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게, 우리 생의 일회성을 비웃어줄 수 있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고 생각하긴 해.”(81p)




정미경 소설 속, 그 섬에는 서점이야기가 나온다. 문득 <섬에 있는 서점>이란 책과 요즘 읽고 있는 망구엘의 <은유가 된 독자>가 생각난다.


인간은 유한한데, 그 유한함을 망각하고 긍정하고 위로하는 게 “독서”가 아닐까? “우리 생의 일회성을 비웃어줄 수 있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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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8-20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저는 한때 엉뚱하게도 소설을 읽는 게 일회성 같아
한동안 소설을 안 읽었다는...
소설은 마음만 먹으면 몇번을 읽을 수가 있는 건데 말입니다.ㅠ

카알벨루치 2019-08-20 21:12   좋아요 2 | URL
다치바나 다카시는 소설이 픽션이라는 이유로 소설읽기는 하지 않는다고 자신은 fact, 넌픽션만 읽는다고 했지요 쟝르를 불문하고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행위인 듯 합니다 이래야 독서를 더 하겠죠 ㅋㅋ
 

  

1

이 책은 저자 부부가 2017년 여름 세계여행을 떠나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의 31개구을 돌면서 여행 중에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젊은 한인 이민자들을 만나 30여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모아 이민자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2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처럼 한국의 부정적인 면을 떠올리면서 한국 사회, 한국이란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이었다. 삶의 위기가 찾아왔다. 그 위기는 한국을 떠나고 싶을만큼 강렬했다. 물론 나는 젊은 시절부터 외국에서 생활하고픈 욕망이 있었다. 아무런 시선의 제한을 받지 않는 나라에서 내가 누리는 자유는 정말 내 안에 잠재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한다. 몇 번 되지 않는 외국여행은 언제나 그런 내 자신의 모습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3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갈 수 있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오우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미쿡, 와우~꿈에 그리던 미국! 이때만 해도 나는 거품을 뺀 미국이 아닌 단지 거품이 가득 찬 미국이라는 나라란 말로도 설레고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미국은 미국인데, ‘또 다른 미국이었다. 바로 알라스카! ALASKA! 여러분, 아는가? 알라스카가 미국의 또 다른 영토란 것을? 지도를 찾아 보았다. 말로만 듣던 공항이름,‘앵커리지란 고유명사가 눈에 들어왔다. ‘설국을 연상시키는 눈덮인 천지,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 자연 그대로의 멋! 강도 높은 추위! 백야도 있었던가? 모르겠다! 워낙 사람들이 이주하기를 꺼려서 살기만 해도 정부에서 보조금을 제대로 지급해준다는, 천연자원이 많아서 그 혜택을 이주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정보도 접했다(하지만 춥고 멀기에 생필품의 가격도 굉장히 비싸다는 사실) 가장 강력한 정보는 거리를 이동할 때는 택시를 타야 하는데, 택시가 항공기라는 사실이었다! 우하하하! 비행기가 택시인 셈이다.

 

 

 

4

영주권 이야기이다.

알라스카에 계시는 분과 통화를 했다. 이전에 거기서 일하시던 분이 7년인가 존버(?)하시다가 영주권이 나오니깐 가족들을 초청해서 바로 미국 본토로 잽싸게 이주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영주권은 소중하니깐!!! 하지만, 그 곳에 사시는 분들의 가슴에는 기대가 무너진 실망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주는 영주권이 얼마나 대단한가! 싶었다.

 

 

5

지인 중에 미국에서 유학을 하시고 국내로 들어오셨다. 아이들이 국내로 들어왔다가 국내적응하는 길 보다는 아이들을 다시 도미시켜 유학길에 오른 것으로 안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이 국내에 들어왔는데, 영주권이 나와서 그 영주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그토록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던 영주권! 시민권이 아니지만, 시민권으로 갈 수 있는 영주권이기도 하지 않은가! 영주권을 계속 유지하려면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서 얼마 동안 거주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찾아보지는 않겠다. 대충 그렇게 알고 있다(우리 시대는 정보과잉시대이다. 너무 많은 검색과 너무 많은 정보는 내게 해롭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귀찮아서 찾지 않았음을 양해바랍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 영주권을 포기하셨다! 영주권이 주는 모든 혜택과 이익을 내려놓았다.

 

 

 

6

영주권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 분들의 상황과 환경과 처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비판하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냐? 그 질문은 늘 우리를 따라다니는 듯 하다.

 

바로, ‘where가 아니라 how’란 문제, 명제(thesis)이다.

 

 

7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고 하면 단순히 한국이 싫어서’, ‘한국의 분위기와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싫어서떠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직장 생활 가운데서 느껴지는 상사의 갑질, 회식문화, 근무환경,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와 몰이해 등이 이민의 이유로 한 몫을 한다. 각 장의 소제목 중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것이 싫어서 이민한 이들의 이야기만을 소개해본다면?.

 

-‘행복하는 말이 낯설다면?’

-‘재미없는 일은 그만!’

-‘오후 330분 퇴근?’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기는 싫어

-‘이기적이라고?’

-‘평생을 로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의 돈만큼 나의 땀도 중요하기에!’

-‘내 걱정은 NO!’

 

하지만,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 나라가 좋아서’(44p) 이민을 택한 이들도 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프랑스 그르노블, 독일 에센, 영국 런던, 캐나다 토론토 2, 미국 버지니아, 콜롬비아 보고타, 호주 시드니, 호주 멜버른,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이민한 경험을 인터뷰한 이 책은 소위 젊은이들에게 헬지옥이라 불리는 한국 땅을 떠나 또 다른 유토피아(utopia)를 찾아 나서는 파랑새 신드롬을 선물하진 않는다. 내가 좀 더 젊었더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어디에서보다는 어떻게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질과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292p)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8

