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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반이 됐을 때 해수가 대학에 들어갔다. 드디어 해수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에 덧붙여 해운대 백사장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친구들이 또 새로 생겼다. 그 사이에 해수의 주량은 웬만한 남자를 능가할 정도가 됐다. 엄마 말대로 조상의 핏속에 술독이 들어있는지 해수는 수시로 음주가무를 즐겼다. 한 번은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가 아빠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여름 방학 때는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기어코 쌍꺼풀 수술을 하고 덤으로 머리까지 갈색으로 물들였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아빠는 신체발부수지부모!”를 외치며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고, 해수는 애써 눈물까지 짜내며 깊이 반성하는 척 했다. “아빠, 다시는 안 할게요!” 이렇게 말해서 일단 사태를 수습한 뒤, 나중에 또 제 뜻대로 하는 게 해수의 깜찍한 처세술이기도 했다. 반년 뒤 해수의 머리카락은 짙은 밤색이 되었고 집안이 또 뒤집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발칵이 아니라 그냥 살짝이었다. 해수의 깜찍한 말썽은 형우가 벌인 소동에 비하면 콩국수 위에 얹힌 풋풋한 오이 채 같은 것이었다.

 

형우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명실상부한 문제아로 거듭났다. 일단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긴 갔지만, 그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편한 곳이 학교였기 때문이다. 학교를 파한 뒤에는 친구들과 함께 유흥가를 전전했다. 엄마 아빠가 새벽에 책상 위에 얹어두는 용돈은 담뱃값, 술값으로 나갔다. 오다가다 <훈이네 복덕방> 내외와 마주쳐도 인사만 할뿐, 얼른 어디론가 내빼버렸다. 밥을 준다 해도, 바나나 한 송이를 통째로 다 준다 해도 머리가 굵어진 형우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내가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던 해, <훈이네 복덕방>의 아줌마가 칠순을 맞이했다. 설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갔더니 해수가 아줌마한테 목도리라도 사드리자는 말을 꺼냈다. 연일 용돈 타령을 하며 완전히 개념을 놓고 사는 것 같던 형우도 웬일인지 5천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았다. 아줌마는 목도리를 목에 둘러보며 수줍게 웃었다.

아이고, 코 묻은 돈으로 이런 걸 다.”

그러면서 사람 사는 집엔 사람이 들끓어야 되는데, 요즘은 너무 조용해서 병이 날 정도라며 가볍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사실 <훈이네 복덕방>의 쓸쓸함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었다. 결혼 초에는 그래도 두세 달에 한 번씩은 부모를 찾던 자식들도 이젠 명절이나 되어야 얼굴을 봤다. 어쩌다 두 내외가 함께 거제도의 큰아들 집, 서울의 작은아들 집을 찾기도 했지만 길어야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방학이면 더러 손자손녀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찾아왔다. 하지만 서울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부산의 누추한 달동네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큰아들 내외도 거제도의 번화가에 살았으므로, 그 아이들의 눈에 이곳은 촌구석이나 다름없었다.

 

<훈이네 복덕방> 앞의 <뭉치 슈퍼>는 아이들이 가장 경멸하는 곳이 되었다. 과자라곤 새우깡 밖에 없고 아이스크림이라곤 돼지바가 전부였다. 도무지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게 없었다. “아저씨, 빈츠 없어요?” “에이, 아이스크림이 다 찌그러졌잖아! 아저씨, 월드콘 없어요?” 아이들은 <뭉치 슈퍼> 아저씨를 골려주기 위해서라도 꼭 없는 것만 찾았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정성껏 만든 콩국수도 손자손녀들에게는 냉대를 받았다. 아이들은 차라리 해수 이모의 손을 잡고 서면 구경 가는 걸 더 좋아했다. 시끌벅적한 시내에서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먹으며 아이들은 또 <뭉치 슈퍼>를 비웃었다.

 

손자손녀들이 떠나면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한동안 허함에 시달렸다. 그 허함을 잊으려는지 아줌마는 더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다. 뽀얗고 곱던 자그마한 손에 굵은 주름과 거뭇거뭇한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음에도 아줌마는 여전히 손이 컸다. 그런데 아줌마의 음식은 뭔가가 이상했다. 부침개는 너무 짰고 고구마는 덜 익었고 김치에서는 풋내가 났다. 부침개와 함께 나온 간장에는 총총 썬 쪽파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노, 맛있나?”

그럼요. 그런데 조금 짠 거 같아요, 헤헤.”

해수의 말에 아줌마는 기다렸다는 듯 자아비판을 시작했다.

짜다고? 요새 내 혀가 미쳤는 갑다. 통 간을 못 보네.”

아니에요, 맛있어요, 아줌마. 원래 해수가 좀 싱겁게 먹어요. 건강에 예민하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나도 좀처럼 부침개에는 다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 건강은 젊었을 때 지켜야지. 우린 이제 늙어서.”

