많이 차지한 삶이었던 것 같다. 추측컨데 "나무와 돌과 물은 너무 무거웠다"는 데서 "나무와 돌과 물"이었던, 혹은 그러 하고자 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닥쳤을 "지난여름, 폭우에 뽑힌 나무뿌리"도 그렇고 "살얼음 속으로 숨은 물고기" "응달의 너덜겅" "흙 속의 서릿발"도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행 "눈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은 '가벼웠'거나 '너무 무거웠'던 것을 모두 내포한 발자국이다. 

나도 채근담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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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블로그에서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소개 글을 읽었다. 저자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인, 저자가 번역한 롤랑 바르트의 책 제목 <애도 일기>를 따서 부제로 단 이 책은 죽음을 앞두고 쓴 철학적 기록이다. 구입하여 읽을 생각으로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인용구 몇 개도 스크랩하여 옮겨 두었다. 


그러면서 한기호 소장의 '죽음'에 관한 글 한 편을 더 읽었는데, 최성일과 구본준에 관한 것이다. 출판평론가 최성일은 45세의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오직 책 읽기와 글쓰기로 평생을 살았다. 그이의 처절한 글쓰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하여 그의 책은 물론 그의 아내의 책 <남편의 서가>도 읽었다. 그에 대한 나의 '애도'였다.


최성일의 부고 기사를 쓴 한겨레신문의 구본준 기자는 건축전문기자였다. 그의 책은 물론, 블로그에서 건축 관련 글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였다. 그런데 그도 예기치 않게 이탈리아 현지 취재 도중 생을 마쳤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블로그는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한겨레신문이 불로그 서비스를 종결하면서 그의 블로그 글도 사라졌다. 그가 남겨놓은 글을 모아 책으로 출간되기를 바랄 뿐이다.


죽음은 가까이 있다. 다만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죽음은 멀리 있는 것처럼, 당분간 오지 않을 것처럼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음이 서린' 책을 읽으면 겸손해진다.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삶은 방종할 수 있다. 죽음은 소중함과 감사를 일깨워준다. 


수원 봉녕사에 다녀왔다. 25년 전 아우가 사십구재를 마치고 이승을 떠난 곳. 그때 나는 독경 소리를 뒤로 들으며 대웅전을 나왔었다. 마당에 가득하던 초여름 햇살 저편 수돗가에서 젊은 팔을 걷고 흰 무를 씻는 비구니들의 웃음소리가 햇살처럼 청명했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우를 보냈던가 붙들었던가. 모르겠다. 다만 세상과 삶의 부조리만이 깊이 가슴에 각인되었을 뿐. 그때 아우는 떠나는 자였고 나는 보내는 자였다. 그사이 세월이 제자리로 돌아온 걸까. 지금은 내가 떠나야 하는 자리에 선 걸까. 오늘 나는 여기에 왜 다시 왔을까. 그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나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오후에 날이 흐리더니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의 피아노> 158번 글이다.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 그리고 이제 '떠나야 할 자'가 된 '보내던 자'의 모습이 한 편 시처럼 그려졌다. 그 시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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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착한 책 중에서 정민의 <석복>(김영사, 2018)을 읽었다.


추사의 글씨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글귀는 예서로 쓴 "작은 창에 볕이 많아,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한다(小窗多明, 使我久坐)"는 구절이다. 작은 들창으로 햇살이 쏟아진다. 그는 방안에서 미동없이 앉아 있다.(17)


네 글자 100편 중 <명창정궤(明窓淨几)> 글머리 부분이다. 

'명창정궤'는 서예가들도 많이 쓰는 구절이다. 

정민 교수는 "한국고전번역원 데이터베이스에서 '명창정궤'를 쳐보니 무려 171회의 용례가 나온다."고 했다. 

이 말에 이어진 구절들도 숱하다. 


'명창정궤' 뒤에 무엇을 덧붙이면 좋을까 생각해봤다. 

'분향작시(焚香作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음주독서(飮酒讀書)'가 현실에 더 가까우려나? 


"밝은 창 깨끗한 책상 앞에 앉아 향을 사르고 시를 짓는다." 그럴 수 있으면 좋을 주말 앞둔 금요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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