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브레인
티아고 포르테 지음, 서은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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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브레인은 생산성에 관한 세계적 전문가이자 권위자인 티아고 포르테 씨가 기존의 기록에 대한 원리에 자신의 경험과 연구, 디지털 시대의 기술을 접목해 만든 지식 관리 시스템을 말한다. 저자는 세컨드 브레인을 개인 클라우드작은 수첩’, 또는 외부 두뇌라고 불러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다. 뭐라 부르던 기능은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제텔카스텐(독일어로 메모 상자라는 뜻)’, 미국 발명가 바네바 부시는 메멕스’, 크리에이터 앤 로어 르 컨프는 디지털 가든이라고 했다는데 모두 이 책의 저자 이전이나 동시대에 저자와 같은 기법을 연구 발표한 것이다.

 

새로운 기법이라기 보다는 18세기 19세기의 비망록(commonplace book)의 역할이 이어진 기법이다. 저자는 한자문화권인 동양의 전통 중 수필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수필까지는 모르겠지만 비망록은 확실히 세컨드 브레인 즉 메모의 전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본서가 출간된 이후 본서와 기록학자 김익한 님이 저술한 거인의 노트에 내용이 상당히 궁금했는데 어떻게 본서부터 읽게 되었다. ‘기억의 노트에 대한 리뷰들 중 하나에서 기록을 이떻게 하는지에 대한 기법 설명보다 일화와 권유에 할애되는 장이 더 많다는 내용이 있기에, 본서는 기법이 먼저일 거라 단정하고 본서부터 독서하게 되었다.

 

하지만 읽고 보니 본서도 기법에 관한 내용은 약소하고 필요성과 실례에 대한 비중이 높아 독서 도중 읽기를 중단할까도 싶었는데 분량이 많지도 않아 다 읽고 말았다. 무엇보다 스토리와 이야기의 얽개를 구상하고 캐릭터를 설정해 보는데 유익한 것이 메모라는 생각에 이와 같은 기록에 관한 책에 관심이 간 건데 내게 활용도 높을 예시는 거의 없었다. ‘제텔카스텐에 대한 저작이 작가의 글쓰기를 지지해 준다고 하던데 메모 또는 기록을 내 목적에 맞게 활용하자면 다음에는 제텔카스텐에 대한 저작을 읽어야 할 것 같다.

 

본서의 내용 전반이 회사원들 업무에 맞춰져 있어서 실례 전부가 업무에 대한 것이다. 본서에서는 세컨드 브레인에 기대할 수 있는 핵심기능 4가지’,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4단계’, ‘메모에서 핵심을 추출하는 4 원리이 세가지가 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

 


◎ 기대할 수 있는 핵심 기능 4가지

 

1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

2 아이디어 사이의 연관성을 새롭게 밝혀낸다

3 시간을 두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4 나만의 독특한 관점을 정교하게 다듬는다

 

세컨드 브레인이라는 자체가 기록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기록한 것을 통해 얻을 이점에서 핵심이라면 표현이 바뀐다고 해도 이 4가지가 뚜렷하지 않을까 싶다.

 


◎ 세컨드 브레인을 구성하는 과정을 안내하기 위한 4 단계(CODE)

 

수집(Capture) 공명하는 내용을 수집하라

정리(Organize) 실행을 목표로 정리하라

추출(Distill) 핵심을 찾아 추출하라

표현(Express) 작업한 결과물을 표현하라

 

메모와 자료 정리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주목하게 하지 않더라도 익숙할 내용이고 이러한 뻔한 내용보다는 마인드맵을 설명하는 것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마인드맵을 활용해본 사람이라면 기록에 대한 필요를 더 잘 알 것 같고 어떠한 체계로 자료를 정리하고 구분지어야 할지도 명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업무 중심의 실례를 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업무에서 적용하는 바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익숙히 수행하고 있는 바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기술하는 내용 중 탁월하다고 생각되는 바가 그리 없었기 때문이다.

