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었다.

우리 애들 수영장 가고싶다고 해서 수영장에 1시간 반 정도 넣어놓고(동전도 아닌데, 표현이 좀...), 난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카페에 갔다. 아이스커피를 한잔 주문하고 오랜만에 대학후배를 만나 잠깐 담소를 나눴다. 시간을 보니 애들 받기 전 약 30분정도 남아 심심풀이로 도서관엘 갔다.

 

평소에 보고 싶었던 이승우의 <모르는 사람들>을 빌려서 첫번째 단편을 읽었다. 첫번째 단편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젊을 때 신학대학원까지 가볼까 하는 영적인 열정이 있던 남편이 그 모든 욕구를 억누르고 집안이 빵빵한 사장님의 딸과 결혼을 한다. 장인이 사장이고 남편은 그 회사의 직원이고 승진을 하고 일을 하지만 남편의 마음의 한 구석은 언제나 공허했나보다. 나이 50이 되었을때 남자는 갑자기 사라진다. 아내는 남편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그 추락한 비행기에 남편회사의 26살짜리 여자모델이 타고 있었는데, 남편이 분명 그 여자와 연애행각을 벌였을 것이고, 두 사람이 밀월여행을 떠나다가 비행기추락사고로 죽었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정작 남편은 비행기사고자의 명단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10여년이 지난 후,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다. 땅끝선교회 간사라는 사람이 남편이 죽었다고. 외국의 어느 선교지에서 행복하게 사역하다가 죽었다고. 남편은 자신의 죽음을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알린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을 받아들고 왔고, 아내도 남편의 흔적들을 돌아보며 복잡한 생각들 속에 잠긴다.

 

모르는 사람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가장 모르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 에라스트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Godot)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걸어가지만 '희망없는 희망(hopeless hope)'에 목을 맨 채 평행선을 유지하며 걸어간다. 껴안고 포용하고 얼싸안지 못하는 구도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가장 멀게 느껴지며, 모르는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은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성석제의 <투명인간>은 한 가정사를 다루면서, 아버지, 주인공 김백수, 김만수, 김석수, 명희, 옥희, 금희, 만수부인, 석수와 영주, 그리고 그 사이에 낳은 아들 태석이, 모두가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가장 부각되는 것은 만수이다.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p.11)

 

형 백수는 생활고와 등록금을 벌기위해 월남전에 참전하지만 거기서 고엽제로 말미암아 차가운 시체로 돌아온다. 동생 석수는 데모하다 도망쳐 함께 동거한 영주에게서 태석이란 아들을 가지지만, 석수는 군대 제대후 사라져버린다. 영주는 태석을 형부인 만수에게 애기를 맡기고 사라진다. 태석이 때문에 만수와 만수부인은 애기를 가지는 것을 계속 미룬다. 하지만 태석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만수부인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존재이다.

 

'아이는 투명인간이었다. 제가 그런 끔찍한 존재인 줄도 모르는.'(p.342)

 

하지만, 만수부인이 신장이 나빠 혈액을  투석하며 고달프게 지낼때,

기적적인 발언을 한다.

 

'나 엄마한테, 저기 엄마, 저기에 있는 엄마한테, 나 신장 주고 싶어.

엄마한테, 엄마한테 나를 데려다...'(p.352)

 

태석이가 그래도 만수부인을 '엄마'라고 부르며 투명인간에서 벗어나오려고 한다.

 

세 딸 중 큰 딸은 공순이 갑순이 편지를 보고서 화전마을인 고향을 보기좋게 떠나 가출하고, 둘재 딸은 그렇게 똑똑했던 연탄가스 사고로 인해 정신지체자가 되고, 막내 딸은 놈팽이같은 놈의 아이를 임신해서 꼴아박는 인생을 산다.  외로움과 소외와 지친 가정사, 투명인간, 하루 20시간씩을 일을 하며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등골빠지는 투명인간 만수의 인생이 너무 고달파보였다.

