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 - 어느 카피라이터의 일주일 글쓰기 안내서
서미현 지음 / 팜파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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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에서 찾아낸 내 초등학생 시절 일기를 읽어보다가 빵 터졌다. 20칸짜리 공책에 매일매일 쓴 일기가 꽤 여러 권 묶여있었다. 그 시절, 일기를 잘 썼다고 상까지 받았었다. 매일이 비슷한 생활의 연속이었을 그 시절, 난 무엇을 그리 매일 썼을까. 선생님이 쓰라고 한 것은 일기였지만 난 그 시절 꽤 창의적인 아이였나 보다. 내 일기장엔 어떤 날엔 일기, 어떤 날엔 동시, 어떤 날엔 편지 등 참 다양한 글이 적혀있었다. 그날그날 떠오르는 대로 별의별 글을 다 썼었더랬다. 내 딴에는 심각함을 담아 썼던 이야기들이 커서 보니 어찌나 웃기던지 혼자 일기장을 읽다가 배를 잡고 웃었다. 우울할 때마다 열어보면 자동 웃음을 발사하게 할 든든한 무기가 생긴 셈이다. 
그나저나 매일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했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글쓰기를 잘하고 싶지만,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머릿속이 백지가 될 때가 많다.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글을 쓰려는 순간 정리가 안되고, 꽤나 강한 자기검열과 약간의 귀차니즘에 갇혀 결국은 '그냥 나중에 쓰지, 뭐' 가 되고 만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 날려버린 이야기들이 꽤 많다. 메모라도 해두면 될 텐데 은연중에 내 하찮은 기억력을 믿는 건지 습관이 들지 않는다. 고로 날마다 쓰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정말!

읽자마자 무릎을 탁 치는 공감을 자아내는 글, 깔끔하고 단백한데 핵심을 찌르는 글, 단순한 문장 속에서 훅 심장을 찌르는 뭉클함이 있는 글, 이런 글을 쓰는 작가들을 보며 부러움과 존경, 질투가 섞인 감정을 느낀다. 작가에 대한 동경만 있을 땐 그냥 마냥 편하고 멋있어 보이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몇 시간을 끙끙 앓으며 고작 읽은 책 리뷰 하나를 내뱉고 나면, 이런 글 하나를 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 쓰고 싶고,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 시작 자체를 막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글이란 자고로 많이 써야 느는 법인데, 이미 결과적으로 잘 쓴 글들만 보다 보니 자신감이 하락하고, 평범한 글을 쓰는 것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는 글 쓰는 것이 직업인 카피라이터 저자가 일단 글 쓰는 것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책상에 앉았을 때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라 백지상태가 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은 이런 글을 써보는 게 어때?" 하고 미션을 제시해준다. 그것도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요일별로 그때의 상황에 맞게 말이다. 저자의 글쓰기를 보면 나도 당장 앉아서 뭔가를 끄적거리며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그러니 이 책은 한 번에 쭉 읽을 것이 아니라, 정말로 챕터를 읽고 나서 덮어둔 뒤 저자가 하라는 대로 실제로 글을 써보면서 천천히 읽기를 추천한다. 

<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는 독자들이 바로 써볼 수 있도록 꽤나 구체적인 미션을 주면서 자신은 이렇게 표현해보았다며 저자의 예시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질 것! 급하게 빨리 쓰려고 생각하면 또 머릿속이 백지가 될 뿐이니까. 
핸드폰 앱에 '씀'이라는 어플이 있다. 하루에 2번, 아침 7시와 저녁 7시에 글감을 배달해주는데, 그 낱말과 관련한 자유로운 글을 남길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남긴 글들도 확인할 수 있는 앱이다. 요즘 글쓰기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양한 글쓰기 앱들이 출시되고 있는데 이것 또한 그 글감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 

책에는 저자가 하는 글쓰기 방법, 노하우, 미션 등 다양한 방법이 있어 글쓰기 의욕을 북돋아준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써보는 것!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우선은 어떻게든 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처음부터 내 글을 못쓰겠으면 잘 쓴 글을 따라 써보고 왜 잘 쓴 글인지 분석해본다거나 내가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쓰고 싶은지 파악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글쓰기의 왕도가 어디 있겠는가. 오죽하면 이 책의 제목도 <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가 아닌가. 
일기처럼, 매일 써보는 거다. 
오늘 나를 화나게 한 사건에 대해, 오늘 지나가다 봤던 멋진 남자에 대해, 눈앞에 놓인 예쁜 커피잔에 대해, 가지고 싶은 물건에 대해, 그것이 그 무엇이든 간에. 