콜롬비아 보고타의 김소연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필리핀을 여행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한 주는 도시 투워, 한 주는 관광으로 이뤄졌다. 첫 주는 하루 하루 미션을 주고 마닐라 도시를 이곳 저곳 조를 짜서 움직이면서 훑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소액의 금액으로 식사와 교통비를 제공한 채. 젊은이들과 함께 도시투어하는 것은 굉장한 체험이었다. 하지만 무조건 저녁시간 전에는 돌아와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저녁시간을 훌쩍 넘어 늦게 도착한 조가 있었다. 그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현지에 사시는 분이 굉장히 긴장하고 초조해하셨다. 바로 필리핀이란 나라가 가진 안전에 대한 위협 때문이었다. 총기사고는 수시로 나고, 사람 죽는 일은 태반이었다. 콜롬비아의 안전도 만만치는 않았다. 휴대폰이나 지갑을 길 거리에서 내놓으면 안 된다는 경고는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라의 상황, 선진국이거나 후진국이거나 상황에 따라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그 장소, where에 있어서 위험하고, 그 공간이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 옮겼다고 해서 덜 위험하고 그런 면도 분명히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How’의 문제이다. ‘보이는 위험만이 전부가 아닌 보이지 않는 위험은 언제나 우리 인생에 산재해 있지 않는가!

 

 

 

9

많은 이들이 이민가고 싶은 나라가 바로 캐나다인데, 캐나다 토론토에서 이민자로서 정부의 공무원이 되었다는 이장헌님의 사연은 참 대단하다 싶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공무원이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만큼 캐나다가 어떤 나라인지, 다민족, 다인종의 열려진 사회란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우리가 그 곳에서 살아보지 않고선 그 곳의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없다. 내가 직접 피부로 체감해 봐야 내 판단력과 분별력이 명료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10

책이 주는 매력이 무엇인가? 세계를 투어한 듯한 간접 체험, 통찰력(insight)이라고 할까? 마치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대변동에서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틈새정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것을 차용한다면 틈새통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러드 다이아몬드 이야기가 나오니 미국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에선 미국 버지니아로 이민간 임지혜님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이란 나라?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미국의 가장 큰 문제점을 <양극화>로 뽑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극화, 정치의 양극화는 당연히 경제의 양극화로 드러난다. 그 벌어진 간격을 메울 수 없는 만큼 벌어진 나라가 미국인데, 그것이 주는 파급효과는 미국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현상이 먼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빈익빈 부익부가 가장 선명한 나라가 또한 미국이기도 한 것이 그 이유이다. 대변동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적고 싶다. 글이 또 삼천포로 빠질 뻔했다는...

 

    

 

11

이민을 가고자 한다면, 이민가고자 하는 나라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데, 두말 할 것도 없이 바로 언어이다. 하지만, 또한 그 나라가 자신에게,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한 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책이 책인지라, 당연히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도시와 가족사진이 게재되어 있는데, 그것이 그림의 떡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알아야 한다. 행복은 저기 건너편 어디쯤에 있을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기대 보다는 오히려 이민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적확한 분석과 평가가 나를 더 행복으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12

결국 행복은 언젠가 내가 영화 <레버루셔나리 로드>의 리뷰에서 밝힌 것처럼, ‘Where’의 문제가 아니라 ‘How’의 문제이다. 내가 최애했던 가수, 김광석은 <행복의 문>이란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오늘 또 하루는 스쳐 지나가고

어제의 다짐 모든 꿈들을

다시 또 새기며 애써 돌아보네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봤지만

오늘도 역시 그대로인 걸

모두가 내게서 시작된 일이지

익숙해진 무감각 속에

인정하면서 살아가지

세상은 늘 변해가는 것

우리 가슴을 열어야지

쳇바퀴 돌 듯 똑같은 날의

길어진 그림자 고갤 들질 않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뒤엉킨 생활은 돌이킬 수 없네

 

 

익숙해진 무감각 속에

인정하면서 살아가지

세상은 늘 변해가는 것

우리 가슴을 열어야지

쳇바퀴 돌 듯 똑같은 날의

길어진 그림자 고갤 들질 않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뒤엉킨 생활은 돌이킬 수 없네

 

행복의 문은 자신의 마음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

열심히 살고 보람도 얻고

진정한 행복을 모두 찾았으면

열심히 살고 보람도 얻고

진정한 행복을 모두 찾았으면

행복의 문은 자신의 마음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는 거야

(이 글을 적으면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리운 목소리이다!)

    

이렇게 노랠 불렀고 나도 젊을 때 열창을 했더랬는데, 그는 왜 그렇게 자살을 한 것일까? 삶이, 인생의 ‘How’가 노래만큼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은 여전한 딜레마이다.

 

 

 

13

한국을 떠나고, 떠나지 않고의 공간(where)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인생은 ‘HOW’의 문제이다!

 

 

 

*역시 도서관이 좋다. 이런 책도 내가 읽게 되다니! 감으로 고른 책인데,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이런 책 열렬히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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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3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3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연 2019-08-13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민은 아닌데 항상 이 나라를 떠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순간들이 많아요. 어느덧 중년이 되어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이 나라에서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들이 많고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중산층에 언제나 속했지만 뭔가 껍데기의 삶이라는 인식이 언제나 강했던듯 싶어요. 자의적으로 떠날 일은 거의 없을듯 싶은데_ 이젠 나이도 슬슬 먹어서_ 그래도 떠나고싶다는 마음은 가시지 않네요. 추천해주신 책은 읽어봐야겠어요. 떠날지 남을지 알 수 없지만요. :)

카알벨루치 2019-08-13 13:45   좋아요 1 | URL
이민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과 준비, 그리고 언어는 여기서 준비하는 것보다 직접 부딪히면서 배우는게 낫고, 학술적으로 들어가면 더 고급단계로 들어가야겠죠 인터뷰대상자들이 다 젊어서 좌충우돌하면서 배울수 있는데 나이가 있는 우리 세대는 아마 좀더 고려해볼 사항이 많겠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데 더 나은 최선의 선택이 필요한거겠죠 가고싶은데 못가는건 항상 현실에 대한 불만과 볼멘소리가 나올수 있으니 정확한 자가진단이 필요합니다 아니면 아예 작정하고 몇개월 살아보시는 것도 좋은 방인인데 가족이있으니 제약이 많겠죠 정말 떠나고 싶으시다면 준비가 필요하겠습니다 책은 꼭 한번 읽어보세요 아님 저자나 인터뷰대상자들과 연결되서 정보를 알아보시는 것도 좋구요! 한국의 정서와 행정과 시스템, 가치관과는 판이한 곳이니 그런 부분도 참조하시면 좋겠네요

어디서나 무엇을 하건 자기만족의 최대값을 낼 수 있는 그 곳을 잘 찾으시길 바래요 화이팅! 사랑은 움직이는거야 란 이전 광고문구처럼 사랑도, 사람도 움직이는거니깐요 ^^

수연 2019-08-13 15:11   좋아요 1 | URL
‘자기만족의 최대값을 낼 수 있는 그곳‘ 찾아보도록 노력해볼래요. 지금 상태로서는 도서관에 일단 가서 이 책을 빌리는 일부터!

