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은 백만 한 번째로 촛불시위 구호에 동참한다고 대국민 기자회견까지 자청했다. 그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런 발언을 했다.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일부의 비판까지 감수했습니다. 이는 오로지 국정혼란을 최소화하려는 충정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퇴로를 열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러한 저와 우리 당의 충정을 끝내 외면했습니다. (…)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저는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습니다.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를 통해 머리를 맞대고 퇴진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논의하고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뉴스1>, 2016년 11월 15일.

 

누구의 눈에도 번쩍 띄는 한 대목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퇴로를 열어주고 싶었습니다"는 문구다. 문재인이 생각하는 박근혜의 '퇴로'는 어떤 것일까? 그냥 곱게 물러나는 것? 그런 거라면 백만 촛불시위대가 이미 목이 터져라 외쳤던 것 아닌가? 그런 거라면 자신이 아니더라도 백만 촛불시위대가 이미 퇴로를 열어준 것 아닌가? 문재인이 생각했던 다른 '퇴로'가 없다면 이 표현은 자신이 '촛불 기회주의자'라는 것 이상의 아무 의미도 없다.

 

문재인이 기자회견을 한 11월 15일 그 시각 직전까지, 그에게는 '사과→거국중립내각' 이상의 의견이 없었다. 그러다 청와대와의 내통을 의심케 하는 추미애의 '양자회담' 행보가 격렬한 지탄을 받고, 문재인은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곧바로 '비상기구를 통한 전국적인 퇴진운동'을 선언한 것이다. 말하자면 기자회견 직전까지 그가 박근혜에게 열어주고자 했던 '퇴로'는 '거국중립내각'으로 읽힐 뿐이다.

 

그런데 문재인의 '촛불 기회주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문재인은 하야까지도 스스로 결단하지 못해서 탄핵의 절차까지 밟게 만든다면 그야말로 나쁜 대통령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아무리 하야를 요구해도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강제적으로 하야시킬 방법은 없기에 탄핵은 마지막 법적인 수단으로 남는다. 탄핵은 그런 단계에 가서 논의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이 주장이 무슨 의미인지 문재인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 역사상, (다른 나라의 민주화 역사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반민주적 권력이 평화적 시위를 통해 곱게 물러난 적은 없다. 1987년의 6·10? 그 항쟁의 격렬함 속에서도 전두환은 건재했다.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을 뿐이다. 1980년의 5·18? 광주시민들은 학살을 당한 후 목숨을 바쳐 끝까지 항쟁했지만 호남만 오히려 고립됐다.

 

단군 이래, 우리들 백성이 민의(봉기)를 결집해 권력을 타도한 건 딱 한 번뿐이다. 1960년 4·19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4·19는 115∼180여명의 사망자와 277∼60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서야 이뤄낸 혁명적 사건이다.

 

만약 문재인이 평화적인 촛불만으로 박근혜를 끌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우리 역사상 단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가능하다고 보는 셈이다. 뭐, 좋다. 그런 꿈을 꿀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박근혜가 아름다운 촛불의 바다를 보고 '아, 내가 잘못했네∼' 하면서 '영세교'적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곱게 물러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도 같은 생각인지 모른다. 그녀가 괜히 '계엄령' 운운했겠는가?

 

그러므로 문재인의 주장이 그나마 의미가 있으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저항권을 행사하자'는 주장으로 해석해야 한다. 만약 그의 주장이 '저항권'이 아니라면 이미 충분히 결집되고 표현된 국민적 의사를 다시 집회결사의 자유를 수단으로 계속 끝없이 소모적으로 확인해가자는 의미밖에 없다. 설마 이것을 무슨 새로운 대안이라고 내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자, 이제 행간의 의미를 감안해 문재인의 주장을 저항권이라고 순리적으로 해석하면 무슨 말이 되는가? 그렇게 되면 그의 주장은 다소간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저항권을 먼저 행사하고, 안되면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적인 방법인 탄핵을 하자는 의미다. 이것이야말로 순서가 뒤바뀐 모험주의다. 즉 '촛불 기회주의자의 모험주의적 발상'이다!

 

어떤 경우에도 저항권은 최초의 수단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다. 그것이 거쳐야 할 과정이 다소간 폭력적이고, 가져올 결과가 준혁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충분히 '나쁜 대통령'인 박근혜는 탄핵부터 시도해야 한다. 이 탄핵과정을 통해서 새누리당을 와해시켜야 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정통성에 미련 있는 자들을 새누리당과 함께 고사시켜야 한다. 폭력적 저항권이 아닌 지금까지의 평화적 촛불만으로도 그들에게 그런 압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본다.

