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바뀌는 시간관리의 비밀 - 뇌를 완전히 바꿔서 시간을 장악하라
리치 노튼 지음, 신용우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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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은 역시 뇌과학이죠!!! 뇌를 바꾸기 위해 읽...었는데 뇌과학이 아니었네? 제목은 뇌과학 같았는 데... 읽다가 당황 암튼 뇌과학 정보 없고요 전형적인 자기 계발서입니다. 뭐 내용도 전형적...
요약 : 시간관리를 하지말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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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11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난 관리하는디. 난 타이머 재면서 집안일 하루 두 시간 이상 안 함요. 하기가 싫어요. 아휴 내 나이 돼봐요. 그냥 만사가 다 기챠나.

공쟝쟝 2023-10-11 20:58   좋아요 0 | URL
아 집안일 타이머 도입 시급합니다!!!! 집안 일은 이상한 마력이 있어서 하다보면 계속해서 영원히 하게 됩니다. ㅋㅋㅋㅋ
어찌저치 프리랜서 2년차... 저는 제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며... 곧 체력을 관리하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긴장 좀 하려고 읽어 봤는 데, 진정으로 시간을 장악한 이들은 시간 관리라는 개념이 없다며.... ㅋㅋㅋ 눼눼... 부럽당!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종속적 자영업자에서 플랫폼 일자리까지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전혜원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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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플랫폼 노동, 기술과 일자리(타다), 공정담론의 이면, 주휴 수당, 국민연금까지… 진보/보수 이항대립사이에 묻혀서는 안되는 질문들과 시기적으로 급박한 노동/평등의 의제를 성실하게 다루고 있다. 애석하게도 한국에서 노동법의 “혜택은 상류에 머무르며 위험은 흘러서 하청에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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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문 뱀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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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가능성을 스스로 박탈하는 데 여성이라는 나의 몸과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골수까지 기여했는지, 이미 있는 언어를 규범으로 체화한 존재들은 모른다. “들을 수 없는 것도 지의 일부다” 말 아닌 것이 말이 될 때까지 뼛속까지 긁어파서 써주겠다. 안들릴테지만 청자는 그자들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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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1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1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IWFF] 잉게보르크 바흐만 : 사막으로의 여행/ 질투는 나의 힘/ 슈퍼 에이트 시절

왜 때문에 오늘이 연휴의 마지막 날인 것인가. 보다 놀라운 것은 뭐 했다고 벌써 시월인가. 징글징글한 가족들과 딱 붙어 지내다가 (중간에 두 번 다퉜음) 서울에 올라오니 아, 이제 진짜 가을인가. 안되겠다. 뭐라도 써야겠다. 뭐라도 쓰자.

“(40) 삼십 대 후반, 굉장히 가슴 아프고 특별하게 쓸쓸한 사연을 겪은 이후 나는 자웅동체 아메바처럼 혼자 씩씩하게 살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 <잘 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새벽 기차를 함께 타야 했기에 추석 연휴 시작에는 동생네 집 책장에 꽂힌 이경미의 에세이 <잘 돼가, 무엇이든?>을 꺼내 다시 읽었다. 삼십 대 초반, 나도 자웅동체 아메바가 되었다. 내 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셀프로 통합하기까지 (융이냐ㅋㅋ) “근거 없는 피해의식”“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며. “(41) 엄마한텐 아빠가 있고, 동생(들)한텐 제부(남친)가 있고… 그래, 나한텐 영화(책)가 있어. 근데 걔는 내 손도 못 잡아주고 백허그도 한번 해주지 못하는 주제에 심지어 나를 딱 반만 죽여놔서 내가 지금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지냈다. 


감독님은 맘이 힘들 때마다 영화 <파고>의 마지를 떠올렸다는 데, 나는 그의 영화 <비밀은 없다>의 ‘연홍’을 떠올렸다. 스스로를 손예진(죄송합니다)에 빙의시키며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내 몫의 인생조차 감당이 안 돼서 정신줄을 놓고 싶어질 때마다 눈에 핏발 세워가며. 

“(22) 사랑을 잃었다고 무너지면, 나는 끝난다. 나한테는 나밖에 없다. 매일 매시간 매초, 나를 때리며 악으로 버텨왔는데, 창피한 줄 모르고 아무 때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렇게 매번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은 편해졌다. 숨 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냥 내가 마흔을 목전에 둔 서른아홉 가을에 그랬었다는 이야기.”

(아직 마흔은 좀 멀었지만.... 윤석열 나이 땡큐!)


  

감독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읽으면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계속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영화 캐릭터들도 그래…😭 (영화 속 인물 비호감 상위권에 여전히 랭크되는 미숙이 연홍이…) 후… 스스로를 죽을 때까지 데리고 살아야 하는 나에게는 고달파도, 한 발 떨어져 감상하기에는 좀 많이 웃기고 뭔가 귀여운 매력도 있다고… (가까스로 가여워에서 귀여워로 무의식의 오타를 수정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이경미와 그녀의 인물들처럼 비호감인데 귀엽다!!!!!!