설해목 2019-08-13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든 그곳이 익숙해지면 삶이 무료해지는 것 같아요.
어느 스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반복되는 일상을 매일 매일 새롭게 맞는 것이야말로 깨어있는 삶이라구요.
어느정도 수행을 해야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정말이지 where의 문제가 아니라 how문제인 것 같아요.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건~

카알벨루치 2019-08-13 14:56   좋아요 1 | URL
미국사람들은 평균적으로 5년마다 이동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설님은 미쿡으로? ㅋㅋㅋ매일을 새롭게, 하루를 그렇게 누리는게 우리의 몫이죠! 매너리즘은 최대의 적이고~인간은 인간인지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하죠 수동이 아닌 능동으로! 삶은 계속 keep going on~

설해목 2019-08-13 15:02   좋아요 1 | URL
정말이지 저도 살림이 간단하여 5년마다 이동할 수 있긴 한데....... 책이 문제입니다. ㅎㅎㅎ;;;;;;;
책만 없다면 가뿐하게 옷가지 몇 개 챙겨 이동네 저동네 풀옵션 원룸을 옮겨다니며 살아보고 싶긴 해요. ^^
글로 옮기고보니 정말 그렇게 살아보고 싶네요! ㅎㅎㅎ
뱅기타기에 적응을 해야 하는까 일단은 미쿡은 넘 멀고 제주도라고 고려해봐야겠어요. ㅋㅋ

카알벨루치 2019-08-13 15:12   좋아요 0 | URL
책 안되면 저한테 맡기세욧! 그리고 소확행을 따라~~~ㅋㅋㅋㅋㅋ책 맡길데는 알라딘에 많을껑요! 책이 그렇죠 이삿짐센터에서 젤 싫어하는 그룹중에 하나가 책많은 사람이죠 헬쓰클럽이 기피대상 1호이고 ㅎ

psyche 2019-08-14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민자로서 where 가 아니라 how 가 문제라는 말씀에 백만번 동감입니다!

찾아보시지 않은 영주권에 대한 이야기는 영주권이라고 하는 것이 말 그대로 나 여기 살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으면서 영주권을 유지하는 건 무척 어려워요. 물론 리엔트리 퍼밋을 받으면 되긴 하지만 그것도 1,2년이니까요. 6개월에 한번씩 미국으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영주권을 포기할 수 밖에 없죠.

저 책의 저자들이 브런치에 글을 올려왔더라고요. 책에는 거기에 없는 인터뷰 도 있다고 하던데... 암튼 이민자의 입장에서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네요. 공감가는 내용도 많았고요. 덕분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8-14 09:55   좋아요 0 | URL
긴 댓글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민자가 아닌 저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환기”라는 단어가 생각나더군요 수연님이 그 브런치의 글을 읽어봤음 좋겠네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정확한 자기평가’란 말을 했는데 개인이든, 국가이든 모두가 곱씹어야할 대목인듯 합니다 이민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anywhere이든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민가야할 where가 아닐까 싶네요 즐거운 하루되십시오!

레삭매냐 2019-08-14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미쿡에 사시는 분의 지인이 저명한
기업의 부사장의 자리에까지 오르셨는데,
여전히 자신은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자기 자식들 그 다음 세대에나 완전한
그 나라 시민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하시
던 말쌈이 기억나네요.

카알벨루치 2019-08-14 11:45   좋아요 0 | URL
미국에는 평등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가장 차별이 심한 나라가 아닌가 싶어요 근데 그 부사장님 다음세대도 그나라 시민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이 의식치 못하는 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국이란 나라는 <대변동>을 읽으면서 새로운 면을 많이 알게 되었네요
 

1

  문학이 좋은 것은 문학의 프레임frame에는 한계limit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엔 무한대의 포용과 허용의 게토ghetto가 존재한다. 문학이란 우주는 끊임없는 용납과 얼싸안음으로 독자를 품고 위로한다. 문학은 보여주는 것이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은 나를 도덕으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로, 기타 그 어떤 매개를 통해 단죄하거나 비판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문학의 인물들이나 캐릭터들은 텍스트 위에 살아있어 내게 공감의 눈물과 동감의 쾌락과 위로의 전율을 선물한다.

문학은 그래서 위대하다.

 

인생이 문학이고, 문학이 인생이지만,

여전히 문학은 텍스트라는 지면 위에 영혼의 날개를 펼쳐 자유를 만끽하게 해 준다. 그것이 문학이 주는 카타르시스다.

 

 

 

2

  존 치버의 단편소설집 기괴한 라디오에 보면, <애절한 짝사랑의 노래>란 이야기가 있다. 잭은 남성편력이 대단한 조앤을 세월이 지나도 늘 한결같은 시선으로 설레어 하고 흥분된 태도를 유지한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감정의 tension은 늘 한결같다. 조앤은 지나칠 정도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기웃거렸고, 심지어 아주 점잖아 보이는 노신사가 외설스러운 제안’(259p)을 할 정도였다. 자신의 몹쓸 평판에 대해 조앤은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자신을 도마질하는 이웃들을 향해 그 사람들이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어”(260p)라고 책임을 회피한다.

 

 

 

3

  조앤은 그런 남성편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성을 바꿀 때마다 지인들을 파티에 초대해서 자기 연인을 자랑질한다. 하지만, 조앤이 만나는 이들은 늘 그렇듯 그저 그렇고 그런 인물들이었고, 지나치게 말하면, 사회적인 쓰레기들이었다. 구제불능남들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조앤이 만난 연인들 중 생존해 있는 이들이 드물다는 현실이다.

