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끌리다 - 나를 위한 특별한 명화 감상
이윤서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그림이란 어쩌면 그 자체의 미학도 중요하지만 보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보려고 마음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전엔 미술관에 가서 좋은 그림을 봐도 딱히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았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화가가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자세히 보고 느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거장들이 남긴 회화들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기는 이유는 그림의 깊은 아우라와 더불어 그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고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에 따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보는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별생각 없이 보던 그림들이 그 화가에 대한 정보와 스토리텔링을 듣고 보는 순간 더 폭넓고 깊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림 보는 것이 더 재미있어졌다. 또한 그림에 숨어있는 구도와 화풍의 특징들도 더 자세히 살펴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런 습관들은 꼭 거장의 유명한 그림을 보는 데에만 해당하지는 않더라. 얼마 전에 지하철역에서 전시하는 아동미술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 그림이라고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 특유의 눈높이에서 나오는 다양한 상상력과 구도가 생생하게 다가와서 생각보다 꽤 꼼꼼하고 즐겁게 작품을 감상하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림에 끌리다>는 저자가 화가별로 챕터를 나눠 해당 화가에 대한 스토리와 그림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꽤 다양한 화가에 대해 다루고 있어 그동안 그림만 알고 누구의 작품인지 몰랐던 작품들도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다만 책 곳곳에 담겨있는 저자의 에세이 글이 글의 전체 흐름과 별로 상관이 없어 보여서 흐름을 끊는 것 같아 아쉬웠다. 차라리 명화를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구성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중 저자가 설명해주지 않았으면 알아채지 못했을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에두아르 마네는 언제나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어."라고 말할 정도로 '빅토린 뫼랑'을 뮤즈로 많은 그림을 그려냈다. 그녀의 얼굴은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마네의 그림 모델이 되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숙녀와 앵무새> 그림에 나오는 얼굴과 <피리 부는 소년>에 나오는 인물의 얼굴이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두 얼굴의 눈매와 입매가 묘하게 닮아있다. <피리 부는 소년> 그림의 경우 유명해서 자주 보던 그림인데 이런 숨은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재밌게 느껴진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도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예술계의 풍운아라 할 수 있는 뒤샹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복사한 그림에다 콧수염을 그려 넣고 <L.H.O.O.Q>라는 제목을 정했다. 그것을 붙여 발음하면 엘라쇼오퀴라고 발음되는데,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Ellle a chaud au cul)'라는 문장과 같은 발음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뒤샹은 남성 화장실에서 변기를 떼어다 사인을 해서 <샘>이라는 이름을 지어 출품하기도 한다. 이 사건은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라는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장난스러운 말장난과 같은 작품들은 예술가들에게 비난받았을지언정 현대미술에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TV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그림도 기억에 남는다. 이런 호러스러운 그림이 명화라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은근 자세히 살펴보게 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사투르누스(그리스의 크로노스 신의 로마식 이름)가 아들 중 한 명이 자신의 왕좌를 빼앗을 거라는 예언을 듣고 자식을 잡아먹는 모습을 나타낸 그림이라고 한다. 희번덕한 눈동자와 피 흐르는 아들의 몸이 정말 그로테스크하다. 

「고야는 자식이 20명이나 되었지만, 야비에르를 제외하고 모두 잃었다. 아마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죄책감으로 아들을 뜯어먹는 '사투르누스'를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 그림에 끌리다 p.153>

그림이란 알수록 재밌다. 화가마다 화풍이 다르고, 그 안에는 어김없이 화가와 그림에 대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그림에는 화가가 심혈을 기울인 붓질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걸 자세히 보다 보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다.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 숨어있는 스토리를 알수록 더 풍미 있게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더운 여름 시원한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듯 책으로 다양한 명화 이야기를 즐겨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