안 그래도 여 훈이 엄마가 요즘 노망났다 아이가. 잠바에다가 다리를 집어넣질 않나.”

아저씨가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에 없던 돋보기안경이 아저씨 코 위에 걸쳐져 있었다.

이 양반도 참, 그냥 웃자고 장난 친 걸 갖고 괜히 또 이란다.”

생로병사 두려울 거 뭐 있나, 자연의 이치지.”

아저씨는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옛날과 다를 바 없는 몸짓, 표정이었지만 어느 새인가 아저씨의 머리가 하얗게 새버렸다. 전에 없이 말수도 많아진 것 같았다.

아직 내 발로 변소도 가고, 이래 살 집 있고, 또 이래 죽을 집도 있고. 그래, 진수 니는 인자 돈을 번다고?”

 

나와 해수는 우리의 근황에 대해 좀 더 얘기한 뒤 <훈이네 복덕방>을 나왔다. 소금에다 밀가루반죽을 섞어 넣은 것 같은 파전과 설익은 고구마가 우리가 그곳에서 먹은 마지막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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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간, 낯선 소설 속으로: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1913)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왔다. 때로 촛불이 꺼지자마자 눈이 너무 빨리 감겨 잠이 드는구나.’라고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1, 15) 잠들기 전 는 언제나처럼 엄마의 저녁 키스를 기다린다. 하지만 마침 손님(스완 씨)이 와 있어 엄마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중대한 용건이 있으니 꼭 의 방으로 올라와 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보내지만 냉대에 부딪친다. 그러나 오늘은 아이가 신경이 날카로운 것 같으니 함께 자주라는 아빠의 권유도 있고 하여 엄마는 의 방으로 온다. 엄마가 의 곁에서 책을 읽어주는 밤, “나는 이런 밤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았다.”(1, 83) 한 토막의 이야기가 끝나자 어느 겨울날 추위에 떨며 귀가하는 성인 가 등장한다. 엄마는 에게 간만에 홍차를 권하고 사람을 시켜 일부러 프티트 마들렌을 사오게 한다. 과자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입안으로 가져간 순간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1, 86)라는 것을 잊을 만큼 강렬한 기쁨을 맛본다. 그 진앙을 찾던 끝에 콩브레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가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준 마들렌의 맛에 도달한다.

 

 

 

 

 

 

 

 

 

 

 

 

 

 

여기까지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권 <스완네 집 쪽으로>11절의 내용이다. 남편이 죽은 이후 처음에는 콩브레를, 그 다음은 자기 집과 방과 침대를 떠나지 않고 극도의 무기력증에 빠져 사는 레오니 아주머니, 주인마님 보필과 살림에 열성인 만큼이나 외부인들(노처녀 욀랄리 할멈)과 아랫사람(부엌데기, 즉 지오토의 자비)에게는 매몰찬 하녀 프랑수아즈의 얘기가 흥미롭다. 독립된 소설처럼 삽입된 스완의 사랑은 물질적인 부와 세련된 몸가짐에 덧붙여 뛰어난 예술 감각을 지닌 사교계 인사 스완이 천박한 화류계 여자 오데트를 사랑하면서 겪는 감정적 흐름을 다룬다. 환희, 의심과 질투에 이어 찾아온 것은 환멸이다. “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내 스타일도 아닌 여자 때문에 내 인생의 여러 해를 망치고 죽을 생각까지 하고 가장 커다란 사랑을 하다니!”(2, 330)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스완은 오데트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그들의 딸 질베르트가 의 첫 사랑이 된다. 이렇듯 콩브레의 는 두 산책로인 메제글리즈(스완네 집 쪽)과 게르망트 쪽, 부르주아지귀족의 세계를 오가며 작가를 꿈꾼다. 수시로 재능의 부재를 절감하지만 종국에는 총 500명이 넘는 인물들의 대서사시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순간과 영원을 오가는 무한대의 시간, 사물과 현상에 대한 세밀화 같은 묘사, 소설적 가공 없이 무심한 척 던져지는 인물들과 야생의 상념들, 학술서 수준의 미학 담론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오직 소비만 하는 상류 사회의 수다의 생리학’(벤야민),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몽롱한 반수(半睡)의 서사를 좇아가기가 만만치 않다. 프루스트의 실제 삶(명망 있고 부유한 집안의 장남, 타고난 감수성과 총명함, 최상의 교육 환경 등)에서도 극적인 사건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장 이브 타디에). 유일한 결핍인 병약한 체질(천식)은 역설적으로 어머니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만년 마마보이의 호사스러운 삶, 가령 엄선된 식재료로 구성된 식탁, 과민성 피부 관리법, 소음과 외풍과 빛이 차단된 최고급 거처 등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알랭 드 보통).