사실 그게 어려워서 자꾸 이런 글쓰기 책을 맴돌고 있다. 
이제는 써보자, 진짜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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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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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 모든 문장에 죽음의 기운이 어려있는 소설집을 만났다. 자살, 종말, 사고, 살인 등 다양한 종류의 죽음이 변주된 이야기들은 소설보다는 '시'같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 천희란은 왜 죽음이라는 테마를 이토록 집요하게 파고들었을까. 신인작가로 데뷔하여 첫 번째로 내는 소설집이 죽음으로 점철된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썼을까, 스토리보다 작가의 정체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첫 번째 소설 <창백한 무영의 정원>에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의 소설은 대부분,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쓰였다. 아무렇게나 툭 던져진 퍼즐 조각 하나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거기에 조금씩 나머지 조각들이 맞춰진다. 하나하나 조각을 맞춰가다 보면 점차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는 식이다. 어느 날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자다가, 혹은 일하다가 픽 죽어버리기 시작한다.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왜 죽는 건지, 또한 내가 언제 죽을는지. 그런 공포가 파다하게 퍼져가는 세상에서 그럴 바에 차라리 자유의지를 가지고 원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겠다는 젊은이들 A, B, C, D, E가 모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과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누구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산다. 하지만 그 죽음이 손에 닿을 듯 말 듯 애매할 땐 차라리 스스로 죽어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일까? 그들의 마지막은 과연 어떨지. 

「하루가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시작되는 것일까. 돌연 그러한 질문이 떠올랐다.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정확히 12시를 가리켰다. 밖은 어두웠고, 자정이었다. 왜 자정을 0시라고 부르는 걸까. 0은 11의 다음에 오는 숫자가 아니고, 23의 다음에 오는 숫자가 아니며, 0은 12와도 24와도 같지 않다. 0은 1의 앞에 올 수 있으므로, 자정을 하루의 시작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 
< 『영의 기원』 p.80>

영(0)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하루가 다 가고 23시 59분 59초가 넘어가는 순간 시계는 다시 00시 00분이 된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기도 하고, 동시에 꽉 찬 어제가 끝나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지나간 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영'이라는 단어는 공교롭게도 숫자 0의 의미도 있지만 영혼을 뜻하기도 한다. 1초 전 살아있던 사람도 숨이 멎는 순간 더 이상 그가 아니다. 한 구의 시체일 뿐인 것이다. 모든 것이 리셋되고, 진실은 남겨진 자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참 얄짤없다는 생각을 했다. 죽은 자는 왜 절대로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인가. '영'으로 리셋되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작가가 이런 의미까지 의도하고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새삼 0시라는 단어가 좀 무참하게 느껴진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는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서 한 번 읽고 난 후 이번에 재독 한 단편인데, 한 번 더 읽으니 비로소 제목의 의미가 확실히 와닿는다. 전주곡이라는 의미의 '프렐류드'와 가장 완전한 형식의 다성음악이라는 '푸가', 처음엔 왜 이런 어려운 제목을 썼을까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 아주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효주와 선생님으로 불리는 두 여자의 편지 형식으로 쓰인 소설이다. 선생님은 효주 엄마의 죽음을 유일하게 목격한 사람이다. 효주는 선생님에게 입양되어 자라나 결혼을 앞두고 있고, 엄마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스위스 바젤에 있는 선생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절대로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가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한 작가에게 쓰고 싶지 않은 것은 곧 쓸 수 없는 것일 테다. 비열한 글쓰기란 자신과 타인의 삶을 팔아 연명하는 것도, 핍진한 허구를 구성하지 못하는 것도,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굴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쓸 수 없는 것을 쓸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는 것. 지금까지의 절망이 모두 허위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p.136>

절대로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가진다는 것, 그건 반대로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뜻이 아닐까. 선생님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는 다섯 개의 프렐류드 뒤에 숨겨져 있었다. 죽음이 닥쳐왔을 때에야 쓸 수 없던 것을 써 볼 용기를 낸 선생님에게 죽음은 비로소 완성을 뜻하는 거였을까.

단편들은 대체로 읽기에 어렵고 무거웠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테마의 8개 이야기를 읽어내려 가는 동안 자꾸만 내려놓고 싶었고, 때로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왜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내면은 대체 어떤 상태인 건지. 작가의 말에서 '매번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라는 말을 보고 과연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작품 해설에서 신샛별 평론가가 남긴 글이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아 대신 전한다. 

