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지만, 모차르트에 대한 글을 읽으며 이 고색창연한 낭만적 단어를 생각한다. 천재. 역사 속의 그는 분명히 천재였지만, 물론 살아서도 그 수식어를 별명처럼 달고 살았지만 확실히 생존시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그 단어의 느낌은 사뭇 달랐을 터이다. 우선 생김새. 정말 그냥 흔해빠진, 어쩌면 평균에 못 미치는 아저씨. 또한 달리 말하면, 모차르트-천재가 아니라면 전혀 문제 없을 그런 평범한 아저씨. (흡사 우리가 나폴레옹을 무슨 땅콩쯤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는 사실상 평균 신장이었다고 한다.) 그 다음 성격. 글쎄, 개차반은 아니었을 테고, 좀 경박했을까. 이 역시 '평범-일반'의 수식어에 부합할 것 같다. 워낙 '신동', 요즘 같으면 '영재'였던 것인데, 음악(피아노 연주, 작곡)에 몰입할 때 이외의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그 나이 또래 꼬마의 모습이었다고. 그랬을 테지.

 

문제는 성장. 마의 16세던가, 아무튼 여러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성장기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즉, 그를 협박하는, 동시에 돈을 대주는 귀족들, 대략 그런 부류와 다름 없는 구세대(부모),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음악적 재능의 흐름에 있어서의 일련의 변덕, 굴곡 등. 특히, 그의 아버지. 어린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키워준 것은 전적으로 아비였다. 나는 그가 그저 업계종사자 정도인 줄 알았는데, (하이든 작곡으로 알려진) <장난감 고향곡>을 작곡한 인물이라니. 헐, 모차르트 역시 '핵금수저', 유전자 부자였던 것이다!(피카소의 아버지 역시 화가, 미술 선생이었다고 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기존 어른의 세계로부터 탈출해야 하는데, 여기서 성공. 그리고 결혼도 한다. 흔히 우리가 세계 3대 악처라고 부르는 콘스탄체는, 천만의 말씀, 너무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저 책에 이런 편지가 인용된다.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당신의 작은 보금자리를 깨끗하게 준비해둬. 내 귀여운 장난꾸러기는 사실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녀석은 아주 훌륭하게 처신하고 있어. 당신의 매혹적인 (    )을 소유하고 싶은 것 외엔 다른 희망이 없지. 내가 이 편지를 쓰는 동안 탁자 위에서 꿈틀거리면서 내가 질문을 해대는 그 악동을 생각해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튕겨주고는 해. 하지만 그 녀석은 그저 (   )할 뿐이야. 이제 그 못된 녀석은 더 뜨거워져서 통제할 수가 없어.(<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3)

 

처음엔 축자적으로 읽었는데, 밑에 저자가 써놓은 글을 보가 다시 읽었다. 헐, 엄청 야한 얘기였구나. 괄호 부분은, 훗날 모차르트 전기 작가이기도 한, 공교롭게도 콘스탄체의 두 번째 남편이 된 자가 지워 놓은 부분이라고. 비슷하게, 도-키의 두 번째 아내도, 도-키가 첫번째 아내에게 쓴 편지 중 일부를 열씸~히 지웠다. 거참, 죽은 배우자까지도 질투하는 그런 사랑이라니, 부럽다.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콘스탄체는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 중 성년에 이른 아이는 둘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알콩달콩, 티격태격, 옥신각신 좋은 부부였다. 아내와 아이를 사랑해도 "씀씀이가 헤픈"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도박도 마찬가지. 쓰면 쓸수록 어쩜 도-키와 이렇게 비슷한지. 모차르트가 급사할 때도(진짜 돼지고기 식중독이었는지) 그의 옆을 지킨 건 막 출산한 콘스탄체였다.

