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은 진시황의 이야기이다.

 

 

 

아버지, 여불위의 kingmaker 욕망-

우리가 진시황제라고 하면, 흔히 불로초’, ‘영생초만리장성등이 기억에 남는다. 춘추전국시대를 진으로 통일한 위대한 군주였다. 하지만, 그의 출신은 왕족이 아니었다. 그가 왕족의 가문에 입적을 하고, 태자가 되고, 후에 진시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친아버지, 탁월한 사업적인 감각을 지닌 여불위 때문이었다. 여불위는 자신의 여인인 조희가 임신을 하자, 왕족의 한 떨거지에게 보내면서 자신의 아들 정(진시황제)을 왕으로 만들기 위한 kingmaker의 역할을 단계적으로 밟아간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여불위에겐 kingmaker의 욕망이 있었다면, 정의 어머니 조희는 색기가 충만한 욕정녀였다. 여불위는 승승장구하여 승상의 자리까지 오른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들 정도 왕의 자리에 오른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욕망의 풍선은 언제나 바람이 빠지기 마련이다.

 

 

 

언제나 인생은 아킬레스 건이 있는 법.

여불위의 예전 여자이자, 왕의 친모인 조희와 그의 정부, 노대와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그 모든 것이 여불위의 자작극임에 진왕 정은 충격을 받는다. 어릴 적에 <한비자>를 읽으면서 군주의 자질을 키웠던 왕은 치욕스런 욕망의 화신인 친어머니 국모를 감옥에 가둬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버지 승상 여불위를 주위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면시킨다. 친아들에게 능멸을 당하는 단계를 밟아가는 여불위는 그 치욕에 못 이겨 독주를 마시고 자살한다. 왕은 여불위가 자신의 친아버지였다는 것을 알았을까!

 

    

    -읽고 싶은 책, <한비자> 책도 묵직한게 아주 뽀대가 난다...

 

 

 

인간에게 아무리 좋은 두뇌와 재주가 있더라도 진실됨이 없으면 다 소용 없나니 여불위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사마천 <사기>

 

 

 

여불위는 킹메이커의 욕망에 충실했다. 자신의 여인도 팔아버린 여불위나, 오직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에 몰두하는 국모 조희 또한 그 욕망의 헛헛함을 보여준다.

 

 

 

아들, 진시황제의 끝없는 욕망

진왕 정은 6(, , , , , , )을 멸망시키면서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13세에 왕위에 올라, 22세에 성인식을 치르고 국권을 장악하여 대륙 통일에 대한 야심을 불태웠던 그였다. 즉위 17, 그때 나이 39세였다. 그는 자신을 쪼가리 땅이나 맡고 관리하는 이 아니라 황제라 칭하기에 이른다.

 

 

 

시황제始皇帝

그 황제는 삼황오제에서 를 합쳐서 만든 것이다. 자신이 최초의 황제이므로, 황제라 칭하게 된다. 황제가 된 그는 문자, 화폐, 도로법, 도랑형을 통일시켰다. 전국에 운하사업을 벌여 상업을 번성케했다. 만리장성도 완성시킨다. 어린 시절 떡잎부터 달랐던 그의 남다른 자질이 그를 최고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분서갱유 사건

하지만, 권력의 독재는 언제나 수많은 후유증을 낳는 법.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분서갱유 사건이다. 권력의 꼭대기에 오르니 이제 진시황제는 인간의 육체의 한계까지도 넘어서고 싶었던 것이다.

 

 

-분서焚書: 진시황의 저지른 가장 끔찍한 악행이다. 진나라, 자신의 통치이념인 법치노선을 비판할 수 있는 모든 학문적, 사상적 근거인 책들을 모두 불태우게 한 사건이다. 이 분서갱유를 주도한 인물은 승상 이사이다. , 아까운 텍스트들이 빛을 보지 못했구나!

