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과거를 돌아보면, 누구나 어떤 한 시점을 중심으로 내 인생의 방향이 확 달라진 듯 느껴지는 사건이 한 두건쯤 있을 것이다. 그때 난 왜그랬을까.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왠지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은 더 아름다울 것만 같고, 타인의 인생은 언제나 내 인생보다 1.5배쯤 더 빛나보이는 법이다. 지금 내 인생이 시궁창처럼 느껴질수록 아마도 과거에 대한 집착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그 부분에 대한 환상을 건드리는 책이다. 바로 <만약 .. 했다면>에 대한 것이다. 밤에 자다가도 이불킥을 할 만큼 창피한 기억이나 내 인생을 결정적으로 망친 그 사건을 내 과거에서는 물론 다른 사람의 과거에서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 한마디로 처음부터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창피한 내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과거 자체를 없앤다는 건 좀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 일이 생기지 않음으로 인한 나비효과로 인해 나 뿐만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의 미래의 모습도 다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비슷한 컨셉의 영화, 나비효과나 어바웃 타임처럼 과거의 사건이 미래에 영향을 끼쳐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 소설은 스스로 당당하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열등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힌 주인공 찰리가 어느 날 우연히 과거를 지워주는 기계를 통해 자신의 가장 수치스러웠던 기억을 지움으로 인해 달라지는 미래를 경험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매일 여러남자들과 끊임없이 원나잇을 하며, 동네 술집 드링크스&모어 에서 서빙일을 하던 찰리는 과거를 지우자마자 자신의 현재가 신데렐라처럼 변해있음을 실감한다. 학창시절 자신이 좋아했던 첫사랑과 14년 열애를 통해 결혼하기 직전의 순간이었으며, 강변의 으리으리한 저택이 그녀의 집이었고, 그녀의 방에는 예전인생에서 결코 입어본 적 없는 비싼 속옷들이 즐비하다. 이 얼마나 대박인가. 정말 과거의 실수 한번을 없앴더니 내 인생이 이렇게 황금빛으로 변했다고?

그녀는 과연 바뀐 인생에서 행복했을까? 바뀐 인생의 그녀는 예전 인생의 그녀와 전혀 다른 취향의 사람이었다. 바뀐 인생에서의 찰리는 예전 인생의 찰리라면 절대 듣지 않았을 재미없는 경음악만 들었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정숙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전 기억을 오롯이 가지고 다른 인생으로 넘어온 찰리가 언제까지 다른 찰리를 연기할 수 있을까. 첫사랑이었던 남편 모리츠는 자신의 성공만을 좇는 사람이었고, 친구들은 모두 사업상으로 얽혀있어 불편한 관계였으며, 결정적으로는 예전 인생에서 그녀의 사랑했던 친구들 '팀과 게오르크 아저씨'와 더이상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다시 찾을수 있을까?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시간 판타지 형식의 이야기를 빌려 '바로 지금 여기의 행복'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과거의 행복, 미래의 행복이 아닌 바로 오늘의 행복 말이다. 지금 사랑하는 이들이 옆에 있고, 스스로 자유로우며 마음이 충만하다면 돈이 조금 없는 것이야 무슨 대수랴. 조금 찌질하더라도 내가 행복하면 된 것 아닌가. 한 때 나도 '과거에 만약 이랬다면...' 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현재가 너무 원망스러워서 이미 지나가버린 아무 소용없는 과거를 원망했었다. 그런데 만약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해서 내 인생이 조금 달라졌던 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이 우주가 정말 평행우주라 내가 선택하는 순간에 따라 수많은 우주가 생겨나는 것이라면, 아마 그 수많은 우주 속의 나는 모두 그 나름의 불행을 지니고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지금 이 우주의 내가 좋다. 순도 100%의 행복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80%이상 행복하니 그 정도면 합격점이다. 나답게 살 수 있고,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 

이 소설은 이야기로 따지면 여타 잘만들어진 영화들에 비해 줄거리가 다소 허술할 수도 있고, 조금은 가볍게 여겨지는 소설일 수 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묵직한 메시지 하나만큼은 던져준다.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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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4-1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쉬운 듯 하지만 참 어렵죠. 지금 여기 행복하기! 방금 다락방님 글 읽고 행복해졌어요. ㅎㅎㅎ

다림냥 2018-04-11 15:16   좋아요 0 | URL
ㅋㅋ 전 다림냥입니당ㅋㅋ
꼬마요정님이 이 글 읽고 행복해지셨다니 저도 행복해졌네요 ㅋㅋ

꼬마요정 2018-04-11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악 다림냥님 죄송해요~~~ㅠㅠㅠㅠㅠ 제 손가락이 잠시 미쳤나 봅니다ㅠㅠㅠㅠ 행복에 취해 넋이 나갔나 봅니다ㅠㅠㅠㅠㅠ

다림냥 2018-04-11 18:48   좋아요 1 | URL
ㅋㅋ 괜찮아요~ 글 행복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 ㅎㅎ

2018-04-11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1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트 2018-04-2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림냥님 쓰신 후기를 읽으니 저도 이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시험 끝나는대로 읽어봐야겠어요 :)

다림냥 2018-04-20 18:08   좋아요 1 | URL
흥미로운 주제죠~ 누구나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 하나쯤은 있기에 더 관심가는 주제인 듯 싶어요 ㅋ 시험 끝나고 잼나게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