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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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대 악을 접할 때면, 사람은 두려움을 넘어 호기심이 발동한다. 무엇이 저 사람을 악의 화신으로 만들었을까. 악이란 태어날 때부터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아님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474는 정치인 12명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재판에서 어떠한 항소도 없이 바로 형이 확정되어 현재 사형수이다. 윤은 보통 사람과 확실히 다른 포스를 풍기는 474가 궁금하다.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노골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474에게 접근한다. 

「474번의 담당 교무관으로 결정됐을 때 내색하진 않았으나 윤은 내심 기뻤다. 호기심을 잔뜩 빨아 마신 마음 뿌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애썼다. 알아내려 하지 않으려 애썼고, 관심 없는 척하려 애썼다. 거리를 유지한 채 기다렸다. 기다림. 그것은 윤이 스스로 잘한다고 믿는 유일한 특기였다. 적당한 압력으로 눌러 더는 앞으로 걸어가지 못하는 개미의 떨림이 멈추기까지, 어째서인지 저수지에 빠진 박새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다 얇은 두 다리를 쭉 뻗고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겨울 새벽 인적이 드문 국도를 지나다 차에 치인 개가 더운 입김을 뿜고 서서히 잠들어가는 모습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 윤은 그것을 잘했다. 스스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그것은 선한 일은 아니지만 결코 악한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 정당화하며, 기다리고 지켜봤다. 누군가 몰락하는 풍경을, 누군가의 비밀이 어떤 이유로 인해 탄로 나는 모습을, 후회와 절망으로 무너져 침 흘리며 우는 모습도 지켜봤다.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고, 인과에 참여하지 않고, 그러나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윤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찾아냈고 선 앞에 서 있었다. 어떤 이는 윤을 사악하다 했고 어떤 이는 윤을 무섭다고 했지만 대부분은 윤을 깔끔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좋아했다. 」 <유령 38~39쪽>

소설 속에서 474는 살인자이자 사형수에서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인간 '신해준'이 되어간다. 그의 과거가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들기 때문이다. 누나와 단둘이 외롭게 살다가 누나에게 마저 버림을 받은 불쌍한 어린아이, 태어날 때부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있어 살이 뜯겨나가도, 불 위를 걸어도 자기 몸이 다치는 지도 모르기에 오히려 삶이 더 위험투성이인 사람. 영화에 나오는 아무리 냉혹한 살인자라도 그가 겪은 어두운 과거를 보면 그에게 동정심과 이해심이 생기는 것처럼 우리는 아무리 강렬한 악이라도 그 안에서 그럴만한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 그가 이미 저지른 일은 어떠한 것으로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에는 다양한 형식의 악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용히 숨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지켜보기만 하는 관찰자 '윤', 자신의 불행함을 실제 악을 행함으로써 표출하는 474 신해준, 악이란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 믿으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누나 신해경. 

어쩌면 우리는 이 모든 악을 조금씩 다 나눠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절대악은 그것을 행하는 살인자나 범죄자에게만 존재한다고 태연자약하게 믿으며. 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악마였고, 이해할 수 없는 악은 '사이코패스'라 단정 짓는다. 그런 그들을 널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미친놈'이라고 한마디 내뱉으면 끝인 것이다. 

저자 정용준은 악과 악인을 분리시켜 보여준다. 악의 상태로 내몰리다 실제로 악인이 되어버린 유령 신해준, 그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어쩌면 나도 교도관 '윤'이나 누나 신해경과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그를 봤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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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0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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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1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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