「본래 예술가의 숙명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작가란 평생 한가지 이야기만을 할 뿐이라는 말을 흔히 듣지만 그것은 달리 말하면 한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이 결국 가장 궁극적인 진실 하나를 말하지 못하고 방황한 흔적들이라는 뜻이 된다. 어쩌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그 한 가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고 말하기 위해 자신을 끝없이 학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예술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화가와 작가를 탄생시키고 그들을 통해서 예술가의 숙명을 응시하고 있는 우리 앞의 이 작가, 천희란은 누구인가. 죽음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작품을 향해 나아가는 예술가들을 그려내는 동안 천희란의 내면에는 어떤 직시와 회피의 긴장이 있었을까. 바꿔 말해 천희란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그러나 생이 다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결국 최종적인 버전을 만들어내게 될 그 진실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혹은 말하지 않기 위해 이토록 죽음으로 가득한 책을 쓴 것일까. 」
< p .329 작품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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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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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행복한 시간은 가장 짧다. 눈에 오랫동안 담아두고 싶은 아름다운 가을 풍경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도. 그럴 땐 문득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채로, 행복한 채로 영원히 멈출 수는 없을까.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영원할 것 같던 젊음도 천천히 저물어간다. 그래도 우리가 여전히 웃을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이들과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시대를 공감하고, 함께 늙어간다는 것 그것은 혼자 이 세상에 태어나 고독한 인간에게 주어진 작은 축복일지 모른다. 
얼마 전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라는 일본 영화를 봤다. 막 사랑을 시작하는 아름다운 커플 이야기 같았는데 알고 보니 그들의 시간은 완전히 맞물려 거꾸로 돌아간다는 설정이었다. 남자는 정상대로 나이 먹어 가는데 여자는 거꾸로 어려지는 세계에 산다. 두 사람이 동시에 20살이 되는 시기에 딱 30일 동안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남자의 첫 키스, 첫 데이트가 여자에겐 모두 마지막 키스, 마지막 데이트가 된다는 설정이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다가 영화 끝에 가서는 마음 아파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함께하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렇게 슬픈 일인지 미처 몰랐다. 

《시간을 멈추는 법》의 주인공 톰 해저드는 나이가 많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아주 많다. 무려 439살이나 먹었으니.  그는 드라마 <도깨비>의 공유나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처럼 죽지 않는 불사의 캐릭터는 아니다. 다만 '애너 제리아'라는 병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노화가 15배 정도 느리게 진행된다. 겉보기엔 40대 초반의 모습이지만, 그는 1500년대에 태어난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그것 말고 그에게 다른 능력은 없다. 평범하고 고독한 인간일 뿐인 것이다. 다행히 그와 같은 병을 가진 이가 톰 한 명만은 아니어서 그들은 앨버트로스 소사이어티라는 조직에 속해 서로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앨버트로스 소사이어티의 보스 핸드릭이 톰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첫 번째 규칙은 사랑에 빠지지 않는 거야."
그는 말했다. 
"다른 규칙도 있지만 이게 가장 중요해.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 사랑에 계속 빠져있으면 안 된다는 것. 백일몽 속에서도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 이 규칙만 잘 지켜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 
<p.7>

앨버트로스들에게 사랑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욕구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톰은 4세기 전 여인 로즈와 사랑에 빠졌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도 낳고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 나이 들어가는 로즈의 시간을 톰은 잡을 수 없었다. 거기다 오랫동안 전혀 나이 들지 않는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그마저도 떨어져 지내야 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녀라고 몰아붙이는 미신이 유행했던 그 시절, 톰은 자신의 어머니를 마녀재판으로 잃은 것처럼 로즈도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 이후 400년 넘는 시간을 톰은 불면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삶의 희망은 딸 매리언을 찾는 것이다. 그녀도 톰처럼 '애너 제리아'에 걸렸는데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이후 4세기 이상 만나지 못하고 있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톰의 인생을 보여준다. 그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살며 인연을 맺었었고, 작가 피츠 제럴드와 우연히 술집에서 마주치기도 했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 시절이 톰과 함께 생생한 현재처럼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현재 톰은 런던에서 역사 선생님으로 새 인생을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자꾸 그의 맘을 흔드는 여인 카미유가 나타났다. 그는 앨버트로스의 규칙을 과연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시간을 멈추는 법》은 이미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으로 영화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얼굴을 톰에 덮어씌워 상상하며 읽었다. 컴버배치 외에 다른 배우는 상상이 안될 정도로 너무나 딱 맞는 배역이 아닐까 싶다. 소설은 SF 적인 소재를 가져다 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철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다는 작가 매트 헤이그는 400년이라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그물처럼 흥미롭게 이야기를 짜내면서도 인간과 사랑에 대한 다양한 철학도 잘 녹여놓았다.  