 

탄핵이 안 되면 어떡하냐고? 헌법개정권력으로 박근혜를 퇴진시키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어떡하냐고? 그땐 최후의 수단인 저항권을 행사하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어떡하냐고? 최후의 수단이 안 되면 다른 방법은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고, 이 나라에 크나큰 부담을 주는 저항권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다소간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수단인 저항권을 먼저 동원하고, 안 되면 평화적인 탄핵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도착적 주장을 통해 그가 얻고자 하는 게 도대체 뭔가?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와 문재인의 행보는 박근혜의 하야와 사후보장, 대선을 위한 친문내각과 새누리당의 건재를 이용한 대선승리 전략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케 한다. 단순한 촛불 기회주의자의 모험주의적 발상도 부족해 넌센스와 현상유지적 정략까지 보태진 셈이다.

 

나는 짧게는 29년, 길게는 55년만에 찾아온 이 혁명적 기회를 단순히 대통령 선거 몇 개월 빨리 치르는 것으로 허망하게 마무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역사적 기회를 지난 수십 년 영남패권주의의 유산을 청산하고, 정계개편과 개헌을 통해 민주 국민의 의지를 제도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기회로 승화시키기를 바란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저 현상유지적 대통령 권력만을 탐하는 촛불 기회주의 세력의 모험주의적 정략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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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대급 '국민바보' 캐릭터는 거의 코미디계에서 배출했다. 예컨대 배삼룡, 이주일, 심형래, 이창훈 등이 그들이다. 기억에 남는 코미디계 외의 인물로는 <여로>의 장욱제 정도가 있다.

 

그런데 바야흐로 이들 막강 '국민바보' 캐릭터 아성에 도전하는 인물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다. <뉴시스>는  그 '국민바보 박근혜'의 화려한 등장을 이렇게 보도했다. 두 눈을 씻거나 비빈 후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참모진이 없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파격적'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배후설'도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의지했던 최순실씨가 없는 상황에서 '왕실장'으로 통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의 뒤에서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한 훈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뉴시스>, 2016년 11월 6일.

 

좀 심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뉴시스> 기사인즉슨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는 "참모진"이나 "배후"가 없이는 "'파격적' 조치들"을 내놓을 능력이 절대로 없는 '바보'사람이라는 말 아닌가? 말을 조금 바꾸면, <뉴시스>는 박근혜가 최순실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란 것 아닌가? 이쯤 되면 가히 모두가 인정하는 역대급 '국민바보'의 탄생이라고 할만 하다.

 

그런데 박근혜 '국민바보'가 지난 역대급 '국민바보'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건 지난 역대급 '국민바보'는 모두 설정된 캐릭터였는데 박근혜의 경우는 설정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대통령자리에 공주처럼 앉아 있는 국민바보'라는 실제상황!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 말해보자. 애초에 그런 말 못할 '불쌍한 사정'이 있었다면 그 국가기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적들이 알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한데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기밀이 불과 며칠 사이에,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대부분 들통나버렸다. 그나마 청와대로서는 아직 '7시간 동안'의 국가기밀이 드러나지 않은 정도를 다행으로 여길만 하다. 어쨌거나 이제 사후조치도 할 수가 없다. 이를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프레시안> (2016년 11월 5일)은 지난 주말 5일 시위에서 "박근혜는 병원으로"라는 구호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박근혜가 단순히 '사이비종교'에 빠진 상태라면 병원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난처한 문제는 박근혜의 경우 '자신이 사이비종교에 빠지지 않았다고 믿는 국민바보'라는 사실이다.

 

나는 '바보'를 병원에서 고칠 수 있다는 말을 아직 못들었다. 따라서 박근혜는 병원으로 가더라도 '자신이 사이비종교에 빠졌다고 인정하는 국민바보' 정도의 상태로 퇴원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병원은 완전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가 없다.