 

 

 

 

 

 

 

 

 

 

 

 

 

사진 속의 프루스트 역시 스완처럼 마땅한 직업도 없이 사교계를 드나들며 딜레탕트의 삶을 즐기는 전형적인 댄디의 모습을 하고 있다. 두 권의 번역서에 미발표 평문, 얄팍한 소설책(<즐거움과 나날들>)이 거의 전부인 허랑방탕한 고급 속물이 상당한 규모의 소설 한 편을 완성한다. 바로, 우여곡절 끝에(당시 갈리마르-NRF의 편집장이었던 앙드레 지드는 훗날 프루스트에게 이 소설의 출간을 거부한 일을 통렬히 후회하는 편지를 쓴다) 자비로 출간된 <스완네 집 쪽으로>이다. 이어 총 7권에 육박하는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완간되는 것은 1차 세계 대전을 거쳐 작가가 사망한 다음이다.

 

 

 

 

 

 

 

 

 

 

 

 

 

 

이 소설을 둘러싼 논의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 그리고 글쓰기와 인상에 관한 이야기(폴 리쾨르), ‘시간-진리를 찾아가는, 그 점에서 철학과 경쟁하는 소설(들뢰즈), 욕망을 포함하여 여러 사물-대상의 변형 과정에 주목하는 소설(지라르) . 실상 소설의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소설 전체의 맨 처음(“오랜 시간(longtemps)”)과 맨 끝에(“시간 속에(dans le Temps)”) ‘시간이 버티고 있다.

 

 

 

 

 

 

 

 

 

 

 

 

 

 

 

('시인' 이성복의 불문학자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던 책입니다 ^^;)

 

프루스트는 환시와 환각의 안개가 드리워진 낯선 시간 속을 헤매며 이미 환()이 돼버린 잃어버린과거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런 식으로 되찾은현재-영원을 선보인다. 40년에 이르는 인생의 전반부를 한심한 허송세월에 바치고 남은 10년을 파리 번화가에 쌓아놓은 자기만의 성에 틀어박힌 채 잃어지고’ ‘살아진시간들과 그 속으로 사라진 이름’, ‘’, ‘사물을 살려내는 데 보낸 작가! 모든 것을, 심지어 자기 자식마저도 무자비하게 집어삼키는 크로노스 신으로 의인화되는 시간과 맞장을 떠본들 얻는 것은 패배-죽음뿐이다. “!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2, 407)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시간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이보다 더 고독하고 숭고한 소설쓰기가 또 있을까. 한 시인이 그의 소설을 인식의 허망함과 허망함의 인식”(이성복)이라고 정의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리라.

 

-- <책&>

 

**  이번 호에 실은 건데 편집 과정에서 문장이 너무 심하게 훼손돼서(ㅠ.ㅠ) 부랴부랴 올립니다^^;

작품이 난해하니 참고서(^^;)도 난해하고, 어쩜, 작가의 평전조차 어찌나 지루한지! ㅋㅋ 어쨌거나 머릿속에 애매하게 남아 있는 '스완'과 뭐 여타 인물들이 좀 더 또렷해졌고, 불어 공부할 때 읽었던 앞부분을 훌륭한 번역으로 다시 곱씹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옛날 판본으론 2, 3권 정도까지 읽었던 것 같은데, 새 번역본이 출간되는 속도에 맞추어 꾸준히 완독(!)해 볼 참입니다. 바로 진입(?)하기 두려우신 분은 만화 버전으로 먼저 보세요! 이것도 계속 나오는 중입니다.  

-- 앗, 그리고 이 글의 제목의 출처는,  척 봐도 아시겠죠? 바로 이 분! ^^;

 

 

 

 

 

 

 

 

 

 

 

 

 

 

 

 

-- 아래, 지라르의 책에도 소개된(?) 프루스트의 사진입니다.^^;  

 

- 크로노스 관련 부분, 물론 염두에 둔 이미지는 고야의 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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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라고는 단 둘 뿐이었지만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여전히 손이 컸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만들어도 온 동네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육개장을 끓여도 한 솥 가득이었다.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도 부전시장에 갖다놓고 하루 종일 팔아도 될 만큼 잔뜩 쪘다. 두 내외의 수입과 두 아들이 주는 용돈이 모두 식비로, 그것도 남의 식비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낙이기도 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왁자지껄 떠들면서 <훈이네 복덕방> 앞을 지나가는 해수와 친구들을 보자 아줌마는 또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해수야, 여 들어와서 수박 좀 먹고 가래이.”

야들은요?”

아이고, 딸아들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다 들어와라!”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아줌마는 선풍기를 그쪽으로 돌려주었다.

이거 너거 집에서 산 수박이니까 실컷 먹으래이. 너거 아빠가 너거 먹여 살리려고 그래 고생을 한다 아이가. 날도 이리 더운데.”

 

형우라면 모를까 해수는 아빠가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게 딱히 부끄럽지 않았다. 더러 2반 반장은 과일장수 딸이라고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생선이나 연탄을 파는 것보다는 과일을 파는 것이 낫다는 게 해수 생각이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달달한 수박이 해수의 생각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 같았다.