 

 

어둠 속에서 조앤은 자기를 떠나간 애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말에서 잭은 그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겪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닐스, 그 수상쩍은 백작은 죽었고, 휴 배스컴, 그 술정뱅이는 상선을 탔다가 북대서양에서 실종되었다. 그리고 프란츠, 그 독일인은 나치가 바르샤바를 폭격한 날 밤,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우리는 라디오를 통해 그 뉴스를 들었어.”....

아 피트.”

뭐랄까, 그 사람은 언제나 많이 아팠어. 그래서 사라낙 호숫가로 가야 했지만 그러기를 미루고 또 미루고....” 층계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그녀가 혹시나 랠프(또 다른 연인)의 발소리가 아닐까 해서 말을 멈췄다.’(267-268p)

 

 

 

4

  이 작품의 첫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잭 로리는 뉴욕에서 조앤 해리스를 알게 된 지 몇 년부터 그녀를 미망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었고 또 그녀가 사는 아파트의 이상한 무질서 때문에 그는 언제나 장의사들이 막 다녀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악의적인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앤을 좋아했다.’(243p)

 

 

 

5

  잭은 두 번이나 이혼했지만, 여전히 조앤바라기이다. 근데 잭이 직장을 나오고, 실업자 신세를 지내다 병까지 얻게 되자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만화영화의 주제가처럼 갑자기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니 나타나는 조앤이었다. 잭은 병상에 누워 누추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몰골을 자신의 짝사랑 앞에 보이길 수치스러워한다. 이런 곳에서, 이런 몰골과 행색을 보이는 것이 견디기가 힘든 것이다. 잭은 조앤이 연인들의 죽음의 사신’, ‘연인의 저승사자인 것처럼, 조앤을 늘 따라다니는 남자의 죽음의 그림자라는 인상에 간호하겠다는 조앤을 한사코 돌려보낸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나기가 싫었던 것이다. 좋은 곳에서, 좋은 모습으로 보자는 말을 남긴 채...

<애절한 짝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잭의 뒷모습은 을씨년스럽다...

 

 

 

 

6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없다...그냥 존 치버의 단편을 읽고 있으면 그가 내뱉는 스토리의 배경background가 느껴진다. 과연 교외의 체호프라 할 수 있구나 싶다. 도시 생활, 미국인들의 평범한 삶을 이리저리 훑으며 레이먼드 카버와는 또 다른 느낌과 체취를 느끼게 해 주는 존 치버이다.

 

 

 

7

  삶의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다다르며 밑바닥의 지형을 훑고 살핀 고통의 파편과 흔적이 작품에 녹아나 있다. 그것은 특출나게 튀어나온 돌기처럼 생겨 먹은 것이 아니라 삶의 자잘한 일상 가운데 순간 순간 찌르는 머리 아픈 일들, 골치 아픈 일들, 편두통의 압정 같은 일상의 일상이다. 권투선수가 무너지는 것이 한방의 강력한 KO주먹이기도 하지만, 계속 치고 들어오는 잽, 무수한 잽의 충격이 누적되면서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의 링 위에서 우리가 다운되거나, KO되지 않기 위해선 잽을 되도록 맞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 잽들을 우리가 무슨 수로 피할 수 있단 말인가? 고통이 없는 링이 어디에 있는가?

 

얼마 전 1616승의 전승의 무패복서가 링 위에서 펀치를 맞고 실신했는데 그날 죽었다고 한다. 그 무패의 승리자, 챔피언이 어찌 그리 무너졌는가?...인생은 모를 일이다.

 

 

 

8

  문학은 인생의 링 위에서 휴식시간을 제공하는 복서의 벤치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3분 경기에 1분 휴식시간과 같은 것. 그 숨 고르는 휴식시간조차 없다면, 복서는 더 지치고 더 빨리 자주 무너질지도 모른다. 어릴 적 시골에서 권투장갑을 끼고 친구와 권투를 한번 한적이 있었다. 근데 주먹에 맞은 느낌은 아찔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권투선수들의 2,3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숨 쉬기에도 벅찬 1분, 1초이다.

 

문학은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벤치와 같다. 문학은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문학은 스토리를 통해 인생을 위로한다.

 

 

 

9

  그 스토리가 자전적이든, 비자전적이든 간에 인생을 쓰다듬는다. 그 스토리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무슨 힘과 내공이 있냐고?

 

존 치버는 말했다.

훌륭한 작품의 한 페이지는 그 어느 것에서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막강한 힘을 지닌다.”

 

인생도 스토리이다. 이야기이다.

 

 

 

10 

  위화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것들은 뉴스가 해야 할 일들이지요.”(8p)

    

 

문학은 조앤을 욕하지 않는다 

문학은 잭을 욕하지 않는다.

문학은 인생을 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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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14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동안 존 치버를 읽겠노라고 그의
책을 모으곤 했었는데,,, 정작 책은
하나도 읽지 않았네요. 이 배짱이란.

그나저나
위화 선생의 책 표지는 참 그렇네요...

카알벨루치 2019-08-14 11:41   좋아요 0 | URL
존 치버는 단편이라 두고두고 읽어야 할 것 같아요 하루에 한편씩 읽어주고..ㅎㅎㅎ단편은 몰입감이 떨어져서 워밍업했다가 좀 속도 낼려면 다시 워밍업해야하고...그게 단편의 단점이면 단점이죠
근데 레삭매냐님 참 꼼꼼하시네요 전 책표지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데 그게 보이시나봐요 ㅎ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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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을 보면서 그 작가에 대해서 깊은 애정과 위로를 건네받았다.

 

 

 

2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 어려움이 없이 살았던 인물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그는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하게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한때는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열성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첫 번째 죄책감, guilt는 바로 부에 대한 부담감, 죄책감이었다.