 19년에도 23년에도 동생 집에서 읽으면서 위로받는 부분은. 이경미의 사주팔자다. 

“(100) ‘갈대밭을 베며 걸어가는 팔자’라고 아저씨가 그랬다. …미래는 계속 안 보였다…

 ‘잘돼가? 무엇이든?’하고 누가 질문한다면 나는 갈대 무성한 망망 무제한 벌판에서 낫을 들고 서서 외치겠다. 

‘어떻게 이렇게 평.생.을. 살아요, 아저씨이???!!!’”


막막해서 5년 전에 본 내 사주도 비슷했다. 1인자 (1인자가 되는게 아니라 그냥 혼자 다 알아서 해야 되는 사주라고) 사주니까 혼자 일하고, 결혼도 지금이야 고민하지만 결국 안 하는 게 편하단 걸 곧 깨닫게 될 거라며… 마치 사주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그렇게 지내고 있네. 나는. 웅웅. 준비는 진작에 끝났고 이대로 쭉 완벽한 아메바 자웅동체 굳히기에 들어간다 🦹🏻‍♀️ 크하하


성인이 된 이후부터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갈대 밭)에 마주할 때면 마음이 황망하고 많이 억울했다. 의지하고 의존하고 싶어도 잘 안되더라. 그래서 더 억울했다. 낫으로 아무리 베도 길은 나오지 않아 쉬발 엿 같다고 생각하면서 술 퍼마시고 엉엉 자주 울었다. 맨날 술만 퍼마실 수는 없어서 도피처럼 읽기 시작한 책들이 집을 어지럽히기 시작하고 내 인생은 갈대밭이 아니라 책 지뢰밭이 되었다. 



<사진은 반항에 대한 욕망이 너무 기고 만장해서 9월에한 뒤메질… 꽂을 데도 없다>


“(15) 우리를 주체로 형성하는 미시적 권력, 즉 규율 권력의 메커니즘이 사회의 도처에서 그물망처럼 전개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주체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권력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저항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권력이 주체를 생산한다는 이 테제에 대한 거부반응 때문에*, 예를 들어 위르겐 하버마스의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 뤽 페리와 알랭 르노의 <68사상>(1985)처럼 의사소통적 주체나 근대적 주체로의 회귀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나는 권력에 의해 생산된 주체가 권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전략이 (포스트) 구조주의 이론에 내재적인 방법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면, 하버마스나 페리·르노처럼 ‘주체로의 회귀’가 향후에도 반복될 것이며, 또한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의 혁명적인 성과 자체가 억압되고 은폐되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 책의 직접적인 집필 동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디까지나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내재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는 ‘저항’의 이론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근대적 주체로의 회귀’에 의한 저항이라는 손쉬운 방향을 취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미리 이런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근대적인 능산적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정신분석이 찾아낸 ‘무의식의 주체’를 참조*하게 된다. 이 책이 철학과 정신분석의 대화, 나아가 철학에 의한 정신분석의 극복이라는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 <권력과 저항> 사토 요시유키


놀라지 마시라. 나의 독서는 아마도 제대로 가고 있다. 하버마스 등이 퇴행으로 읽히는 지점이 흥미롭다. (잘 모르지만 동의가 된다. 나를 포함, 인간은 고상해 보이고 싶어하지 고상하지 않다.) 

포스트 구조주의의 미시적(규율) 권력이 저항의 가능성마저도 포박해버리는 것 같다는 느낌에 대해 (알겠는 데 그래서 어쩌라고? 하게 되어버리는 딱 거기에서) ‘무의식의 주체(라캉)’에서 답을 찾아보마 하는 일본 지성계의 맥을 좀 짚어낸 것 같다. 낫 들고 갈대 패듯 혼자 씩씩대며 읽어오던 나로서는 책이 책을 일러주는 가이드가 신선하고 고맙다. 


이 책은 “(14)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라는 네 사람을 관통하는 권력 이론에 대해 고찰” 하고, “내재적인 방법으로 권력에 대한 ‘저항’의 문제”를 전개한다. 


그래 저항이다. 그러니까 저항. 내 안의 반골 기질이 웃고 있다. 즉슨, 내가 대타자에 반항하는 방식은 이런 읽기라고 할 수 있지😏 어렵긴 드럽게 어렵다. 그런데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저항의 방식을 (그저 읽어서 알 수 있는 거라면) 알고 싶다. 간절히. 