좀 있으면 쌍꺼풀도 만들어준다던데.”

해수 니, 나중에 진짜로 할 기가?”

아이고, 야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이리 하노? 해수 니 눈이 어떻다고?”

아줌마, 나 못 생겼죠? 언니도, 형우도 다 쌍꺼풀 있는데 나만 없어요.”

아이고, 야 좀 봐라, 니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데.”

사람들은 보통 안 예쁜 여자한테 귀엽다고 말해요.”

해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와중에도 입안에서 맴도는 수박씨를 혀를 놀려 추려선 톡톡 뱉어냈다.

아이고, 훈이 아빠, 야 말하는 것 좀 봐요. 이것들은 지금 자기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니까요.”

치이, 아줌마는 아줌마니까 그렇죠.”

진영이가 끼어들었고 다른 소녀들도 깔깔댔다. 기미로 뒤덮인 누리끼리한 얼굴에 뱃살이 두툼하게 찐 아줌마도 한 시절엔 열다섯 살 소녀였다는 걸 알기엔 다들 너무 어렸던 거다.

아이고, 요것들아, 옛말에, 머리 좋은 여자 얼굴 예쁜 여자 못 따라 가고, 얼굴 예쁜 여자 팔자 좋은 여자 못 따라 간다고 했다. 사람은 다 타고난 복으로 사는 기다.”

그래도 예뻤으면 좋겠다!”

, 지금은 얼굴이 문제가 아니고 공부를 할 때 아이가? 중학생이 이래 놀아서 쓰겠나, ?”

아저씨가 양손에 들린 신문을 살짝 내리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소녀들이 떠나자 아줌마는 수박 껍질을 치웠다.

저녁엔 콩국수 어떻노?”

아저씨가 양쪽으로 펼쳐진 신문 뒤에서 말했다.

그거 좋겠네요, 손도 많이 가고.”

니도 참, 손이 많이 가서 좋을 건 또 뭐 있노?”

그게 말이에요, 요새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딱 죽겠어요.”

그래도 조금만 해라. 인자 먹을 사람도 없는데.”

방금 왔던 얼라들은 뭐예요? 어차피 콩만 좀 많이 갈면 되는데.”

 

다음날 동네 사람들은 거의 다 <훈이네 복덕방>의 콩국수를 먹었다. 쫄깃쫄깃한 면이야 흔하지만 입안에서 아작아작 씹히는 고소한 콩가루가 이렇게 많이 든 콩국수는 돈 주고 사 먹으려 해도 힘든 거였다.

 

*

 

다음 해,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동생들도 다 한살씩 먹고 한 학년씩 올라갔다. 키도 조금씩 컸고 체중도 늘었다. 아니, 조금씩이 아니었다. 해수는 언제부터인가 나랑 키가 비슷해지더니 요 일 년 사이에 부쩍 커버려서 누가 봐도 언니처럼 보였다. 나는 기어코 150센티조차 넘지 못한 키를 원망했고, 해수는 키가 크면서 덩달아 불어버린 체중을 원망했다. 밤마다 <아이참>을 붙여도 도무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는 쌍꺼풀을 또 원망했다. 형우는 공부에 통 취미를 붙이지 못해 밖으로만 나돌았다. 마땅히 이 때문은 아니었지만 아빠는 주기적으로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엄마는 바가지를 긁었다. 변변찮은 가재도구가 날아 다녔고 엄마가 울부짖었고 아빠가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는 나이를 잊고 엉엉 울었다. 집안은 늘 시끄러웠다.

 

하지만 우리 집과 겨우 몇 발짝을 사이에 둔 <훈이네 복덕방>은 조용하다 못해 고즈넉했다. 그곳은 숫제 시간을 먹지 않은 공간 같았다. 수험생이 된 나에게는 특히나 더 그렇게 여겨졌다. 엄마와 아빠는 새벽별을 보며 시장에 나갔고, 나는 그 새벽별이 사라지고 해가 뜰락 말락 할 때 아직도 자고 있는 두 동생을 버려두고 학교에 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학교에서 보내고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친 뒤 집에 오면 거의 자정이었다. 나와 친구들이 세 낸 봉고차는 정확히 <훈이네 복덕방> 앞에 섰다. 그 시각이면 복덕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도 토요일에는 9시면 집에 오는 날도 있었다. <훈이네 복덕방>이 슬슬 문 닫을 채비를 했다. 아줌마는 안쓰러운 듯 혀를 끌끌 찼다. “인자 오나? 아이고, 공부가 뭐라고, 아를 잡네 잡아.” 내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아저씨에게 속닥댔다. “이래 캄캄한데 딸아 마중도 안 나오고 진수 엄마는 잠이 오는가. 나는 저런 딸 있으면 밖에도 못 내놨을 거 같아요.” “오죽 피곤하면 그렇겠나?” “하긴.” 두 내외는 서글픈 눈길을 주고받으며 느릿느릿 집으로 들어갔다.