 

 

혹시 감옥은 '바보'를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다소 모호하긴 한데 이런 경우가 다반사로 있긴 하다. 자신의 죄가 뭔지를 모르는 '보통바보'들도 감옥에 보내질 것같은 법정상황에 직면하면 마치 해탈한 사람들처럼 갑자기 머리가 맑아져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눈물로 뉘우치는 경우다. 그런 걸 감안하면 감옥은 '국민바보'를 '보통바보' 정도로 만드는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종합하면 '박근혜문제'를 완전히는 몰라도 그럭저럭이라도 일단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원과 감옥 둘 다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단 돌팔이와 떡검이 아닌 훌륭한 명의와 영혼을 가진 검사부터 우선 구해야 한다는 어려운 전제가 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대한민국에 정확한 '사망진단'도 못하는 돌팔이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훌륭한 명의도 잘 찾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본다. 한데 영혼을 가진 검사는? 그런 검사를 구하는 건 쓰레기통에서 산삼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본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우선 영혼을 가진 검사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이번 주말 12일에 광화문에 모이는 국민들이라면 우선 그런 특별한 검사를 만들어갈 능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기대된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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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4일, 대통령 박근혜가 행한 대국민 사과발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심지어 제가 사이비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뉴스1>, 2016년 11월 4일. 

 

아마 우리 헌정사상 대통령의 (사과)발언 중 가장 기묘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라"는 위 발언은 사실일까? 누가 알겠는가만, "사실이 아니라"는 확인발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주 교묘한 사실이다.

 

위 발언엔 두 명제가 합해져 있다.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 ②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 는 사실관계 판단이 아주 쉽다. 하지만 은 판단이 어렵다. 자신이 뭔가를 믿고 있는데 그게 사이비종교가 아니라는 의미인지, 또 기본적으로 사이비종교와 종교의 구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와대에서 굿"만 하지 않았다면 위 두 명제를 합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는 건 거짓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발언은 '굿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사이비종교에 빠졌다'는 사실까지 손쉽게 부정하는 아주 교묘한 효과를 본다. 더군다나 우리 '토속신앙의 굿'을 '사이비종교의 굿'과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토속신앙을 폄훼하는 부당함도 있다.

 

애초 박근혜는 10월 30일의 '각계 원로'와의 만남에서는 "제가 사교를 믿어 청와대에서 굿을 한다는 얘기까지 있더군요"(인터넷 <YTN 뉴스>, 2016년 11월 1일)라고 말한 것으로 일부 언론은 보도했다. 이 표현을 기준으로 하면 박근혜가 부정한 것은 '토속신앙의 굿'이 아니라 '사교의 굿'이다. 자신의 '종교'를 옹호하기 위해 졸지에 토속신앙의 굿을 폄훼하지 않으려면 사과발언에서도 그렇게 표현했어야 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왜 이런 변명까지 해야 했을까? 다음은 영세교 교주 최태민의 측근이었다는 목사 전기영의 인터뷰발언이다.

 

  -최태민이 박근혜를 알게 된 동기는.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뒤다. 그 무렵 박근혜에게 최씨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죽은 육영수가 나타나 내 딸 근혜가 우매하니 당신이 그녀를 도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근혜가 최씨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까만 승용차들이 최씨가 도를 닦는 곳에 왔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엄청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박근혜 앞에서 최씨가 육영수의 영혼에 빙의됐다면서 그녀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연했다. 이것을 보고 놀란 박근혜가 기절하고 입신(入神)을 했다.
  -입신이라면.
입신이란 말은 최씨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입신은 교계용어다. 예컨대 환상을 본다거나, 천국이나 지옥을 본다던가, 뜨거운 성령 체험, 신들렸다는 등. 놀란 박근혜가 그때부터 최씨를 신령스런 존재로 보게 됐다고 한다. 인터넷 <국민일보>, 2016년 10월 31일.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우리가 듣는 얘기는 '전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신뢰도에 의문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널리 퍼진 지금에 와서도 박근혜가 자신은 '사이비종교에 빠지지 않았다'는 한마디로 간단히 넘기려는 것은 신뢰도에 더 큰 의문을 낳는다. 사이비종교의 교주와 그 딸하고까지, 수십 년을 그렇게 끈끈한 관계를 맺은 사이비종교 비신도?

 

 

그럼 '사이비종교에 빠지지 않았다'는 박근혜는 자신의 '종교'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녀의 일기를 모아 출판한 책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문장 이해력이 웬만큼은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이 책을 살펴보면서 거의 유일하게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했던 부분이다.