서론까지 정독한 결과 <권력과 저항>은 그래도 (포스트) 구조주의와 정신분석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도전할 수 있을 법하고, 최신간인 <라캉과 철학자>들의 난이도는 그보다는 조금 아래 그리고 입문서들보다는 조금 위에 위치한 것 같다. (우치다 타츠루 ➡️  지바 마사야 정도 읽고 넘어오면 딱 좋을 듯)


“(10) 라캉은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의 무의식, 즉 개인이 가진 욕망의 방향을 잡고 결정하면서도 본인조차 알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을 역설적이게도 하나의 ‘앎’으로 정의했다. 그것은 완전히 알 수 없다기보다는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앎’, 그럼에도 항상 활동하고 있는 ‘앎’이다. 무의식이란 어떠한 지배자라도 통제할 수 없는 ‘앎’, 단적으로 말하자면 지배자 없는 ‘앎’이다. 라캉이 생각하기에 철학은 이러한 종류의 삶에 대해 충분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래서 철학의 언어에는 앎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는 지배자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삶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철학은, 예를 들면 그것이 ‘절대자’는 ‘자아’든 간에 모든 앎을 축적해서 이윽고 보편적인 앎을 손에 넣는 자를 집요하게 탐구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탐구의 이면에는 오히려 *지배자에 대한 사랑*이 보인다. 생각해 보면, 철학적 사변 속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추상적 개념들이 우상숭배 혹은 페티시즘적 대상과 같은 대용품으로 바뀌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캉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개념을 정점으로 한 앎의 제국이야말로 철학의 “영원한 꿈”이다. ‘반철학’이란 곧 정신분석과 철학에서 *앎이 존재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반면 라캉 학파는 물론이고 뱅센느에 모인 반체제적 지식인, 예를 들어 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의 작업에 눈을 돌려 보면 그들이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철학의 “영원한 꿈”을 해체하기 위한 투쟁에 몸을 던졌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동업자를 거리낌 없이 신랄하게 비꼬던 라캉도 그들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애초에 푸코든 들뢰즈든 이 시대에 창조적인 작업을 했던 철학자들은 예외 없이 프로이트의 우수한 독자였으며, 그러한 점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라캉과 공유하는 것이 있었다. 즉, 1960년대 이후의 프랑스 철학이란 무엇보다도 프로이트 이후의 철학, 혹은 정신분석과 함께하는 철학이었다.” - <라캉과 철학자들> 구도 겐타


일본 인문학자들은 196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생겨났으며 2000년이 오기 전에 정리(?) 된 일련의 지성의 흐름들을 *현대사상*이라고 명명하기로 정한 듯하다.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된 이 프랑스인들의 지적 논쟁 대상은 그 자신들이었으므로 (갑자기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겁나 착하게 느껴진다) 내가 읽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며ㅋㅋㅋ 푸코의 경우 대놓고 <말과 사물>의 독자가 2000명 안팎일 거라 상정하고 썼다고 했다. (알려줘서 고맙다. 걔만큼은 안 읽으려고 했는데, 호승심 돋구로.)


앎에 대한 사랑(philosophy)으로서의 철학은 곧 ‘지배에 대한 사랑’이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전통적인 지식 생산을 서양-백인-브루주아-남성-지식인 계급이라는 위치성으로만 이해했는 데, *현대사상*에 속하는 이들이 그러한 철학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신분석가였던 라캉은 ‘앎’이 닿을 수 없는(기실 그건 앎의 모양일텐데) 영역에 ‘무의식’(아마도 니체는 광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걔를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 천착한 듯하다. 


인식할 수 없는 것. 언어화할 수 없는 것. 스스로 알기 싫어 억압한 것. 

사실은 99.99999999999999999999999999%


아무리 알고자 해도 알 수 없는 부분이 남으며, 알게 된 것들이 그 자신을 억압한다는 앎의 역설. 그 태도의 체화. 나는 여기서 다시 철학(혹은 인문학)을 시작해야 하는 거구나 하게 된다. 


*현대사상* 혹은 라캉의 ‘[무의식적인] 주체’는 아마도 철학이 ‘타자화’한 대상일 테다. 하여 인문학의 남은 몫은 타자들의 철학이며, <제2의 성> 타자로서의 여성(페미니즘, 물론 페미니즘은 신자유주의와도 만난다. 그런데 포스트 구조주의도 읽기에 따라서는 신자유주의랑 친하다), 그리고 포스트 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은 조우한다.



탈식민주의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는 아시스 난디(혹은 프란츠 파농) 역시 심리학(정신분석)자다. 식민주의의 심리적 유인들을 추적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이 책이 파고드는 피식민자의 무의식도 매섭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피식민자(타자, 여성, 장애, 퀴어, 자연…)의 위치에서 다시 사유를 전개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27) 식민주의자의 이런 전락을 이해하지 못할 때 세속적이거나 비세속적인 종류를 망라한 모든 해방 이론은 *간접적으로 억압자들의 우월성을 인정함*으로써 그들과 협력하게 될 뿐이다. 

