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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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가슴이 먹먹하고 짠하면서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는 뭉클한 마음이 절로 나오는 작품을 대면했네요. 사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얼마전에 읽었던 레마르크의 『개선문』『사랑 할때 와 죽을 때』라는 작품을 읽고 나서 성인이 아닌 소년소녀의 시각으로 바라본 전쟁은 어떻게 묘사되고 서사될까라는 호기심에 그리고 전쟁을 겪지 않는 세대 더욱더 그런 전쟁의 한복판에서 빗겨난 제3자의 시각에서 과연 전쟁은 어떻게 묘사될까라는 생각에 서슴없이 이번 작품을 선택했는데... 그야말로 진흙탕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이 바로 그 작품인데요. 제목 자체에서부터 뭔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죠. 과학적으로 우리는 모든 빛을 볼 수 가 없고 달리 보면 보고 싶은 빛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오는데요. 전쟁과 그 전쟁으로 인한 기억들 아마도 이를 빗대어 표현한 말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 만큼 각종 리뷰어들의 현란한 찬사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라고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책 표지에 대해서도 한마디 안할 수 없는데요, 소녀와 소년를 상징하는 두 사진은 보는 독자들에 따라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묘한 뉘양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품 전반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 줍니다.


           내러티브는 어느날 갑자기 세상의 빛이 회색빛 하나로 비쳐지는 주인공 마리로르의 새로운 삶찾기로 부터 시작합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대충 감을 잡게 되는데요. 작가는 바로 이 시점과 2차세계대전의 발발을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대재앙은 다름 아닌 빛의 소멸이라는 복선으로요. 작품은 1944년 8월과 1934년부터 시간을 추를 돌리면서 시간 역순으로 왔다갔다하는 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약간의 추리적인 기법(불꽃의 바다라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비밀)을 가미해서 호기심을 한층 더 증폭시킵니다. 내러티브의 전체적인 틀은 두 주인공인 마리로르와 베르너 중심의 극히 개인적인 구도로 비쳐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 감초처럼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내러티브는 개인적인 구도에서 전쟁으로 인한 희망과 절망, 가해자측과 피해자측 상당히 범위가 확장된(범위 자체가 확장될 수 밖에 없는 테제니까요) 형국으로 진행됩니다. 마치 서서히 전쟁이라는 절망의 한폭판속으로 내몰리게 된다는 느낌마저 갖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봐야할 담론이 하나 있는데요. 항상 古來의 일을 돌이켜 보면 어느 일방적인 집단(국가를 포함해서)의 일방적인 지배를 받게 되면 그에 대한 반응은 여러가지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어느 한쪽은 힘을 논리를 금새 파악해서 점령자에게 부역하는 집단이 발생할 것이고 또 다른 한쪽은 점령에게 저항하는 쪽으로 형성이 되는 거죠.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양극단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그 각각의 선택에 의해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유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또 하나 이번 작품의 특징중 하나인데요(물론 엄청나게 얄밉고 한대라도 쥐어 박고 싶죠). 부역하는 자들은 그들 나름의 이데올로기로 저항하는 자들은 역시 그들 나름의 사유로 각자가 선택한 행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하게 느껴지는데요. 뭐 이런 논리를 떠나서 저항하는 측면만 보더라도 레지스탕스같은 군사적인 저항보다 일흔을 넘긴 여성노인들의 아기자기한 저항들을 서사함으로써 오히려 더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는 거죠. 우편물 가로채기, 알러지를 일으키는 꽃배달하기, 배설물 투척하기등 그야말로 이게 무슨 저항의 몸짓이냐고 할 수 있을정도의 소소한 행위들로 보여지지만 어쩌면 일반 대중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의 몸짓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정도 상당히 현실적인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이 가슴을 한번 더 먹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테제로 하는 작품치고는 상당히 잔잔한 흐름을 일관해서 보여주는데요. 이 부분 역시 참 매력적이다고 할 수 있죠. 포탄과 피빛이 난무하는 전쟁영화보다 더한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하는 잔잔한 서사들이니까요. 여기에 종반부의 반전 역시 왠만한 추리스릴러작품의 반전보다 더한 감동을 던져 줍니다. 


