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

제목이 의미심장했다. 그래서 더 읽고 싶었다.

 

#. 영화 <어톤먼트atonement><주홍글씨>가 생각난 작품이다. 인간의 죄, 그 죄로 인한 죄책guilt.

 

 

히가시노 게이고의 '어톤먼트'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는가?

 

1. 죄책감의 출발은 주인공 후미야와 사오리의 학창시절의 연애관계로 시작된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두 사람은 유아살해를 한다. 그로 인해, 애기엄마인 사오리는 방황하며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호스티스로 전전하게 되고, 후미야는 사오리와 달리, 겉으로는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가 된다. 둘만의 이 비밀은 표면으론 드러나지 않은 채 자구책을 구한다. 하지만, 사오리는 도벽증세가 심각하여 취재기자 사요코의 질긴 상담과 탐구로 인해 도벽증세 밑에 깔린 그 과거의 어두운 면을 들추게 된다.

 

한편, 후미야는 자신의 유아살해죄에 대한 속죄의 방법으로 소아과의 수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방식과 자신의 결혼을 속죄의 최선책으로 삼는다. 자신의 아이를 죽인 수해’(나무숲)가 있는 그 곳에서 우연히 자살하고자 하는 임산부, 하나에를 만난다. 사기꾼을 만나 재산을 털리고, 아이까지 임신한 하나에와 후미야는 결국 결혼한다(애기 아빠 사기꾼을 자살한다).

 

2. 사요코와 나카하리와 부부다. 하지만 이들은 10년전 8살의 딸이 살해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결국 둘은 이혼한다. 사오리는 딸의 허무한 죽음 앞에 사형제도의 정당성, 죄에 대한 적절한 형벌의 도구로 사형을 주장하며 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자신의 존재의 무게를 덜고자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도 살해당한다. 마치무라 사쿠조란 노인에게 돈을 목적으로 한 단순살인강도 사건에 의해. 

나카하리는 이혼한 전부인의 죽음에 대해서 무감각해졌지만, 전 부인의 죽음의 이유를 밝혀주고, 살해범의 사형언도를 강력히 주장하는 전 장인, 장모의 부탁에 의해 우연히 사요코가 쓴 글을 보게 된다. 그 사오리는 최근 도벽에 대한 취재대상자 4명 중 1명인 사오리에게서 심증을 찾게 된다.

 

공허한 십자가...사람을 죽였다.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심판의 최고형벌. 사형,

하지만 사요코와 나카하리의 딸을 죽인 히루카의 사형집행을 보면서 그의 변호사 야마베는 이런 말을 남긴다.

 

 ‘사형은 무력하다!’

 

살인자, 가해자가 받는 형벌이 가해자 자신이 피해자를 위해 진정성있는 속죄가 되지 못하기에, 그의 죽음의 십자가는 공허하다는 말.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가해자가 죽는다고 해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다시 반환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상흔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형은 무력하다?

십자가는 공허하다?

 

사랑하는 사람, (미나미)의 죽음 앞에 사요코와 나카하리, 그의 가족들의 찢어진 가슴, 인생!

사랑하는 딸, 사요코의 죽음 앞에 그의 부모의 찢어지는 가슴, 딸과 손녀를 잃은 심정,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사형이 속죄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십자가는 고대 야만들인이 고안했던 사형틀이고, 그것은 후에 로마인들이 가장 극혐의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고통스러운 사형집행방법이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십자가로 죽어간들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지 않는다

사형은 무력하다? 는 말을 남긴 야마베는 나카하리의 딸, 미나미를 죽인 히루카와의 사형이 다가오면서 나눈 심경을 듣고 이 말을 남긴 것이다. 자기가 죽인 범죄행위의 처절함을 회개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죽을 운명에 대해 완전한 포기상태로 들어가 속죄나 사죄나 회개나 뉘우침, 반성의 태도는 눈 씻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3. 후미야와 사오리의 10대 유아살해로 인한 두 사람의 인생비극.

후미야의 비정상적인 결혼과 진로선택, 소아과 의사로서의 봉사가 속죄의 한 방식이었다. 정말 슬픈 것은 그의 결혼 배우자의 선택에서이다. 진정성이 아닌 속죄의 방편으로의 결혼과 인생이었다. 아빠를 하나도 닮지 않은 남의 아들을 키우면서 후미야는 속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에는 오히려 자신은 후미야가 아니었다면, 자신과 자신의 애기는 벌써 죽었을 것이라며 후미야를 자수하라고 보채는 사요코에게 반박한다. 인간사에 있어 죄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guilt는 사람의 운명에 저주의 덫을 놓지만, 하나에는 오히려 후미야의 속죄의 혜택을 보게 된다.

 

우리가 저지른 수많은 죄는 우리가 이미 당겨버린 방아쇠이고, 시위이다. 우리가 선택했던 그 죄악으로 인해 상처와 죽음과 고통의 총알과 화살이 이미 다른 인생에게 날아가버렸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십자가의 형벌? 죄는 죄값, 대가cost를 지불해야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 죄에 대한 진정한 자기회개와 반성이 없는 십자가는 공허한 것이 될 수 있다. 아직도 우리의 죄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의 가슴이 있기에.

 

결국 죄는 십자가의 문제가 아니다. 죄는 형벌에 대한 사안이 아니다.

죄는 사람과 사람, 생명과 생명에 대한 사안이다.

죄를 지은 가해자도 사람, 피해자도 사람이다.

가해자가 사람으로써 피해자에게 진정한 속죄의 마음을 보여준다면, 이미 지나간 상처와 슬픔은 뒤로하고서라도 위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4. 후미야는 유아살해범이지만, 그의 guilt의 속죄대상으로 임산부 하나에를 의무적으로 책임진다. 미혼모처지가 된 여인과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한 것이다. 이런 구도는 정말 후미야의 죄책감을 경감시키기 위한 작위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하나에와 아들이 살았다. 나는 후미야가 잘했다고 생각지 않지만, 그것은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후미야는 사오리를 떠난다. 그리고 동질성이 있는 임산부 하나에게 간다.

후미야의 마음이 어떻든 몸은 거기에 있다.

 

하지만, 사오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자보다 더 큰 모성애를 가진 엄마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살해했다는 그 충격이 그의 인생을 황무지로 만들었다. 사오리의 인생이 절망적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여인이다.

후미야는 사오리를 위해 속죄해야 하지 않는가?

이것도 인간과 인간의 문제이다.

후미야와 사오리는 자신의 유아살해의 guilt를 죄로 폭로하면서, 살인 사건이 단순강도가 아닌 정황참작이 되는 이유있는 살인이란 구도로 밝혀진다. 후미야와 사오리는 과연 자신의 guilt에서 자유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에서 '속죄'에 대하여 우리에게 질문하는 듯 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속죄할 수 있는가?"

 

5.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대단한 필력을 자랑할만한 글쟁이다.

가독성과 흡인력이 얼마나 뛰어난지...흥미롭고 재미있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거기에 구원은 없다.

하지만,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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