이런 나의 입장에 대한 핵심적인 논증은 간단하다. 근대적인 노예주와 비근대적인 노예 중에서 후자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고통받는 쪽의 우월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에만 있지는 않다. 또한 노예가 억압받고 있어서도, 심지어 그가 노동을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맑스는 노예가 노동으로 말미암아 노예주보다 덜 소외된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노예를 선택해야 하는 당위는 *노예는 아마도 한 인간으로서의 노예주를 배제하지 않는 더 높은 차원의 인식을 대변*하는 반면, 노예주의 인식은 하나의 ‘사물’로서가 아닐 때 노예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궁극에 있어 근대적인 억압은 전통적인 억압과는 달리 그저 자아와 적, 지배자와 피지배자, 혹은 신과 악마 간의 만남이 아니었다. 그것은 탈인간화된 자아와 대상화된 적, 기술혁신을 따르는 관료와 그의 물화된 희생자, 그리고 *유사 통치자와 그의 ‘신민’에게 투사된 그 자신의 공포스러운 다른 자아들 간의 투쟁*이었다. … 그런 이유로 이 책은 오로지 희생자에 대해서만 말한다. 간혹 승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 승자는 궁극적으로는 승자로 위장한 희생자, 그것도 심리적 부패가 더 진전된 단계의 희생자임이 드러날 것이다.” - <친밀한 적> 아시스 난디


근대 이후의 식민자-피식민자/정상인-환자/피해자-가해자/남자-여자는 그 정도의 차이 혹은 순서의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 이는 삶의 조건이다. 피식민자의 위치에서 사유를 한다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것(무의식)을 보는 것이다.  그 긴장을 유지하기 싫으면 공부를 안 하면 된다. 공부 안 하고 사는 사람 널렸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식민화된 개념이 공부일진대. 시켜서 할 공부는 안 하는 것도 저항이라고 난 생각함. 


어려운 책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제 쉬운 책 이야기를 해볼까 했는데 벌써 5천 자를 다 썼네. 그래도 쓰자.



맨 아래 두꺼운 책 <존재론적, 우편적>은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의 데리다 논문이라고 한다.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라 일본의 현실에서 ‘현대사상’을 조명한 거의 최초의 책이기에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나 보다. 지바 마사야도 사토 요시유키도 이 책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하니 어떤 건가 하고 사봤다. 읽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 


인도에서 수입(?)된 탈식민주의 책과 1세계를 풍부히 소화하는 일본 책 사이에서 한국말(전라도까지 2개국어 가능) 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좀 어리둥절하다. 일단은 번역이 더더더 많이 되고 책을 많은 사람들이 더더더더 많이......사..... 기 위해 역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타인을 안다는 착각>은 “나, 사람, 세상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불안한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바로 나 아닌가? 하면서 사서 읽었다.

라캉의 말대로 알고자 한다는 것은 지배하기 위함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정희진을 통해 ‘앎비앎’도 배웠다. 페미니즘 이후로 뚫려(?) 버린 지식에 대한 폭식은 나 자신의 ‘(이토록) 희미한 자아감’이라는 캐릭터에서 촉발된 질문 묶음들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얽히고 엉켜서 살아온 전근대형 봉건녀(?)에게 안정적이고 선명한 근대적 자아 정체성이란 저절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었다. 심리학 책 한참 많이 볼 때는 스스로 ‘경계선 성격장애’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요즘엔 HSP로 정착. 여하튼 나는 타인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그런 내가 싫어서 책을 왕창 많이 읽어도 여전히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근대는 나를 근대화에 실패했음.😪


“(101) 불교에서는 ‘마음이란 순간마다 변화하는 운동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즉 ‘마음’은 고정적인 실체가 없고 따라서 매 순간마다 변화한다고 말하지요. 이는 단순한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상담을 하면서 접하는 환자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설득력 있는 말임을 실감합니다. 행복해하던 사람이 갑자기 침울해지거나 하거든요. 그래서 불교는 서양 심리학과 비교할 만한 ‘동양 심리학’의 내용을 갖추고 있고 역시 전위적이고 놀라운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 <타인을 안다는 착각> 요로 다케시


책은 불교적인 통찰을 제안하는 데, 그래도 일본은 동양이라서 느끼기에 역함(서백남이 생산성 어쩌고 하면서 불교·명상 떠는 거 싫어함)이 좀 낫다 싶더라. 


“인간은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으나 우리는 빈 곳을 채우고저 할 때에만 동력(에너지)이 생기므로 그걸 인식한 상태에서 기왕이면 타자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그걸 일상의 동력삼아 적당히 추구하면서 살라”는 것이 거칠게 정리한 라캉의 가르침이라면 불교는 “헛되도다 인간의 욕망이여. 욕망은 번뇌의 시작이라. 자아란 공空! 자아가 없으면 욕망도 없는 것이여”라고 말(아, 넘나 심오하고 급진적임🤔)하는 듯. 