 

 

지금 읽고 있는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에서, 주인공 소유는 외할아버지와 엄마와 같이 산다. 아빠는 엄마가 결혼한지 4년만에 돌아가셨다. 소유는 왜 할아버지와 같이 살아야하는지, 엄마는 왜 늘 자기 옆에 없고 일만 하러 다니는지 이해불가였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고교교환학생 개념으로 자기 집에서 쇼코와 일주일을 같이 지낸다. 쇼코도 할아버지와 고모와 지낸다고 했다. 30년동안 집에서만 지내고, 실내에서 담배를 마음대로 피고, 텔레비전도 늘 할아버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그런 할아버지가 너무나 싫었던 소유. 

그러다가 대학을 들어가면서 독립을 하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소유, 서른이 되었지만 변변찮게 방콕(?)만 하면서 우울하게 살아가는 소유를 할아버지가 느닺없이 찾아온다. 그렇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할아버지,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기다리며 전화를 기다렸던 할아버지, 소유의 엄마는 할아버지를 식사도 안 챙겨드리고 보냈냐고 나무랐다. 할아버지가 다녀간 이후로 소유가 조금씩 변해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소유가 대화하는 장면이다.

 

"할아버지가 서울 자취방으로 오셨던 날 있잖아."

"응."

"그 때 나한테 뭐라고 하셨는 줄 알아?"

"뭐라 하셨어?"

"내가 이러고 사는 게 멋지다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거니까 멋지다고 하셨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영화 일이 마음으로 정리가 되더라."

"정리가 되다니?"

"이제는 끝내려고, 엄마." (p.53)

 

투명인간처럼 여겨졌던 할아버지가 수면위로 드러나 손녀에게 한 말이 손녀의 삶을 변화시킨다. 소유는 영화감독이 아니면, 영화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찌질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변화의 반전을 가져온 소유는 투명인간처럼 여겨졌던 엄마에게도 다가간다.

 

'나는 서울에 살든 고향에 살든 엄마와는 같이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엄마도 이제는 자유로워지라고, 집에는 남자친구든 친구든 불러서 같이 놀고, 누구의 밥걱정도 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있으라고 했다.'

 

"엄마는 누구보다도 혼자 있기를 바랐던 사람이쟎아."

"......고마워."(p.53)

 

할아버지는 손녀 딸을 위해 평생 구지폐부터 시작해 꼬깃꼬깃 푼돈을 모아둔 돈뭉치를 엄마를 통해 소유에게 유산으로 전해준다. 할아버지의 가슴에 새겨진 손녀, 소유, 할아버지의 가슴에서 나온 말과 행동이 소유를 변화시켰다. '모르는 사람들'처럼 지내고 싶고, '투명인간'처럼 지내고 싶었던 가족이 가슴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은 영혼의 자유를 경험한다. 소유는 쇼코에 대해서도 포기하고 싶었고, 모르는 사람처럼 살고 싶었지만, 손을 내밀게 된다. 고령화사회 시대에, 과로노인들은 천대받고 멸시받고 투명인간 취급받는 시대에 가족이라는 뜨거운 피가 내뿜는 애정의 숨결을 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어 신선하고 감사했다. 근데 이게 단편이라 좀 아쉽다. 근데 최은영은 단편이지만 묵직함은 장편 못지 않게 길고 깊고 넓고 두껍다.

 

 

 

 

 

 

 

 

 

 

 

 

 

 

 

 

 

 

애들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보니 기다리던 책들이 도착해있었다(도착하면 바로 읽을 것도 아닌데, 우리는 소통전문가 김창옥의 표현처럼 애들이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것처럼 택배를 기다린다 ㅎ).

 

지난주 두번에 걸쳐 11권의 책을 질렀다.

난 인제 읽은 책들을 디스플레이하는 서재보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한 반서재를 좋아하는 걸로. 안 읽은 책을 쌓아두고 쳐다보는 것도 참 즐겁다. 예전에는 '아직도 이 책을 못 읽었구나!'하면서 갑갑해했지만, 지금은 또 다시 읽을 책들이 널려있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한다. 그래서, 아예 읽은 책들의 책장을 방 안쪽으로 넣어버리고, 거실책장은 반서재로 만들었다. 읽은 책은 더 이상 내게 재미없는 걸로.