 

서울 가서 학력고사를 보고 돌아온 날, 나를 맞아준 것도 <훈이네 복덕방>이었다. 코끝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날씨가 매서웠다.

진수야, 야야, 시험 잘 봤나? 여 들어 와서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먹고 가래이. 엄마는? 엄마가 같이 안 갔더나?”

아줌마는 나를 안으로 들이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복덕방 안의 훈훈한 공기 때문에 안경에 뽀얗게 서리가 끼였다. 나는 안경을 벗어 소맷자락으로 렌즈를 닦았다.

같이 갔었는데요, 역에서 곧장 시장으로 갔어요.”

그래, 너거 엄마가 억척이다, 억척. 몸보다도 마음이 더 피곤할 긴데. 우리 훈이 시험 볼 때도 내가 서울까지 안 갔나. 시험 보는 날은 해마다 와 이리 춥노! 택일을 영 잘 못하는 기라.”

, 여편네, 미신하곤. 어차피 다 끝난 거니까 진수 니도 오늘은 고마 푹 쉬래이. 진인사대천명이라고 그만큼 공부했으면 결과도 안 좋겠나.”

아저씨, 그만큼 공부 안 한 아이들이 어디 있어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지만 커피만 꿀꺽 삼켰다. 열아홉 살의 겨울은 그런 거였다. 어차피 아직 내 것도 아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애가 끓었다.

 

이듬해,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조그만 배낭을 짊어진 채 집을 나섰다. ‘상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 짐도, 집안도 썰렁했다. 아빠는 사과를 사러 김천인지 상주인지 어디 산골에 가 있었고 엄마는 시장에서 어제 떼 온 과일을 팔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동생들은 일찌감치 어디론가 놀러 가버렸다. 골목을 나와 큰길로 들어섰을 때 <훈이네 복덕방>의 유리문이 열렸다. 아줌마가 기다렸다는 듯 조그만 꾸러미 하나를 들고 튀어나왔다.

오늘 가제? 어제 저녁에 너거 가게에 갔었다 아이가.”

오지랖 넓고 인정 많은 아줌마는 꾸러미를 건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줌마의 뽀얗고 작은 손은 마냥 따뜻했다. 하지만 정작 아줌마는 스웨터 하나만 달랑 걸친 채 잔뜩 움츠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집 떠나는 게 애초 꿈꾸었던 것과는 달리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던지, 나는 어젯밤부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어색하게 고맙다는, 어서 들어가시라는 말만 하고서 얼른 몸을 돌렸다. 봄이 언제 오려는지 바람은 차기만 했다.

 

통일호가 밀양을 지났을 때 꾸러미를 풀어보았다. 삶은 계란 세 개, 종이에 곱게 싼 소금, 반짝반짝 윤이 나는 사과 하나. 말로는 싱싱한 과일을 싸게 사려고 우리 가게에 간다고 했지만, 그 역시도 같은 동네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돈벌이를 해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음식과 술 냄새를 풍기는 시끌벅적한 객실 안에서 나는 계란을 까서 소금에 찍어 먹었다. 세 개를 연거푸 먹고 나자 목이 메서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아빠가 김천인지 상주인지 어디 산골에서 사온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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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 미학과 숭고미: 숙명’, 그것의 이름은 노트르담

- 빅토르 위고, <파리의 노트르담>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은 루이 11세 치하, 15세기 프랑스 파리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실제로 시테 섬과 이른바 뒷골목,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한 건축물 묘사도 생생하고 소설 속 인물로 등장하는 루이 11세의 형상도 또렷한 편이다. 마녀재판이나 공개처형을 매개로 한, 당시의 사법, 형벌 제도에 대한 작가의 비판도 맹렬하다. 여러 모로 29세의 위고가 품었던 작가적 야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소설은 산만한 구성, 지루한 장광설, 지나치게 환상적인인물과 사건 등 19세기의 여느 프랑스 고전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소설이 거의 200년 동안 우리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파리의 노트르담>은 낭만주의 미학이 십분 발현된 소설이다. 인물들의 성격은 물론 갈등과 사건의 양상 역시 대단히 극적이다. 작품의 중심에 서 있는 라 에스메랄다는 그 자체로 동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충격적일 만큼 뛰어난 아름다움 탓에 끊임없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금욕과 의지의 화신인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마저 그녀에게 눈이 멀어 상식적으론 납득되지 않는 행동을 보여준다. 대체로 이 인물은 종교와 학문의 빛에 가려진 중세의 암흑을 상징하는 것 같다. 라 에스메랄다를 향한 그의 열정 역시 어딘가 진정성이 결여된, 열정이라기보다는 열정에 관한 수사(修辭)처럼, 억눌린 관능적 욕망의 병리적 분출처럼 보인다.