내가 이놈의 자아를 추구하기 위해서 쓴 돈(?)과 기력과 시력이 얼마인데. 앞으로 궁극의 가르침 끝에는 불교가 있다고 생각하겠다만 당분간은 라캉적으로 살란다. 기질에 따른 욕망을 억압하지 않겠숴여. 나의 욕망은 어려운 철학 책 한국어로 번역된 것 만 읽기! 현시점의 나에게 붓다보다 더한 가르침을 주신 성인 ‘마리 루티’님께 조신히 감사를 표하며. 



“(9)이 책은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에 깊이 의존한 주인 서사(master narrative)를 지탱하는 지극히 파괴적인 가정들이 함축된 *유럽계 미국인 페미니스트 인본주의가 와해되는 과정*을 검토한다. 그다음에는 섬뜩하고 위반적인 기호를 채택하여, ‘사이보그’페미니즘의 가능성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 페미니즘은 강력한 연결을 계속 추구하면서도 특수한 역사적·정치적 입장과 *영원한 부분성*에 보다 열려 있을 것이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도나 해러웨이


결국 *현대사상*을 부수고 내가 가야 할 (머나먼) 길…은 포스트 휴머니스트 사이보그 페미니스트 문이과 통합체 다학제적 연구자 도나 해러웨이의 길… 펀딩 해서 받았습니다. 책 정말 예쁨. 


그런데 아 희진 샘 증말 너무하네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가 왜 하필. 해러웨이입니까!!!!!!!!!!!!!!!!!!!!!

이제는 구구단도 헷갈리는 본 투 비 수포자가 팔자에도 없는 이과남들이 쓴 책을 사게 된단 말입니다. 내 안에 돋아나는 양자역학에 대한 지적 욕망 해결하라!!! (웅성웅성🗣️👥👤🗣️👥)



 이 책 <세계 그 자체>는 <하나의 유령이 온 과학을 떠돌고 있다 플라톤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자극적인 책 소개 때문에 일단 덮어놓고 샀다. 아무튼 살 때의 마음은 “철학(인문학) 없는 과학은 없다!!!!”는 문과적 호승심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는데, 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 이 책을 샀다는 것조차 까먹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호기가 아니라 객기였던 것으로. 


 














장강명 신간 에세이 읽고 그의 지독한 한국 문학 사랑에 영업당해 <재수사>와 요즘 눈여겨보는 젊은 소설가 단요의 신간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도 기꺼이 사들였다. 사람을 움직이는, 안산 걸 사게 하는 힘, 이란 사랑의 힘!! 


이번에 잠자냥의 퀴즈를 풀(지 못하)면서 느낀 점은 나는 역시 문학(특히 고전이나 문단)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쏘공><무진기행><새의 선물><모순>안 읽었고요. <가시고기>는 읽었다ㅋㅋㅋㅋ 인생 최애 소설은 <드래곤 라자>랑 <해리포터>에서 아직도 업데이트 안 되었고. 소년 성장소설(;;) 취향 못 버려서  아직도 소설 읽을 바엔 넷플릭스 보는 게 더 재밌고요. 이런 나의 한국 문학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이 제도권의 문학 교육 때문은 아닐까 하여 근 20년 전 언어영역 지문 읽다가 유일하게 맘에 들었던 소설 오상원의 <유예>가 눈에 보이길래 중고 서점에서 겟. (나… 문학…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외 니체, 마르크스, 젠더, 나를 잃어버린,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은 중고 구매!



삼십세는 커녕 사십 대로 달려가는 이 시점에서 <잉게보르크 바흐만> 전기 영화를 보고 난 뒤, 작가의 글이 궁금해서 샀다.  영화 속에서 지독한 사랑을 겪고 난 후 만신창이가 된 여성 시인의 독백을 듣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또 잘못 생각했네.


헤어지는 것이 어려워서, 사랑이 변하는 것이 싫어서, 내 인생에서 사랑은 없어도 돼!라고 마음먹었다. 이경미 감독 말마따나 사랑이 끝났다고 무너지면 나는 끝난다.며. 


영화를 보고 나니 바흐만이 가닿게 된 진실이 궁금해졌다. 사랑이 아니라 이별이 진짜 앎이라는 걸 느꼈다. 사랑이 아니라 잘 배운 이별이 필요해졌다. 우리는 만나고 변하고 헤어지는 데, *변한 나*는 헤어져야만 인식할 수 있다. 변화의 농도와 질량이 사랑이 일으킨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내게 남아 있으므로 완전한 이별은 없는 거네. 내 안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는 내가 선택한다. 


관계의 단절과 상실이 주는 분리의 고통이 아니라 이별에 딸려오는 반추, 그러니까 내 인식과 해석이 지나치게 아플 때도 있었다. 그건 독후감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매번의 독서로 연습했던 거 아닐까. 이별. 그러고 보면 쓰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것도 같다. 


어떤 관계는 무 자르듯 싹둑 잘라낼 수가 없어. 그래서 아주아주 느리게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듯 유지하지만. 그것 역시 길게 보면 헤어지는 과정이라서. 환멸과 슬픔과 미움과 불행.