 

 

 

3

두 번째 죄책감, guilt는 무엇이었는가? 다자이 오사무의 형이 국회의원을 나가야 하기에, 당시 보수 우익의 정권시절에 좌파사상에 심취해 있는 동생 다자이 오사무에게 너의 여성편력으로 인한 결혼도 인정해주고, 학비도 대줄 테니 의절하자는 내용이었다. 우익의 정치인으로 등장해야 하는데, 집안 핏줄에 좌익 사상을 가진 동생이 있다는 것을 정치무대에 나서는 형에는 굉장한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사상적인 견고함에 비해 생활력은 다소 약했나 보다. 다자이 오사무를 휘감고 있는 심약함은 작품 전반에 드러나고, 결국 그 심약함과 절박함은 자살로 이어진다. 그의 사상에 따라 자신을 투신했으면 그것으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일평생 부모님과 집안의 기대, 생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심적인 부담감이 굉장히 컸던 것을 볼 수 있다. 생가의 기대에 대한 죄책감이 두 번째 다자이 오사무의 guilt였다. 그는 심지어 대학을 졸업해야 할 시점에 좌익활동으로 인해 졸업을 하지 못한다는 것, 졸업을 하면 자신의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 이유로 인해 한 차례의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4

세 번째 죄책감, guilt21살 때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다나베 아쓰미(당시 19)와 같이 죽지 못했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은 죽었지만,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과 자책감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다나베 아쓰미의 가족의 시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향한 매몰찬 시선이 그를 평생 따라 다녔던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39세에 죽기까지 다섯 번째의 자살시도를 했다. 결국 다섯 번째 자살시도는 강물에 투신함으로 이뤄졌고, 마흔이 되기도 전에 일생을 마쳤다.

 

 

 

5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의 목적, 자신의 일생의 목적은 자기파멸이었다. 자신을 향한 죄책감과 자책감의 덩어리가 그를 계속적으로 자기파괴로 몰고 간다.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이 친구가 언젠가는 자살을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들게끔 만들었다고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는 자살이란 도구로 자기파멸의 마침표를 찍고 만다.

 

인간실격이 그의 최후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인생과 문학의 최종적인 결론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둘러싸고 있는 인생의 큰 무거운 짐, 죄책의 이 세 가지 무게감이 결국 그를 그렇게 떠나게 만든 것이다.

 

 

 

6

우리는 왜 문학작품, 작품, 텍스트를 읽는가?

우리는 문학작품이나 다양한 매체의 이야기들을 접한다. 그들의 인생의 라이프스토리나 삶들을 바라보면서, 텍스트 위에 놓여진 구체적인 디테일한 상처와 아픔과 고통과 불행과 절망을 보면서 독자는 위로받고 공감하며 이해하게 된다.

 

 

 

 

7

우리는 어떤 경우에 공감하고 동감하며 위로받는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 더 대단한 사람을 만나서 위로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보다 더 못한 사람, 더 열악한 사람을 보면서 위로받고 공감받는 것이다. 당대의 일본의 문학의 분위기는 자살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평론가는 이야기한다.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했을 때 그의 비극적인 삶과 문학을 사람들이 보면서 혀를 차면서 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감하고 동감했던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과 작품의 비극을 보면서 2차 세계대전후에 전쟁의 패배로 인한 전의를 상실하고 낙담한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젊은 시대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자이 오사무 덕분이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것은 바로 고통이 고통을, 슬픔이 슬픔을 이해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8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유명한 문장을 기억하는가?

누군가를 비판하고자 할 때 모든 사람이 너처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을 기억하렴이란 말...

 

 

 

9

작품의 마지막 장면의 내용을 잠깐 인용해보고자 한다.

 

진정한 폐인...

아무래도 폐인이란 단어는 희극 명사인 것 같습니다. 잠들려고 먹은 것이 설사약이고, 게다가 그 설사약의 이름은 헤노모틴(더운물을 넣어 몸을 따뜻하게 하는 통)이라니,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136-138p)

 

10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을 향하여 인간실격이란 과도로 자신을 내리찍었나 보다. 그의 가슴에 수많은 상처와 생채기를 보면서, 그의 비극적인 인생과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고통이 고통을, 슬픔이 슬픔을 위로하고 이해하는선물을 건네받는다.

비극이 주는 매력이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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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7-28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다자이의 단편을 읽고 있는데...
<추억>이라고 그의 유년시절에 관한 내용인데
그의 집안이 굉장한 부자라는 것이 가늠되어집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표절도하고 악동짓을 좀 했더군요.
전에 그의 또 다른 단편을 읽었는데 어느 장교가 자신의 아내와
활복자살을 하는 내용인데 그게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분명 대단한 작가긴 한데 읽기는 좀 꺼려지더군요. 좀 우울한 문장이라...

잘 지내시죠?^^

카알벨루치 2019-07-28 18:06   좋아요 1 | URL
삶이 우울하니 작품도 우울하고...작가의 삶이 어떻게 그렇게 힘겹고 아플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계속 건필하고 계시죠? 약속 못 지켜드려 죄송합니다 ㅠㅠㅎㅎ

서니데이 2019-08-04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는 작가의 개인사가 소설같아요. 그 시기를 살던 사람들 중에서도 평범한 인생은 아니었을 것 같고요.
오늘 날씨가 많이 더운데 시원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카알벨루치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9-08-04 19:28   좋아요 1 | URL
여름은 더워야하지만 좀 덥긴 더운 날이네요 애들이랑 물놀이했더니 체력방전된 여름오후의 어느날입니다 서니데이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

공쟝쟝 2019-08-19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데요, 문제는 이 책을 잡은 순간 끝까지 다 읽었던 기억이 나요. 보통은 정말 싫거나 못읽겠으면 시간아깝다 미련 없이 건너뛰고 읽거나 덮어버리는 데, 정말 싫어하면서도 끝까지 읽었다는 건 매료되었다는 뜻이겠지요..ㅋㅋ
그게 무얼까 언젠가는 다시 읽어서 찾아내고 싶은데, 읽고 난 뒤 한 사흘은 무기력했던 책이라 좀처럼 다시 잡고 싶지는 않아요. 인간실격,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 ㅎㅎ