 

 

◎ 핵심 추출 4단계

 

1 메모 수집

2 굵게 처리

3 하이라이트 처리

4 핵심 요약

 

핵심 추출은 메모에서 중요한 핵심을 추출하는 단계별 요약기술을 말한다. 수집한 메모를 그대로 적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요 문구를 굵은 글씨로 처리하고 그중 하이라이트를 색깔(형광)배너 처리하여 핵심 내용이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이 기법들을 종이에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처리하라 권하는데 바네바 부시의 메멕스나 앤 로어 르 컨프의 디지털 가든역시 이와 같은 디지털 정리를 알리는 체계라고 한다.

 

저자는 본서의 전체 기법을 발산융합이라는 어휘로 표현하기도 하는 데 발산은 여러 정보에 열의를 가지며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을 말하고 이들을 결합하고 연계해 재창출하는 과정을 융합이라 표현하고 있다.

 

사실 세켄드 브레인을 읽지 않더라도 이미 애플리케이션으로 정보를 요약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업무와 실생활에서 많이들 활용하고 있는 기법들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체계화된 시스템이라며 소개하는 정보니 책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분들께서는 읽어볼 만한 내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시나리오나 소설 등 작법에 활용하고 싶다는 분들에게는 제텔카스텐에 대한 저작을 권해드려야 할 것 같다. 본서는 너무 사무화에 최적화된 내용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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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증가율 (통계청의 사망 통계 확인하시길!)

 

nosei 19가 확산되던 초기인 2020년의 사망증가율은 예년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해당 100shoes 보급 이후 사망률은 유의미한 정도를 넘어서게 급격히 증가했다. 더욱이 2022년에는 그 급격한 수준에서 더한층 증가했다. 2023년 사망증가율은 2024년 상반기 즈음에야 공개될 테니 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mRNA유전자요법 기술의 창시자이자 개발자인 로버트 말론 박사는 mRNA 100shoes 접종 2년에서 3년 후부터 급격한 사망자들이 나타나리라 경고하고 예견했으니 그의 예견이 맞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내용을 언급하면 가짜뉴스 프레임을 씌우려하는데 이미 접종 초기부터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이다.’ ‘접종하면 nosei 19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미성년자와 아동에게는 접종을 강제하지 않을 것이다.’ ‘부작용은 미미할 것이다.’ 등등의 가짜뉴스를 퍼트린 것이 질병청과 매스미디어였지만 현재를 보면 미국 CDC 공고에서도 100shoes 접종하며 집단면역력을 형성한다는 문구 자체를 삭제했을 뿐만 아니라 면역이란 어휘 자체가 접종 권고 글에서 사라져버렸다. 의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에서도 [접종=면역]이라는 전제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되려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는 프랑스 법원의 판결은 이 접종을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접종을 했으니 명백히 자살에 해당하며 자살에는 보험료를 지급해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접종 후 사망에는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한마디로 프랑스 법원은 100shoes 접종 자체를 자살로 규정한 것이다.

 

또한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나 네이버에 저의 블로그에 출처를 밝히고 게시해 놓은 포스팅을 보시면 접종 이후 전 세계적으로 1700만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다. 대개 이 접종 이후 기저질환이라며 기존의 질환이 악화되어 죽으면 해당 질병으로 인한 죽음으로 진단하며 접종 이후 심근염이나 뇌경색 등등으로 사망하면 이 역시 해당 질환으로 인한 죽음으로 진단하기에 100shoes에 의한 죽음이 없는 것으로 단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100shoes 접종 이후의 사망률 증가는 명백히 이 사안의 본색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2022년 중반의 미국 보험사 조사를 보자면 미국 근로자 보험 가입자 중 ‘100shoes접종 이후 34~44세 사이의 미국인 근로자 보험 가입자의 초과 사망률은 2배 이상 증가했다. 스포츠인들에 대한 2022년 중반의 통계로도 접종 개시 이후 2022년 이전까지 35세 이하 운동선수 최하 895명이 급사했다.

 

화이자사의 법적 저항으로 무산될 뻔하다가 겨우 미국 대법원의 판결로 (화이자사의 요구인 50년 후가 아닌) 단계적 공개를 하도록 명령된 해당 100shoes에 대한 자료를 보면 100shoes 시판 시기까지 42천 명에게 임상실험을 했는데 이 중 122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 외 화이자사 자료로도 화이자사 100shoes의 치명률은 3%에 이른다. 생각해보자 0.1%가 안 되는 nosei의 치명율을 볼 때 치명율이 3%100shoes으로 예방을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1000명 중 1명을 죽게 두지 않겠다고 1000명 중 30명을 죽이는 길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이건 명백한 살인행위였다. 그것도 각국 정부와 각국 질병청과 WHO가 동조한 대국민 살육이었다는 말이다.