20대의 나와 30대의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쓴다’는 것이다.


9월. 지난한 기록들을 정리하다가 알게 되었다. 어떤 이별이 들이닥친대도, 나는 결국엔 나를 돌보게 될 거란 걸. 현명한 이웃님의 말대로 궁극의 사랑은 자기애다. 나는 그걸 몰라서 이별이 무서웠다. 책을 읽고 글을 쓴 후부터는 매번의 헤어짐 이후에 엄청나게 똑똑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상실의 두려움을 제거하니 사랑할 일이 남았다. 


그렇다면 더 알고 싶다. 더 사랑하고 싶다. 더 잘 헤어지고 싶다.  


나는 자웅동체 아메바이고, 갈대 밭을 혼자 낫 들고 베어 가는 막막한 운명이 택한 인간이지만. 이런 나의 운명을 사랑하며 덕분에 쿨한 이별, 애닳는 이별, 지겨운 이별, 인정할 수 없는 이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서 일기를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건 꽤 비용도 안 들고 재밌어서. 사는 동안 계속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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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03 1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 저 홍당무 쟤 좋아하는데…? ㅋㅋㅋㅋ
오상원의 <유예> ㅋㅋㅋㅋ 딱 쟝다운 선택이군요. 그새 책장이 더 뒤메질이 되었군?!

그러나저러나 나에겐 아직 6일의 연휴가 남았다!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0-03 19:16   좋아요 1 | URL
잠즈ㅏ냥!! 정말요? 미숙이 좀 나같은데… 그의 창조자 이경미에세이는 공감성 수치감이 너무 올라와서 읽으면서 현타와요ㅋㅋㅋㅋㅋ
유예… 의식의 흐름..ㅋㅋㅋ 책장.. 저 이사 어떡하죠? 망해따 ㅠㅠ
우와와~ 6일의 연휴????? 진짜 끝내준다!!!!! 잼난거 또 올려주세요!!!😎

잠자냥 2023-10-03 19:25   좋아요 2 | URL
홍당무는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암튼 난 볼빨간 그 애가 좋아요. ㅋㅋㅋ

공쟝쟝 2023-10-03 22:52   좋아요 1 | URL
잠쟈냥은 쟝쟝이를 조아한다 (오독)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님 부럽지 메롱😝

독서괭 2023-10-04 08:25   좋아요 1 | URL
뭣?? 아직 6일이라고요? 우왕.. 혹시 부산영화제 가시나요? 목요일에 노벨문학상 발표던데.. 역시 문학분야 아닌거 맞쥬??

잠자냥 2023-10-04 09:02   좋아요 1 | URL
부산영화제처럼 사람 몰리는 데 제가 갈 거 같습니까?
문학 많이 나온다니까 ㅋㅋㅋㅋ 그리고 제가 1인출판사입니까 ㅋㅋㅋㅋ

독서괭 2023-10-04 09:09   좋아요 1 | URL
아니 담당분야…. 없어유?

독서괭 2023-10-04 09:11   좋아요 1 | URL
(잠사모로서 공부가 많이 부족하군)
쟝쟝님 글에다 딴소리 해서 미안합니당 ㅎㅎ 대충 읽을 내용도 길이도 아니어서 이따 피씨로 정독 예정.

잠자냥 2023-10-04 11:22   좋아요 1 | URL
제 담당분야는…….


수학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0-04 17:50   좋아요 1 | URL
뻥!!!!

미미 2023-10-03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창시절에 <유예>읽다가 너무 좋아서 읽고 또 읽고 했었어요! ㅋㅋㅋㅋ 그래서 저 책도 사둠ㅋㅋㅋ

공쟝쟝 2023-10-03 22:42   좋아요 1 | URL
역시 의식의 흐름에는 무언가 거뷰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이 있다!!! 제 문학교과서에는 최초 한국 판타지의 장르를 개척한 <드래곤 라자>가 실렸다는 것을 밝힙니다! ㅋㅋㅋㅋㅋ!!! 판타지를 교과서로 배웠어요~

단발머리 2023-10-04 08: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8월, 9월이 쟝님에게는 넉 달이었나. (9월에 이걸 다 읽은 건 아니겠죠?) 왜케 많이 읽었어요, 좋겠다ㅋㅋㅋㅋㅋ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니체, 실험적 사유와 극단의 사상> 담아갑니다. 읽겠다는 건 아니고, 일단 담아둡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그러니까 왜 산 거에요? 나는 선물 받았단 말이죠, 20년 전에.... 왜 산 거에요, 쟝님은?

