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동물은 태어나면 1년 안팎으로 걷는다. 2년 안팎으로 말을 한다. 여기까지는 대략 자연법칙이 정한 발달의 과정을 따른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왔거니와, '동물-사람'과 '인간-사람'의 차별점은 그 다음부터이다. 언제 글을 배우는가. 읽고 쓰기의 문제. 요즘은 대략 대여섯 살에는 어지간히 한글을 읽는 것 같고(하다못해 통글자라도) 초등 입학을 전후하여 몇 자씩은 다 쓴다. 1-2학년 때는 받아쓰기가 가능하다. 어지간하면 70점 이상은 받는 듯하다. 여기서 막히는 아이는 문제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바로 글쓰기이다. 받아쓰기가 아니라 '작문'. 문장, 문단을 만들어야 한다. 이 문단이 나름으로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가 되어야 한다. 두 세 문장도 하나의 문단, 텍스트가 된다. 그 완성도는 육하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가에, 우선, 달려 있다. 문체고 나발이고 나중의 문제이고, 우선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했느냐가 표현되어야 한다. 판사의 판결문(가령 세간에 공개된 탄핵문을 떠올려보자)에서도 이게 제일(심지어 이것만!) 중요하다. 이쪽, 즉 법학자, 역사학자, 인문학자 등등이야 원래 문과생이니 당연히 노력해야하고, 이른바 이과생들의 글쓰기는 어떤가. <의학 세계사>를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마태우스'라는 필명(?)은 익히 알던 터. 그의 재미있는, 심지어 기상천외하다고 생각한 전공(기생충학)도 익히 알던 터. 하지만 책을 읽는 건 처음이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우리에게 의학은 항상 현실, 현재인데(당장 나를, 나의 아이를 낫게 해줘!) 그것에 역사가 있음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주 옛날로 거슬러가 고대이집트, 아랍, 중국, 인도 등 흥미로운 일화, 지식이 많다.

 

특히, 히포크라테스. '의사'의 사실상 첫 윤리로서 '환자의 비밀을 지켜줄 것!'을 언급했다니 놀라운 대목이다. 뇌전증(간질) 역시 소위 '신/악마 들림'이 아닌 자연(몸)의 한 현상으로 접근했다는 것, 역시 한 분야의 원조가 될만한 인물이었던 것. 한데, 많은 천재들, 위인들의 업적과 더불어 꼭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기록 여부(유무)'이다. 써놓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ㅠ.ㅠ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알겠는 요즘, 정말 좀 써라! 써야지만 시간을 이길 수 있다. 가령 저 히포-스는(하다못해 측근이라도) 심지어 썼다, 쓰기도 했다.

 

 

 

 

 

 

 

 

 

 

 

 

 

 

 

 

 

 

 

 

 

 

 

 

 

 

 

 

 

 

우리 같은 평민은 접근할 수 없는 의학의 분야. 이렇게 좀 써주시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비단 의학 뿐이랴.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등 다 그렇다. 하다못해 경제학도 문과의 학문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21세기 자본>을 읽으려다 포기했다, 너무 어려워서-_-;; 이미지를 중구난방으로 갖고 왔는데, 핵심인즉, 다 썼다는 것이다. 뉴튼도 다윈도 호킹도. <수학이 필요한 순간>의 서문인가 '수학을 하는 자는 많지만 수학을(-에 대해) 쓰는 자는 적다(없다)' 하는 식의 문장이 나온다. 바로 이 대목. 왜 그런지.

 

원초적인 대목이지만, 바로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 또 귀찮기 때문이다.(다들 살지만 사는 것에 대해 말하는-쓰는 자는 적다.) 나이 들수록 느끼지만 귀찮은 것과 어려운 것이 은근히 동의어다. 굳이 필요 없어 안 하다 보니 귀찮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하기가 어렵고 숫제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은 다시 동어반복으로 불필요한 것이 된다. 내가 이 나이에(혹은 이 자리에서) 굳이... 이런 식. 그럼에도 이렇게 꾸준히 좋은 저작들이 나오는 것은 참 고맙고 고무적이다. 따라 읽기가 벅차, 그것이 좀 아쉬울 따름이다. <파우스트 박사의 오류>의 주인공도 원래 수학자로 구상했는데, 도무지 수학 공부를 할 수가 없어 말이다...ㅠ.ㅠ (아침에 아이가 소수가 뭔지 묻는데 이것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더라는 ㅠ.ㅠ)

 

다시 의학 세계사. 책 제목을 보고 기대한 것은 좀 쉽게 풀어쓴 이론서 혹은 교양서였는데, 내용의 일부가 이야기 형식이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보는 교양 만화의 느낌. 나는 이것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차라리 시종일관 지식-정보 전달 형식(실제로 많은 부분이 이렇게 기술되었다)으로 되어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고, 작가의 이른바 '-끼'는... 소설로 풀어보시면 어떠실지.^^; 의학 소설 역시 전문가만이 쓸 수 있는 장르이니 말이다. 이 점에서, 잘 읽히는 훌륭한 연구서, 교양서의 전범은 역시나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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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도 안 썼다, 시작!"

- "일기 쓰기 싫은데? 작문하는 거 싫어...ㅠ.ㅠ"  

- "글을 쓸 줄 알아야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친구한테 카드나 편지도 쓰고... 굳이 소설이나 연구서를 쓸 필요는 없지만..."

뭔가 알아듣는 것도 같고 마지 못해 가서 쓴 일기인즉, 겨우 두 줄에다가....

 

"오늘 자유선택활동 시간에 아무튼 병원 놀이를 했다. 재미있었다."   

 

여기서 압권은 '아무튼'이라는 말. 얼마나 쓰기 싫으면!(ㅋㅋㅋ) 부사냐, 접속사냐, 아무튼. 보다시피 작문 실력이 거의 향상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어제는 줄넘기 수업을 너무 잘 하고 와서(아, 진작 시도해볼 걸!) 쉬었지만 오늘은 꼭 강제하려고 한다. 쓰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써야, 쓰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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шиповник финский залив. 쉬포브니크, 핀란드 만. 이렇게 검색했더니 떴다. 6월이란다. 대학 시절에는 사전에 쓰인 대로 '들장미'라고 외운 단어. 심지어 상징주의 계열 그룹 중 '들장미파'도 있어서 굉장히 고급한(?) 느낌의 꽃인줄 알았는데 바닷가에서 거친 해풍을 맞고 피는, 저런 들꽃의 모습이다. 화려해도 들꽃(야생화)은 들꽃. 우리말 역어는 '해당화'가 맞다. 실제로 서해안에 초여름(늦봄)에 많이 피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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