카알벨루치 2019-08-20 18:51   좋아요 1 | URL
몰입과 흡입력이 대단한 것은 아마 저자의 자전적 스토리라서 더 그런 듯 합니다~쟝쟝님 스토리에 빠져드는 힘이 뛰어나서 3일을 힘들어하신 듯~지인이 저더러 이런 책 그만 보라고 하더군요 ㅎㅎ
 

  

0.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다들 알 것이다. 햄릿, 리어왕, 오델로, 맥베스이다. 나는 이것을 항상 기억하지 못해, 로미오와 쥴리엣을 삽입하여 기억하곤 했다. 로미오와 쥴리엣도 비극적이지 않은가!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오인하여 동반자살하는 비극도 대단하지 않은가! 아마도 이것은 내가 몇 번 해보지 않은 연극 중에 로미오와 쥴리엣이 들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주무대였던 교회가 아닌 대학의 단과대 발표공연으로 했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 좋은 추억이 되었다. 당시에 영어로 대사를 치면 옆 스크린에서 한글자막을 띄워주는 굉장히 불편한 구도였다. 그땐 기술이 그렇게밖에 안 되었다. 연극이나 영화를 관람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요즘은 어떻게 번역된 자막을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0.1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

비극하면 보편적으로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떠올릴 수 있는데, 오늘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페이퍼를 한번 시작해보고자 한다. 소포클레스는 당시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중의 한 사람이다. 소포클레스는 무기 제조업자인 소필로스의 아들로 기원전 497년에 출생해서 부유한 가정, 좋은 교육, 빼어난 용모까지 갖춰 인기의 대상이 되었다. 15세에는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를 기리는 찬신가를 선창했을 만큼 시인으로 두각을 보였고, 초기에는 배우로도 활동했다. 28세에는 디오니소스 대제전에서 열리는 비극 경연대회에서 앞에서 업급한 비극작가들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불린다. 금수저에 속한 소포클레스에게 문학적인 감수성과 능력까지 겸비하다니! 근데 그리스는 좀 의외인 것은 비극경연대회라니? 하지만 어떻게 보면 요즘 문학이나 시, 소설 대회처럼 그렇게 열릴 수도 있겠다 싶다. 고대 그리스는 인문학이 꽃피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 소포클레스가 가진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과 식견이 탁월하다 싶다. 어떻게 이런 혜안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비극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가?

 

1

오늘 페이퍼의 주제를 보더라도, 소포클레스를 읽어본 이들은 대략 짐작을 할 것이다. 내가 읽은 소포클레스(별글클래식)에는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엘렉트라> 만을 담고 있다. 소포클레스가 어떤 작가인지를 알 수 있는 선별된 작품인 듯 싶다. 별글클래식에서 나온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모사이트에서 전집으로 저렴하게 고전을 구입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영향력이 있고 이름있는 출판사의 저작을 읽는 것이 좋은데, 이미 사버려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

인간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며 시작되는가?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선친인 라이오스 왕을 죽인 살인자를 찾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이디푸스 왕은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하지만, 테이레시아스는 극구 거절하다가 오이디푸스가 네 놈의 손만 보고도 살인을 저질렀다’(26p)는 대구에 결국은 입을 뗀다. 그가 왕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그대가 바로 우리 도시를 더립힌 죄를 지은 자입니다.

왕 자신이 바로 당신이 찾는 살인자란 말입니다...

왕이신 당신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더불어 치욕으로 얼룩진 끔찍한 인생을 살고 있음을 당신이 모른다는 겁니다.”(27p)

 

예언자는 더 중요한 대사를 날린다.

 

당신의 적은 크레온(왕비 이오카스타의 남동생, 오이디푸스의 처남격)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28p)

 

예언자는 저 자신이 친자식들에게 아버지이자 형제요, 자신을 낳은 어머니의 남편으로 제 아버지 대신 들어앉은 자이며, 게다가 아버지를 죽인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말입니다’(32p) 라고 이야기하면서 오이디푸스 왕의 모든 비밀을 폭로한다.

 

 

 

3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그 진원지를 만난 셈이다. 네이버사전에는아들이 어머니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에 근거한 생각ㆍ원망ㆍ감정의 복합체.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길 한다. 심리학의 근거가 되는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을 살인자로 모든 것에 격분하지만, 그 실체를 마주치게 되었을 때, ‘, 이럴수가! 그렇다면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 자신에게 잔혹한 저주를 퍼부은 꼴이 된 거란 말인가?’(46p)라고 한다. 그는 실제 선왕을 죽인 범죄자에게 대해 엄청난 저주를 했던 것이다. 무수한 비극의 주인공처럼, 오이디푸스 왕은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한다.

 

내가 내 손으로 죽인 자의 침대를 더럽히다니!

말해보시오, 내가 사악한 인간이오?

내가 그렇게도 부도덕한 인간이오?’(50p)

 

 

 

4

자신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타는 ,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라도 되잖아오!’(62p)라고 대구하지만, 오이디푸스는 결국 비밀 속에 감춰진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진실이 드러나자 이오카스타마저 목숨을 달리한다.

 

그 일로 당신은 죽임을 당하고, 나는 제 자식의 자식을 낳은 저주받은 어미가 되었소이다’(72p)

 

그녀가 죽어가면서 남긴 말이다.

 

오이디푸스는 왕비의 목매단 밧줄을 끌어 내리고 왕비의 드레스에 달린 금 브로치를 뜯어 그 날카로운 끝으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자신의 겪은 고통과 자신이 저지른 죄를 다시는 육안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작가 소포클레스는 어떻게 이런 구도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일까!

 

그랬다면 이곳으로 와서 내 아버지를 죽이지도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날 낳은 그녀의 남편으로 불리지도 않았을 텐데. 이제 나는 신의 적이오. 날 낳은 그녀가 또 나의 자식을 낳게 한 죄의 자식이다. 악을 능가하는 악이 있다면, 그게 바로 오이디푸스다’(77p)

 

 

 

5

오이디푸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탓에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결혼의 비밀을 안고, 가족의 비밀을 껴안고 살았던 가족의 비극적인 결말은 오이디푸스 왕이 자신의 실날 같은 희망인 딸(딸이기도 하지만, 동생이기도 한)들과 함께 있는 조차도 거절당한다. 결국 왕권도 잃게 된다.

