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위 강연 원고 전문이다.
새 헌정체제 수립과 호남의 역할
김욱 서남대교수ㆍ헌법학
Ⅰ. 문제제기: 어쩌다 ‘국민바보 박근혜’가 만들어졌는가?
지금 온 국민이 혁명적 열기 속에서 ‘대통령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규탄하고 있다. 근원적으로 생각해보자.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이 사태의 모든 원인을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만약 ‘제왕적 대통령제’가 현 사태의 모든 원인이라면 우리는 ‘제왕적 독재’로만 고통 받고 분노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지금 제왕적 독재가 아닌 ‘최순실의 앵벌이 박근혜’에 부끄러움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제왕과 앵벌이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헌정문란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그 본질적 차이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 헌정사는 질곡을 딛고 전진해왔다. 1960년엔 이승만의 봉건적 파시즘을 딛고 근대적 민주주의 혁명을 이뤄냈으며, 1987년엔 박정희ㆍ전두환의 영남파시즘을 딛고 절차적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그 민주화의 성과를 헌정체제의 변화를 통해 담보해냈다. 1987년에 개정돼 지속되고 있는 현행 헌법은 바로 그 과거의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이제 미래의 고통스러운 질곡이 되고 있다. 두 말이 필요 없다. 현행 헌법을 통해 대통령으로 등극한 ‘국민바보 박근혜’가 미래에도 반복될 바로 그 고통스러운 헌정 질곡의 명확한 징표다.
역대급 ‘국민바보’라도 손쉽게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우리나라 헌정 메커니즘은 아주 간단하다. ‘영남패권주의의 온상이 되고 있는 상대다수대표 대통령 선거제도’가 바로 그 근원이다. 과거엔 ‘아무리 독재자여도 우리 독재자면 좋다’는 식으로 영남파시즘이 실현됐다면, 현 헌정체제는 ‘아무리 바보여도 우리 바보면 좋다’ 혹은 ‘아무리 사기꾼이어도 우리 사기꾼이면 좋다’는 식으로 영남패권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역대급 ‘국민바보’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민주화 이후의 영남패권주의’ 헌정체제를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가능한 헌정체제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Ⅱ. 왜 호남이 현 정국의 ‘키 플레이어’인가?
근래 호남이 느끼는 정치적 좌절감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호남사람이 대통령이 못 돼서? 부분적으로 그런 느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영남사람만 수십 년을 집권하는 데 대한 직관적 소외감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김대중 시절부터 느끼는 호남인들의 가장 큰 마음속 불만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호남사람들도 큰 정치인이 되기 힘든 소수지역 현실에 대한 자괴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수지역 호남도 맹목적으로 대통령제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영남패권주의 체제하에서 호남이 대통령제만을 전제로 해결책을 찾는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자학적으로는 ‘대통령이 못 되는 것은 정치인의 자질 때문이니 우수한 자질을 갖춘 호남정치인을 키워야 한다’거나, 정략적으로는 ‘호남-충청 지역연대 혹은 아예 영남후보를 내세우면 어떻게든 곁다리 집권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외에 다른 방책은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전자는 영남패권체제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후자는 대통령제란 기본적으로 연대를 위한 정부형태가 아니란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호남 등 소수지역은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언젠가 훌륭한 호남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영남패권 없는 세상을 만들기를 기대하는 것은 언젠가 훌륭한 대통령이 등장해 일거에 남북통일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기약 없는 소망이다. 설령 그런 일이 역사 속에서 어쩌다 한 번씩 예외적으로 일어난다고 해도 그간 수도 없이 나타날 바보나 사기꾼 같은 대통령은 또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잔칫날 하루 잘 먹자고 평소에는 굶고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아수라장 같은 현 정국 속에서 천만다행인 점은, 지금까지 영남패권주의 헌정체제의 혜택을 받아온 많은 영남인들도 대한민국이 지금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영남패권주의 과거사를 껴안고 가려는 영남과 성찰하는 영남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과거사를 껴안고 가려는 세력을 새누리당과 함께 고사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이제는 성찰하는 영남세력을 새누리당 바깥으로 선도해 연대한 후 헌정사를 바꿔야 한다. 그들이 낯선 두려움 속에서 망설인다면 압박을 해서라도 새로운 헌정질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 역사적 역할을 호남이 할 수 있다. 아니, 그 역할은 호남만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호남이야말로 영남패권주의 과거사 속에서 가장 고통 받은 피해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남은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었던 영남의 성찰을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있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 결정적 지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남은 역사의 분수령이 되고 있는 현 정국의 ‘키 플레이어(쐐기, 보래)’다.
Ⅲ. 무엇이 ‘반영남패권주의=민주주의’적 헌정체제의 해결책인가?