 

주위와 세상은 그대로인데 마음의 전환이 엄청나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소명을 내리신 하늘은 영원 불변하기 때문에, 영원 불변한 하늘, 그 하늘이 내리신 진리에 뿌리를 두고 사는 사람의 나무는 자연 영원 불변할 수밖에 없다. 163쪽. 

 

사람의 나무? 영원 불변? 영세…? 교?! 물론 난 영세교의 교리도 모르고, 위 문장의 심오한 뜻도 이해하기 힘들어 그냥 그런 단순한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런 궁금증 때문에 굳이 영세교 교리 공부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 그런 나로서는 위 인용문장의 심장한 의미를 풀 길이 없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았다'는 박근혜의 말이 웬지 '자신이 뭘 믿고 있든지 간에 그건 사이비종교가 아니다'고 우기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게 단호하게 아니라는 대통령 박근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의심하는 백성들은 몽매하다. 하지만 그 수십 년 묵은 거대한 정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안 해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참고로 남들은 사이비종교에 빠졌다고 하고,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는 사례는 아주 흔하다.

 

그런데 박근혜를 직접 만나본 사람이 좀 무서운 말을 했다. 그 주인공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종걸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대통령·여야대표·원내대표 5자회담에서 있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대화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뉴스미디어에 보도까지 된 바, 거의 국가기밀에 가까운 그 내용은 이런 것이다.

 

내가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떤 부분이냐"고 되묻자, 최근에 최순실이 등장하면서 다시 회자되고 있는 문제의 그 발언이 나왔다. "전체 책을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 나는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귀기(鬼氣)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에 그 '귀기'의 느낌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노컷뉴스>, 2016년 10월 29일.

 

사실 난 귀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 '귀기'의 느낌도 잘 모른다. 그래서 그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는 이종걸의 신기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은 든다. 어쨌거나 나는 이종걸이 박근혜에게 느꼈다는 그 '느낌적 느낌'을 절대로 느끼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가본 적도 없고, 앞으로 갈 일도 없겠지만, 정말이지 그런 곳엔 가고 싶지가 않다. 멀리서라도 쳐다보기조차 싫다. 그 음산한 '귀곡산장' 같은 대한민국 청와대를.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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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전 대통령 김영삼은 현 대통령 박근혜에게 이런 막말을 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1일 새누리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박근혜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자신을 예방한 김문수 경기지사가 당 대선후보 경선참여 계획을 알리며 "사력을 다하겠다"고 말하자 이같이 답했다김 지사가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밀리는 자신의 위치를 비유하자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위원장은)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 돼"라고 혹평했다. <연합뉴스>, 2012년 7월 11일.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칠푼이란 "조금 모자라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팔푼이는 "생각이 어리석고 하는 짓이 야무지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말하자면 칠푼이는 팔푼이보다 더한 놀림이다. 그런데 김영삼은 박근혜를 팔푼이도 아닌 칠푼이라고 비하한 것이다.

 

나는 김영삼처럼 박근혜를 칠푼이라고 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의 막말은 당시 총선에서 자신의 아들 김현철이 낙천한 이후에 불거진 다분히 사심 가득한 반응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인신공격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칠푼이라는 인신공격을 하면서 김영삼은 최소한의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그것도 "아주" 칠푼이라고 비하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는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김영삼의 이 중독성 있는 막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것까지 어찌하진 못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내 머릿속을 더 뱅뱅 돌고 있는 건 영화 <간첩 리철진>에 나오는 이런 대사다. 고정간첩 오준익이 남파간첩 리철진을 복귀시키며 차 속에서 푸념처럼 하는 말이다.

 

 

근데 이놈의 나라가 좋은 게 있지. 그 어떤 것이든, 뭐든, 쓰면 없어진다는 거야. 투쟁도, 그것이 풍미했던 시절도, 이념도 다 써버렸다. 쓰니까 다 없어지더라구. 리철진 동무! 내가 공산주의자로 보이나?

 

 

 

박근혜는 박정희의 유령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를 소비하고 있다. 그것이 아무리 시대착오적인 소비라 할지라도 그 소비를 다 끝내야 한다. 그렇게 박정희가 대한민국에서 지긋지긋해질 때 박정희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 소비는 아직 멀었다. 박정희 생가에서 열린 제37주기 추도식 뉴스를 보며 실감하기 바란다.