 

조만간 이런 살육의 시간은 다시 한번 재현될 것이고 그때도 무감각한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자기 몸으로 죽는지 사는지 실험하는 실험대상이 되는 걸 수용하고 있을 것이다.

 

2 환경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 내부에서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주장하기 위해 정보와 통계가 왜곡되고 조작되고 있음을 폭로하며 기후위기설 자체가 사기임을 폭로하는 이탈자들이 늘고 있다. 기후위기설에 기반한 친환경 기술들의 개발에 관해 활발히 소개하던 미래예측가 박영숙 님의 최근 저작에서도 기후위기설의 신빙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위기설이 사기이고 조작이라면 도대체 이건 무엇 때문일까? 박영숙 님의 저작을 통해서도 알려져 있지만, 기후위기설과 친환경이라는 주제로 개발되고 있는 신기술들은 어마어마한 규모이며 그 기술들이 개발되고 적용되는 과정에서 막대한 부가 창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동시에 기술의 적용은 대중의 삶의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변화는 대개 환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대중의 자유와 권리를 제재하는 방향으로 적용된다.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위해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일부 포기한다는 희생과 헌신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며 제재하는 것이다. 대중을 통제하며 이토록 찬양받을 주의와 주장은 다시 없을 것이다.

 

3 CBDC

 

한국은행이 CBDC에 대한 1차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2024년부터 일반인 10만 명을 대상으로 시범(시험) 운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닐 카시카리 미연준 위원의 인터뷰가 소름돋기도 한다. 그는 CBDC가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 이외에서는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존의 통화로 이미 모든 영역에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CBDC를 상용화하자는 것은 대중통제의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발언이다.

 

CBDC가 상용화되면 코인의 유통기한 설정, 사용내역 조회를 통한 감시, 사용용도 제한 등으로 대중의 일상 전반을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다.

 

4 뇌를 통한 사고와 의도 감시

 

인간의 사고 전반을 감시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일상에서 적용될 것임을 세계경제포럼에서 공공연히 예고 하고있는 상황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 어떤 욕동과 바람으로 어떤 행동을 하려 하는지 다 감시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 존재한 적 없던 완벽한 통제 사회를 불러올 것이다.

 

뇌를 통한 행동 제어는 20세기 초기부터 연구되어왔으며 어느 경지의 수준으로 연구개발이 이미 이루어져 있는 분야이다. 이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까지 미리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제어기술과 접목된다면 인간은 어떤 가축보다도 더한 개돼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 AI의 진격

 

최첨단에서 활동하는 AI개발자들이 이제는 AI를 제어할 최후의 기회일 시기를 지나쳐버렸음을 토로하고 있다. 향후 몇 년내에 초인공지능(AGI)이 등장할 것이며 지금의 인간지능 IQ 155 정도인 챗GPT가 다음 버전에서 지금의 10배 지능이 되며 바로 이어질 단계에서는 다시 그 10배의 지능을 넘어서리라고 경고한 것이다. IQ 16000 이상의 존재가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예측할 것이고 짐작할 것이며 제어할 수 있을 거란 말인가? 게다가 이것도 과도기일 뿐이라는 말이다. (가까운 시기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어 그에 AGI가 탑재된다면 인간은 자기 개선, 자기 강화, 자기 초월이 가능한 신을 창조한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지적 범위를 월등히 초월해 버린 이 존재를 인간이 제어한다는 것은 상상불가의 영역이다.

 

더군다나 개발자들과 전문가들은 AI가 스스로 학습하도록 했으며 AI에게 코딩을 가르쳤으며 AIAI를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기술이 개발되어 왔고 이젠 전 영역에서 AI가 연계되어 활용되고 있지 않은가를 우려하고 있다. 초월적 존재가 인간의 일상과 업무 등 생존을 위한 모든 영역에 침투해 있고 침투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젠 인간의 저지로 AI를 제어할 기회를 놓쳐버린 거다.