공쟝쟝 2023-10-03 22:53   좋아요 2 | URL
요양을 좀 했습니다ㅋㅋㅋㅋ 많이 읽었는데 정리를 하나도 못했어요 (시무룩) 써야지 공부되던 데ㅋㅋㅋ 쓰면 요샌 기력이 사라져서… (작년에 제가 미쳤던 걸까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전이라고 하더군요… ㅋㅋㅋㅋ 아마도 벨 훅스 선생님이 일러주신… 아직은 가야할 길로만 남겨두는 것으로…(자웅동체는 지금도 충분합니다)
 

에세이를 좋아한다. 내 독서 주 종목은 에세이다. 그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과 맺는 관계를 주로 본다. 그런 시선을 배우기 위해 읽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건 태도이고 관계다. 에세이(라고 쓰지만 나는 일기를 쓰고 일기가 주는 장점을 스스로 안다)를 쓰는 나는 나를 대상화한다. 글씨(언어)가 된 것 끄집어 내진 것은 내 무엇(그 나 역시 관계의 구성물)이지만 이제 내가 아니게 된다. 쓴 나와 쓴 것을 읽는 나 사이에서 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어떤 글은 기도와 닮았다. 믿음을 잃어버린 채로, 기도마저 없는 사람에게는 내밀한 일기가 필요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곧 삶이라는 무의식적 믿음이 강했던 나는 일기를 쓰며 나와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것들이 퇴적되어 실체처럼 느껴지는 내면을 알아차린 후, 역할이 아닌 삶을 고안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1세계의 여성들이 쓴 에세이들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냅, 솔닛, 게이, 랭… 그러다 비비언 고닉을 만났을 때…는 아마도 겪어야 했을 또 다시 무너지는 시기였다.

불안, 고독과 우울의 한 가운데를 허우적거릴 때, 어떤 부표처럼 고닉의 문장들이 떠 있었다. 붙잡았다. 바다 위 몰아치는 폭우 속에서 문장들과 같이 흔들렸다. 어느 덧 폭풍이 멈추었고, 물결은 찬찬히 일렁였으며, 내가 짊어지고 가는 나.의 무게와 위기 앞에 부족한 근력.을 낱낱이 마주보게 되었다.

자기 직면, 매일의 반복, 환상을 포기해! 스스로에게 집중해, 권위에 기대지마, 그리고 흔들릴 것. 끝까지 의심할 것. 더 흔들릴 것. 몰아세울 것. 포기하기 힘든 나의 나르시시즘. 그것이 보인다면. 포기하지 않더라도. 포기하게 되더라도. 같이 흔들어 볼 것.

“말하고(쓰고) 있는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하지 않으려는” 비비언 고닉의 글쓰기 작법서가 출간되었고, 일기를 멈추지 않기 바라는 아름다운 이가 선물을 보내주셨다. 함께 온 커피를 내리고 18페이지까지 읽다 말고, 고닉에 대한 나의 붙잡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13) 익숙한 것을 꿰뚫고 들어가기란 당연한 듯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힘들고 또 힘든 일이다.”

어떤 글이 더 의미가 있는지
어떤 삶이 더 가치가 있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하며,
내 삶을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지만,

자기 자신을 쓰며 결국 자기 자신이 되는 사람들에게 깊고 단단한 존경심을 느낀다.
나는 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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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9-15 1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는 해내고 있는 중이다!˝
한동안 모닝루틴으로 일기 열심히 쓰다가 운동을 1번으로 놓으면서 일기타임이 사라져 버렸네요;; 다시 써야지 싶으면서도 귀찮기도 하고.. 쩝.. 쟝쟝님의 일기 쓰기는 오래오래 지속되길요^^

공쟝쟝 2023-09-15 13:31   좋아요 2 | URL
운동….. 독보적…. 독보적…..(후 오늘의 걸음..103) 집에서 밥먹고 집에서 일하는 자…에게 운동과 독보적 알림이란… 생..명…

책먹는고란 2023-09-15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이 맺는 관계를 주로 본다. 그런 시선을 배우기 위해 읽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건 태도이고 관계다.˝ 이 말이 와닿네여... 에세이를 읽을 때 이 말을 떠올리겠습니다!!

공쟝쟝 2023-09-15 21:13   좋아요 3 | URL
저는 크게 보면 픽션도, 사회학 책도 (연구주제의 설정과 무의식적 누락이라는 점에서) 자기계발서(성공은 거저 오는 것은 아닌듯 합니다. 과정에서 분명 자기를 해방시키는 경험이 있는 듯?)까지도 에세이라고 생각해요. 모두는 사실 자신을 씁니다. 말하고, 쓴다는 행위는. 더더욱 그렇고. 그것들 모두 관계이고 태도를 전제합니다.
읽고 듣는 것 역시 선택이죠. 특히 정보과잉의 사회에서는 말입니다 ㅋㅋㅋ 그래서 자신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현대의 비극~!
진지하게 읽는 고라니님의 노트가 제겐 자극됩니다!

책먹는고란 2023-09-17 16:44   좋아요 1 | URL
고라니 감동 심하다...... 쟝쟝님께 ㅇㅈ받은 거 진짜 내 독서인생에 중요한 일 10개 뽑으면 꼭 들어갈듯...

