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학창 시절 이사카 고타로는 <죽음의 키스>라는 책을 읽다가 몸을 벌떡 일으킬 만큼 흥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언젠가 꼭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신작 화이트 래빗에 꽤 많은 트릭들을 갈아 넣은 듯하다. 읽으면서 놀라 벌떡 일어나진 않았지만, 몇 번이나 동공이 훅 커지곤 했으니 어느 정도는 꿈을 이룬 듯하다. 책 전체가 반전과 트릭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글을 읽는 독자들이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려면 자세한 줄거리 소개는 되도록 자제해야 할 것 같다. 간단히만 말해보자면 범죄조직에서 인신매매를 통해 돈을 벌며 살아가는 우사기타 다카노리가 얄궂게도 자기의 사랑하는 와이프 와타코를 조직의 두목에게 인신매매 당하는 바람에 아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내용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리온 별자리를 검색해 본 것이다. 소설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2가지가 있는데 바로 오리온 별자리와 레미제라블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도 작가는 두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이야기를 묘하게 합쳐 재밌게 풀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연인 관계였던 오리온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아르테미스의 오빠 아폴론은 어느 날 멀리서 오리온이 사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오리온의 머리를 과녁 삼아 동생에게 사냥 내기를 청한다. 과녁이 오리온인 줄 몰랐던 아르테미스는 활로 오리온의 머리를 명중하고 오리온은 죽게 된다. 그런데 소설 초반 부분에서 와타코가 우사기타에게 해주는 얘기에서는 오리온이 전갈에 물려 죽었다고 나오는데 일부러 잘못 알려주는 건지, 작가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전갈자리와 오리온자리의 관계도 흥미로운데 이런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조금씩 녹아있다. 

근데 다 읽고도 왜 책 제목이 화이트 래빗인지, 소설 속 사건이 왜 흰토끼 사건인지 알 수가 없어 알쏭달쏭했다. 설마 주인공 '우사기타 다카노리'의 이름에서 '우사기'가 일본 말로 토끼를 뜻하는 단어라서는 아니겠지 생각하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토끼자리를 찾았다. 사냥꾼 오리온이 가장 좋아했던 것이 토끼 사냥이었고, 실제로 겨울 하늘을 보면 오리온자리 바로 밑에 토끼자리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작가가 숨겨놓은 이야기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은 꽤 쏠쏠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그래도 왜 소설 속 사건 이름이 흰토끼 사건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건 반전? 

<화이트 래빗> 소설의 특징적인 부분이자, 읽으면서 약간 아쉬웠던 점은 작가가 직접 개입해서 말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작가가 이야기에 직접 개입해서 목소리를 내는 부분이 신선하긴 했지만 구구절절 상황에 대해서 힌트를 주고 설명을 해주다 보니 긴장감이 살짝 떨어지는 느낌이 들긴 했다. 차라리 인물의 시점이나 시간의 교차 전개 같은 걸 더 잘 이용해서 반전의 묘미를 끌어올렸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도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작가가 소설 전반에 등장하는 방식을 차용해서 쓴 듯하다.

「"그 소설, 군데군데 이상한 구석이 있던데요. 작가가 느닷없이 '이것은 작가의 특권이므로 여기서 이야기를 앞으로 되돌리겠다'라는 둥'한참 뒤에 나올 장면을 위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다'는 둥 묘하게 나서더라고요."
구로사와는 옛날부터 있는 수법이라고 말하려다 애당초 <레미제라블>이 옛날 소설이니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그만두었다. 」 <p.34>


하지만 역시나 명불허전 이사카 고타로는 여기저기 복잡한 떡밥을 투척하고 마지막에 완벽하고 세세하게 주워 담는 데는 도가 튼 거 같다. 처음엔 대체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결국엔 '헐, 이런 거였어?' 하며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진다. 추리나 미스터리는 그런 재미로 보는 거 아니겠는가. 문득 이사카 고타로가 잔뜩 흥분하며 읽었다는 <죽음의 키스>라는 책도 궁금해진다. 

누워서 읽다가 정말 벌떡 일어날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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