 

또 초인공지능이 기존의 세상이 운영되어오던 방식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대응하게 된다면 인간에게는 지옥이 펼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군림하다 못해 살육해온 과정이 데이터가 될테니 말이다.

 

호모데우스를 논하는 유발 하라리 또한 모든 인간이 신적인 존재가 되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없는 존재가 된 다수의 인류의 처분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것이 그이다. 그는 초엘리트층의 일원이라고 자신을 여겨서인지 불필요해진 대중을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발언을 종종 하고 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제 과거 잉여인간이라 불리던 계층이 될 것이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봐도 초인공지능 적용 이후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해도 적응 기간, 인턴 기간이 얼마간 필요한 인간에 비해 수십 분에서 수 초 안에 숙련전문가 수준의 업무역량을 보일 초인공지능의 역량을 인간이 대신할 자리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이라는 것 하나로 살아갈 절대다수의 대중을 위해 기업과 초엘리트층이 95%98%의 세금을 감당하라고 한다면 할 거라고 판단되지 않는다. 유발 하라리 같은 사람은 인간이 신적 존재가 될 내일을 꿈꾸지만, 인류세의 모든 것을 대체할 존재가 나타나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배운 후 자신의 세기들을 만들어 갈 때 인간을 어찌하려는지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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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머피 잠재의식의 힘 - 삶의 기적을 일으키는 내면의 보물창고
조셉 머피 지음, 조율리 옮김 / 다산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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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의식의 기능과 잠재의식에 새긴 관념이 자신에게 역효과를 내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 1부에서 소개되고 2부에서는 그 활용으로 부와 성공, 문제해결, 결혼생활, 인간관계, 자기조절, 용서, 노화방지 등에서 활용하는 법들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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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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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것이 되고 싶어.”

뭐든지 전부 네 것이 되고 싶어.”

하나도 빠짐없이 네 것이 되고 싶어.”

너와 하나가 되고 싶어. 정말이야

 

와 너가 남긴 이 말은 라는 사람이 를 잃고 현실 세계에서 그냥저냥 도리에 맞춰 살아가다가 벽 안의 도시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의 삶으로 이양해 가게 된 원인이 된다. 상실이 있고 상실을 받아들이고도 현실은 지속되지만, 그 상실이란 것이 현실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게 만든다. 열다섯 열여섯의 에 입술을 통해 열여섯 열일곱의 에게 처음 윤곽을 드러낸 벽 안의 도시가 그렇게 중년으로 접어드는 세월 동안 조금씩 구축되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다 어느 순간 벽 안의 도시는 너를 잃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를 집어삼킨다.

 

앞서 처음 작성했던 리뷰에서 말했듯 나는 이 소설이 상실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감상으로는 상실에서 회복으로 가는 여정과 그 여정의 끝으로 마무리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 소설의 1부에서 보여주는 벽, 벽 안의 도시, 본체에서 떼어내어지는 그림자, 짐승들, 꿈 읽는 자, 너를 닮은 소녀, 그 도시에 이르는 맑은 강물과 탁류, 모든 것을 빨아들여 배출하는 웅덩이 등등 여러 상징은 알 것 같으면서도 모호하기도 했다.

 

아마도 벽 안의 도시는 세상과 나, 타인과 나를 또 나 자신의 본능과 바람과 정서와 이성과 의지 등등을 각각으로 분별하고 나누어 고집스레 그 분열을 지켜나가려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헛수고를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듯 도시도 벽도 불완전할 뿐이다. 타자와 나를 분리하려는 것도 내 안의 나에 구성요소들을 분리하여 타자화하는 것도 어찌 보면 굉장히 수고스러운 헛수고인지 모르니까 말이다.

 