 

추도식을 마친 후 참석자들은 인근에 위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 앞으로 가 추모를 하기도 했다. 일부 주민은 절을 하고[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2040911#IE002040911]일부 주민은 머리를 숙여 추모한 뒤 동상 주위를 둘러보거나 사진을 찍었다. 추도식에 참석한 한 주민은 지난해보다 참가자들이 적은 이유에 대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가 그러니까 참가자들도 적은 것 같다""하지만 우리가 대통령을 지켜줘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2016년 10월 26일.

 

대가가 아무리 커도 역사가 요구한다면 감수할 수밖에 없다. 최순실의 반복적 희극 없이 김재규의 일회적 비극만으로 역사가 효율적으로 진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어이, 끝까지, 아직도 부족하다는 '지역'이 있다면 어쩔 수가 없다. 계속 그렇게 현대 영남패권주의의 원조 박정희의 유령 박근혜는 열심히 버티고, 그 지지자들은 열심히 지키기 바란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이 아무리 나락으로 떨어져도 원한다면 아무쪼록 그렇게 하기 바란다.

 

한마디로 나는 여전히 비관적이다. 즉 나는 대한민국이 박정희를 여전히 더 소비하려 할 것이고, 불가피하게 더 소비할 수밖에 없으며, 원 없이 더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웬만한 영남패권주의자들 입에서도 "내가 박정희주의자로 보이나?"는 대사가 체념과 함께 흘러나올 때까지 끝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냉혹한 '역사의 간지'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고통스럽지만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게 역사는 너무나 가혹하고 지루하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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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나는 독립적인, 그러나 고립되지는 않은 주체로서, 호남인으로서의 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특권을 원하는 게 아니라 평등을 원한다. 지역집단의 수준에서 하는 말이다. 왜냐고? 내가 호남 사람이기 때문에? 극히 부분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내가 소박한 수준의 정의에 깊이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고종석, https://twitter.com/kohjongsok, 2016년 1월 20일.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수많은 여자남자사람이 추호의 의심도 없이 '노무현 이데올로기=지역주의 양비론=친노 문재인 지지'를 자랑스러워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들 사이비 페미니스트들은 '친노(노무현) 이데올로기 신봉이 자랑스럽다면 논리적으로 페미니즘이 아니라 남여성주의 양비론 신봉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한다. 이런 집단지성(?)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니 때를 만나면 혹여나 '마초 페미니즘'도 유행하지 않을까 궁금하다.

 

친노는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 투쟁을 의미 없는 '지역/지역'의 개싸움으로 비하한다. 만약 친노 이데올로기를 닮은 '남여성주의 양비론'이라는 게 있다면 (과문한 나는 그런 이데올로기적 족보가 있다는 얘길 듣지 못했다) 페미니즘 투쟁을 의미 없는 '성/성'의 개싸움으로 비하할 것이다. 그렇게 친노는 그들의 '지역주의 양비론'을 시대적 정의의 왕좌에 앉힌다.

 

가상의 논리라 해도 '남여성주의 양비론'은 긍극적으로 남성패권주의 체제를 도울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다. '지역주의 양비론'도 영남패권주의 체제에 투항하여 물심양면으로 그것을 도울 수밖에 없다. 친노가 장악한 거짓 정의의 폐해가 그러하므로 고종석은 구태여 '진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상식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것은 영남패권사회가 아니라 지역평등사회가 정의라는 상식이다.

 

한데 내겐 고종석의 위 트윗이 양심의 자유가 내지르는 슬픈 비명처럼 들린다. 단지 그 관점의 옳고 그름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한 개인의 "소박한 수준의 정의"감조차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설명할수록 더 이해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부정의 그 자체다. 말하자면 '남여성주의 양비론'이 아니라 '반남성패권주의'가 정의 아니냐고 설명(실천이 아니다!)하느라 우선 진을 다 빼야 하는 사회는 대체 얼마나 미개한가?!

 

이달 상순, 고종석은 자신의 트위터를 폐쇄했다. 그의 트위터를 1인 뉴스미디어로 생각했던 나는 여간 헛헛한 게 아니다. 사실 나는 그에게서 이젠 시대의 기억도 희미해진 지난 문인들의 향기를 느낀다. 아무나 흉내내기 힘든 대체 불가능한 문재를 느끼게 하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건 청중으로선 거의 날벼락에 가깝다. 그가 언젠가 말의 기력을 회복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가 보는 상식적 세상을 함께 볼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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