좋아하는 분야인 픽션과 사회학 책,
안 좋아하는 분야인 에세이,
싫어하는 분야인 자기계발서까지
좋아하면 더 좋아하게 되고
싫어하더라도 장점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공쟝쟝님의 아름다운 말...
가슴에 새기고 독서생활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저를 돌아볼 수 있도록ㅠㅠㅠ
tmi지만 새끼고라니 시절의 저는 약간우울충이었는데(지금생각해보면 걍 사춘기빨이었던듯...)
그때 그렇게 슨스에 우울글 쓰면 딴사람이 불편함. 중2병같음.
이런 피드백을 받고(이게피드백이냐???ㅠㅠ)
아!!! 하고 저의 슬픔... 정확히는 우울함을 많이 도려낸 느낌이랄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내면이나 나 자체에 관심이 덜해졌던 것 같음...
사회적 이슈나 책 내용을 받아들이면 그게 나와 연관되지 않고
계속 다른 사람이나 사회하고만 연관지어서 화를 내는 거예요ㅋㅋ(우울을 도려낸 대신 화를 얻다)
그래서 제가 비록 댓글은 개허접하게 남겼지만...
공쟝쟝님의 글과 댓글을 며칠간 곱씹으면서 저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쟝쟝 2023-09-17 23:50   좋아요 1 | URL
고라니님, 제가 힘들다는 글을 썼을 때 저를 살린 말이 있어요. 중2병이냐, 우울충이냐, 아픈 사람 글 기빨린다!! 가 아니라

작가들 다 글써서 살았어. 살려고 쓴 거야.

살려고 견디려고 읽고 쓰는 사람이 세상에 있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버지니아 울프도, 조지 오웰도… 우울증이었대고(제가 울프나 오웰은 아니고요 ㅋㅋ 작가의 덕목이 우울이라는 것도 아닙니다만) 요컨대 세상을 아프게 감각하지 않는 사람이 책을 읽겠으며, 어떤 고전도 희노애락. 중에서 우울과 슬픔을 도려내라고 하지 않아요.

저는 계속 밝음을 유지해야 (소비가 유지되는)하는 조증 세상에 지지 않기 위해 때로는 님 말 대로 분노하며 읽기도 해요. 버뜨, 가장 좋아하는 글은 유머가 있는 글이죠. 풍자와 해학 ㅋㅋㅋ

가끔 진지한 독자를 만날 때 동족이다!!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가 진지하게 듣고 읽는 이유는 저자에게서 배우고 싶은 무엇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고라니님은 진지한 독자!!

감정은 몸에 체현된 사상이래요. 언어의 그물은 매우 성기지만 질겨서. 나의 고유한 감정에 좋지 않은 말을 (우울충이라뇨 ㅠㅠ) 붙이는 건 두고두고 나 스스로에게 좋지않게 작용해요. 타인이 하는 말이 그럴진대 스스로 하는 말이 그러면 더 안타깝죠. 나의 우울에 얘쁜 말을 붙여쥽시다. 난 역시 예술가군!!!

분노하고 아파하고 우울하고 또 명랑하고 즐거우며 지적인 쾌락을 느끼는 고라니님의 다채로운 독서 생활을 종종 보러 오갰삽니다 😝

유부만두 2023-09-16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간 <통증과 뇌과학>이 보여서 링크 공유합니다.

http://aladin.kr/p/e4tUv

공쟝쟝 2023-09-16 11:16   좋아요 1 | URL
유부만두님의 뇌과학 마니아 당첨을 축하하며!! 💖💖💖

얄라알라 2023-09-16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냅, 솔닛, 게이....푹빠져 읽었고, 그 중에는 비행기 타고 가서 만나고 싶기도 한 작가가 있지만 같은 책을 읽었어도 공쟝쟝님처럼
자신과 대화하며 자기화하는 시간을 못가졌나봐요. 쟝님께서 평소 유머강도를 1/10로 낮추시고 쓰신 이 일기형의 글이 왜 이리 와닿는지요....

아직 고닉은 읽지 않았고, 플친님들 칭찬으로만 대신 접했는데 쟝님 글 보니, 결코 놓치면 안되겠네요

공쟝쟝 2023-09-17 23:48   좋아요 1 | URL
나만 알고 싶은데~ 나만 잘 쓰고 싶은데~ ㅋㅋㅋ 비비언 고닉의 이 책은 정말 교재로도 너무 좋네요. 매료되었습니다.

단발머리 2023-12-14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쪽 읽었는데 너무 좋네요, 이 책...
영어로 살까? 라는 생각을 해보는 아침... 굿모닝! 늦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2-14 15:17   좋아요 1 | URL
굿앱터눈! 비비언 고닉의 관점을 모조리 훔치고 싶었더랬쥬!!! 고닉조아여! 영문을 어케썼을진 나는 모름!😂🤣