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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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 맴도는 말을 
품고 살았다. 

누군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올 때가 
있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 

뜨거운 것이 목울대까지 맺혀 
올라와 혀끝에
매달릴 때마다 
썼다. 쓰는 수밖에
없었다.

(중략)

쓰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진리인 양 
되새긴다.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마음으로 아는 일이고, 
누군가의 손에
내 마른 손을 얹는 일이고, 
누군가를 품고, 
순리대로 떠나보내는
일이다. 
<프롤로그 작가의 말 중에서>

에세이의 프롤로그를 읽다가, 책을 읽기도 전에 울컥했다. 아픈 누군가를 바라보다가 괜찮냐고 묻는 것, 아프지만 씩씩한 척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을 때 별것도 아닌 그 한마디로 목울대가 뜨거워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리라.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아는 것이고, 괜히 쓸쓸해지는 것이고, 때론 혼자 히죽 웃게 되는 일이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는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저자가 쓴 짧은 글들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에세이집이라고는 하지만 저자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저자가 사랑하는 작가와 책, 그림,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책을 살짝 들춰봤을 때 낯익은(하지만 대부분은 이름만 아는) 작가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대를 했다. 하지만 작가의 단상 위주로 짧게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글들이 많아 전반적으로는 내용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긴 한다.  감성적인 제목에 비해 내용은 불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단상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제목에서 느끼는 감성을 기대하고 책을 읽는 분들에게는 다소 의외의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책이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분들께는 또 다른 기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작가의 서재였다. 저자 함정임은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달맞이 언덕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을 부산 해운대 쪽에서 보냈던 터라 달맞이 길은 나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지금은 멀리 떠나와 살기에 아주 가끔씩만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마음먹고 찾는 곳이 되었지만. 

소설가란 족속은 세상의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끝까지 사랑하는 인간. 나는 틈만 나면 바닷가 언덕에서 해안가 철길로 달려 내려간다. 해가 뜨는 아침에는 해와 정면으로 맞서서 동쪽, 구덕포 지나 송정 쪽으로 걷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에는 청사포 지나 해운대 쪽으로 걷는다. 청사포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자리 잡은 구덕포와 미포는 황석영의 걸작 단편 <삼포 가는 길>의 ‘삼포’는 아니지만, 포구마다 그에 못지않은 사연을 품고 있어 누구든 이곳에 며칠 머물며 또 다른 <삼포 가는 길>을 꿈꾸기 좋은 곳이다. 
<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 p.94 >

해를 정면으로 맞서서 해가 떠있는 방향을 따라 송정 쪽으로, 해운대 쪽으로 걷는다는 저자의 생활이 부러웠다. 바다가 옆에 있으면 확실히 그만의 예술적인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갑자기 창 너머로 넘실거리는 바다가 보이는 서재가 간절해졌다. 

그런 서재에서 
끝없이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나는 괜찮은지, 
당신은 괜찮은지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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