 

그에 비하면 카지모도는 추()의 극치를 이루는 외모 덕분에 오히려 더 생기롭다. 등뼈가 활처럼 휘고 가슴뼈가 앞으로 툭 불거지고 머리는 양어깨 속에 푹 파묻힌 심각한 곱사등에 두 다리는 제멋대로 뒤틀린 절름발이, 왼쪽 눈에는 무사마귀가 나 있는 애꾸눈. 게다가 열네 살 때부터 종지기로 살아 귀마저 멀었다. 이 흉악한 존재가 곧 성모마리아’(노트르담)의 수호를 받는 성역의 닮은꼴, 심지어 그것과 한 몸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 피조물과 이 건물 사이에는 미리부터 존재하던 신비로운 조화 같은 것이 있었다. (중략) 그리하여 늘 대성당의 방향으로 자라나고, 거기서 살고, 거기서 자고, 거의 한 번도 거기서 나가지 않고, 줄곧 그 신비로운 압력을 받으면서, 시나브로 그는 그것과 닮아가고, 말하자면 그 속에 들어박혀, 마침내 그것의 일부를 이루기에 이르렀다. (중략) 그의 툭툭 불거진 각은 건물의 움푹움푹 들어간 각에 끼여 박혀, 그는 이 건물의 입주자일 뿐만 아니라, 그 자연적인 내용물이기도 한 것 같았다.(1, 282)

 

그가 처형되기 직전의 라 에스메랄다를 구출함으로써 성역 안에서 절대적인 미와 절대적인 추가 충돌, 결합한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꼼짝도 않고 말없이 서로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아리땁기 그지없는 것을, 그녀는 추하기 그지없는 것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미추의 대립은 선악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것은 선하고 추한 것은 악하다. 라 에스메랄다는 동정심도 많고 마음씨도 착하지만 카지모도는 심술궂고 사납고 거칠다. 그러나 작가가 추구한 미학은 이렇게 경직된 미추의 변증법을 넘어선다.

 

 

 

 

 

 

 

 

 

 

젊은 위고가 숭상한 낭만주의, 소위 그로테스크 미학의 핵심은 세계의 이원성과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통찰에 있다. , 세계와 인간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 빛과 어둠 등 서로 모순되는 가치로 구성돼 있다. 그 날카로운 대조는 대단히 불편하고 아주 자주 비현실적이지만 대신 단순한 아름다움이 결코 줄 수 없는 숭고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팜므 파탈야수-괴물의 사랑은 그로테스크하지만, 아니 그로테스크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숭고하다.

 

그녀가 채광창으로 가서 보니, 가련한 꼽추는 벽 모퉁이에, 고통스럽고 체념한 듯한 태도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자기에게 자아내는 불쾌감을 억제하려고 애를 썼다. “이리 와요.”하고 그녀는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집트 아가씨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카지모도는 그녀가 자기를 쫓아내는 줄 알았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물러갔다, 절뚝거리면서, 천천히, 고개를 수그리고, 절망으로 가득 찬 눈을 처녀를 향해 감히 쳐들지도 못하고. “이리 오라니깐.”하고 그녀는 외쳤다. 그러나 그는 계속 떠나갔다. 그러자 그녀는 독방에서 뛰어나가, 그에게로 달려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이 자기 몸에 닿는 것을 느끼고, 카지모도는 사지를 떨었다. 그는 애원하는 듯한 눈을 들어, 그녀가 자기를 그녀 곁으로 도로 데리고 가는 것을 보고, 그의 얼굴은 기쁨과 애정으로 온통 반짝였다. 그녀는 그를 자기의 독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 했으나 그는 끝내 문턱 위에 서 있었다. “안 돼요, 안 돼요.” 그는 말했다. “부엉이는 종달새의 보금자리에 들어가지 않는 법이에요.”(2, 250)

 

이 숭고한 열정의 연원은 꽤 깊다. 18년 전, 집시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천사 같은 계집애를 훔쳐가면서 그 자리에 괴물 같은 사내애를 놓아두었다. 그리하여 노트르담의 안을 구석구석 누비던 사내애와 노트르담 밖의 거리를 누비던 계집애는 먼 훗날 죽음을 통해 완전히 결합한다. 노트르담의 벽 어디에 그리스어로 새겨진 글자 숙명의 실현이랄까.

 

 

 

 

 

(빅토르 위고의 소설 중 지명도는 낮지만, 개인적으론 무척 감동 깊게 읽은 소설입니다. <악령>에도 언급되는데, 좋은 번역이 나와 기뻤지요...^^;)

 

 

 

 

 

 

이 단어는 실상 <파리의 노트르담>의 모든 인물을 다 아우른다. 양자의 손에 목숨을 잃은 프롤로, 파리를 배회하는 거리의 시인 그랭구아르, 경박한 바람둥이의 전형 페뷔스, 잃어버린 딸을 되찾는 순간 영원히 잃어야 했던 자루 수녀귀딜, 노트르담을 공격하는 부랑자와 거지 무리들. 이들은 모두 자기 삶의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숙명이라는 거대한 이름에 종속된 자들이다. 숭고한 괴물처럼(카지모도!) 묵묵히 버티고 서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결국 그 숙명의 상징이리라.