 

 

 

6

오이디푸스 왕의 뒤를 이어 처남이자 삼촌격인 크레온이 왕이 되지만, 크레온에게도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 이야기는 안티코네에 등장한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왕이 되면 오만은 어쩌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일까? 크레온은 오이디푸스 왕의 처참한 결말을 옆에서 지켜본 증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딸 안티코네의 청을 들어주지 않음으로 비극을 또 자초한다. 안티코네의 이야기는 대충 그러하다.

 

 

 

7

인간의 비극의 출발점은 과연 어디인가? 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구약성경 잠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 23)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NIV)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해주고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네 마음을 지켜라.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다.’(Message)

 

 

마음은 생명의 근원, 생명의 원천이다. 반대로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죽음, 멸망, 파멸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마음은 어떠했는가? 사람의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이 말로 표해지고, 말은 행동으로 드러나며, 그 행동은 상황과 환경의 결과를 초래한다. 오이디푸스 왕이 선친을 살해하고 어떻게 왕비와 결혼을 했는지,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 그런 과정들은 모두 생략한 채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고 있다. 오이디푸스 왕이 선친을 살해한 그 장면, 선친의 살해범을 추적하는 장면,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결과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비극적인 장면들...모두가 한 사람의 마음에서 출발되어진 것이다. 라이오스 왕과 무리들을 완력으로 아주 쉽게 해치웠던 오이디푸스!

    

  

 

8

<마음>에 대한 이야길 하니 지금 읽고 있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80대의 지성인인 저자는 이 책에서 개인의 위기에 대한 이야길 하면서 국가의 위기를 다룬다. 개인의 위기는 짧게 언급하고, 6개의 국가, 이를테면 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이야길 흥미롭게 다룬다. 그는 이 6개의 국가에 대한 남다른 정보와 식견, 그리고 무엇보다 두 발로 머물고 거주했던 경험들을 토대로 생생하게 적어주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어떻게 개인의 위기란 주제와 국가의 위기란 주제를 연결시키면서 글을 쓸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거장이란 말이다. 국가의 위기에 대해 운운한다고 해서 책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책을 보고 연구한 순전한 연구물이 아니라 그가 각 나라에서 생생한 체험과 인터뷰와 이야기들, 그리고 엄청난 저작물들을 토대로 글을 적어갔기에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자신의 젊을 때의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지성인이었고, 그런 피가 저자에게 흘렀다. 그는 실험생리학 박사학위를 위해 열심히 실험을 하였지만, 자신이 준비한 쓸개 연구에 성공하지 못했다. 1959년을 그는 개인의 위기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진로가 이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19596월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생물리학회에 참석한 후 내 사기는 더욱 꺾였다. 세계 전역에서 모여든 수백 명의 학자가 연구 논문을 발표했지만 나는 발표할 만한 성과가 없었다. 굴욕감을 느꼈다. 학창 시절에는 1등을 도맡아 하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당시 나는 보잘 것 없는 무명 학자였다.

그때부터 나는 과학자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쓴 유명한 책 월든을 읽고 또 읽었다. 그 책이 순전히 나를 위해 남긴 듯한 메시지에 전율감마저 느꼈다. 과학을 추구하는 진정한 동기가 다른 과학자에게 인정받으려는 이기적인 이유냐는 꾸짖음이었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그런 동기를 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소로는 그런 거창한 동기를 헛된 자만이라며 설득력 있게 일축해버렸다. 월든의 핵심 메시지는 <내가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남에게 인정받겠다는 허영심에 유혹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케임브리지에서 과학 연구를 계속해서 하느냐는 내 의혹은 더욱 깊어갔다.....생리학 연구에 성공하지 못한 실망감을 상쇄할 만큼 핀란드어 학습은 만족스럽고 성공적이었다.’(45-46p)

  

생리학에 대한 좌절감과 절망감이 그를 휘감았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흐르는 언어에 대한 관심과 재능(그는 그때만 해도 6개국어를 할 수 있었다)으로 통역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터닝포인트turnning point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하면 굉장한 파문은 예상되었다. 그 상황을 저자는 개인의 위기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위기는 아버지의 인내심 서린 조언으로 해결된다. ‘6개월만 더 연구해보고 결정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6개월 후, 1960년 봄, 그때 가서 포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여하튼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은 성급히 내릴 필요가 없었다.’(47p)

 

아버지의 조언은 저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결국 그는 6개월 안에 그 쓸개 실험과 연구에서 테크놀로지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서 마친다. 만약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그때 쓸개연구에서 실패하고 생리학을 접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면, 우리는 지금은 거장,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위기는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위기는 중국어로 웨이-로 발음되며 crisis를 중국문자 危機에도 반영되어 있다. 웨이위험을 뜻하고, 중대한 시점, 임계점, 기회를 뜻한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1844-1900)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예의 없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재밌는 말로 비슷한 생각을 피력했다. 또 윈스턴 처칠(1874-1965)좋은 위기를 헛되이 보내지 마라!”라는 경구도 마찬가지이다.‘(51p)

 

 

개인의 위기 또한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상황도 환경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지혜의 대가로 불리는 솔로몬이 지은 잠언에서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는가! 마음이 황폐해지면, 삶도 황폐해진다.

 

9

작가 소포클레스는 이러한 오이디푸스 왕의 모습에서 그의 내면세계를 드러내주는 대목을 희곡의 코러스의 답송1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오만은 폭군을 낳는다. 부와 권력에 대한 오만이

극에 달해 지혜와 자제력도 힘을 잃는구나.

오만이 정점을 치닫고 나면,

인간은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네.

도망갈 곳도, 의지할 구석도 없도다.’(52-53p)

 

생명의 근원, 생명의 원천인 마음에서 오만의 쓴뿌리가 결국 오이디푸스 왕을 파멸로 치닫게 했다고 말한다. 부와 권력의 정점에 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왕관은 바로 오만이 아닐까!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은 바로 오만이다.