 

 

-갱유坑儒: 불로장생의 명약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방사(도사), 사기꾼들이 많은 재물을 취한 뒤 시황제의 부덕을 욕하며 도망친다. 권력에 미친 시황제는 유생 460명을 구덩이에 매장시켜버린다. 유생이 아니라 사기성이 농후한 방사들을 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독재자의 권력은, 그 욕망은 끝이 없다. 분서갱유 사건은 진시황제가 언론과 사상을 탄압한 사건이다. 이런 독재자의 끊임없는 공포정치와 욕망은 백성들과 이전에 다른 나라의 왕족들의 피를 역류하게끔 만들었다. 그리하여 진시황제 암살소동이 3차례 있었다. 형가, 고점리, 장량이 그들이었다. 형가, 고점리는 실패하여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지만, 한나라 귀족 출신 장량만이 살아남는다. 장량은 제나라의 시조 강태공이 써서 남긴 병법 비서인 <태공병법>을 공부하게 된다. <태공병법>의 손무의 <손자병법>보다는 우리에게 덜 알려졌지만,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병법서이다. 주나라의 건국과 한나라의 혁명 성공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후에 유방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유방 휘하의 책사로 활동하면서 소하 한신과 함께 한나라 창업을 돕게 된다.

 

 

 

 

진시황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진시황의 욕망은 사후세계까지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생각해봄직한 대목이다. 그는 만리장성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저택인 아방궁을 건축하고 즉위 초부터 그는 이미 자신의 무덤공사를 준비했다. 죽어서도 황제의 길을 걷겠다는 그의 욕심, 노역에 동원되었던 노동자들은 능묘 완성과 함께 순장시켜버렸다. 또한 능묘완성을 책임지고 관리했던 모든 군사들을 이세황제가 베푼 위로연에서 독주를 마시고 모두 죽임을 당한다. 이 모든 것이 진시황제의 능묘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처사였다니! 그렇게 철저하게 입단속을 시켰기에 능묘의 비밀은 2천년 동안 지켜졌다.

이것은 호모 데우스 진시황제 버전인 셈이다. 결과는 실패이지만.

    

 

 

광기의 독재자, 진시황은 죽으면서 장자인 부소에게 왕위를 계승한다며 유언을 남긴다. 하지만, 진시황이 죽은 곳이 국토를 순례하며 자신의 기념비를 새기는 여행길에서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되는 진시황의 불멸에 대한 욕망이다.

 

운명의 장난

진시황에겐 20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중에 18번째 아들 호해가 이 순례길에 우연히 동행하였던 것이다. 왕자가 동행하면, 스승도 동행하는 법! 왕자의 스승 환관 조고도 따라나섰다. 18번째 아들 호해는 누구인가! 이 친구는 진시황 죽이기(암살)작전의 첫 번째 인물이었던 형가의 암살로부터 진시황을 위기에서 구해낸 호녀에게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욕망의 아우토반을 달리던 진시황, 하지만 사후의 모습은 그의 생각과는 달리 전개되었다.

 

 

 

욕망의 쌍두마차

욕망의 끝없는 집착, 권력에 대한 과도한 탐닉이 낳은 진시황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여불위의 욕망과 진시황의 욕망, ‘정말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는 욕망의 쌍두마차가 천하통일, 그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구약성경 창세기 3장 19절엔 이런 구절이 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욕망'에 대한 이슈, 그에 대해 최근에 읽은 책을 슬쩍 생각해보았다. 구체적인 이야긴 따로 할까 싶은데, 따로 할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다. 오늘도 이웃님들 즐겁게 보내시고, 추석 명절 잘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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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9-21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 명절 잘 쇠시고, 연휴 중간중간 책 이야기 또 해 주십쇼^^

2018-09-21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1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9-21 13:49   좋아요 0 | URL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나 봅니다~ㅎㅎ

서니데이 2018-09-21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황제의 부친이 여불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서 진위를 제대로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진실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처럼 여불위가 시황제에게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카알벨루치님, 추석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8-09-21 18:41   좋아요 1 | URL
고우영 작가도 그런 설을 이야기하더라구요 여기까지 와서 인사도 해주시공 ^^감사합니다 추석 잘 쇠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