난 개인적으로 재미난 책을 읽을 때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더라. 
천년을 살면서 수많은 책들을 다 읽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행복하려나.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늙어갈 수 없는 고독함은 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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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지수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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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저녁마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로 하루를 마무리 하곤 한다. 물론 내 의지보다는 짝꿍씨의 강요가 더 큰 요인이긴 하다. 뛰기 전에는 넘나 귀찮고,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데 막상 천천히 걸으며, 뛰며 땀을 흘리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뿌듯함이 올라오곤 한다. 하지만 꼭 뛰고 나면 엄청난 허기가 몰려오기 때문에 뛰면서 태운 칼로리가 무색하도록 훨씬 더 많은 밥을 맛있게 폭식하고 자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어쩌면 달리기의 맛이란 똑같은 밥도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것일까?-_-ㅋ

불혹을 넘어 운동의 맛을 알게 돼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산에서 달리기를 하는 트레일 러닝에 도전하는 저자 가쿠타 미쓰요는 우리가 잘 아는 소설 <종이달>을 쓴 유명 소설가이다. 그녀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지인이 참여하는 마라톤 모임에 가입한 이유가 회식 뒤풀이에 참여하고 싶어서였다나. 모임에 가긴 했으니 뛰긴 해야겠고 그러다 보니 점점 체력이 늘어 나중엔 하루에 20km를 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즐거워서 달리는 게 아니다. 마지못해 달린다. 어째서 마지못해 달리는가 하면, 한번 쉬면 다음 주도 쉬고 싶어질 게 분명하고 다음 주도 빼먹으면 그다음부터는 틀림없이 내내 빼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번 쉬다는 건 내게는 팀을 그만둔다는 뜻이며, 그 말인즉슨 앞으로 평생 달리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싫어하는 일을 5년씩이나 매주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충격을 받곤 한다. 어떻게 그토록 싫어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달리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달리기에는 딱 하나 놀라운 점이 있다. 바로 '할 수 있게 된다'라는 사실이다. 달리기를 시작했던 5년 전, 나는 고작 3km가 한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20km를 달릴 수 있다.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놀라움 때문이리라. 」
<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p.21>

응? 마지못해 하는 달리기를 매주, 그것도 5년 동안이나 할 수 있다니 제일 충격적이었다. 저자는 계속 뛰면서도 하기 싫다며 투덜거리고, 꾸준히 운동을 하지만 예쁜 몸매를 꿈꾸지 않으며, 더군다나 좋아하는 술도 줄이지 않는다. 한번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냥 해보겠다는 식이다.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운동을 했지만 운동 때문에 밥맛이 좋아져 살이 더 찌기 시작하자 그 살을 빼기 위해 또 다른 운동을 시작하는 엉뚱함도 있다. 몇 년 동안이나 꾸준히 뛰었지만 몸매의 변화는 크게 없었단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이도 들고, 먹는 것과 술도 줄이지 않았는데 그전의 몸매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대단한 것 아니냐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 참 신기한 사람이다. 눈앞에 뚜렷한 목표 없이 오로지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극한의 마라톤 같은 운동을 계속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어찌 보면 저자는 달리기라는 운동이 주는 투명성에 반한 게 아닐까. 지난주에 3km가 한계였다면 이번 주에는 4km까지는 어찌어찌 뛸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숫자의 성장이 주는 기록의 재미, 운동하고 난 이후에 찾아오는 몸의 뻐근함 그리고 꿀맛 같은 밥맛 이런 것 말이다. 산속에서 달리기를 하는 트레일 러닝 같은 운동은 생각만 해봐도 끔찍하다. 걸어서도 오르기 힘든 산을 달려서 오른다고? 저자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참여하면서도 끝나고 나면 '다음엔 또 언제 하지?' 하는 생각을 하는 본인을 보며 흠칫 놀라기도 한다. 그게 바로 저자가 말하는 달리기의 매력, '할 수 있게 된다' 아닐까? 