 

-- 네이버캐스트

 

--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의 또 다른 인기작입니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 아무래도 <레...>가 압권이죠, 여러 모로? 특히, 후반부의 장발장은 소위 할아버지 역할을 맡는 데 재미를 붙인 위고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코제트와 그의 관계도 감동적이고.) 하기야 우리에게 그는 늘 할아버지네요 ㅎㅎ 

 

 

빅토르 위고와 동갑인 유명 작가, 바로, 모험소설의 대가,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을 남긴 (아버지-페르) 뒤마입니다! 위고는 순문학이고 뒤마는 통속문학이었으나(지금도 대략 그렇게 정리되겠으나), 결국 책은 독자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또 오래 받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니까요.

그나저나, 작가도 이미지 관리를 잘 해야겠어요. 적어도 사진은 잘 나온 것만 몇 장 남겨야...-_-;; 뒤마 1세는, 그의 사진은 처음 보는데(!), 언젠가 아들(<춘희>를 썼죠)의 못된(?) 회상대로 참 호탕(?)하게 생겼네요 ㅋㅋ  성인병을 많이 앓았을 것 같아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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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손이 컸다

 

 

   

 

1988, 우리 가족은 월세 단칸방에서 방이 세 칸이나 되는 전셋집으로 이사 갔다. 우리 동네에는 <뭉치 슈퍼>, <구슬동자>, <승리반점>, <대포 마을>, <익돌이 피아노> 등 없는 게 없었다. 하나같이 우리 삼남매에게, 아니면 엄마 아빠에게 꼭 필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골목 어귀에 있는 <훈이네 복덕방>은 아무리 봐도 뭘 하는 곳인지 통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사고팔지 않고 뭘 가르쳐주지도 않는 이상한 가게였다. 그 집 큰아들은 이미 직장에 다녔고 작은아들도 내년에 제대하면 얼마 안 있어 졸업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 크면 어른들은 저렇게 놀아도 되는 모양이고 <훈이네 복덕방>은 어른들의 놀이터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의 아줌마와 아저씨는 아침 9시면 2층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지고 손님들이 일어나는 시간이 곧 하루 일과를 접는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늘 한두 명, 많으면 서너 명쯤 되는 사람들이 낡은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오구작작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아무 말 없이 장기를 두거나 각자 신문이나 잡지를 읽기도 했다. 탁자 위에는 늘 요깃거리가 있었고 때로는 밥상이 차려져 있기도 했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손이 큰 것은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다. 때문에 아예 작당을 하고 배를 채우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아줌마는 아주 추울 때가 아니면 미닫이 유리문을 항상 반쯤 열어 두고 손님을 기다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삼남매도 <훈이네 복덕방>의 손님 아닌 손님이 되었다. 아들딸이라고 하기엔 많이 어리고 손자손녀라고 하기엔 제법 큰 우리를 <훈이네 복덕방>은 참 예뻐해 주었다. 우리 부모가 부전시장에서 과일도매상을 한다는 걸, 그 때문에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더 그랬다. 부전시장 갈 일이 있으면 꼭 <성득상회>, 즉 우리 가게에도 들러주었다.

 

*

 

새 학년이 시작된 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봄볕을 쬐며 복덕방 앞을 서성였다. 저쪽에서 낡아빠진 추리닝에 면 티셔츠를 입은 형우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방 끈이 양쪽 모두 거의 팔꿈치까지 내려와 있었지만 바로 잡을 마음도 없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고 텅 빈 집안으로 들어설 생각에 벌써부터 힘이 쫙쫙 빠졌다.

형우야, 인자 오나?”

.”

점심은?”

형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큰누나는 아직 안 왔제?”

중학생이 지금 집에 오면 쓰나? 작은누나는?”

가게 안에 있던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작은누나도 6학년이라서 늦게 와요.”

놀아도 밥은 먹고 놀아야제.”

 

아줌마의 손에 이끌려 형우는 <훈이네 복덕방>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 위에는 온기가 느껴지는 고등어조림이 놓여 있었다. 붉은 양념을 머금은 탓에 고등어의 푸른 빛깔이 더 선연해 보였다.

야한테는 좀 매울라나.”

계란이라도 하나 부쳐주지 그라나?”

아저씨가 신문 너머에서 한마디 했다.

, 맞네. 형우 니 일단 먹고 있으래이.”

아줌마는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더니 금방 노른자에 따뜻한 윤기가 흐르는 계란 프라이를 갖고 내려왔다. 형우는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걸신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댔다. 아줌마는 형우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창 클 때라서 엄청 먹네, 엄청! 어여, 훈이 아빠, 우리 정훈이랑 성훈이도 저 나이 때는 이래 잘 먹었는데. 갈라고? , 물 마셔라.”