 

 

 

10

구약성경 속에 엘리야(Elijah)라는 한 예언자가 있다. 그는 원수들과의 전쟁에서 850 VS 1 이라는 엄청난 신()과 신()의 싸움에서 확실한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를 쟁취한다. 그러나 그 승리 이후에 그는 엄청난 고독감에 사로잡혀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갈구하였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열왕기상 19:4)’

 

 

그는 그만큼 고독하였고 예전의 승리감은 온데 간데 없다. 오직 혼자라는 그 치가 떨리는 외로움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그에겐 늘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지만, 그는 여전히 외로워했다. 성스러운 선지자란 작자가 자살을 꿈꾸다니. 그것도 화려한 승리 이후에 말이다.

 

왜 그러한가?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인 것이다. 성악설, 성선설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인간은 원래 그렇게 유약하고 연약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고 넘어지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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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대학시절에 비틀즈의 노래인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을 가지고 수업시간에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시를 하나씩 골라 발표하고 토론하는 뭐 그런 시간이었더랬는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앞장에 보면 비틀즈의 이 노래 가사가 나온다. 나는 그때 상실의 시대의 느낌과 비틀즈의 노래의 느낌, 그리고 가사에 대한 개인적인 감성을 덧붙여 해석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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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잠깐 소개하자면, 이 작품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비틀즈의 노래)에서 <>은 두 가지의 의미와 이미지를 제공한다.

 

하나는 첫 번째 노르웨이의 숲에서 발견되는데, 그것은 '울창함'이라는 것이다. 숲속에 들어가 보면 그 숲이 주는 울창함과 거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울창함은 바로 남녀가 만나 사랑하면서 생기는 사랑의 울창함이다.

 

20대의 고등어의 푸른 빛깔같이 빛난 청춘 시절에,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집안 반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내 쪽에서는 그녀를 기다리지만, 잠시 그녀와의 관계가 뜸해진 틈에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 양가 부모님이 인사를 드렸단다. 그녀를 비판만 할수도 없었다. 당시 여성의 결혼적령기에는 다들 그러한 모양새가 보편적이었다. 이런 현실적인 결과를 덮어두고서 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심지에서 살면서도 '''그녀'라는 둘만의 숲속에서 사랑과 동심(童心)과 위로와 친밀감과 기쁨과 환희와 열정을 맛보았다.

이것은 바로 '울창함'의 숲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노르웨이의 숲은 자기정체성(Self-identity)를 찾는 인생의 숲이다.

 

숲에 들어서면 울창함이 있는 반면에 그 속에 혼자 서 있노라면 그 울창함에 압도되어 인간은 '홀로됨'을 절실히 통감한다. 그것은 바로 '고독감(孤獨感)'이라는 것이다. 숲이 주는 그 공기, 기운, 정염, 열기 가운데서 느끼는 외로움, 고독감, 홀로됨... 이러한 것은 내가 '돌아서 버린 그녀'의 마음을 돌이켜보고자 나의 신()께 아뢰기 위해 기도원에 들어갔을 때 느꼈다. 중간고사를 마치고서 곧 바로 기도원에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여자친구의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다 편지를 써 지인을 통해 건네주었다. 그리고 난 거기서 일주일간의 금식기도를 결심하고 들어갔다. 결국 일주일은 못하고 10끼 금식을 하고 죽을 먹었다. 난 거기서 배고픔의 고통을 깊이 체험했다. 그러면서 그 굶주림의 고통과 내게서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날 아프게 한 그녀와의 헤어짐을 생각하면서 나의 하나님에게 울부짖으며 서럽게 울었고 통곡했다. 내가 당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경제활동을 뒤로하고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억지스러운 떼쓰기(?)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참으로 '깊은 슬픔'이었다.

 

그 때 내 가슴에 깊숙이 지나가는 생각은 바로 '그녀의 마음을 다스릴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깐 그녀의 마음을 소유하는 것보다도 내 마음을 먼저 소유하는 것이 더 절실한 것임을 통감했다. 하지만 깨달음이 있다고 해서 마음이 바로 후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별은 언제나 강한 후유증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 주는 두 번째 의미-고독감-이라는 것이다.

 

 

 

13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두 개의 노르웨이의 숲-울창함과 고독함-'줄타기'하면서 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난 이 '노르웨이의 숲'을 보면서 나의 인생이 비록 지금은 고뇌하며 번뇌하며 힘들어하지만, 아직도 미성숙의 단계에 있지만 나의 정체성,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서정윤의 '홀로서기.5'

 

나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시행착오에 대한 질책으로

어두운 지하심연에

영원히 홀로 있게 된대도

그 모두

나로 인함이기에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리

내 사랑하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 유황불에 타더라도

웃으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있는 그 어디에도

내가 견디기엔 너무 벅찬데

나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든 신의 또 다른 뜻은 무엇일까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노르웨이의 숲'의 홀로서기 1)

 

 

 

 

14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을 지나쳐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개인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와 나의 과거사를 이야기했다. 오이디푸스 왕이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듯이 브로치의 끝으로 두 눈을 찔러버린 장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 아프면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너무 힘들면 살아남는 것조차 벅찰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다.

상실의 마음을 추스리고, 욕망의 마음을 내려놓고, 홀로 당당히 서가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와 같은 비극사가 우리에겐 거의 없겠으나, 그래도 이 악물고 살아간다면 제러드 다이아몬드처럼, 추억담을 소재로 글을 적고, 나처럼 그때는 내가 죽을 것만 같았는데, 지금 이렇게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존버'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는 이 '존버'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존zone버burrow라는 말로 해석했다. 영어를 한글로 잘 번역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뜻은 경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졸라게 버티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영어 의미도 얼쑤 들어맞다. 인생에는 '존버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존버!

 

암튼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노출하고 나서 후회하면 어떨까 싶다. 그래도 노출이다! 젠장~

 

 

 

 

15

비극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가?

비극의 출발점은 바로 한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인간의 마음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네 마음을 지켜라.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다.’(Message)

 

 

 

 

-주

1) 10번부터 <노르웨이의 숲>, <홀로서기>의 글은 필자가 20여년 전에 수업시간에 제출하여 발표한 paper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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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15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무스하게 연결되는 비상한 종횡무진.....bb

카알벨루치 2019-07-15 10:11   좋아요 0 | URL
종횡무진은 그대의 것! 난 그냥 게으름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