이제 호남 등 소수지역이 ‘민주화 이후의 영남패권주의’ 체제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제도 그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다. 나는 독일식 내각제를 우리 정치의 해결책으로 생각한다. 나는 실현의 난이도 때문에 분권형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를 선호하지만 권력분립의 차원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합의도 가능하다고 본다. 전 세계의 주요 정치선진국이 대부분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연대를 위한 정치체제는 대통령제가 아니라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분권ㆍ비례ㆍ연대ㆍ합의 없이 경제적 재분배가 잘 이뤄질 수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으로 중요한 얘기가 남아 있다. 선거제도다. 내가 특별히 독일식 내각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 선거제도 때문이다. 독일식 내각제의 정당명부식비례대표 선거제도는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총의석을 배분한다. 따라서 다수는 다수대로, 소수는 소수대로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이를 불만이라 한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민주주의에 불만을 품는 것이다. 물론 독일식 내각제는 ‘정당’을 헌정의 기본단위로 생각하는 정당국가적 제도다. 따라서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우리나라 정당문화를 근거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일면 공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가 패권이 아닌 연대와 합의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 상상적 우려에만 집착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국민의당 같은 제3당 입장에서는 독일식 내각제에 대한 반대논리에 민주주의적 측면에서 중요한 반박을 할 수 있다. 지난 4ㆍ13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보다 1.2% 더 높은 정당득표율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의석수 123 대 38석의 제3당이 되고 말았다. 이는 정당위주의 민주정치 관점에서는 선거제도상의 심각한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호남바깥의 많은 유권자들이 지역구투표에서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하고 싶었지만 상대다수대표선거제도상의 낙선 우려 때문에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할 수 없었던 왜곡이 벌어진 것이다.
현행 대통령제 헌정체제하에서 소수지역 호남은 벗어날 수 없는 소외의 굴레를 쓰고 있다. 하지만 독일식 내각제를 쟁취한다면 그 운명적 굴레를 제도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 어느 당을 지지하든 호남유권자가 선택한 정치적 지분만큼 정치권력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패권주의에 저항해온 호남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문제는 지금까지 패권주의의 안락함에 젖은 영남이 이런 민주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결사반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영남패권주의 과거사를 성찰하는 영남인들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새롭게 진일보시켜야 한다.
그런데 반영남패권주의 투쟁을 해온 호남과 영남패권주의 과거사를 성찰하는 영남의 연대를 야합이라고 모략하는 세력이 반드시 부상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음해를 통해 누가 영남패권주의 본당 새누리당과 함께하는 구질서를 원하고, 누가 정계개편을 통한 신민주헌정질서를 원하는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세력은 북한체제의 소멸보다는 그 존재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영남패권주의 세력과 그것을 적대적 겁박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친노세력을 제하고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성찰적으로 새누리당과 절연하는 영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호남의 연대는 역사의 퇴행이 아니라 진보다.
Ⅳ. 결론: ‘탄핵 없는 개헌’만으론 안 된다
지금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모든 흑역사를 껴안은 거대한 대마가 됐다. 그녀는 단순히 ‘박근혜 정권’이 아니다. 박근혜는 ‘국민바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영남패권주의 헌정제도와 얽혀 있고, 박정희의 친딸로서 영남패권주의ㆍ영남파시즘의 기원과 얽혀 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친일과 얽혀 있으며, 그간의 흑역사를 담아온 새누리당이라는 그릇의 정치적 계통과도 얽혀 있다. 그녀를 탄핵하면 정치적으로는 이 모든 흑역사를 함께 탄핵하는 것이다. 이 탄핵의 상징성은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를 건강하게 만드는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서 ‘탄핵 없는 개헌’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 개헌의 내용이 무엇이든 탄핵 없는 개헌 주장에 나는 분명히 반대한다. 탄핵은 과거사에 대한 정리고, 개헌은 미래를 향한 새출발이다. 탄핵 없는 개헌은 과거사를 적당히 묻고 정략적으로 권력만을 논하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이라는 흑역사의 법통을 껴안고 가려는 책략에 대해서도 분명히 반대한다. 누구라도 그런 주장을 한다면 그 저의를 크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의 영남패권주의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겠다는 정략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호남과는 절대 연대할 수 없다.
앞으로 호남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호남이 현 헌정체제의 관성 속에서 타 지역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며 호남인물 말고 누구를 대통령으로 밀어줄까만 고민하는 우를 범치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그저 대통령 선거를 조금 일찍 치르는 것으로 이 혁명적 기회를 날려버리는 건 너무 허망하지 않는가? 과거 노무현은 지역주의를 해결하겠다며 영남패권주의 과거사를 부정하고 지역주의 양비론으로 영남에 정의를 구걸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노무현의 그런 부정한 방식이 아니라 영남 스스로 영남패권주의를 성찰하게 하고 함께 민주주의를 새롭게 출범시킬 수 있는 정의로운 기회가 기적적으로 찾아왔다. 이 결정적 기회를 살리느냐 마느냐는 호남에 달려 있다. 호남은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