아줌마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뽀얗고 고운 손으로 형우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형우는 물 한 컵을 또 벌컥벌컥 들이켰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래. 아가 인사성이 참 밝대이.”

꾸벅 절을 하고 나가는 형우를 보며 아줌마가 말했다.

 

형우는 가방을 한 손에 들고 후다닥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5분도 안 돼, 딱지 주머니를 든 형우가 <훈이네 복덕방> 앞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형우야, 니 숙제 안 하고 어딜 가노?”

아줌마가 소리쳤다.

딱지요!”

그러고는 대답을 해주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얼른 내빼버렸다.

 

자가 착하긴 착한데 공부를 너무 안 하는 거 같네요.”

아줌마의 말에 아저씨는 보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아직 어린데 착하면 됐지, . 저녁때는 두루치기 좀 해봐라.”

왜요? 돼지 먹고 싶어요?”

뭐 그것도 그렇고 소주 한 잔 할 일이 있을 거 같아서.”

아저씨의 기대대로 오랜 벗들이 찾아왔다. 그날 <훈이네 복덕방>11시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 집 앞에는 오랜만에 소주병 몇 개가 얌전히 서 있었다. <뭉치 슈퍼>보다 더 신이 난 건 고물장수 할아버지였다.

 

 

형우가 5학년이 되고 해수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여름, <훈이네 복덕방>에는 경사가 났다. 지난봄에 결혼한 작은아들이 아이를 낳은 것이다. 손바닥만 한 동네엔 일찌감치 작은아들이 속도위반을 해서 결혼을 서둘렀다는 소문이 돌았더랬다. 하지만 <훈이네 복덕방>은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듣는 둥 마는 둥 마냥 즐거워했다. 나이 찬 아이들이 둘이 좋아 애부터 만들었는데 그게 뭐 그리 흉이냐는 투였다. 이게 또 옳은 소리여서 동네 사람들도 그들의 즐거움에 동참했다. 다만, 맞은편에 있는 <구슬동자> 아줌마만은 끝까지 눈을 흘겼다. <훈이네 복덕방>이 날을 잡기 위해 이웃 동네에 있는 <천상선녀>를 찾은 탓이었다.

 

작은아들 내외가 갓난애를 안고 부산에 온 날, <훈이네 복덕방>은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끌벅적했다. 마침 그 옆을 지나던 형우가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우아, 벌레 같다!”

형우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형우 니 갓난아 처음 보제? 니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는 딱 요렇게 생겼을 긴데.”

이 말에 형우는 인상을 팍 썼다. 얼굴이 불그죽죽하고 쭈글쭈글한 것이 영락없이 벌레였다. 벌레는 팔다리 같지도 않은 몰랑몰랑한 살덩어리를 치켜 올리는 시늉을 하고 마디도 보이지 않은 작은 손발을 희한하게 꼼지락거렸다. 형우는 이 벌레가 신기해 오랫동안 그 옆에 붙어 있었다. 그 사이에 젊은 아줌마가 건네준 노랗고 길고 몰랑몰랑하고 부드러운 과일을 씹어 먹었다. 왜 아빠는 이런 건 사오지 않는 걸까. 이렇게 귀한 걸 남한테 선뜻 주는 걸 보면 이 벌레의 엄마 아빠는 참 부자일 것이라고 형우는 생각했다.

얘가 바나나를 처음 먹나 봐요, 어머니. 하나 더 먹을래?”

형우는 또 다시 냉큼 바나나를 거머쥐며 생각했다. 부자는 예쁘고 착한데다가 서울말을 쓴다고.

 

<훈이네 복덕방>의 작은아들 내외는 다음날 오전에 서울로 올라갔다. 멸치젓, 명란젓, 깻잎과 콩잎 장아찌, 고들빼기김치 등 차 안의 트렁크로도 모자라 많은 짐들이 차의 뒷좌석에 실렸다.

매실즙은 배 아플 때 물에 타서 먹으래이. 그게 위에 그리 좋다 안 하나.”

얼른 다 먹을 테니까 다음에 오면 또 주세요.”

그래, 그래. 조심해서 가고.”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웃으며 아들 내외와 손녀를 배웅했다. 차가 동네에서 사라진 뒤에도 아줌마는 여전히 작고 뽀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마저 글썽였다. 아저씨가 아줌마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나지막하게 훈수를 두었다.

암탉도 병아리가 꽁지가 나면 옆에 오지 말라고 부리질을 안 하나. 원래 자식은 나이 들면 다 저래 떠나는 기다.”

물론 아저씨도 가슴 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큰아들도 경상남도를 떠돌며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다가 작은아들마저 멀리 있으니 말이다.

(-- 계속)

 

-- <웹진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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