의 그림자는 에게 이 벽 안의 이 도시가 실제이고 현실세계라는 바깥세상이 가상이며, 본체라고 불리는 것이 그림자이고 벽 안의 도시에 머무는 그림자가 본체인지 모른다는 말을 한다. 가설에 가설을 더하는 거란 말을 덧붙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말마따나 우리는 자신과 타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구성요소들을 본능과 욕망과 정서와 이성, 의지 등등으로 분리하여 어느 것이 나이고 어느 것은 타자라고 독재자적인 정의를 하고 있고 또 그렇다고 해도 사실 그 중 어느 것이 나인지 확실하지 않다. 도시와 벽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 불확실함을 주장하는 듯이 작가 하루키 씨는 그 도시에서 를 보살피기도 하던 한 노인이 옛이야기를 꺼내게 만든다. 너무도 욕망하게 만들던 꿈 속의 가상의 여자에 한쪽 얼굴만을 보다가 반대쪽 얼굴을 보고 싶다고 열망하게 되었고 반대쪽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그런 순간을 결코 만들어선 안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에게 그런 순간은 결단코 피하라는 말을 진지하게 남기면서하지만 사실 노인이 말한 그 여성은 노인 자신의 꿈 속에 등장하는 허상이 아닌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세계에서건 벽 안의 도시에서건 우리 자신이 그러하듯 타인에 대한 상도 하나의 허상일뿐이 아닐까 싶다. 자신에 대한 정의만큼이나 타인에 대한 판단 역시 우리의 오해나 기대가 만들어내는 허구일런지 모르기 때문이다.

     

벽 안의 도시에 대해 벽의 의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벽 안의 도시구조를 장기(臟器)의 내벽 같다고 묘사하기도 하며 신장을 닮았다고 하거나 뇌의 모양을 빌려 설명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사람과 사람의 정신 작용들을 상징하는 것이 벽과 그 안의 도시임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직설하는 것이리라. 그림자도 짐승도 그 사람 안의 타자화된 본능과 욕망과 정서와 이성과 의지 중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반대쪽 얼굴을 결코 보려 해서는 안된다는 노인의 말은 자신의 대극에서든 타인의 대극에서든 한측면의 반대편을 직시하지 말라는 말 같기도 하다.

 

그렇게 자신의 대극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과정을 거치던 는 자신의 그림자가 죽음을 맞이할 것만 같자 그림자를 벽 안의 도시 세상 밖으로 다시 말해 현실세계로 탈출시킨다. 여기까지가 1부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43년만에 다시 완성했다는 그 이야기는 이렇게 1부까지에서 처음 마무리 되었었다고 한다. 그러다 부족하다고 느끼고는 2부와 3부를 더해 완성한 소설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다.

 

사실 1부만으로는 상실과 그 상실로 인한 몽환적 여정이라는 감상만을 남겼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이 남다른 점도 처음 꼽을 것은 그 몽환성이다. 작가 자신이 소설 속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을 언급하며 매직 리얼리즘이라고 자평하다시피 하고 있기도 하다. 매직 리얼리즘, 가상과 현실이 넘나드는 이야기를 쓰고자 했음을 독자에게 토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완성도는 몽환성에서 찾을 것이 아니고 상실과 그 상실로 인한 여정이 결국에는 회복에 이르도록 한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완전하고 완벽한 회복은 아닐런지도 모른다. 도시와 벽이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듯 불완전하고 불확실하겠지만 그럼에도 엄연한 복귀이자 회복에 이를 것임을 이 소설의 대미는 은유하고 있다.

 

감각되는 영혼인 고야쓰 씨와 를 계승하고 마는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등장하고 나서 출현하는 카페 여주인과의 시작되는 이야기는 결국에는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더라도 를 현실로 복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벽 안의 도시에서 를 닮은 소녀 곁에서 잃어버린 시절의 가 못 이룬 꿈과 가 함께 만들어가지 못했던 꿈을 대신하듯 도서관의 꿈들을 읽으며 영원을 보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은 영원이지는 않아야 했다는 듯 고야쓰 씨와의 이야기와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운명으로서 등장했고 카페 여주인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는 결국 를 계승하는 옐로 서브마린 소년을 통해 현실세계로 귀환한다.

 

