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리커버 에디션)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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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강림하는 지름신이시여, 그대가 어떤 경로로 내게 오는지 에밀 졸라의 소설을 통해 더욱더 생생하게 알게 되었으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오. 1860년대의 소설, 그것도 그 유명한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 오늘날의 자본주의 마케팅 기법을 속속들이 알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에밀 졸라가 2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총 20여 권의 역작 <루공-마카르  총서>의 11번째 작품이다. 에밀 졸라라고 하면 <목로주점> 정도의 작품만 들어본 적 있는 작가였는데, 그 작품 역시 루공-마카르 총서 중에 한 작품이라고 한다.  
현대 소설도 아닌 고전 소설에서 백화점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다니 읽기 전부터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단지 배경일 뿐만 아니라 백화점이 어떻게 여인들의 마음을 들끓게 하여 미친 듯이 매출을 올리며 성장해갔는지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아, 나는 그동안 이런 상술에 놀아났었던 거구나, 절실히 느끼게 하는 백화점의 판매전략들. 이것은 꼭 백화점 뿐만이 아니라 모든 판매에 적용되는 전문 마케팅 기법이었다. 그 때 프랑스에서는 당시 상황을 실감 나게 담은 소설이 인기 있었다. 에밀 졸라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실제 모델 봉 마르셰 백화점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엄청난 정보를 끌어모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기존 2권으로 분권되어 있던 책을 한 권으로 합본하여 낸 책이기에 총 770페이지가 넘는 완전 벽돌 책이다. 고급스러운 양장과 두께 때문에 읽기 전에는 사실 다 읽을 수나 있을까 겁을 집어먹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정말 술술 잘 넘어가도록 쉽고 재미나게 쓰여있다. 백화점이 무섭도록 성장하는 과정과 함께 그 앞에 힘없는 스러져가는 소상공인들의 아픔과 괴로움, 백화점 안에서의 다양한 알력 다툼과 쫄깃한 사랑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고루 버무려져 있어 읽는 내내 흥미롭다. 

특히나 읽으면서 내 머리를 띵하게 했던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들을 책 속에서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게다가 이제 그는 인간의 본성을 세심하게 분석하는 학자처럼, 여성에게 좀 더 높은 차원의 덫을 놓았다. 여성이 값싼 물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면서 필요 없는 상품을 구매한다는 사실을 간파해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관찰에 근거해 가격 인하 시스템을 도입했다. 상품을 신속하게 회전시킨다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팔리지 않는 물건들의 가격을 점차 낮추다가 손해를 보고서라도 팔아치우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p. 394~395>

「제품 하나당 고작 몇 상팀 정도 손해를 보겠지. 그래. 그런데 그다음을 생각해봤나? 그로 인해 수많은 여자들이 몰려와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우리 제품 앞에서 넋을 잃고 정신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면, 그건 반대로 우리한테 축복이 되는 거라고.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란 말일세. 중요한 건, 친구, 여자들의 욕망에 불을 지펴야 하는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들을 유혹하는 미끼 역할을 할 대박 상품이 필요하단 말일세. 」<p. 71~72>

그래, 난 호갱이었다네. 그 미끼상품을 덥석 물고는 이런 물건을 이렇게 싸게 득템하다니 사는 김에 다른 것도 사야겠다며 룰루랄라 즐겁게 잘도 질러댔었지ㅋㅋ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사용된 다양한 마케팅 기법은 실제로 지금까지 전 세계의 모든 회사들이 사용하는 마케팅 기법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소설이 아니라 재미난 마케팅 도서라고도 할 수 있을 듯. 소설 속 여인들이 유혹에 넘어가는 걸 보면서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말이다. 

아내가 죽으면서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백화점을 차린 무레는 그 당시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상천외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모두 동원해 막대한 부를 쌓는다. 마케팅과 경영의 천재이며 동시에 바람둥이이기까지 한 무레는 수많은 여자들 중 단 한 명, 빼빼 마른 시골 출신 백화점 판매원 '드니즈'의 사랑만은 얻지 못하자 점점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는데.. 과연 이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번역도 쉽고 명확해 잘 읽히고, 다양한 인간관계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도 꽤 흥미로우며, 고전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와 거의 다를 것 없는 배경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기에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고전 소설이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책꽂이에 꽂아두면 꽤 아름다우니 장식용으로도 손색없으므로 일석이조. 

에밀 졸라의 다른 소설에도 용기 내어 도전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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