최은영의 소설이 너무 좋아 빌려 읽고 나서 바로 주문했다.

<내게 무해한 사람>! 그리고 소설가들이 뽑은 2016년 소설 공동1위 <쇼코의 미소>

 

토마스 만이 25살에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염을 토했던 작품<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1,2>,

 

 

 

 

 

 

 

 

 

 

 

 

 

 

 

 

 

 

 

 

그리고 

<1천권독서법>저자의 추천도서 2권-<밥상머리의 작은 기적>,<이상한 정상가족>. 읽고 좋다고 추천하는데는 이유가 다 있다!

나보다 어린 전안나 작가의 의견을 반영하고 수렴한다(난 개인적으로 <1천권독서법>을 읽고 독서의 양적 성장에 목표를 잡았다).

 

 

 

 

 

 

 

 

 

 

 

 

 

 

 

 

 

 

 

 팀 켈러의 저서 2권-팀켈러는 불같은 지성인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생경한 저서, 그에 대한 다른 작가의 저서.

 

 

 

 

 

 

 

 

 

 

 

 

 

 

 

 

 

 

 

 

그리고, 

존스토트의<그리스도의십자가>, 

집에 꽃혀 있는 건 낡고 바래진 93년도판인데, 너무 오래되서 다시 읽고싶은 마음이...그 책을 읽기보다, 새 책 양장본으로 재독하고싶어 구매했다! 일단 재독하기 시작했다. <어톤먼트>리뷰 올리다가 또 생각치도 못한 책에 꽂혀 버렸다! 양장본이니 죽을때까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이 책을 보고

“당신을 옷을 팔아서라도 당장 사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 또 도착한 책들!

이웃 Cyrus님의 글과 로쟈님의 별5개가 이 내 맘에 훅 들어왔네요!

 

 

막내 안과 다녀오는 길에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읽기'를 들고 다녔다는.

 

 

 

 

 

 

 

 

 

 

 

 

 

 

오늘 초복인데, 삼계탕 한 그릇 뚝딱하시고 이웃님들 모두 화이팅하세요!

어제 탄산수를 한 박스 사서 더울때마다 레몬 모히토 만들어 마시고 있습니다. 

이웃님들 모두 더위조심하세요!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7-17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진짜 많이 사 보시는군요!ㅎ
저도 다른 건 몰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다시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책 초판 나온지가 30년쯤 됐을 것 같은데...
곧 제 생일인데 삥뜯기 한번 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ㅋㅋ

카알벨루치 2018-07-17 14:52   좋아요 0 | URL
지르심이 가한 줄 아뢰오~^^

cyrus 2018-07-17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사고 싶은 희귀도서를 발견하면, 가지고 있는 책을 팔아서라도 그 책을 꼭 삽니다! ㅎㅎㅎ 혹시 <남아있는 나날>을 구입했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언급한 제 글에 땡스투 적립금 버튼을 누르셨나요? 그랬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책 정식 리뷰도 아니고, 내용이 빈약한 강연 후기라서 썩 잘 쓴 게 아니거든요.. ^^;;

카알벨루치 2018-07-17 17:01   좋아요 1 | URL
님 글은 잘 보고 있습니다 웬만하면 전 땡스투 눌렀을걸요~ㅎ

카알벨루치 2018-07-17 17:03   좋아요 0 | URL
근데 전 책은 판 적은 없어요 선물로 주면 모를까~제자들 놀러오면 반서재에서 고르라 하죠 읽고 싶은거

나와같다면 2018-07-17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승우의 <모르는 사람들> 슬프고.. 아득하네요..

˝당신의 옷을 팔아서라도 당장 사라!˝ 고 한 존스토트 <그리스도의 십자자> 읽어보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07-17 22:28   좋아요 0 | URL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