운동을 해서 멋진 복근을 만들 거야, 살을 뺄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생각보다 힘들 수도 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땐 그냥 기록 자체에 매달려보는 건 어떨까. 오늘은 2km를 달려보자, 내일은 2.5km를 달려보자, 그렇게 조금씩 늘려가는 거다. 자기의 한계치를 조금씩 높여보는 거다. 그럼 마지못해 뛰는 과정에서도 오묘한 즐거움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난 운동을 싫어하고, 마라톤 같은 오래달리기는 더더욱 싫어한다. 그런데 마지못해 달리는 사람도 저 정도로 뛸 수 있다고 하니, 왠지 '그렇다면 나도?' 요런 마음이 불쑥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풀코스 마라톤을 달릴 수 있게 된 최종 결과만 보면 감히 엄두도 못 내겠지만, 하루에 조금씩 늘려가는 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이제 앞으로의 러닝머신 타임이 좀 덜 지겨우려나. 
달리기로 인한 결과보다 달리기 자체의 기록에 집중해보는 거야.
새로운 방식의 운동 장려일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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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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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보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보내는 시간이 훨씬 행복하다. 그러다 보면 쭈글쭈글하던 자존감도,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갉아먹던 내 조급함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에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방, 마음껏 기뻐하고 슬퍼하며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혼자만의 사적인 공간. 그리하여 나는, 지금, 혼자 있다. 

《혼자 있기 좋은 방》은 조용히 숨고 싶은 방 / 완벽한 휴식의 방 / 혼자 울기 좋은 방 / 오래 머물고 싶은 방으로 테마를 나눠 다양한 방의 모습을 나타낸 명화와 함께 조곤조곤 진심 어린 저자의 글이 곁들어진 그림 에세이다.  화가이자 작가라는 이 책의 저자 우지현은 꾸준함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꾸준함의 힘인 것인가, 그녀의 글은 마음을 두드리고 공감을 일으키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책 속에 줄긋고 싶은 문장이 많아서 포스트잇 스티커를 붙이며 읽다가 결국엔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그냥 읽었다. 좋은 글과 좋은 그림이 차곡차곡 예쁘게 어우러진 이런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좋은 법이니까.  


「혼자란 모든 것의 기본이다. 일도 사랑도 관계도 삶도 바탕에는 내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상대를 배려하는 과정에서 외면된 나의 진짜 마음과 마주할 수 있고, 집단체제 속에서 생략된 나의 실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 보고, 혼자 드라이브하고, 혼자 마트에서 장을 보고, 혼자 식당에서 식사하고, 혼자 서점에서 책을 읽고, 혼자 공원을 산책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고, 혼자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일은 얼핏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아는 것, 삶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 < 혼자 있기 좋은 방 p. 105>

그림 속 혼자 있는 여인을 보니 왠지 쓸쓸해 보이긴 하지만 비극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따뜻한 불빛이 가득 비추는 방안의 벽난로 앞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혼자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그녀는 분명 아침이 오면 기운을 되찾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있는 평온한 밤 시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위기의 그림이라서 오랫동안 쳐다봤던 그림이다.  

다니엘 가버, 「과수원 창문」

그중 다니엘 가버의 그림도 기억에 남았다. 그는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가장 행복으로 여기는 화가였기에 활동하는 지역도 미국 내로만 한정하고, 외딴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이 풍성한 곳에서 살며 가족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그림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가족들의 일상의 단면을 그대로 포착하여 나타냄으로써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그림만 봐도 그 속에 행복감이 묻어난다. 따뜻한 햇살을 가득 받으며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책을 읽고 있는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 너무나 밝고 따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다니엘 가버의 죽음은 스튜디오에서의 사다리 추락사고로 너무나 급작스럽고 황망하게 찾아왔다고 한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순간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다 갔기에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바로 지금, 오직 여기에만 있다. 아끼고 미루다 보면 행복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행복을 즐기겠다는 자세로 행복을 느껴야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지금 최대한 맛있게 먹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꼭 시간을 내서 읽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바로 찾아서 보고, 그리운 사람이 있으면 당장 달려가서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지금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다 하지는 못해도 생각만 하다가 끝나지 않는 삶,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 보는 힘, 이런 것들이야말로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궁극적으로 삶을 견디게 한다. 」 
<p.297> 




명화 그림은 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찰나를 붙잡아 맨 현실이 사진이라면, 그림은 철저히 화가의 의도와 상상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과 구도와 표정, 색감, 물건의 배치 등이 정해진다. 그래서 화가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자세히 오랫동안 살펴볼 수밖에 없다. 세세한 물건들과 인물의 눈빛까지 하나하나가 철저히 계산된 화가만의 의사표현인 것이다. 그걸 발견하기 위해 오래오래 그림을 쳐다보는 과정에서 어쩌면 화가의 의도와 감정이 전달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림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책을 통해 그림을 보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달까. 문득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싶어졌다. 

예술이 꼭 어려운 것은 아니다. 
모든 예술은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이 책은 정말 추천, 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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