 

 

 

 

 

 

 

 

 

 

 

 

 

 

 

 

 

그 다음 교우 관계, 특히 살리에르. 그가 모-트의 재능을 질투하여 사십대 중반의 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 과로사를 유도했다는 식의 얘기는 진짜 사실무근인 것 같다.  이 스토리는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졌지만, 원작은 푸시킨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소비극)이다. 푸시킨도 말하자면 모-트형 천재였는데 은근히, 자기를 여기에 빗댄 듯하다. 그 다음, 여기에 기반한(그런 것으로 나는 아는데) 피터 셰퍼의 저 희곡이다. 오히려 그는 멀쩡한 인격의 소유자였고 사실상 유복자나 다름없는 모차르트 아들의 음악 교육에도 관여한다. 물론 그 아들은 아버지 같은 음악가로는 자라지 못한다.  

 

주경철의 책에서 새로 알게 된 것, 혹은 새로운 해석. 당시 살리에는 상당히 잘 나가는 작곡가였다. 심지어 모-트와의 이른바 '작곡 배틀'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정도로 더 인정받은 측면도 있었다. 요컨대 음악적 재능 때문에 모-트를 저렇게 질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 싶은 대목이었다. 동일자끼리 알아본다, 라는 것. 차라리 모-트의 선배인 하이든은 모-트를 질투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넘을 수 없는 산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의 평가를 참조한다면, 살리에르는 모-트의 재능을 알아볼 만한 눈/귀조차 갖고 있지 않았을 법하다. 새삼,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기형도의 시구가 떠오른다.

 

 

 

 

 

 

 

 

 

 

 

 

 

(자유로운 지식인의 밥벌이 문제는 실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겠으나.)  

 

18세기, 세계는 변하고 있다. 귀족(궁정)의 하수(이른바 후원-패트로니지 시스템)로 살지, 아니면 곧이어 베토벤이 보여줄 굶주린, 그러나 자유로운 예술가로 살지. 모차르트가 그 중간에 있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시대는 많이 다르지만, 나와 내 주변의 '프리랜서들' 역시 자주 생각하는 대목. 자유는 좋지만 배가 고프고, 배도 채우고 내 맘대로 쓰려면 귀족(^^;)보다 더 무서운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 즉, 책이 팔려야 한다. 참 냉혹한 현실인데 이걸 무시하고는 천재성이고 나발이고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차르트는 돈도 많이 벌었고 그 아버지가 놀랄 정도의 사업 수완도 있었다. 문학계의 셰익스피어, 괴테랄까. 

 

요컨대 천재성이 여러 병리적인(각종 정신질환) 요소를 정당화주지 않는다. 천재는 다 미친놈이었을 것 같은가? 그랬으면 좋겠지.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범인들의 속된 바람일 뿐, 천재는 생활인으로서는 그냥 생활인(심지어 더 뛰어난)이고 그리고 자기 분야에서는 천재인 것이다. 세상 참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니 빌 게이츠의 말이던가,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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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돼지’라고 하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 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진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출처: 중앙일보]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 예쁜 줄 알겠다”)

 

이어령 선생의 최신 인터뷰 기사를 반복해서 읽는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극찬하시던 분인데, 참 왜 이어령인 줄 알겠다. 어떤 주제를 들이대도 귀 기울일 만한 말을 쏟아내는 자, 새로움과 젊음에 대한 열린 태도(안티-꼰대의 전형이랄까),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어쩜 저렇게 운이 잘 맞는지. 저건 단순히 문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 사람 자체의 문제이다. 검색, 사색, 탐색. 비교적 최근에 그가 쓴 이상에 관한 논문(에세이)를 어느 모음집에서 읽었다. 너무 현학적이고 시건방지고(?) 저돌적이어서 좀 놀랐는데, 무려 대학교 1학년(?)인가에 쓴 글... 역시 천재ㅠ.ㅠ

 

어릴 때 천재인 아이는 많아도, 가령 모차르트처럼 죽을 때도 천재인 사람은 잘 없다.(주변에 영재는 왜 이리 많은지, 그냥 '겨우' 상위 2~3프로니까 많은 게 당연할 지도^^;)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잘 늙는 일이 참 힘들다. 

 

'소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좀 끄적여 보았다. 나한테도 재능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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