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 몸의 감각을 되찾고 천천히 움직이고 필요 없는 것은 내려놓고
히로세 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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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 TV에서 토크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런 장면을 봤다. 4~50대를 맞은 중년 여자 연예인들이 나와서 얘기를 나누다가 
"누군가 나한테 만약 20대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난 그 사람 때리고 싶어요. 전 지금 나이가 좋아요. 여유와 안정감 같은, 나이를 먹어야만 얻게 되는 것이 분명히 있어요." 
그 얘기를 들은 몇몇 패널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20대의 앞만 보고 달리는 열정과 패기, 싱그러움이 물론 부러울 때도 있지만 역시나 30대가 되고서야 알게 된 삶의 여유라는 걸 절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래서 난 지금의 내 나이가 좋다. 4~50대는 아직 돼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는 그 무엇이 또 분명 있으리라 본다. 

이 책은 50대가 된 저자 히로세 유코가 자신이 추구하는 느긋한 삶의 방식을 나른한 오후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듯 조곤조곤 풀어놓은 에세이집이다. 글 내용은 어쩌면 다른 곳에서도 흔히 읽을 수 있는 뻔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살면서 직접 깨닫고 느낀 일들을 담은 글이라 그런지 좀 더 와닿게 가슴에 담아두기 좋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생각도 성격도 변하나 보다. 나의 20대는 뒤돌아보지 않는 오직 직진에 저돌적인 시간들이었다.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뭔가를 이루는 게 좋았고, 주변에 친구가 많을수록 즐거움이 컸다. 나를 돌보기보다는 오로지 목표에 충실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30대가 되면서 생각이 훅 바뀌었다. 결혼을 하고 안정을 찾으면서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20대의 충만했던 욕심이나 승부욕이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유로운 시간과 생활이 더 중요하고, 많은 수의 친구보다는 진짜 마음을 나눌 한 명의 친구가 더 소중해지는 그런 것들. 심지어 좋아하는 계절도 바뀌는 것 같다. 지금껏 여름과 겨울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무조건 '여름'을 외쳤던 내가 이제는 '겨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름의 익사이팅 한 활동성보다 겨울에 따뜻한 집안에서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따뜻함을 느끼는 게 더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느긋해진다는 건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 기준으로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체로서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나를 돌아보기 시작하면 내 주변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쓸데없는 것에 힘을 빼는 일이 줄어들면서도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게 되고, 그만큼 내 시간은 느긋해지는 것이다.      

「마음이 심란하다. 그렇게 느낄 때는 천천히 움직입니다. 의식적으로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녹차를 내립니다. 천천히 걷습니다. 천천히 얘기합니다. 그것만으로 마음의 심란함이 조금씩 사라집니다. (중략)
한동안 그런 식으로 천천히 움직이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슴 언저리에 있던 어수선한 무언가가 아래로 쓰윽 내려가고 어느새 신경 쓰이지 않게 됩니다. 그럴 때는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저절로 깊은 호흡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몸속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p. 84~86>

나도 느긋하게 지내보련다. 수시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마음이 심란하면 천천히 움직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주변을 깨끗이 하며 나 자신을 사랑해보련다. 

결국 진짜 여유와 느긋함은 스스로 찾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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