2부와 3부는 분명 상실 이후 회복의 여정이자 회복할 것임을 알리는 귀환으로 완성되고 있다. 때론 몰입하게 하고 때론 지루한 숙고의 시간을 주는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의미 있는 감상을 주는 구간은 상실과 상실의 여정만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실의 여정이 동시에 회복의 여정이기도 하며 끝내 회복하고 귀환할 것임을 상징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상실의 이야기가 의미로울 수 있는 것은 그 상실이 상실만으로 끝날 것이 아님을 독자가 알기 때문이다. 상실은 다시 회복으로 이끌며 여정은 귀환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실과 여정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우리를 감상과 함께 성장으로 이끈다. 성장하기 위해서 살아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지는 모든 것을 느끼며 격동하기 위해 삶이 있다고 믿는다. 그럼 상실과 여정과 회복이 주는 격동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격동의 기회가 아닌가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번 작품을 통해 새삼 다시 남은, 삶에 대한 감상이다. 깊은 곳에서 무언가 누군가를 잃은 동요가 큰 사람들에게 어쩌면 깊은 감상을 줄지 모르는 소설이다. 한 주 동안 이 소설을 읽으며 아련하고 몽근했다. 나와 같을 이가 있다면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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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주신경 이론 - 내 삶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
뎁 다나 지음, 박도현 옮김 / 불광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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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주신경 이론]이란 본서는 책의 제목과는 다르게 다미주신경에 대한 이론을 소개한 책이 아니다. 다미주신경의 작용과 기전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안전감과 안락감, 평온을 가져오도록 한 일종의 명상법이자 심리 요법에 관한 책이다.

 

다미주신경의 기능과 작용을 알고 싶다거나 실례를 통한 배움을 얻고 싶다는 분들은 스티븐 W. 포지스 님의 저작인 [다미주 이론]을 찾아야 할 거다. [다미주신경 이론]은 일상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기법들을 배우고 싶다는 분들이 찾을 만한 책이다. 명상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읽어보실 만할지 모르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하리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도 같다.

 

본서는 아주 대략적 아니 대략적이지도 않은 수준의 몇 마디 정도로 다미주 신경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는 그다음부터 바로 이 이론을 바탕으로 평안을 찾는 기법들을 나열하고 있다. 사실 이 때문에 이런 형식이라면 구태여 다미주신경 이론이라는 제목이나 배경이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로 다미주신경에 대한 내용은 베이스일 뿐이다. 기법 전체가 그를 바탕으로 짜여져 있다고는 하지만 경락 경혈 강의라고 강의 주제를 던져 놓고는 별 설명 없이 온종일 기체조를 가르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분명 유용한 양식들의 명상법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심리기법으로서 역할도 제법 잘할 것 같기도 하기에 출판사측이 장르에 대한 기대 방향에 노선을 불명확하게 제시한 것이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분명 시각화, 마음챙김, 재정의 등의 방식들이 더 나아가 사회공동체에서의 쓰임까지 고려한 대미까지 총체적으로 다미주신경 이론이 적용된 책이기도 하다.

 

교감신경의 작용을 투쟁-도피 반응으로 설명하고 그를 다시 생존 모드로 분류하면서 이러한 긴장과 불안의 상태를 배 쪽 미주신경과 등 쪽 미주신경과의 조화로 안정화 시키는 방법들을 제시한 게 상당히 유효할 거라 짐작되고 이해가 쉽기도 했다.

 

책 전반의 내용이 이들 다미주신경 간의 안정을 유도하는 방법들을 체계화하여 전하는 것이며, 대미에서 나에게 그러한 것처럼 타인의 신경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파악하고 타인을 안정화시킴으로써, 사회공동체의 조화를 가져온다는 대목은 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와 대승불교의 보살행이 떠오르게도 하는 체계였다.

 

다미주신경에 대한 상식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대중적인 명상이나 심리치유를 위한 기법으로 활용하기에 손색없는 저작이라고 생각된다. [다미주신경 이론]이라는 제목이기는 하지만 주제는 신경이론에 대한 이해가 아니고 또 그걸 이해하라는 장이 할애되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그걸 기반으로 한 명상법과 심리치유 기법인데, 그렇다고는 해도 신경이론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안정화를 가져왔을 법하다고 느껴졌다.

 

본서를 읽다가 처음에는 [다미주신경 이론]이라면서도 그 신경이론에 대한 해설이 너무도 할애된 바가 없고 명상법이 주제이기에 독서를 중단할까도 싶었지만, 슐츠의 자율훈련법이나 다양한 최면기법과 계통이 명확한 명상법과는 다르게, 온건하고 유연한 명상기법들을 보면서, 최근의 명상과 심리기법들이 어떠한 분위기인지 알수 있는 기회였던 것도 같고, 새로운 체계를 접하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좀 더 유연한 명상체계나 마음을 다스리는 체계를 접해 보고 싶은 분들께는 권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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