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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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평소 생활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이건 나중에 글로 써봐야지' 할 때도 많다. 문제는 글을 써야겠다고 책상에 앉으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는 것, 생활하면서 자유롭게 머릿속을 떠다니던 멋진 문장들은 앉아서 글로 쓰려는 순간 훅 날아가버리고 없다. '평소에 메모를 했어야지'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핸드폰으로 글자 적는걸 싫어할 뿐만 아니라, 메모지를 곳곳에 놔두고 쓰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쓰기만 하면 멋진 문장이 줄줄 흘러나올거란 기대를 한다. 막상 쓰기 시작하면 초등학생 수준의 유치한 문장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써야한다. 계속해서 쓰면서 생각의 쓰레기들을 흘려보내다보면 언젠가는 그 안에서 자그마한 생각의 사금을 발견할수도 있으니까. 

「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이 무엇이든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 읽지 않더라도 갑자기 책을 덮고는 무엇이든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 낙서를 하고 문장을 만들어보고, 이야기를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랫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결과는 형편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형편없는 것들이 쌓이게 될 것이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형편없는 것들을 하나씩 쌓아보자. 당신은 지금부터…… 무엇이든 쓰게 된다.」 <프롤로그 에서>

김중혁 작가는 잘쓰려고 하지 않으면 쉽게 쓸 수 있고, 잘 그리려고 하지 않으면 쉽게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요즘 데일리 다이어리에 매일 일기를 쓰는 중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이다 보니 사실 별로 쓸 내용이 없다. 어떤 날은 읽은 책에 대한 내용을 쓰기도 하고, 오빠랑 대화나눈 것들에 대해 쓰기도 한다. 잘 쓰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부끄럽게도 초등학생 일기 수준이다. 하지만 적어도 매일 무언가 쓰고 있지 않은가. 매일 정제된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면 아마도 벌써 포기했으리라. 

작가는 어떤 일상을 사는지 궁금했다.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대체 어떤 생활을 할까. 글 쓸때는 어떤 프로그램을 쓸까, 하루에 몇 시간이나 글을 쓸까, 다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김중혁 작가는 이런 질문을 꽤 많이 받았나보다. 평소 자신이 쓰는 펜의 종류와 문구부터 시작해서 글쓰는 프로그램과 전자제품까지 모두 소개해놓았다. 사실 문구덕후에 장비 갖추는걸 좋아하는 나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여기서 벌써 한번 흔들렸다ㅋ 책을 읽다가 아이패드 프로의 가격도 확인하고, 작가가 쓴다는 스크리브너와 율리시스 같은 글쓰기 프로그램도 찾아봤다. 아마도 애플빠인듯한 김중혁 작가는 책에 나온 모든 삽화도 직접 애플 펜슬로 그려서 넣었다고 한다. 전작 에세이 <뭐라도 되겠지>에서도 온갖 귀여운 그림들과 유쾌한 농담이 난무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아니, 왜 이 사람은 글도 잘쓰고 그림도 잘그리는거야, 거기다 유머까지! 세상은 불공평해' 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가 물론 글과 그림에 두루 소질이 많은 것도 있지만, 잘해야 겠다는 생각없이 일단은 시작해본다는 것, 그것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믿음과 소망과 관찰, 그 중에 제일은 관찰이다. 재치와 끈기와 열정과 야심이 불타올라도 관찰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관찰은 창작자로 출발하기 위해 제일 먼저 가동시켜야 할 엔진이자 가장 늦게 타올라야 할 불꽃이다. 관찰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 무엇이든 쓰게 된다 p.10>

책의 첫부분부터 귀싸대기를 맞은 기분. 그렇다, 난 관찰력이 부족하구나. 얼마전부터 느끼긴 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뭔가를 그리려고 하면, 그게 어떻게 생겼더라, 이 포즈는 어떻게 그려야 하지 하는 생각으로 눈앞이 캄캄한거다. 평소 한가지를 눈여겨보기 보다는 성격이 급해 대충 훑어보고 넘어갈 때가 많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려면 관찰력부터 길러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역시 글 쓰는데도 필요한 스킬이었다. 남들과 같은 것을 보더라도 더 오래보고, 다른 방향에서도 보고, 결국엔 남들과 다른 점을 볼 수 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실제로 미술관에서 이보다 더한 걸로, 새하얀 캔버스 위에 가늘고 붉은 줄 하나를 세로로 찍 그어놓은 작품도 봤다. 헤어 실버맨에게 그 붉은 줄 그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건 나도 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했잖아."」 
< 무엇이든 쓰게 된다 p.283>

책을 읽으며 가장 뒤통수 맞은 것 같았던 대목이다. 살다보면 정말 아무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림으로 대박이 나는 사람도 있고, 어떤 글은 '이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다른 점은, "하지만, 안했잖아!" 이다. 얼마전에 기사를 보다 카카오톡에서 '대충 하는 답장'이라는 이모티콘으로 대상을 받은 사례를 봤다. 정말 연필로 대충 그린 듯한 얼굴에 표정도 다 비슷비슷한데 다만 매우 얄미움을 장착한 이모티콘이다. 그 작가는 취업도 안되고 심심해서 평소 자신의 모습을 담아 대충 그려서 내봤는데 대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나도 어쩌면 그런 그림 정도는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했잖아." 어떤가. 이제 노트를 한번 펴보실까.

「독일의 교육학자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는 "창의성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우리를 벽에 부딪치게 만든다"고 했다.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 남들과 다른 어떤 것을 만들려고 하는 순간, 스스로 벽을 세우는 셈이다. 특별할 필요가 없다. 오래 하다보면 특별해진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특별하고, 시간과 함께 만든 창작물은 모두 특별하다. 」 <p. 286>

모두에게 특별하지 않더라도 나한테 특별한 글이면 족하다. 에버노트에 2주전쯤, <매일 글쓰기> 폴더를 만들어놓고 단 한 줄도 못썼다... 일기장과 다르게 거기엔 뭔가 좀 더 특별한 글이 쓰여야 할 것 같았나보다. 김연수 작가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일주일 정도는 꾸역꾸역 자기가 보기에도 쓰레기 같은 글들을 미친듯이 꾸역꾸역 토해내고 나서야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전문 작가들도 일단은 쓰면서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내가 뭐라고 처음부터 잘 쓰려고 했단 말인가. 아무 글이나 써보자. 유난히 추웠던 날씨, 반려묘 다림이가 나에게 보여줬던 따뜻한 애교와 눈빛, 오늘 봤던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가감없이 써보는거다. 

당신도 당장 펜을 들어보자. 자, 무엇이든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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