           또한 이번 작품은 작품 전반을 흐르는 몇가지 중요한 테제들이 내재되어 있는데요. 우선 '개구리' 에 대한 테제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물이 끓고 있는 냄비에 개구리 한마리를 집어넣으면 바로 개구리는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찬물이 담긴 냄비에 개구리를 집어넣고 불을 서서히 올려 물을 끓이면 개구리는 익는다" 라는 마네크 부인의 말에서 전쟁은 이처럼 뜨거운 물밖으로 나온 개구리처럼 어느날 뻥하고 터지지만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폐해는 찬물속에 들어앉아 있는 개구리와 같다는 은유적 서사, 베르너가 겪고 두 눈으로 보았던 일들 그리고 마리로르가 겪고 있었던 상반된 전쟁의 다른 측면들이 마치 찬물속에 앉아있는 개구리와 다를바가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죠. 이 개구리의 의미가 당시대 전쟁을 겪엇던 가해자측이나 피해자측 양측의 모든 것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동시에 저항의 측면에서 성공하지 못한 저항 혹은 레지스탕스같은 무력적인 저항은 아니지만 서서히 가해자측을 압박해나가는 저항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테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라디오' 라는 흥미로운 테제가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라디오" 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을 띄고 있습니다. 내부와 외부의 연결고리이자 소통 그리고 희망이라는 테제를 지니고 있죠. 또한 자유와 저항의 의미로서의 라디오(마리로르,앙리,에티엔,유타,베르너) 그리고 억압과 파괴로서의 라디오(베르너,폴크하이머) 이렇게 두가지의 상반된 테제를 담고 있는데요. 베르너의 입장에서 라디오는 이 둘간의 간극을 넘나드는 희망과 절망의 테제로 다가오는 거죠. 고아로서 아무런 희망이 없던 시절에 들었던 라디오와 그 방송(마리로르의 할아버지가 녹음했던 어린이방송은 결국 둘의 연결고리를 찾아주는 희망이라는 매게체 역활을 담고 있죠) 은 희망의 대상이었지만 이후 라디오는 억압과 착취라는 가해자측의 테제로 다가오면서 결국 마리로르와 베르너를 잇는 마지막 끈이자 또 다른 희망의 끈으로 작용하는데요. 죽음의 기로에 선 베르너에게 마르리로의 라디오 중계방송은 그 옛날 고향에서 여동생과 처음 들었던 바로 그 방송이었던 것이고 이 방송이 베러너의 생을 연장해주는 역활을 하고 있죠. 상황이 역전되어서 호텔 지하에 갇혀있는 억압자와 건물 다락방에 갇혀있는 핍박자의 위치 설정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확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국 '라디오' 는 희망이라는 치료제 아니 희망이 될 수 밖에는 치료제로 마무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가는 절망을 끝을 치닫는 종반부에서 다시 한번 더 독자들을 즐겁게 하는데요. 바로 쥘 베른의『해저2만리』를 등장시켜 내러티브의 긴장감을 증폭시킵니다. 상황 종결이 다가오고 있는  해저 심해에 갇혀있는 노틸러스호 그리고 이를 공격하는 크라켄이나 대왕오징어를 통해서 더욱 절망과 비극으로의 예열과정을 덧대는 설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흥미로운 설정들이 몇몇 보여지는데요. 베르너가 동생 유타에게 전하는 편지나 유타가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는 전쟁이 임박해지면서 검열되어 지워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샤리아르 만다니푸르의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를 떠올리게 하는 기법이기도 한데요. 검열되고 지워지는 부분이 많아질 수록 전쟁은 심화되고 문제 내용인지 모르는 편지 그 자체가 바로 전쟁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서사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작품 전반 곳곳에 등장하는 숫자들 '1000' '100', 10000' 이라는 숫자, 그저 별 의미가 없는 숫자의 나열인 것 같지만 이 역시 작가의 철저한 설정임을 알게 되죠. 참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한데요. 처음 이 숫자에 대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지만 계속되는 숫자에 금새 독자들은 익숙해지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전쟁이 그러하다는 것 처럼요. 물론 극히 개인적인 판단인데요. 이러한 설정과 기법들이 이번 작품속에서 참 향기로운 야생화의 꽃향기처럼 작용해서 독자들 뇌리속에 은근히 오래토록 각인시키는 역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추리적인 기법차용에 대해서 보자면 이번 작품은 명백히 두 소녀소년 주인공이 작품을 끌어가는 강력한 엔진 역활을 수행하고 있는데요. '불꽃의 바다' 와 '라디오' 라는 매게체를 통해서 두 소녀 소년이 상봉하는 시점을 독자들에게 은근히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미급한 독자(아니 대부분의 독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은 그 시점이 언제쯤일까 하고 애타게 기다리죠. 1권을 끝내고 나니 그럼 2권 초반부쯤일까 언근히 기대하지만 작품이 종반부를 달리때나 겨우 그것도 아주 막간을 이용해서 상봉하게 되는데요. 상당히 김빠지는 기다림이지만 이 역시 작가의 철저한 계산속에 담겨져 있는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커다란 명제를 역발상으로 반전시키는 부분이라 상당한 감동을 주는 상봉장면으로 연출하게 되고, 독자들은 마리로르와 베러너의 상봉을 고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그 상봉의 끝이 불행이나 절망으로 맺어지지 않을까라는 노파심을 갖게 합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을 읽은 독자들의 공통적인 느낌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묵직한 기억의 봉인을 덜어낸다는, 아니 좀 더 홀가분해진다는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라 여겨 지네요. 전쟁이라는 비록 겪어 보질 못했지만 수많은 증언들과 증거들 그리고 전쟁을 서사했던 수 많은 불후의 명작들을 통해서 우리는 전쟁이라는 무거운 짐을 부지불식간에 가슴 한편에 무거운 추를 달아 봉인해 놓고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테제에 대해서 다소 과장된 서사가 난무하고 그런 소재로 인해 기억의 왜곡현상이 일어나면서 전쟁은 서로가 다 알고 있지만 왠지 입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는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작품은 바로 이러한 무거운 봉인들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지만 좀 더 홀가분한 기억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전쟁이라는 대재앙을 겪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 전쟁이라는 대재앙이 어떻게 살아남은 자들(물론 죽어가고 죽임을 당한 자들까지요) 에게 어떠한 의미로 남아있는가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죠. 추리적인 기법과 시간흐림의 중첩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단 한순간도 뗄수 없게 하면서 책장의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면 들수록 초조하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마땅히 표현한 형용사를 찾지 못할 정도로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작품이네요. 세상의 빛을 본다고 해서 존재하고 있는 모든 빛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보지 못하는 아니 볼 수 없는 빛속에서 희망과 자유라는 빛을 볼려고 존재하는 것이 인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바로 이번 작품이 그런 볼 수 없는 빛의 현현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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